설마 했다. 2014년에 쓰인 도장인데 직접 만든 사람이라 해도 기억할까? 반신반의하며 도장집을 찾아다녔다. 긴가민가하는 사장님과 한 뭉텅이로 쌓인 도장 필름을 뒤졌다. 손만 바지런히 움직이던 침묵의 1분, 2분이 지나고…. 맙소사, 찾았다! The 5163 Army Div. 이탈리아 해킹팀과 ㄴ사 중개 계약서에 찍힌 도장과 같은 본이었다. 취재는 했지만, 솔직히 정말 찾을 거라 예상 못했다. 이렇게 허술할 줄이야.
<시사IN> 보도로 알려진 국정원 막도장 실태에 독자들은 '걱정원'이란 이름을 다시 불러냈다. 2011년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했다 들킨 뒤 얻은 오명이다. 이후 2013년부터 시작된 '원세훈 법정'에서는 요원들이 '기억력이 떨어지고' '내가 쓴 글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고'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라는 진술을 쏟아내 또 걱정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런 민망한 기억력 수준에 국가 안보를 맡겨도 되느냐는 우려가 절로 나왔다('기억상실'은 원세훈 전 원장에겐 도움이 되었다. 대법원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검찰의 증거를 믿을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혐의를 파기환송했다. 비록 유무죄 취지는 안 밝혔지만).
↑ ⓒ시사IN 양한모 :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조원'이라는 별명까지 추가로 얻었다.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을 도왔던 중국 동포 김원하씨가 자살 기도를 하며 호텔방에 국조원이라는 글씨를 써두었다. 국가정보원이 아닌 '국가정보조작원'이라는 야유였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은 중국에서 보낸 것처럼 공문서를 위조하면서도 국내 팩스 번호를 지우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클라스 보소'라는 댓글과 함께 조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비아냥까지 터져나왔다.
그래도 '무명의 헌신'을 하는 다수의 국정원 요원이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언론을 통해 두드러졌던 국정원의 모습에 국정원 전체를 투영한다면 너무 절망적이지 않은가. 국정원 주장처럼 '개인적 일탈'이나 '일부의 실수'라면 더 아프게 지적해서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나라의 최고 정보기관이 본연의 기능에 더 충실할 수 있게 하는 애정 어린 비판이었다.
7월19일자로 나온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제목의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 성명서는 그래서 더 당혹스럽다. 의혹을 씻으려 노력하기보다 '아니라는데 왜 자꾸 트집을 잡느냐'는 신경질을 유례없이 국정원 단체 명의로 냈다. 깊은 실망감까지 느낀다. 국정원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러다 이 정부, 국정원으로 시작해서 국정원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김은지 기자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