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첫번째가 이병도와 실증 사학..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a target="_blank" href="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6450&s_no=16450&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name&keyword=%ED%92%8D%EB%A6%BC%ED%99%94%EC%82%B02" target="_blank"><font size="3">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6450&s_no=16450&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name&keyword=%ED%92%8D%EB%A6%BC%ED%99%94%EC%82%B02</font></a></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위의 게시물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우리들은 그래도 과거 사람들에 비해서 역사를 실증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font></div> <div><font size="3">정말 그런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사실 역사를 100%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남긴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font></div> <div><font size="3">역사적 사실의 어느 부분은 결국 역사학자가 추정이라고 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빈 공간을 메꾸어야 하는 것이지요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그것에 이 역게에서 많은 이슈를 몰고왔던 이병도가 성실하게 대했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본 것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일본과 한국의 2 나라의 역사 해석에 있어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칠지도에 있어서 </font></div> <div><font size="3">일본인들은 여러가지 억측을 내놓습니다. 백제인이 왜왕에게 주는 칼이고 그 왜왕을 백제인들이 후왕이라고 불렀다는 </font></div> <div><font size="3">것을 인정하면 무척 곤란해지기 때문에 백제인의 동진 택배설.. 길상구설.. 하지만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은 모두 일인 학자들의 상상의 산물이거나 </font></div> <div><font size="3">아니면 백제와 관련이 없는 중국쪽 자료들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일본도 근대화되고 서구화된 사회라고 봐야겠지만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 고유의 정해진 프레임.. 천황제라고 하는 것을 </font></div> <div><font size="3">건드리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것에 맞추어서 결과를 짜 맞추지요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아래 칠지도 관련한 토론에서 이야기 했던 이야기를 다시 또 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만일에 칠지도를 이런 정치와 종교로부터 벗어나서 순수하게 합리성만 가지고 분석한다면 </font></div> <div><font size="3">금석문에서 찾아낸 FACT 칼을 받는 사람 왜왕, 칼을 만든 사람 백제인,.. 그리고 그 왜왕을 후왕으로 부르는 백제인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제일 먼저 백제인에게 있어서 후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관련 문헌을 찾아보는 것이 실증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일본인의 경우에는 저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저런 것이 불가능하지만 글쎄요 이병도로 대표되는 한국 강단 사학계가 이런 과정 없이 </font></div> <div><font size="3">당연히 왜와 백제 간의 외교적 산물이라고 단정짓고 시작하는 것.. 이런 것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토론 내내 이 주제와 상관없는 제가 모르는 임승국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북한 동향.. 이런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시는 분이 있는데 </font></div> <div><font size="3">길고긴 댓글을 읽다가 이것이 주제와 상관이 없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라고 느낄 때에 오는 황당함..</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이런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않고 저도 피곤하고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난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비교적 반론 비슷하게 간 부분이 흠정만주원류고를 믿을 수 있느냐? 라는 문헌 비판을 하신 분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실증적 분석에서 사료 비판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그런데 우리가 쉽게 하는 실수중의 하나는 사료를 비판해서 그 사료에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그 사료의 내용이 100% 부정되는 것은 </font></div> <div><font size="3">아니라고 하는 점이지요..</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흠정 만주원류고의 백제인 후왕 기록.. 즉 백제인은 나라 안에 여러 후왕을 세워서 공훈에 보답되었다는 내용이 부정이 되는 경우는 ..</font></div> <div><font size="3">흠정 만주원류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료.. 예를 들어서 중국 정사나 삼국사기와 같은 책에서 이것과 반대되는 내용이 있거나 하는 </font></div> <div><font size="3">경우겠지요. 하지만 중국 정사의 경우.. 남제서 같은 것을 보면 후왕 대신에 왕이라고 하는 명칭이긴 하지만 백제왕들이 자신의 신하들의 </font></div> <div><font size="3">공훈을 이야기 하면서 왕을 임명하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 흠정만주 원류고의 기록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겠지요</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내가 원하는 결론이 아닐 경우 그것을 부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자료 믿을 수 있어? 난 못 믿겠어.. 해버리는 것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하지만 이것은 이성적인 접근.. 보다 근본적으로 성실한 접근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들어서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가장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일제 식민통치자들이 식민사관을 만들 때에 일단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것에서 불확실한 부분을 찾아내서 </font></div> <div><font size="3">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을 비판한 후에 책 전체의 내용을 부정하는 방법이지요. 물론 김부식이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우리가 잘 몰라서 삼국사기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임신한 여자가 가랑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오니까 고구려가 겁을 먹고 항복했다는 일본서기 신공기 기록이 사실이 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 때에는 저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가끔은 싸움에 너무 치중해서.. 이 성실성 이것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font></div> <div><font size="3">난 자료를 백지의 상태에서 내 희망사항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저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그리고 칠지도에 있어서 송서 왜 5왕의 이야기를 던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던진 이유는 </font></div> <div><font size="3">과거에 일본인들과 역사 논쟁을 벌일 때에.. 저를 많이 괴롭혔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물론 왜가 받은 안동대장군보다 백제가 받은 진동 대장군이 더 높습니다. 일본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것입니다..하지만 </font></div> <div><font size="3">역시 무엇인가 찝찝함이 남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그래서 한번 정도는 일본인들의 주장.. " 어쨋든 왜왕들은 한반도 남부가 자기꺼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고 중국이 인정했다는 것은 </font></div> <div><font size="3">그게 당시 국제 사회에서 무리한 이야기가 아니란거지.." 라는 불쾌한 가설이.. 사실일수도 있다라고 마음을 비우고 </font></div> <div><font size="3">사료를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자..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어째서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 ( 진한 마한은 451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의 작위를 왜왕이 요청하는지..</font></div> <div><font size="3">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당시 송은 무엇인지?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이런 모순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그리고 저는 현재 시점에서는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설을 세웠는데.. 아마 그것이 맞을 것입니다. </font></div> <div><font size="3">그 글을 지금 적고 있는데 게시판에 있는 분들도 한번 ..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 정사의 동이전 기록들을 살펴 보시면서 </font></div> <div><font size="3">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사료들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마지막은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지와라 사다모토의 이야기로 끝냅니다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font></div> <div><span style="font-family:'HY울릉도B';font-size:12pt;"><font size="3"></font></span></div> <div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justify;line-height:150%;margin-bottom:16pt;margin-left:30pt;"><span style="font-family:'조선일보명조';font-size:10.5pt;"><font face="굴림" size="3">후지와라 사다모또는 일본 에도시대의 고증학자로 그의 저서 충구발(衝口發)에서, 일본의 역사와 언어가 한반도에서 기원했다고 단언했다. </font></span></div> <div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justify;line-height:150%;margin-bottom:16pt;margin-left:30pt;"><span style="font-family:'조선일보명조';font-size:10.5pt;"><font face="굴림" size="3">“< 일본기(日本紀)>를 읽으면 처음 이 나라가 마한·진한의 이한(二韓)에 의해 열렸고, 아울러 변한(弁韓)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옛날부터, 한(韓)으로부터 일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숨겨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이 나라(일본) 것만으로 무엇이나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어(韓語)를 왜어(倭語)로 보고서 가지가지 설(說)을 내세운 나머지 마침내는 그 본 뜻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일본역사는 馬韓· 辰韓의 二韓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한편 변한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읽었다면 진정 일본기를 읽었다고 할 수 없다.”</font></span></div> <div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justify;line-height:150%;margin-bottom:16pt;margin-left:30pt;"><span style="font-family:'조선일보명조';font-size:10.5pt;"><font face="굴림" size="3">여기에 대하여 일본 국학계(국수주의 역사)의 거두 모또오리 모리나가(本居宣長)는 사다모또를 <미친놈, 鉗狂人>이라고 비난하였다. </font></span></div> <div class="autosourcing-stub-extra"><font size="3"></font></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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