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SaSK2pEbkgY"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p> <p><strong>-조용필 서울서울서울(1988)</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strong></p> <p><strong>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strong></p> <p><strong>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strong></p> <p><strong>추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strong></p> <p><strong>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strong></p> <p><strong>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strong></p> <p><strong>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이 서두네</strong></p> <p><strong>나의 사랑을 가져가 버린 그대 </strong></p> <p><strong>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strong></p> <p><strong>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strong></p> <p><strong>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strong></p> <p><strong>워 워 워 Never forget oh my lover Seoul</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보나마나 사랑과 이별의 추억에 대한 노래군요.</strong></p> <p><strong>조용필씨가 말했다시피 이 노래는 "88올림픽"을 빛 내고자 만들었다고 하네요.</strong></p> <p><strong>9월 17일~10월 2일까지 24회 서울하계올림픽에는 몬트리올올림픽(1976) 이후</strong></p> <p><strong>12년만에 동(공산주의국가)서(자본주의국가)양 진영이 </strong><strong>모두 참가한 경기입니다.</strong> </p> <p><strong>88올림픽 이때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휴대전화를 만들었는데, 서울올림픽을 찾은 외국 귀빈에게 선물하기 위</strong><strong>해 SH100을 제작</strong></p> <p><strong>크기와 무게가 벽돌 만하고 가격도 비쌌지요.</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올림픽 이전에는 5월 15일날 세계최초 국민주 언론 한겨레신문이 창간 되었고</strong></p> <p><strong>올림픽 이후 11월 3일 한국의 최초의 청문회가 열리게 됩니다. 아무튼 1988년도는 "최초"가 많네요.</strong></p> <p><strong>전두환이 대통령 재임시절 수천억원을 불법으로 모은 비리와 5.18민주화운동 언론통폐압에 관한 청문회 였는데</strong></p> <p><strong>최대 화두는 아무래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것이였지요. 그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정권은 진상규명을 꺼려했고</strong></p> <p><strong>분노한 시민과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들도 정부를 압박하였고 결국 기대하던 생중계 청문회가 열리게 됩니다.</strong></p> <p><strong>전두환은 끝까지 안나오려다 1989년 12월 31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되었지만 정당한 자위권이었다는 </strong></p> <p><strong>어이없는 발언에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이때 노무현의원의 논리적인 말과 행동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셨죠.</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한편 세계를 바라보면 </strong><strong>버마에서는 군사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죠.</strong></p> <p><strong>네윈장군이 군사 독재정부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민들이 분노를 토하며 시위를 하자 군대를 동원해 무참히 학살하였습니다.</strong></p> <p><strong>그러나 더더욱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네윈정권은 사임을 발표한다. </strong></p> <p><strong>허나 네윈장군의 측근인 소마웅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가 쿠데타를 </strong><strong>일으켜 </strong></p> <p><strong>다시정권을 강탈하게 되는 아주 우리나라 박정희 전두환하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strong></p> <p><strong>신군부는 시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복수 정당제 아래 민주적인 총선제를 약속하였습니다. 1990년 5월 27일 총선거가 치뤄졌고</strong></p> <p><strong>이때 등장하신 분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하죠. </strong></p> <p><strong>그것도 잠시 신군부는 당선자들을 </strong><strong>체포하고 선거 무효를 선언하면서 군사독재는 20년간 지속이 된 것이지요.</strong></p> <p><strong><br /></strong></p> <p><strong><br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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