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이런 의견도 있네요.</div> <div> </div> <div><strong>이세기 前 통일부장관 "한국전은 애치슨 선언에 대한 소련의 반격"</strong></div> <div> </div> <div></div> <hr><div></div> <div>......</div> <div> </div> <div>스탈린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마오쩌둥이 제2의 티토가 되기 전에 제어하고 압박해 자신의 예속하에 두고, 적대국인 미국을 시험하고 흔들어 힘을 뺄 수 있는 대전략이 절실했다.</div> <div> </div> <div>1950년 3월 30일 김일성은, 스탈린을 찾아가 미국의 애치슨 선언 등 변화된 정세를 거론하면서 남침계획을 승인해 줄 것을 간청했다. ‘만주를 상실한 허탈감 등으로 상심해 있던’ 스탈린은 이전과 달리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흔쾌히 허가하면서도 반드시 마오쩌둥의 동의를 구하라고 지시한다.</div> <div> </div> <div>스탈린은 소련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개입이나 참전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김일성에게 경고했다.</div> <div> </div> <div>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공산화를 통해 국경을 따라 완충지대를 확장, 중국을 포위·견제하고, 만약 개입하더라도 미중 간의 전쟁을 통해 신중국을 미국의 화약고 속에 빠져들게 해 자국의 예속하에 두며, 특히 미국의 힘을 중국의 늪 속에 빠뜨려 유럽에서 힘의 우위를 도모하려 했다.</div> <div> </div> <div>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은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소련은 유엔 안보리 회의에 불참,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용이하게 했다. 소련의 안보리 불참 의도는 미국 등 서방의 참전을 유도해 미중 사이에 분명한 적대(敵對)관계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중국을 자국의 손아귀에 두려고 한 것 같다.</div> <div> </div> <div>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38선 이북으로의 북진(北進)은 중국의 개입을 초래해 마침내 한국전쟁은 미중 간의 국제전이 되고 말았다.</div> <div> </div> <div>애치슨 선언을 통해 중소 간의 이간과 불화를 획책한 미국은 그로부터 5개월 후 스탈린의 치밀한 책략에 따라 한반도에서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미국의 애치슨 선언에 대한 스탈린의 대반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div> <div></div> <hr><div></div> <div> </div> <div>※ 세계사 연대표 : <a target="_blank" href="http://yellow.kr/mhistory3.jsp" target="_blank">http://yellow.kr/mhistory3.jsp</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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