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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3149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
    조회수 : 1458
    IP : 175.201.***.121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1/12/01 17:18:51
    http://todayhumor.com/?history_3149 모바일
    (펌)전국시대 전투방식의 변화 - 下
    출처- 열국연의 (http://yangco.net/new0822/?doc=bbs/gnuboard.php&bo_table=jiphyung&page=2&wr_id=1)
    그림출처 - 삼국지 도원결의

    기병제의 도입 

    전차가 전쟁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이를 대치한 것은 기마병이다. 기병 군진은 2차세계대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라지게 될 정도로 인류 전쟁사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기병이 구체적으로 전술에 응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의 소위 호복기사(胡服騎士)로의 개혁을 계기로 중원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기병을 전쟁에 응용할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은나라의 갑골문(甲骨文)에 이미 기병 작전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의 기병은 그다지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서북 지역의 유목민족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전쟁의 규모는 전국시대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전쟁이라고 칭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사와 전마가 결합하여 최초로 전투 행렬에 참가한 것이 바로 기병의 탄생일 것이다. 중국 고대의 냉병기(冷兵器 : 칼, 창, 비수 등 치거나 찌르는 병기의 총칭)로 전쟁을 치르던 시절에는 기마전이 가장 공격력이 막강하고 기동성도 뛰어났다. 전국시대의 진나라는 물론이고 통일제국을 이룩한 진제국(秦帝國) 역시 오래된 전차병과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한 기병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작전 수단의 측면에서 볼 때, 동시 순수한 전차진(戰車陣)은 이미 전차, 보병, 기병 등 다양한 병과가 합동으로 작전하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작전의 주력이 전차에서 보병과 기병으로 옮아가는 과정이었다. 

    중국에서 기마병이 생긴 시기에 관해서는 사서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다. 기병의 유래는 중국 서북방의 유목민족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664년에 제환공이 정발한 산융족이 세운 나라 영지국(令支國)이나 고죽국(孤竹國)은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에 의하면 섬진(陝秦)의 목공이 혁거(革車) 500승, 주기(疇騎) 2천, 보졸 5만 명을 동원하여 당진의 문공(文公)을 귀국시켜 그 군주 자리에 올린 해는 기원전 636년의 일이다. 당시 섬진이 당진에 파견한 기병에 해당하는 주기(疇騎)는 전차병 및 보병과 합세하여 완전한 병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섬진에서 기병이 생겨난 시기는 목공 이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근거로 소위 진족(秦族)이라고 부르는 섬진족(陝秦族)들은 관중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서북 지방의 이민족이 살고 있던 지역에 살고 있었다. 진족은 유목생활을 하던 이민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그들의 습속을 받아들인 결과 중국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기병을 보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기 진본기(秦本紀)에 의하면 섬진의 조상인 조보(造父)라는 사람은 일찍이 '말을 잘 다스려 주목왕(周穆王)의 총애를 받았다. 목왕이 서왕모(西王母)를 찾아 서쪽으로 여행할 때 조보가 기(驥), 온려(溫驪), 화류(<馬+華><馬+留>), 녹이(<錄-金+馬><馬+耳>) 등의 8마리의 명마를 얻어 , 그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하루에 천리를 달려 주나라 도성으로 귀환, 서언왕(徐偃王)의 란을 평정했다고 했다. 진족들은 오래 전부터 융인(戎人)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물과 초원을 찾아 이동하며 근거하는 유목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어서 융인들과 진족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져 마침내는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한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용맹하고 흉폭한 서융인들이 견구(犬口 : 지금의 감숙성 천수시(天水市) 서남)에 살고 있던 진족의 일족인 대락족(大駱族)을 전멸시키고 이어서 주선왕(周宣王)으로부터 명을 받아 서융을 토벌한 공로로 그곳의 대부롤 임명된 진중시(秦仲時)를 공격하여 살해하기도 했다. 기마전에 능한 융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진족들도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마침내 그들 역시 말을 타고 전투를 하기에 이르러, 진나라 목공 시기에 이미 기마전의 전통이 확립되어 독립병과로써의 기병대인 주기(疇騎)가 존재한 것이다. 중원 제패의 야심을 키우고 있던 진목공 역시 기마부대인 주기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마부대를 이용하여 서융의 12나라의 항복을 얻어내고 서쪽의 땅을 확보 그 강역을 사방 1천리로 넓혔으며, 마침내 서융을 섬서성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상의 사실에서 보듯이 일찍이 서주 중엽부터 중원 국가들이 전차부대로 자웅을 다투고 있을 당시 서쪽 외진 곳에 있던 진나라 사람들은 이미 말을 타고 전투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진나라의 기병은 이미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지닌 독립병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중원 여러 나라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기병이 최초로 생겨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주의를 끈 것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처음부터 독립적인 병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차와 보병을 돕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시 전차와 보병이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추세에 밀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것이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胡服騎士)이다. 그것은 전차병이 보병과 충돌하면서 생겨난 독립된 병과인데 전차, 보병과 어울려 작전을 수행하면서 시종일관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는 한편 나름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전쟁 무대에 기병이 정식으로 출현 것은 바로 조나라 무령왕 때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는 중국에서 기병의 출현을 나타내는 하나의 이정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는 중국 기병사에서 아직 유아기에 불과했다. 유아기라고 말하는 까닭은 아직까지 전쟁에서 기병의 역할이 미비한 점 이외에도 말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무사들은 자연 그대로의 말에 올라타 싸움에 임해야 했다. 춘추시대 중엽부터 진나라 기병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기병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병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시대적인 여건이 성숙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등 뛰어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시황이 주변 여섯 나라를 병탄하며 천하 통일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비로소 기병은 수적으로 급증했고, 그 전투력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기병이 당시 전쟁의 주력부대는 아니었다. 주력부대는 역시 전차부대였고, 보병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인 면이나 구체적인 지휘 방법에서도 기병은 일시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기병의 성격은 일종의 기동타격대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력을 배치하거나 지휘하는 데 주로 전차를 정으로 삼고, 기병을 기(奇)로 삼는 전술이 채택되었다. 특히 기병을 투입하는 경우는 기습작전에 기병을 활용하니 그 신속함을 취하는 것이다라는 전술 원칙에 따른 것으로 적군을 불시에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군사 방면에의 핵심문제는 국방 즉 나라의 변방을 확고하게 방비하는 쪽으로 옮겨졌으며, 상대방 역시 기존의 산동 여섯 나라 대신 북의 호맥(胡貊), 남의 양월(兩越)로 바뀌었다. 흉포한 흉노의 기병을 상대하려면 평소에 훈련을 통해 막강한 정예기병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당시 진나라 군대는 기병부대를 창설하고 여러 가지 대규모 군사작전에 활용하고자 했다. 

    진시황 32년 기원전 215년 대장군 몽염(蒙恬) 휘하의 30만 대군이 흉노의 기병을 패퇴시켜 막북(莫北)으로 쫓아내고, 이후 10여 년 동안 감히 중국을 넘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진나라 50만 대군이 기원전 223년 강동의 초나라로 진격할 때에도 기병은 이미 빼놓을 수 없는 전력이 된 상태였다. 당시 지나라 기병은 이미 전쟁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으로 전쟁터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일은 고대 기병의 장식이나 구성, 그리고 군진의 위용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시황능 토용(土俑)이 발굴됨으로 해서 2천여 전의 기병 군진의 모든 것을 현실로 재현된 것이다. 

    당시 기병이 진시황 군대의 주력은 아니었지만 통일 전쟁의 교향악 속에서 그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병은 행동이 민첩하고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있으며 이합집산이 자유롭고 무엇보다 장거리 속공에 능해 수백, 수천 리를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치달려 적군에 대해 타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병은 단시간에 먼 곳에 있는 적군을 기습할 수 있다. 그래서 적군이 미처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공격을 가하여 적에게 타격을 주고, 또한 신속한 행동으로 작전을 변경하여 적군의 허를 찌를 수 있다. 그래서 병법서는 기마부대를 이합지병(離合之兵)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말을 길러왔고, 전통적으로 말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일찍부터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던 진나라는 기병을 전투에 운용하는 데에 관한 한 산동의 여섯 나라보다 한 걸음 앞선 상태였다. 전차와 보병, 그리고 기병 등 여러 기병과 가운데 기병이 뒤늦게 중시된 이유는 무엇보다 궁노(弓弩)를 든 전사가 명령이 하달되기가 무섭게 신속하게 결집하여 말에 올라타면 그 즉시 전투에 투입될 수 있었고, 수시로 공격방향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병의 전투대형이 복잡한 지형에 더욱 적응력이 강하고 고도의 기동력과 강력한 돌파력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이 점은 전차나 보병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독특한 기병 전술은 손빈이 그의 저서에서 개괄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병을 사용하면 열 가지 이로운 점이 있다. 1. 적을 향해 가장 먼저 쳐들어갈 수 있다. 2. 적의 헛점을 이용할 수 있다. 3. 추격하여 적을 흩으려 놓는다. 4. 적을 격퇴하여 도망가도록 한다. 5.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발대의 지원로를 끊는다. 6. 나루터 요충지를 부서뜨리고 교량을 무너뜨려 중요지역을 텅비게 만든다.......(중략)..... 10. 전답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적군의 처자권속까지 피해를 입게 만들 수 있다. 후세의 병법가들 역시 기병의 전술원리를 십승(十勝) 등으로 결론짓고 있다. 어쨓든 기병이 전투에서 다른 병과보다 유효한 것은 "쏜살같이 달려가 민첩하게 작전을 운용하여 종횡무진 적을 요걱한다"는 신속한 전투력이 기마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귀신같은 기습, 매서운 돌격, 신속한 우회, 전광석화와 같은 측면공격과 협공, 독자적인 정찰임무, 본대 지휘부의 엄호 등이 바로 그 내용이다. 기원전 260년 진나라와 조나라가 지금의 산서성 고평현(高平縣) 북쪽의 장평(長平)이라는 곳에서 두 나라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건곤일척의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진나라의 기병 5천기가 번개처럼 신속하게 조나라 군대를 우회하여 곧장 후방의 군영까지 쳐들어갔다. 졸지에 퇴로가 차단된 조나라는 후방의 보급망이 끊긴 것은 물론 더 이상의 구원병도 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조나라 40만 대군은 모두 궤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처럼 여러 병과를 연합시키고, 기병을 이용하여 기습작전을 감행한 진나라는 고대 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물론 기병 역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서에서 말하고 있다시피 기마전에 구패(九敗), 또는 팔해(八害)라는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기병도 때로 지형상의 제한으로 인해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정(天井), 지혈(地穴), 소택(沼澤), 계곡(溪谷), 삼림이 무성한곳, 도랑이 깊거나 구덩이가 파진 곳 등의 장소가 바로 기병의 사지(死地) 또는 패지(敗地)이다. 이처럼 불리한 지형이나 지물은 병가들이 기피하는 곳이다. 다음 기병에게 위협을 주는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기병의 돌격 속도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에 오히려 주력부대로부터 이탈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만약 계속 돌격하여 적진으로 들어갔으나 적진을 돌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군의 후속부대와 멀어질 경우 매복한 적군의 기습공격을 받거나 퇴로가 차단되어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불리한 지경에 빠졌을 경우 지휘관은 반드시 자신들이 처한 국면을 과감하게 맞대응 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만 했다. 실제로 기병부대는 평탄하고 광활한 지역에서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적에게 타격을 줄 경우에만 기병 한 기가 보병 8명을 이길 수 있는 위세로 적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병이 전국시대에 이미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터에서 주력부대로 나설 수 없었던 이유는 많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제일 중요한 이유는 기병이 발전하는 과정 중 사소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등자( 子)가 없었다는 점이다.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기병용(騎兵俑)을 볼 때 당시 기병들이 타고 있던 말안장에는 등자의 존재가 없었다. 등자가 없었음으로 해서 당시의 기병들은 말에 올라탈 때 두 손으로 말등을 딛고 뛰어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말등에 올라 탄 후에는 말고삐를 꽉 쥔 상태에서 말등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처럼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릴 때, 특히 전투를 할 경우에는 넓적다리를 말에 꼭 붙이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속도를 통제할 수도 없었고 동시에 두 손을 자유럽게 활용하여 무기를 들고 적군과 싸움을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공격력과 기동성에서 크게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군을 살상하는데 유효한 긴 자루가 달린 병기도 사용할 수가 없어 기병의 결정적인 약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병대의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준 등자가 중국에서 나타난 시기는 언제였을까? 여러 설이 분분하여 정설로 굳혀진 것은 아니지만, 호남성 장사(長沙)라는 곳에서 발굴된 분묘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서 서진(西晉) 영녕(永寧) 2년 즉 서기 302년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그 분묘 안에서 기병의 모습을 한 토용(土俑)이 발견되었다. 그 토용이 탄 마용의 말안장 왼쪽 앞에 삼각형 모양의 등자 한 개가 달려 있었다.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중국에서 최초로 나타난 등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 등자는 한 개 뿐이라 등자라기 보다는 답등(踏<金+登>) 즉 말을 탈 때 밟고 오르기 위한 장치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말안장 양쪽으로 두 다리로 밟을 수 있는 등자가 처음 출현 것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였다. 중국에서 오호십육국시대라 함은 서기 304년 유연(劉淵)이 서진을 멸망시키고 후한(後漢)을 건국한 서기 304년부터 시작해서 439년 북위(北魏)가 북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동시대의 왕조인 북연(北燕) 때의 풍소불(馮素弗) 부부의 분묘에서 동편으로 나무의 주위를 에워 싼 등자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에 기병이 생긴 이래 1천 년 만에 등자가 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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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01 18:30:29  121.148.***.159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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