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오유 바로가기
http://m.todayhumor.co.kr
분류 게시판
베스트
  • 베스트오브베스트
  • 베스트
  • 오늘의베스트
  • 유머
  • 유머자료
  • 유머글
  • 이야기
  • 자유
  • 고민
  • 연애
  • 결혼생활
  • 좋은글
  • 자랑
  • 공포
  • 멘붕
  • 사이다
  • 군대
  • 밀리터리
  • 미스터리
  • 술한잔
  • 오늘있잖아요
  • 투표인증
  • 새해
  • 이슈
  • 시사
  • 시사아카이브
  • 사회면
  • 사건사고
  • 생활
  • 패션
  • 패션착샷
  • 아동패션착샷
  • 뷰티
  • 인테리어
  • DIY
  • 요리
  • 커피&차
  • 육아
  • 법률
  • 동물
  • 지식
  • 취업정보
  • 식물
  • 다이어트
  • 의료
  • 영어
  • 맛집
  • 추천사이트
  • 해외직구
  • 취미
  • 사진
  • 사진강좌
  • 카메라
  • 만화
  • 애니메이션
  • 포니
  • 자전거
  • 자동차
  • 여행
  • 바이크
  • 민물낚시
  • 바다낚시
  • 장난감
  • 그림판
  • 학술
  • 경제
  • 역사
  • 예술
  • 과학
  • 철학
  • 심리학
  • 방송연예
  • 연예
  • 음악
  • 음악찾기
  • 악기
  • 음향기기
  • 영화
  • 다큐멘터리
  • 국내드라마
  • 해외드라마
  • 예능
  • 팟케스트
  • 방송프로그램
  • 무한도전
  • 더지니어스
  • 개그콘서트
  • 런닝맨
  • 나가수
  • 디지털
  • 컴퓨터
  • 프로그래머
  • IT
  • 안티바이러스
  • 애플
  • 안드로이드
  • 스마트폰
  • 윈도우폰
  • 심비안
  • 스포츠
  • 스포츠
  • 축구
  • 야구
  • 농구
  • 바둑
  • 야구팀
  • 삼성
  • 두산
  • NC
  • 넥센
  • 한화
  • SK
  • 기아
  • 롯데
  • LG
  • KT
  • 메이저리그
  • 일본프로야구리그
  • 게임1
  • 플래시게임
  • 게임토론방
  • 엑스박스
  • 플레이스테이션
  • 닌텐도
  • 모바일게임
  • 게임2
  • 던전앤파이터
  • 마비노기
  • 마비노기영웅전
  • 하스스톤
  • 히어로즈오브더스톰
  • gta5
  • 디아블로
  • 디아블로2
  • 피파온라인2
  • 피파온라인3
  • 워크래프트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 밀리언아서
  • 월드오브탱크
  • 블레이드앤소울
  • 검은사막
  •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2
  • 베틀필드3
  • 마인크래프트
  • 데이즈
  • 문명
  • 서든어택
  • 테라
  • 아이온
  • 심시티5
  • 프리스타일풋볼
  • 스페셜포스
  • 사이퍼즈
  • 도타2
  • 메이플스토리1
  • 메이플스토리2
  • 오버워치
  • 오버워치그룹모집
  • 포켓몬고
  • 파이널판타지14
  • 배틀그라운드
  • 기타
  • 종교
  • 단어장
  • 자료창고
  • 운영
  • 공지사항
  • 오유운영
  • 게시판신청
  • 보류
  • 임시게시판
  • 메르스
  • 세월호
  • 원전사고
  • 2016리오올림픽
  • 2018평창올림픽
  • 코로나19
  • 2020도쿄올림픽
  • 게시판찾기
  • 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경호실장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2-11-07
    방문 : 409회
    닉네임변경 이력
    회원차단
    회원차단해제
    게시물ID : history_7528
    작성자 : 오늘의유뻑
    추천 : 6
    조회수 : 2386
    IP : 220.70.***.227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2/06 16:21:38
    http://todayhumor.com/?history_7528 모바일
    [참고자료]12.12 군사반란
    <P><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4pt"><STRONG>한글파일 표부분이 텍스트화되어 읽기에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STRONG></SPAN></P> <P><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4pt"><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4pt"><SPAN style="BACKGROUND: #ffffff; 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신문태명; mso-font-width: 110%">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보고서中</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4pt"><STRONG></STRONG></SPAN></P> <P><SPAN style="FONT-SIZE: 18pt">‘12.12 군사반란’ </SPAN><BR>‘12. 12’ 주모자들의 대부분은 ‘하나회’ 출신이었다.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 <BR>겸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군내 요직인 청와대 경호실, 수경사, <BR>보안사 등의 주요 직책을 독식했던 ‘하나회’를 견제하려 했다. 그 방법으로 ‘하 <BR>나회’ 수장이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발령내려 했다. <BR>그 시기는 12. 13. 개각과 함께 예정됐다. 그러나 이 정보는 사전에 김용휴 국 <BR>방부차관을 통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측에 누설됐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 <BR>12.을 거사일로 택했다. 그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 <BR>해 현장 부근에 있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않아 묵시적으로 내란을 공 <BR>모했으며 김재규로부터 불법적인 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BR>.5공 전사. 제3편 정총장에 대한 의혹과 12.12사건 에는 ‘12.12군사반란’ <BR>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증언을 담은 .5공 <BR>전사.의 내용이다. <BR>노 장군에 의하면 … 정 총장을 수사해야겠다는 합수본부장 전 장군의 결심이 이 <BR>미 11월 초에 확고히 섰으며 … 12월 12일은 부총리였던 신현확씨가 국무총리에 내 <BR>정되어 다음날 13일에 국무회의가 열려 새로운 내각의 구성을 논의하게끔 되어 있 <BR>었다. 따라서 전두환 장군은 개각 전날 정 총장을 연행.수사하고, 그 결과가 국무 <BR>회의에 연결, 군의 인사에 반영된다면 10.26사건 수사는 수사대로 완결되고 육군 <BR>참모총장의 자연스런 교체가 가능하여 군의 신뢰와 단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 <BR>했던 것이다.15) <BR>.5공화국 전사. 3편 맨 앞쪽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있다. 맨 먼저 당시 합수 <BR>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소장 전두환이 있으며, 그 밑에는 12. 13. 보안사령부에 <BR>서 찍은 단체 사진이 있다. 사진 설명은 “12.12 난국 극복의 참여자들(1979. <BR>12. 13)”이었다.16) 다음 페이지에는 사진촬영에 등장한 개인별 사진과 ‘12.12’ <BR>당시의 직책 및 계급이 정리돼 있다. <BR>15) 보안사, .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23쪽. <BR>16) 이들은 보안사에서 촬영한 ‘보안뉴스’(kbs 자료실 소장)에도 등장한다.<BR><BR>- 21 - <BR>‘12.12’ 당시 직책 계급 이름 <BR>‘12.12’ 직후 <BR>직책 <BR>전역시 <BR>계급 <BR>최종 <BR>직책 <BR>비고 <BR>보안사령관 겸 <BR>합수본부장 <BR>소장 전두환 같음 대장 보안사령관 대통령 <BR>국방부 군수차관보 중장 유학성 3군사령관 대장 <BR>1군단장 중장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대장 육군참모총장 감사원장 <BR>9사단장 소장 노태우 수경사령관 대장 보안사령관 대통령 <BR>20사단장 소장 박준병 같음 중장 보안사령관 국회의원 <BR>71훈련단장 준장 백운택 9사단장 소장 <BR>제1공수여단장 준장 박희도 같음 대장 육군참모총장 <BR>제3공수여단장 준장 최세창 같음 대장 국방부장관 <BR>제5공수여단장 준장 장기오 같음 중장 <BR>제2기갑여단장 준장 이상규 같음 <BR>보안사 보안처장겸 <BR>합수부 안전처장 <BR>대령 정도영 같음 <BR>보안사 정보처장겸 <BR>합수부 정보처장 <BR>대령 권정달 같음 소장 <BR>민정당 <BR>사무총장 <BR>보안사 비서실장겸 <BR>합수부 비서실장 <BR>대령 허화평 같음 준장 <BR>청와대 <BR>비서실장 <BR>보안사 인사처장겸 <BR>합수부 총무처장 <BR>대령 허삼수 같음 준장 <BR>청와대 <BR>사정수석 <BR>보안사 수사과장겸 <BR>합수부 제1수사국장 <BR>중령 이학봉 같음 준장 <BR>청와대 <BR>민정수석 <BR>수경사 제30경비단장 대령 장세동 같음 준장 <BR>청와대 <BR>경호실장 <BR>수경사 제33경비단장 대령 김진영 같음 대장 육군참모총장 <BR>육군본부 <BR>범죄수사단장 <BR>대령 우경윤 같음 소장 <BR>.5공전사.에 의하면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김재규에 대한 수사가 일단 <BR>락된 11. 중순부터 자신의 참모나 가까운 장성들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문제 <BR>를 토의했다.<BR><BR>- 22 - <BR>전 본부장은 그 문제에 관하여 보좌관 허화평 대령, 합수본부 조정통제국장 허삼 <BR>수, 수사국장 이학봉 중령 그리고 평소에 가까운 수경사 30단장 장세동 대령, 33단 <BR>장 김진영 대령과 논의하였다. 일의 진행은 수사내용이나 수사계획수립은 수사실무 <BR>자인 수사국장 이학봉 중령과 또한 대공관계에서 많은 수사경험을 가진 허삼수 대 <BR>령이 상의하여 수립하게 하였으며, 실제 수사에는 수사2국의 범수단장 우경윤 대령, <BR>헌병감실 기획과장 성환옥 대령, 33헌병대장 최석립 중령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전 <BR>체계획을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이 조정, 통제하여 전 장군께 보고드리는 형식을 취 <BR>했다. 그리고 장세동 대령과 김진영 대령은 12월 12일 저녁 6:30에 30단에 모일 장 <BR>성들의 안내를 책임지고 그 외 필요할시 경계 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이 계획이 계 <BR>엄사령관에 관한 중대한 것인 만큼 전 장군은 수시로 이들 참모들과 참모회의를 열 <BR>어 일의 진척사항을 보고받고 문제점을 검토하여 계획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하 <BR>는 신중을 기하였으며 연행계획에 따른 위험성을 감안하여 계획의 시행일까지 극비 <BR>리에 일을 추진하였다.17) <BR>허삼수 대령은 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계획을 알리고 총장 <BR>공관을 경계하고 있는 헌병을 제지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BR>허 대령은 “선배님, 저희들이 육군참모총장의 연행계획을 수립해서 실행하려고 <BR>하는데 총장 공관을 경계하고 있는 육본 헌병이 우리가 하는 일을 저지하면 일이 <BR>어려워지니까 그렇게 안 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데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했 <BR>다. 우 대령은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걱정 <BR>마라. 내가 성환옥 대령하고 의논해서 조치하겠다. 성 대령이 육본 헌병대장인 이종 <BR>민 중령과 동기이니 협조하면 잘될 것이다. 그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다” 하고 말했 <BR>다. 12월 10일 허 대령은 12일날 일을 단행하겠다고 우 대령에게 알려왔다. 성환옥 <BR>대령도 12월 12일 약 1주일 전 허삼수 대령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성 대 <BR>령이 허 대령 방에 가니 허 대령은 “윗분의 지시”라고 하면서 정 총장을 연행하는 <BR>계획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성 대령은 즉각적으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BR>알고 신명을 바쳐서 돕겠다고 하였다. 이틀 후 오후 허 대령과 성 대령은 군복 위에 <BR>사복을 걸치고 총장공관 지역의 지형정찰을 나갔다.18) <BR>한편, 최석립 33헌병대 대장은 12월 5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호출을 <BR>받게 된다. <BR>최 중령이 보안사령관실에 들어가니 전 장군과 허삼수 대령이 함께 있었다. 전 장 <BR>17) 보안사, .5공화국 前史. 3편, 1982, 945쪽. <BR>18) 보안사, .5공화국 前史. 3편, 1982, 948쪽.<BR><BR>- 23 - <BR>군은 최 중령에게 부대의 근무 및 훈련상태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BR>허 대령은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고 지시하면 <BR>서 병력은 약 50여명이 좋겠다고 하였다. 최 중령은 그의 임무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BR>모르나 어쨌든 중대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부대에 돌아온 최 중령은 어떠한 임 <BR>무라도 수행할 수 있도록 부대원의 정신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예하 장교들 <BR>가운데서 충성스럽고 믿을 만한 제대장 3명을 선발하였다. 한.., 차.., 황.. <BR>대위가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부대요원 가운데서도 최정예분자 60명을 <BR>선발, 훈련을 시키면서 앞으로 부여될 임무에 준비하고 있었다.19) <BR>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 12. 14:30경 최 중령을 불러 정 총장을 연행, 조사한 <BR>다는 것을 알려주며, 세부 사항은 허삼수 대령에게 받으라고 지시했다. 허삼수 <BR>대령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배치도를 최 중령에게 건네준 뒤 함께 공관 <BR>지역에 가서 최 중령의 병력이 배치될 장소를 일일이 확인하고, 18:00까지 보 <BR>안사 서빙고분실로 병력을 집결시키도록 지시하였다. 경복궁 안 부대본부로 <BR>돌아온 최석립 중령은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어떠한 명령이 있더라도 동요치 <BR>말고 명령에 따라서 행동할 것을 강조”한 후20) 17:40경 마이크로버스 2대에 65 <BR>명(4/61)의 병력을 싣고 서빙고로 출발하였다. <BR>12. 12. 18:30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이학봉 수사국장을 대동하고 정승화 육 <BR>군참모총장의 연행, 조사에 관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얻기 위해 삼청동 총 <BR>리공관으로 떠났으며, 허화평 비서실장은 이 사실을 허삼수 대령에게 바로 알 <BR>렸다.21) 그러나 최 대통령은 그와 같이 중대한 군 수뇌부에 대한 결심을 내리 <BR>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군부의 일을 잘 모르니 국방장관을 통하여 건의하는 <BR>절차를 밟으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요구를 거부했다. <BR>한편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초청을 받은 9명의 장성들은22) 모두 약속대로 12. <BR>12. 18:30까지 경복궁 안에 위치한 30경비단(단장 : 장세동 대령) 단장실로 모 <BR>였다.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 대령과 인접 경비단인 수경사 33경비단장 김 <BR>진영 대령이 이들을 맞았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총장 <BR>연행에 관한 보고와 재가를 받기 위해 삼청동 총리공관에 가고 없었다. 이들은 <BR>30경비단장실에서 상황전개를 보고받았으며, 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자 모두 <BR>19) 보안사, .5공화국 前史. 3편, 1982, 951쪽. <BR>20)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953쪽. <BR>21)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956쪽. <BR>22) 국방부 군수차관보 중장 유학성, 1군단장 중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중장 차규헌, 제71훈련단장 준 <BR>장 백운택, 제9사단장 소장 노태우, 20사단장 소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준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BR>준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준장 장기오.<BR><BR>- 24 - <BR>대통령에게 몰려가 항의하자고도 했다. <BR>전 장군은 초청 장성들에게 최 대통령이 잘 이해를 못하고 국방장관도 소재가 불 <BR>명하여 재가가 늦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황영시 장군은 벌떡 일어나면 <BR>서 “우리 함께 대통령께 갑시다. 정 총장을 연행.조사하는 것이 국사범을 조사하는 <BR>보안사령관으로서의 공적 기능행사지 전 장군 개인의 일이 아니지 않소. 이것이 군 <BR>의 고급간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것을 가서 이야기합시다”고 말했다. 이와같은 <BR>황 장군의 제의에 대하여 다른 3성 장군들도 “그럽시다. 같이 갑시다” 하고 조금도 <BR>주저함이 없이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전두환 장군과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백운 <BR>택, 박희도 등 6명의 장군이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다시 가기로 하고 다른 장성들은 <BR>30단에 남아서 통신 유지와 상황파악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이때 시간은 20시 30분 <BR>이었다.23) <BR>이와 동시에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육군 범죄수사단장의 책임 아래 참모총장 <BR>연행계획이 진행됐다.24) 17:00경 서빙고에 도착한 허삼수 대령은 정승화 총장 <BR>연행을 담당할 수사관들을 소집했다. 수사관들은 모두 김재규 수사를 직접 수 <BR>사했던 합수부 요원들이었다. 소령 김.., 소령 한.., 준위 신.., 상사 박 <BR>.., 준위 양.., 준위 이.., 준위 김.. 등이었다. 이들은 연행조와 수습 <BR>조로 나뉘었다. 연행조는 정 총장을 직접 연행하는 임무를 수행할 팀으로서 앞 <BR>의 4명이 할당되고, 수습조 3명은 연행임무를 지원하고 부수되는 사태를 수습 <BR>하는 임무였다. 개인에게 각자 권총 1정과 실탄 그리고 연행에 필요한 수갑이 <BR>지급됐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M-16 6정이 추가로 지급됐다. 18:30경 우경 <BR>윤 육군본부 범수단장과 성환옥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그리고 육본 헌병대 <BR>장 이종민 중령이 함께 도착했다. 이종민 중령은 총장공관 지역에 들어갈 때 <BR>편의를 얻기 위하여 데리고 온 것이었다. 얼마 뒤 최석립 33헌병대장이 병력 <BR>(4/61)을 마이크로 버스 2대에 탑승시키고 도착했다. <BR>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은 수사관과 지원부대 장교를 집합시켜 정승화 참 <BR>모총장 연행에 관한 임무를 재확인한 후, 1진에 우 대령, 허 대령 그리고 수사 <BR>연행조 요원, 2진에 성 대령, 이 중령, 수사수습조 요원, 마지막으로 최 중령이 <BR>이끄는 33헌병지원제대의 순으로 18:50 보안사 서빙고 분실을 출발했다. 1진이 <BR>한남동 총장공관에 도착한 시각은 18:55경이었다. 공관을 경계중인 해병 헌병 <BR>대의 검문을 받자 대령 우경윤은 “나는 범수단장 우 대령이고, 보안사 권정달 <BR>대령과 함께 총장께 보고 드리러 가는 중이다”고 대답하며 검문소를 통과했다. <BR>23)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34~1035쪽. <BR>24)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957쪽.<BR><BR>- 25 - <BR>이들이 총장공관에 도착했을 때는 19:00였다. 이들은 총장공관으로 들어가서 <BR>제지하는 부관 소령 이○○ 및 총장경호소대장 대위 김○○ 등을 제압하고 정 <BR>총장을 연행했다.25) <BR>우 대령은 “김재규 재판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총장님의 증언 요청이 다시 나왔는 <BR>데 총장님의 진술을 다시 받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본래의 방문 요건을 말하였다. … <BR>“그러면 나한테 왜 전화 없이 너희들이 왔나? 처음엔 보안사에서 무슨 보고를 하러 <BR>온다고 하더니 무슨 딴소리냐?” 하면서 정 총장은 소리를 지르고 경호원을 부르면 <BR>서 야단하였다. 우 대령인 “그러실 필요없이 갑시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시면 아이 <BR>들한테 좋지 않지 않습니까? 가시지요”라고 재차 권하였다. 정 총장은 “이놈들 가긴 <BR>어딜 가느냐? 내가 적어도 육군참모총장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우 대령은 총장의 <BR>오른팔을 허 대령이 총장의 왼팔을 끼고 밖으로 끌고 나오려고 하였다. 총장은 더욱 <BR>소리를 지르며 헌병을 찾았다. 헌병을 찾기 때문에 우 대령이 “저도 헌병입니다. 헌 <BR>병을 소리쳐서 불러봐야 번거롭기만 하고 헌병이 지금 제 말을 듣지 총장님의 말 <BR>안 들을 겁니다”라고 말하는데, 부속실 쪽에서 공관에 근무하는 경호원 4, 5명이 왁 <BR>안으로 들어왔다. 정 총장은 “이놈들 잡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 우 대령은 … 달 <BR>겨드는 자들을 뿌리치면서 복도 쪽으로 나갔다. … 우 대령은 복도를 지나 부속실 <BR>쪽으로 가 안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어서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탕” <BR>하고 부속실 쪽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오른쪽 허리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BR>허 대령은 힘을 내어 달려든 공관원을 뿌리치고 총장을 인질로 하여 다시 안으로 <BR>들어갔다. 이때 밖에서 한.. 소령이 뛰어들어와 다시 함께 총장을 양쪽으로 잡고 <BR>있는데, 2층에서 한 청년이 38구경 권총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허 대령을 쏘려고 하 <BR>였다. 정 총장의 아들이었다. 허 대령은 “임마 쏘지마! 네 아버지가 죽는다”고 소리 <BR>치며 만류하였다. 또한 총장도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질책하였다. 그리고 한편 이 <BR>때 밖에 나왔던 박.. 상사가 응접실 유리창을 통하여 그것을 보고 총장 아들에게 <BR>총을 겨누었다. 이것을 본 총장 아들은 다시 2층으로 도망하였다. …부관 이.. 소 <BR>령이 총장의 호출로 … 장관 공관 전화번호 5056 중 50까지 돌리는 순간 …한.. <BR>소령이 권총 개머리판으로 뒤에서 가격했던 것이다. …이때 또 이 소령은 옆으로 쓰 <BR>러지면서 복부에 총상을 입고 소파 모서리에 머리 옆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 …순간 <BR>위협을 느낀 경호대장 김 대위는 권총을 뽑았다. 이를 본 박 상사가 먼저 리벌버 권 <BR>총 뒷등으로 김 대위의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게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김.. 소 <BR>령이 일탄을 발사하였다. … 밖에서는 신.. 준위가 위협으로 공포사격을 하자 총 <BR>장 공관은 안팎으로 수라장이 되었다. … 박 상사는 …실탄이 없는 권총을 버리고 <BR>…M-16 소총을 꺼내들고 다시 황급히 공관 쪽으로 왔다. …그는 지체없이 M-16으 <BR>로 유리창을 부셨다. 그리고 뛰어들어가 정 총장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손들어! 빨 <BR>25) 이 과정에서 범죄수사단장 대령 우경윤은 총격을 받고 부상당했다. 그 뒤 그는 정상적인 군 생활 <BR>을 할 수 없음에도 장성으로 진급했다.<BR><BR>- 26 - <BR>리 나가자!”고 소리를 질렀다.26) <BR>19:05경 연행 지원조가 참모총장 공관에 도착해 위병소를 통과했다. 이들은 <BR>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공관 경비중인 해병대 헌병들의 제지를 받았고 이 과 <BR>정에서 33헌병대 대위 황○○를 비롯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 <BR>에 총장 연행에 성공한 이들이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도착한 시각은 19:21이었 <BR>다.<BR>육군참모총장 납치 상황이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BR>육군본부 헌병감 등에게 통보된 시각은 19:38이었다. 당시 이들은 보안사령관 <BR>의 거짓 초청을 받아 연희동에 있었다. 즉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사전에 청와대 <BR>로 들어가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구속을 재가 받을 계획이면서도 정승화 <BR>육군참모총장의 측근이었던 세 사람을 유인했던 것이다. 참모총장의 납치 소 <BR>식을 통보받은 이들은 곧바로 부대로 복귀해 총장 구출을 시도했다. 수도경비 <BR>사령부로 돌아가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19:42 수경사 헌병단 5분대기조에 출 <BR>동 준비를 지시했고,27) 곧이어 수경사 작전참모 대령 박동원에게 전투준비를 <BR>지시했다. <BR>당시 감청기록을 토대로 보안사에서 작성한 12. 12. 상황일지 에 의하면 육 <BR>군참모총장 공관에서의 최초 사격이 보고된 것은 1979. 12. 12. 19:38이었다. <BR>19:42 우경윤 범죄수사단 단장이 부상당하고 헌병 1명이 사망했으며, 총장 수 <BR>행 부관이 부상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같은 시각 육본 작전참모부장 소장 하 <BR>소곤이 상황을 접수했고, 수경사령관(장태완 소장)이 헌병단 5분대기조에게 출 <BR>동 준비를 지시했다. 19:52 육군본부에서는 총장공관으로 구급차와 1개 소대 <BR>병력을 출동하도록 지시했고, 19:54에 수경사에서 구급차가 출발했다. 20:03에 <BR>수경사는 각 검문소에 검문검색을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이어 병력 30명이 출 <BR>동 대기하고 있었다. 20:07 수경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의 <BR>인솔 아래 헌병 병력(1/25)이 총장 공관을 향해 출동했고, 이어 20:08 수경사령 <BR>관도 총장공관으로 출발했다. 동시에 육군본부는 수도권 지역에 ‘진돗개 둘’을 <BR>발령했다.28) <BR>보안사령부 보안처장실에는 모든 과장들을 소집하여 서울시 지도위에 상황 <BR>판을 만들어 놓고 예하대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일일이 표시하면서 상황처리를 <BR>26)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971~977쪽. <BR>27) 보안사, 12. 12. 상황일지(전화통화 내용) . 개인별 병력 출동 지시내용에는 21:05으로 나온다. <BR>28) 수도권에 발령됐던 ‘진돗개 둘’은 20:40에 해제됐다. .5공전사.에는 육본에서 20:10에 수도권 일원 <BR>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였고, 20:20에는 1.3군 지역에 ‘진돗개 둘’이 발령되었다고 하였다.(1035 <BR>쪽)<BR><BR>- 27 - <BR>하고 있었다. 당시 1과장 윤영식 중령은 전군 주요 지휘관간의 통화내용을 515 <BR>보안부대로부터 획득, 정도영 처장에게 보고하여 전군의 움직임을 직접 눈으 <BR>로 보는 듯이 파악할 수 있게 하였고, 2과장 오일랑 중령은 상황의 접수와 처 <BR>리를 상황판에 기록 유지하고 피아간에 야기될 상황을 비교 분석, 판단함으로 <BR>써 처장이 각 부대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3과장 홍성률 중령은 <BR>대전복(對顚覆) 부대와 개인의 동향을 주로 파악 처리하였다. 이러한 보고를 받 <BR>은 정도영 보안처장은 중요 조치사항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고하고, 허 <BR>화평 비서실장과 상황을 교환하였다.29) <BR>경복궁 안 30단에 남아 있던 노태우 9사단장은 육군본부 등의 조치에 대한 <BR>상황을 보고받고 최세창 3공수여단장과 장기오 5공수여단장에게 부대로 돌아 <BR>가도록 하였다. <BR>노태우 장군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느꼈다. … 3공수여단장 최세 <BR>창 장군과 5공수여단장 장기오 장군에게 수도권 일원에 ‘부엉이’가 발령되어 있으니 <BR>까 빨리 자기 부대로 복귀하여 부대장악을 하고, 복귀와 동시에 보고를 하라고 하였 <BR>다. 병력이 필요한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3.5공수 <BR>여단장을 보내놓고 노 장군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다.30) <BR>신군부측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회유했다. 12. 12. 21:06 국방부 군수차관보 <BR>유학성 중장은 수경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경복궁 내의 수경사 30경비단 단 <BR>장실로 올 것을 권유했고 뒤이어 1군단장 황영시 중장과 수도군단장 차규헌 <BR>중장도 차례로 설득했으나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나는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BR>쓸데없는 소리 마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31) <BR>유학성 : 나야. 그런데 오늘 일은 정 총장이 각하시해사건과의 관련 문제로 합수 <BR>본부에서 합법적으로 조사하려다 일어난 것이니 그리 알아. 그러니 아무 <BR>소리 하지 말고 이리로 와. <BR>장태완 : 왜 남의 부대에 와서 이러느냐. <BR>유학성 : 장 장군 그거 다 알면서 왜 그래,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 <BR>장태완 : 왜 이 지랄이야, 쏴 죽인다. <BR>황영시 : 장 장군! 나 1군단장 황영시야. <BR>장태완 : 군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그 점잖은 어른을 어떻게 할 작정이야요? <BR>29)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94~1195쪽. <BR>30)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36쪽. <BR>31) 보안사, 12.12 상황일지(전화통화 내용) 및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81~82쪽.<BR><BR>- 28 - <BR>황영시: 그거 통할 수 있는 처지인데 너 왜 그래, 이리 와. <BR>장태완 : 총장을 어쩌자고 납치하는 거요. 정말 그러면 죽어! <BR>황영시 : 여기 차규헌이 와 있는데 너 이리 와. <BR>장태완 : 나는 죽기로 결심한 놈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 당신네들 그럴 수가 있 <BR>어. 좋지 않아. 그러면 안 돼! <BR>20:15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처장은 수경사 작전참모에게 헌병 1개 소대와 장 <BR>갑차 6대의 출동을 지시했다. 같은 시각 이건영 3군사령관은 20사단에 전화를 <BR>걸어 사단장을 찾았으나 박준병 20사단장은 이 시각 수경사 30경비단 단장실 <BR>에 있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20:20 1군과 3군 지역에 ‘진돗개 둘’이 <BR>발령됐다. <BR>9공수여단은 20:25에 특전사령부 상황실로부터 ‘진돗개 하나’ 발령 지시를 받 <BR>고 참모 및 대대장들을 소집했다. 20:27에 3군사령부 상황실에서는 20사단 작 <BR>전참모에게 유선으로 “20:20부로 ‘진돗개 둘’을 발령”했음을 통보했다. 20:29 수 <BR>경사 장갑차 3대와 1개 분대(1/24)가 출동했다. 21:06 유학성 군수차관보 등과 <BR>통화한 수경사령관은 작전참모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21:15 육군본 <BR>부 상황실에서는 20사단 작전참모에게 21:00부로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BR>21:25 3군사령관은 20사단장에게 전화로 “내 명령 없이 병력 출동 금지하라”고 <BR>지시했고, 다시 21:26에 20사단 참모장에게 “병력 동원을 일체 금하라”라고 지 <BR>시했다. 21:28 수경사령관이 30사단장에게 “함부로 병력을 집결치 마라, 내가 <BR>직접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22:03에 수경사령부 <BR>작전보좌관 겸 상황실장 김진선 중령32)은 검문소에 1공수여단 입경시 검문소 <BR>통과지시를 하달했다. 반면 수경사령관은 전 한강 다리의 차단을 지시하며 검 <BR>문을 불응할 때는 사살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또한 수경사 지휘관들을 수경 <BR>사령관실로 집합시켰다. 그러나 이 지시가 하달될 때 1공수여단은 이미 검문소 <BR>를 통과했다. <BR>한편,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6명의 장성들은 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 <BR>령에게 재가를 거듭 요청하였으나 최규하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의견을 들어야 <BR>한다며 거절했다. <BR>전두환 장군이 먼저 “각하,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모총장, 군사령관 등 고위 <BR>지휘관을 연행.조사하는 데는 보안문제도 있고 또 그 자체의 중요성으로 보아 그 <BR>런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결재를 맡는 것이 당연합 <BR>32) 당시 김진선 수경사 작전보좌관 겸 상황실장은 1993년 4월 8일 대장으로 2군사령관에 취임한 후 <BR>5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숙정에 의해 최단명 사령관으로 물러났다.<BR><BR>- 29 - <BR>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최 대통령은 “ 잘 알겠소. 그러나 국방장관이 내 참모 <BR>인데 장관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할 것이 아니오” 하였다. 유학성 장군이 “각하 지 <BR>금 합수본부장이 조치하고 있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반드시 <BR>재가를 해 주셔야 합니다. … 빨리 조치를 안하시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이런 시 <BR>기에 군이 자칫 잘못하면 혼란이 가중되고 전쟁을 자초하게 됩니다”라고 전 장군을 <BR>도와서 말했다. 그에 대해 최 대통령은 “그렇소. 당신네들의 말이 백번 옳아요. 그러 <BR>나 이런 문제는 계통을 통해서 하겠소” 하였다. 유 장군이 다시 “각하 시간을 지체 <BR>하면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불상사가 일어나면 큰 일입니다”라고 하니 “그래요? 조 <BR>용한데 무슨 불상사요. 잠잠하데”라고 대꾸하면서 최 대통령은 그의 입장을 좀처럼 <BR>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상 이때쯤에는 육본 상황실에서의 전화보고로 최 <BR>대통령이나 신 국무총리는 정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육본 벙커에 장성들이 <BR>모여들고 있어 군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영 <BR>시 장군도 “각하 자유당 당시에 이호 법무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어떤 문제를 <BR>하명받고 헌법절차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난색을 표시하자 이 대통령이 헌법도 국 <BR>가와 국민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당장 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판에 <BR>헌법 절차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한 일이 있는데, 지금 계통을 밟아서 대통 <BR>령 재가를 얻을 때가 못됩니다”라고 재가를 촉구하였으나 최 대통령은 움직이려 들 <BR>지 않았다.33) <BR>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대통령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하고 보안사령부로 돌아갔 <BR>으며, 병력 출동을 위해 박희도 1공수여단장을 부대로 복귀시켰다. <BR>한편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21:50경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부터 상황 설명을 <BR>듣고 참모총장 구출 등에 행동을 같이 하며, 예하 공수여단들의 병력 출동을 <BR>막기로 약속하였다.34)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22:13경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국방 <BR>부 및 육본을 장악하려고 출동하는 여단이 있으니 막으라는 지시를 받고 부사 <BR>령관 이순길 준장과 인사처장 강리건 대령을 보내 1공수여단의 출동을 제지하 <BR>라고 했다. <BR>사령관의 명을 받은 부사령관 이순길 장군은 인사처장 강리건 대령과 사령관의 <BR>지시사항을 의논하였다. 그 전에 보안부대장 김정룡 대령으로부터 말을 들어 어느 <BR>정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있었던 강 대령은 이미 신명을 바쳐 출동키로 결심 <BR>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부사령관은 관여하지 말 <BR>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부사령관도 강 대령 말이 그럴 듯 <BR>하여 가만히 있는데 또 사령관으로부터 독촉이 왔다. 그래서 그는 강 대령의 조언을 <BR>33)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40~1042쪽. <BR>34)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085쪽.<BR><BR>- 30 - <BR>쫓아 떠나기는 떠나되 되도록 천천히 가서 12시 통금시간이 넘은 후 1공수병력이 <BR>출발한 후 도착하기로 하였다.35) <BR>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요청을 받고 믿을 수 있는 9공수 <BR>여단을 출동시키려고 준비중에 있었다. 특전사 보안부대장 김정룡 대령은 보 <BR>안사 1처장 정도영 대령에게 부대현황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1, 3, 5여단은 출 <BR>동준비시키되 9여단의 출동은 저지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며, 23:00경에는 전두 <BR>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직접 3여단장과 협조하여 특전사령관을 연행하라는 지 <BR>시를 받았다.36) 23:00와 23:30분경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1개 공 <BR>수여단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방어하라는 지시를 받은 정병주 특전사령 <BR>관은 23:40 9공수여단장 윤흥기 준장에게 출동명령을 하달하였다. <BR>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22:15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직접 특전사 <BR>령관을 체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병력을 출동시켜 육군본부로 가라는 지 <BR>시를 받았다.37) 최세창 3공수여단장은 정병주 특전사령관 연행계획에 착수하 <BR>였다. <BR>여단장은 박종규 중령을 호출하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간단히 정병주 사령관을 <BR>체포하여 보안사에 연행하라고 지시하였다. 막상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그나 박 중 <BR>령에게 모두 직속상관인데 괴로웠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으라는 말도 못 <BR>했다. 그러나 박 중령은 즉시 “네, 알았습니다” 하고 그냥 나가려 하였다. 그리하여 <BR>다시 불러 “임마,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니 “하여튼 체 <BR>포해서 보안사에 넘기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고 여단장이 <BR>물으니 “최악의 경우 제가 죽으면 되지요” 하는 것이었다. 최 장군은 감탄하지 않을 <BR>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선선히 대답이 나오는지. 하여튼 최 장군은 메모지를 꺼 <BR>내 사령관실의 약도를 그려주고 … 박종규 중령은 대대로 돌아와 우선 인원편성에 <BR>착수하였다. 그는 특공대대를 활용할 것을 결심하고 인원 및 장비를 점검하였다. 특 <BR>공중대는 중대장 김○○ 대위와 사병 8명으로 구성하였다. 준비를 완료한 박 중령은 <BR>여단장의 출동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38) <BR>출동시간은 23:40이었다. … 짚차에서 내린 박 중령은 교육관 나○○ 대위를 대동 <BR>하고 현관으로 접근하여 출입문을 통과하였다. 예상대로 경계병력은 제지하지 않았 <BR>다. 2층 복도 계단에 있는 초병도 무사히 통과하여 사령관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BR>35)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60~1161쪽. <BR>36)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61쪽. <BR>37)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233쪽. <BR>38)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235쪽.<BR><BR>- 31 - <BR>이때까지 박 중령이 인솔한 사병들은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사실 <BR>은 심지어 교육관과 특공중대장도 사령부 현관에 도착해서야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 <BR>다라는 것을 박 중령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문은 안 열리고 하여 박 중령은 할 <BR>수 없이 문을 파괴할 것을 결심하고 문 손잡이에다 M16 한발을 발사하였다. 순간 <BR>사령관실 및 비서실장실 내부로부터 총소리가 나며 실탄이 날아왔다. 도복끈을 들 <BR>고 문고리 앞에 서 있었던 나○○ 대위가 쓰러지고 그 옆에 있던 김○○ 대위도 쓰 <BR>러졌다. 그리고 박 중령도 왼손에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이를 본 뒤에 대기하고 있 <BR>던 특공조 병사들은 묻지도 않고 내부를 향해 M16을 집중사격하였다.… 박 중령은 <BR>… 다시 손잡이에 사격을 해서 문을 열었다. 그가 사령관실에 들어갔을 때 비서실장 <BR>김오랑 소령은 한쪽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고 사령관은 구석편에 웅크리고 은신하고 <BR>있었다. 김오랑 소령이 위독한 것 같아 측은했으나 시간이 없는지라 박 중령은 비서 <BR>실장의 신음을 뒤로 하고 사령관에게 가니 그도 팔을 다쳐 있었다. 박 중령은 사령 <BR>관을 한 손으로 잡아들고 끌면서 계단을 내려와 현관에 대기한 차량에 태웠다.39) <BR>최 장군은 23:45 김정룡 대령에게 전화로 지휘부에서 참모들을 피신시키고 특히 <BR>작전처장(신우식 대령)을 피신시키라고 하였다. 김 대령은 사령부로 다시 올라갔다. <BR>비서실에는 어떻게 된 셈인지 그렇게 많던 참모들이 작전처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BR>없었다. 모두 각기 자기 사무실로 간 것이었다. 김 대령은 신 대령을 만나 9여단 출 <BR>동을 취소하라는 전문을 내리게 한 후 그를 끌고 참모장실 안에 침실로 데리고 갔 <BR>다. 24:15 밖에서 “탕” “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3공수 최 장군이 보낸 박종규 <BR>중령 지휘하의 사령관 연행 특공조가 굳게 잠긴 사령관실에 도착하여 쏜 총소리였 <BR>다. 정 사령관과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끝까지 권총으로 응사하는 바람에 특공조 <BR>수명이 부상당했으며 김 소령은 사망하고 정 장군은 팔에 부상을 당하고 박 중령에 <BR>게 연행되었다.40) <BR>12. 13. 00:17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지시로 3공수여단 병력(39/186)이 출동 <BR>했다. 00:40 1공수여단 병력은 행주대교를 통과했다. 12. 12. 상황일지(전화통 <BR>화내용) 에 따르면, 01:25에 특전사령관은 부상당한 채 무장해제됐고 이 과정 <BR>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41) <BR>23:45. 수경사 소속 전차 3중대가 수경사령부에 도착했다. 수경사령관은 부단 <BR>장이 33단을 지휘하고 헌병단은 작전과장이 지휘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33단 <BR>장 김진영 대령과 헌병단장 조홍 대령을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BR>수경사령관은 수경사 기밀실에 수경사 소속 전 장교들을 집합시켜 이곳에 없 <BR>는 장교들은 모두 적이니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BR>39)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37쪽. <BR>40)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66쪽. <BR>41) 사망 1명(특전사령관 부관 소령 김오랑), 부상 5명.<BR><BR>- 32 - <BR>이 자리에 김진선 수경사령부 작전보좌관은 참석하지 않은 채 본부근무대 대 <BR>장과 사령관 체포를 위해 병력 40명을 준비할 것을 합의했다. 김진선 작전보좌 <BR>관은 이미 노태우 9사단장과 통화를 하여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 <BR>은 바 있다. <BR>김 중령은 … 30단으로 전화를 하였다. … “지금 상황이 벌어져 병력이 움직이는 <BR>데 제1공수를 서울로 투입시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박희도 장군은 그러 <BR>한 질문에 “지금 내가 병력을 투입해도 이상이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김 중령은 <BR>“서울로 들어오는 문제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까 투입하십시오” 말했다. <BR>… 노태우 장군은 “김진선이지. 마침 찾고 있던 중인데 잘 나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BR>할 수 없고 내가 임무를 줄 테니까 하겠나?” 하였다. 김 중령은 그렇게 하겠다 하니 <BR>“우선 기회를 보아 수도경비사령관을 납치하여 보안사로 연행해 와. 그리고 어디서 <BR>든지 유혈시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거기서 방지해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였다. 김 <BR>중령은 “그러한 임무를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42) <BR>서울로 들어온 1공수여단은 12.13. 01:52경에 국방부를, 이어 02:15경에 육군 <BR>본부를 점령했다. 02:14경 김진선 작전보좌관은 전 검문소에 일체 사격을 금지 <BR>시겼으며, 장갑차 10대, 2.5톤 26대 천호대교 접근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천 <BR>호대교 검문소 병사에게 사령부 지시라며 사격하지 말고 내무반으로 철수하라 <BR>고 지시를 하였다.43) 이어 02:15. 수경사령관실로 가서 “3공수여단이 천호대교 <BR>를 건넜고 그 뒤에 20사단 병력이 통과중입니다”고 허위 보고했다.44) 이를 계 <BR>기로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진압의지를 상실했다. 이에 대해 수경사령관은 육 <BR>군참모차장을 보며 "이제 수경사는 능력 부족입니다"라고 말했으며 다른 장군 <BR>도 "유혈은 막아야지요"라고 말했다. 03:03에는 9사단과 제2기갑여단이 구파발 <BR>검문소를 통과하였고, 이어 03:25에는 제5공수여단의 3개대대 병력과 APC가 <BR>광진쪽에서 제2한강교로 접근중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03:10경 윤성민 참모차 <BR>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유학성 장군에게 전화를 하여 수경사 쪽의 전투행 <BR>위를 중지시킨 것을 알렸다. 그리고 한강교상의 차량 바리케이드도 04:00 통금 <BR>해제와 더불어 풀었다.45) 04:17 수경사령관은 수경사 헌병들에 의해 수경사 헌 <BR>병단으로 연행됐다. <BR>42)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03~1104쪽. <BR>43)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10쪽. <BR>44) 3공수여단이 천호대교를 통과한 시각은 02:35~02:37이었다. <BR>45)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13쪽.<BR><BR>- 33 - <BR>김 중령은 노 장군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기회를 꾸준히 엿보고 있었다. … 납 <BR>치를 위한 병력을 어디서 차출하는냐는 것이었다. 그는 오랜 생각 끝에 본부근무대 <BR>장으로 있는 편○○ 소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편 소령은 그의 <BR>후배인 데다가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질문하지 말고 내 말대로 <BR>해” 하고 나서 체격좋고 용감한 병사들을 한 20여명 선발 준비해 두라고 하였다. … <BR>한시간이 흘렀다. 김 중령은 편 소령에게 가서 준비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BR>편 소령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였다. “어느 정도냐” 하니 편 소령은 “다들 충성을 <BR>맹세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임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김 중령은 “사실 <BR>너의 임무는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다. …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 사령관한테도 <BR>도움이 되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모시고 있던 사령관을 납치하느 <BR>냐 하는 콤플렉스를 가지지 말고 프라이드를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라. 그 분을 안전 <BR>하게모시고 간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였다. 편 소령은 <BR>놀라는 듯하였으나 곧 “제가 하겠습니다”고 임수수행을 약속하였다. … 김 중령은 <BR>사령관실에 올라가 동정을 살폈다. 사령관실은 많은 헌병들로 삼엄하게 경비되고 <BR>있었다. 그는 내려와서 편 소령에게 “지금 헌병이 복도에 쭉 배치되어 있으니까 헌 <BR>병 1명당 네가 준비한 병력 2명씩 끼워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 사령관실 복도 <BR>에는 사령관을 경비하고 있는 병력과 그 병력들 사이에 배치된 편 소령의 부하 등 <BR>병력으로 꽉차 있었다. 김 중령은 상황실로 내려와 이제는 적당한 시간만 생각하고 <BR>있었다. 이때 인사참모 이진백 대령이 와서 … “사령관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는 <BR>데 상황실장도 그런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였다. … 이진백 대령은 그 <BR>나름대로 밤 10시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김진선 중령과 같은 임무를 받았던 <BR>것이다. 그리고 실은 같은 임무가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 같은 무렵에 주어 <BR>졌었다. 보안사령관은 신 중령에게 김진선 중령과 협의해서 사령관을 납치하라고 <BR>지시하였던 것이다. … 신 중령 예하에 헌병단에서 …40명을 차출하여 사령관 납치 <BR>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 행동개시 시간이 03:30이었다. 편 소령이 앞에 서고 신 <BR>중령과 … 헌병단 57중대 병력 20여명을 사령관실 복도 요소요소에 배치하면서 사 <BR>령관실로 갔다. 그들은 먼저 한○○ 대위를 선두로 부속실로 진입하였다. 거기에는 <BR>비서실장과 전속부관을 비롯하여 20여명의 무장병력이 있었다. 그들은 M16을 들이 <BR>대면서 무장해제를 한 후 “나가시오” 해서 경호원을 밖으로 내3922;고, 다시 사령관실 <BR>로 “손들어!” 하면서 들어갔다. 이때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장군이 권총을 뽑으면서 <BR>다른 방으로 피하려다 진입 헌병이 발사한 총에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그때 <BR>5, 6명의 일부 장성들도 권총에 손을 대려 하였으나 그들은 하 장군이 쓰러지는 것 <BR>을 보고 손을 들었다. 신 중령은 “상부의 명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장군들을 무 <BR>장해제하고 감시케 한 후 장 장군이 있는 접견실로 들어갔다. 10여명의 헌병이 총을 <BR>들이대면서 들이닥치자 장 장군은 “사격하지 말라. 내 총을 가져가라. 왜 장군을 함 <BR>부로 쏘느냐?” 하면서 손을 들었다. 헌병들은 사령관을 무장해제하고 연행했다.46) <BR>46)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15~1123쪽.<BR><BR>- 34 - <BR>헌병단에서 서빙고로 연행되기 전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김진선 작전보좌관 <BR>에게 전화를 걸어 유혈방지와 수경사의 명예와 전통유지를 당부했다.47) <BR>장태완 수경사령관: 야, 김진선 중령, 수경사에서 네가 오야붕인 모양인데 내가 지 <BR>금부터 부대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시간부로 수경사를 네가 지휘 <BR>하라. 내가 부탁할 것이 있는데 너 들어주겠느냐? <BR>김진선 작전보좌관 : 말씀하십시오. <BR>장태완 : 첫째 이 시간 이후에는 피를 흘리지 않도록 네가 단도리를 잘해 달라. 그 <BR>리고 하소곤 장군 괜찮으냐? <BR>김진선 : 업혀 나갔는데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BR>장태완 : 두 번째는 수경사의 명예와 전통이 중요하다. 이것을 너는 꼭 지켜달라. <BR>김진선 :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BR>국방부에서는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김용휴 차관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려고 <BR>장관실을 나서려는 순간 1공수여단 병력이 국방부에 진입하여 총격을 하여 장 <BR>관실 주변으로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장관실로 들어간 김용휴 차관, <BR>유병현 함참의장 등은 권총들과 헌병이 가지고 있던 M16 소총 등을 밖으로 내 <BR>밀어 사격을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동안,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1층 계단으로 <BR>피신하였다. 그때가 01:50경이었고,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찾으러 신현확 국무 <BR>총리와 이희성 중앙정부장서리가 장관실에 도착한 것은 02:00경이었다. 공수부 <BR>대원이 노 장관을 찾기 위해 수색하였으며 03:50분경 계단 밑에 있던 노 장관 <BR>을 찾아 장관실로 데려왔다. 04:00경 대통령 관저를 향해 출발했다. 대통령을 <BR>만나기 전에 보안사령관실에서 전두환 사령관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삼청동 <BR>총리공관으로 가 대통령을 만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건의 재가를 건의하 <BR>였다. 건의서에는 정승화 참모총장뿐만 아니라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 특 <BR>전사령관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처음부터 3명을 연행하려고 계획한 것으로 판 <BR>단된다. 건의서에는 노재현 장관과 최규하 대통령의 서명이 있으며, 둘 다 12. <BR>12.로 서명했다. <BR>수사 착수 건의 <BR>고 박대통(령) 각하 시해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육군참모총장 대장 정승 <BR>화, 3군사령관 중장 이건영 및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연행, 수사코저 하오니 재가바 <BR>랍니다. <BR>47) 보안사, .제5공화국 前史. 3편, 1982, 1124쪽.<BR><BR>- 35 - <BR>‘12.12’ 당시 직책 계급 이름 12.13 <BR>중앙정보부장 서리 중장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BR>연합사 부사령관 대장 유병현 합참의장 <BR>군수차관보 중장 유학성 3군사령관 <BR>1군단장 중장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BR>수도군단장 중장 차규헌 육사 교장 <BR>9사단장 소장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BR>50사단장 소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BR>71훈련단장 준장 백운택 9사단장 <BR>수경사 헌병단장 준장 조홍 육군본부 헌병감 <BR>별첨 : 1. 총장 언동 분석 <BR>2. 중장 이건영 및 소장 정병주 관계사항48) <BR>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 <BR>들의 목적을 위해서 병사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무장을 시켜 상관 <BR>을 체포하는데 동원했다. 많은 병사들이 작전내용도 모른 채 신군부 반란측에 <BR>사병(私兵)으로 동원되어 자신의 상관에게 총격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3명이 <BR>사망하는 등 많은 수의 병력이 부상을 당했다.49)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BR>특전사령관을 연행하는데 공헌을 한 김진선 중령과 최세창 준장 등 핵심세력 <BR>들은 대장까지 진급하는 등 군내 요직을 차지했다. <BR>합수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문홍구 합참 본부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 <BR>병주 특전사령관 등 4명의 장성을 연행하여 수사했다. 당일 육군참모총장 외 <BR>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되어, 육군참모총장에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BR>이희성이 임명됐고, 육군참모차장에 중장 황영시, 수경사령관에 소장 노태우, <BR>특전사령관에 소장 정호용 등 육군 최고 수뇌부와 핵심부대 지휘관들을 교체 <BR>했다. 다음은 12. 13.자 일부 보직 변경자들을 정리한 표다. <BR>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군내외의 여론악화를 염려했다. 이 때문에 보안사는 <BR>각 지역의 보안부대에게 ‘12.12’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홍보활동에 주력하 <BR>도록 지시했다. 12. 31. 보안사령부는 각 보안부대장들에게 12.12 사태 관계 <BR>첩보 추가하달 지시를 내렸다. 주요 지시사항은, ‘12.12사태 관계 첩보’를 전 <BR>48) 보안사, 수사착수건의 , .383-1979-30., 114쪽. <BR>49) 12월 24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수사결과’에서 3명 사망, 4명 중상, 16명 경상으로 피해상황을 <BR>발표했다.<BR><BR>- 36 - <BR>부대원들에게 전파시켜 부대원들의 활동시 자연스럽게 전파 홍보할 것이며, <BR>‘12.12’에 대한 불필요한 유언비어가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라고 <BR>지시했다. 첨부된 ‘첩보 요지’는 ‘정승화는 육군참모총장으로서의 직무를 방기 <BR>한 채 시해사건을 방관 내지 묵인했고, 3군사령관 이건영과 특전사령관 정병주 <BR>등이 김재규의 추종세력임에도 보직 해임을 고려치 않았으며, 김재규로부터 <BR>금품을 수수하고 청와대 경호실차장 이재전을 방면하는 등의 범죄사실이 있다 <BR>고 밝혔다. 그리하여 합수부에서는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할 때 수사관이 부 <BR>상하고 총장을 구출하려는 일부 군부의 동요가 있었으나 진압되어 군은 현재 <BR>안정과 평온을 되찾았다.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김재규의 추종세 <BR>력이 배제됐으며, 오히려 12.12를 계기로 군 인사 면에서 과감한 신진대사를 <BR>단행하여 침체된 장병의 사기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전화 <BR>위복의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50) <BR>이 같은 지시는 1980. 1. 초순 보안사령관 주최 보안사 과장급 이상의 부부 <BR>동반 모임에서도 언급됐다. 이 자리에서 보안사령관 소장 전두환은 가족들에 <BR>게 감사와 당부의 말을 하면서, ‘12.12’에 대한 경과와 그에 관련된 유언비어 <BR>방지 및 계도를 위해 가족들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51) <BR>보안사는 ‘12.12’ 후 사태 결과에 대한 홍보책자를 작성해 일선 보안부대에 <BR>배포하며 80. 1. 25.부터 1. 27.까지 3일 동안 부대원들이 숙지한 뒤 1. 28.부터 <BR>2. 6까지 10일 동안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보안사 하 <BR>달자료를 부대원들이 숙지하고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색출해 근절시키라는 방 <BR>침이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군내에서는 장교들에 대해 개별 접촉해 홍보하 <BR>고 다음으로 지휘관 중심으로 홍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또 군 외부에 <BR>서는 지역내 기관 및 유지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개별 홍보와 복덕방, 노인 <BR>정 등에서 홍보하는 방안이었다. 주요내용으로 합수부의 정당성과52) 정승화 <BR>비리53) 및 정승화 처리 및 결과54)에 대해서 홍보하며 부대별 시행계획을 수립 <BR>보고하라고 지시했다.55) 이렇듯 신군부는 자신들의 ‘하극상’ 행위가 정당하다 <BR>는 여론을 조성하며 사후 수습을 하려고 노력했다. <BR>50) 보안사, 12.12 사태 관계 첩보 추가 하달 (1979. 12. 31.), .383-1979-30., 199~203쪽. <BR>51) 보안사, <보안뉴스>(KBS 자료실 소장). <BR>52) 사실을 밝혀야 할 역사적 소명의식에 의한 수사, 정승화 수사 거부 및 추종세력의 무력 동원한 <BR>저항, 불가피한 계엄군의 증원 및 진압. <BR>53) 기회주의적인 성격, 직무 유기, 김재규 수사에 대한 지능적인 방해, 여건 조성시 정권 쟁탈에 대한 <BR>흑심. <BR>54) 국가 전복 요인 제거, 군의 단결, 정국 및 사회적 안정 <BR>55) 보안사, 12.12 사태 홍보계획 , .383-1979-30., 240~242쪽.</P>
    오늘의유뻑의 꼬릿말입니다
    <img src=http://i.imgur.com/JKg5re9.gif>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3/02/07 01:27:43  211.234.***.1  전기수  122731
    [2] 2013/02/07 11:55:01  1.221.***.166  거칠마루  7169
    [3] 2013/02/07 17:52:18  117.111.***.208  하찮은촌놈  314265
    [4] 2013/02/08 00:36:38  180.70.***.87    
    [5] 2013/02/09 00:09:40  112.156.***.133  한우초콜렛  329890
    [6] 2013/03/03 15:09:02  121.167.***.95  DogSound  108097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0
    일베의 시사채팅방 테러 [6] 오늘의유뻑 13/02/18 02:51 131 4
    79
    ★★★ 2월 17일 새벽반 시게 채팅방 ★★★ [2] 오늘의유뻑 13/02/17 01:02 34 0
    78
    ★ 2월 16일 → 17일 새벽반 ★ 시게 채팅방 ★ [3] 오늘의유뻑 13/02/16 22:43 23 0
    77
    ★★ 2월 16일 시게 채팅방 ★★ 오늘의유뻑 13/02/16 19:46 61 0
    76
             ★ 박 보 영.PhoneJoSim ★ [4] 오늘의유뻑 13/02/16 14:14 253 4
    75
    숲속의튜나 << 일베인 차단요청 오늘의유뻑 13/02/14 12:48 14 0
    74
    바라스럼 << 적절한 조치 부탁드립니다. 오늘의유뻑 13/02/12 22:00 19 0
    73
    핸드폰을 전자렌지에 돌리면? [3] 오늘의유뻑 13/02/09 15:40 254 1
    72
    으아하흐이 し'∇'づ [1] 오늘의유뻑 13/02/09 14:56 90 5
    71
    ★ 2월 9일 시게 새벽반 채팅방 ★ 오늘의유뻑 13/02/09 02:14 72 0
    70
    ★ 시게 새벽반 채팅방 ★ 오늘의유뻑 13/02/08 00:32 73 1
    69
    광주광역시 << 의도적 오유이미지 훼손에 따른 차단요청 오늘의유뻑 13/02/07 23:56 18 0
    68
    [참고자료] 극우세력의 5.18 왜곡 주장이 틀린 이유 [1] 오늘의유뻑 13/02/07 23:27 28 0
    67
    [참고자료] 극우세력의 5.18 왜곡 주장이 틀린 이유 [12] 오늘의유뻑 13/02/07 23:06 25 2
    66
    [참고자료] 12.12이후 비상계엄해제까지 일지 오늘의유뻑 13/02/07 22:42 38 2
    65
    [참고자료] 12.12이후 비상계엄해제까지 일지 오늘의유뻑 13/02/07 22:40 6 0
    64
    시게 새벽반 채팅방 [4] 오늘의유뻑 13/02/06 23:03 46 0
    63
    영국, 동성 결혼 합법화 승인...찬성 400 반대 175 [4] 오늘의유뻑 13/02/06 20:49 36 7
    62
    盧운지핵대중 << 차단요청 [2] 오늘의유뻑 13/02/06 20:10 42 3
    61
    진심은통한다 << 시게 분란유도, 차단요청 [1] 오늘의유뻑 13/02/06 17:51 25 1
    60
    NGGK << 오유 이미지 훼손유도, 차단요청 오늘의유뻑 13/02/06 17:32 23 0
    [참고자료]12.12 군사반란 오늘의유뻑 13/02/06 16:21 32 0
    58
    [참고자료]12.12 군사반란 오늘의유뻑 13/02/06 16:20 57 0
    57
    5.18 대법원 판결문 요지 오늘의유뻑 13/02/06 15:42 28 1
    56
    5.18 대법원 판결문 요지 [5] 오늘의유뻑 13/02/06 15:22 62 0
    55
    대해햇 << 차단요청 [시게 분란유도] 오늘의유뻑 13/02/05 20:36 30 1
    54
    토론합시다 << 오유 이미지 훼손유도 오늘의유뻑 13/02/05 16:07 38 0
    53
    너하고나는 << 차단요청 오늘의유뻑 13/02/04 17:02 17 0
    52
    [시사X..부탁OK] 움짤정보 [11] 오늘의유뻑 13/02/04 16:35 107 4
    51
    일베인 차단요청 오늘의유뻑 13/02/04 15:57 21 0
    [1] [2] [3] [4] [5] [6]
    단축키 운영진에게 바란다(삭제요청/제안) 운영게 게시판신청 자료창고 보류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모바일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