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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12048
    작성자 : 콩국수
    추천 : 2
    조회수 : 1519
    IP : 220.83.***.117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3/10/13 13:26:02
    http://todayhumor.com/?history_12048 모바일
    사도세자에 대한 논란 정리글

    의대병 논란

    부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그가 옷 입기를 꺼리거나 특정 옷감을 꺼리는 의대증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의대증에 걸렸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신질환 여부 논란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그가 정신이상 증세와 조울증 증세와 비슷한 증세(광증)를 앓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세자가 18~19살이던 1753~1754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는 ‘나는 본디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데다가, 지금 또 더위 먹은 가운데 대궐에서 임금(영조)을 뵙고 나오니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에 달하여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더불어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썼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광기를 앓았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한중록에서 묘사한 것처럼 아버지 영조가 화협옹주화평옹주는 총애하고 세자를 구박했다는 기사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후대의 역사학자 이덕일은 그가 온양행궁에서 백성들을 진휼하고 위문한 점 등을 들어 그가 정신이상자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쿠데타 기도 의혹

    사학자 이덕일은 그가 1762년(영조 38년) 의문의 평안도왕환길 무렵 동궁 근처 전각의 지하에 광중을 파고 군기붙이를 숨겼던 것이 영조에게 발각된 일을 두고 그가 미구에 쿠데타를 일으켜 영조를 은퇴시키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쟁설과 관련한 의혹

    사도세자가 노론의 반발로 인해 당쟁에 휘말려 죽었다는 당쟁설은 현재 임오화변의 유력한 정설이다. 하지만, 실록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임오화변의 당쟁설에 반하는 기록들이 있었다. 박시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 경종, 영조편>에서 당쟁설에 관한 몇 가지의 한계점을 제시하였다.

    대리청정의 과정에서 사도세자가 소론을 옹호했다는 기록의 한계점

    대리청정의 과정에서 사도세자가 소론을 옹호하여, 노론의 반발을 샀고, 이는 임오화변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록에 기록되있던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은 어느 당에 기울이지 않은 매우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 영조는 대리청정을 시작한 날부터 세자가 처리한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서는 자신이 처리했다. 본래 대리청정은 왕의 건강이 위독할 때 세자가 대신 정무를 맡는 형식이었는데, 대리청정을 맡길 당시 영조는 비교적 건강한 때였으니 본래의 목적을 위한 대리청정이 아니었다. 대리를 맡길 당시 영조는 세 가지의 이유를 내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저궁에게 정사를 밝게 익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세자에게 현실의 정치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대리 초기에 왕은 상서에 대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자에게 현실정치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또한 정통성에 관한 콤플렉스에 시달린 영조가 대리청정을 한 이유는 형식적이었지만 대리를 통해 자신이 왕위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때문에 사도세자의 대리는 형식적으로 하였던 것이지 중요한 정무까지 세자에게 맡기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이므로 세자의 대리영역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자는 부왕의 결정에 반대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알겠소.', '그럴 수 없소.', ‘대조께 아뢰어 결정하겠소.’라고 하는 등 소론에게 편중된 모습은커녕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번은 조현명이 세자의 대리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을 지적하였었다. 그러다 왕의 의중을 알게 된 조헌명은 한 달 보름 남짓 후에 세자에게 ‘매사에 부왕의 뜻을 따라야 한다.’라고 하며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했다.

    당쟁론에서 세자가 소론을 적극 옹호했다는 주장은 여러 역모사건 이후 잔여 소론 세력들의 처벌을 거절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는데, 이는 영조가소론이 노론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대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세자를 이에 대해 “대조께서 반대하시므로 허락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노론의 처벌 요청에 대해 거절하였던 것이다. 소론 처벌에 대해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을 했지만, 독단적인 결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또한, 세자의 보고를 받은 영조는 이들의 상서에 대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하면서, 세자가 관대하게 대한 것에 대해 가볍게 지적하고서는 상서를 올린 이들을 귀양 보냈다. 이 후에 영조는 이들을 풀어줄 것을 상소한 자들까지도 당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귀양 보냈다. 이 후에도 사도세자는 소론 세력들의 처벌에 대해 거절하였던 일 대부분은 ‘대조의 뜻이므로 따를 수 없다.’라고 답하였었다. 이외에 다른 대신들의 처벌과 관련한 논의나 상서에 대해서도 세자는 대조의 뜻이라 하며 거절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세자가 부왕의 뜻을 따랐고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자제했다고 하는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도세자는 탕평을 지향하였는데, 격한 상서를 올린 이에게 당습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영조가 지향한 탕평의 뜻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대리청정에서 대부분의 사안들은 영조의 결정에 따랐고, 영조가 소론세력의 처벌을 저지하여 세자가 이를 지지했다는 기록들은 영조가 친노론이었고, 사도세자가 친소론이었다는 당쟁설의 주장에 한계점을 가져다 주는 셈이다.

    노론의 사도세자 모함에 대한 기록의 한계점

    소론을 옹호했다던 사도세자에 대해 노론이 그토록 경계심을 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당시 소론과 노론의 세력 차이를 본다면, 소론은 영조를 노렸던 반란과 수많은 역모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을 스스로 무너뜨려 세력 회복을 도모할 수도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고, 노론은 사라진 소론의 빈자리를 채워 조정을 대부분 장악하였다. 또한, 당시 노론의 최고 실력자는 지방에서 후생을 양성하는 당의 영수가 아닌 영조의 외척으로 조정의 최고 실세였던 홍봉한이었다. 그만큼 노론의 입지는 매우 탄탄하였고, 이미 와해된 소론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도세자를 모함했다고 알려진 인물들로는 김상로나 후궁 문씨가 있고, 정순왕후가 그 중심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순왕후가 궁에 들어올 당시에는 영조 35년으로 이미 세자와 왕의 갈등은 불거진 상황이었다. 또한, 정순왕후의 세력은 임오화변 이후에도 홍봉한의 세력과 대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순왕후 중심론은 신빙성을 가지지 못한다.

    물론 김상로나 후궁 문씨 등이 세자를 모함했다는 기록이 <실록>이나 <한중록>에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영조 사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발언에서 나온 기록들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영조가 재위하던 당시에 써졌던 세자에 대한 상서들은 서연(조선 시대 때 왕세자에게 경서를 강론하던 자리.)을 열지 않는 점이나 관서행, 재신을 접견하는 예, 진현(세자가 왕에게 나아가 안부를 묻고, 수라를 살피는 예)과 관련한 부분이 대부분인데, 이는 유교 교육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시했던 조선에서는 지극히 있을 법했던 비판들이었다. 오히려 신하들이 세자의 잘못을 숨기거나 영조가 세자를 질책할 때마다 세자를 옹호하고, 둘 사이에서 화해를 중재하려 했다는 기록이 더 많이 있었다.

    이와 관련한 근거로는 사도세자를 죽게 한 원인 중 하나인 관서행이 영조에게 알려지는 과정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도세자는 1761년 4월 2일부터 4월 22일 사이에 관서지방을 유람하였었다. 이후에 사도세자는 유생과 대신들이 자신에게 관서행에 대한 상서를 올리는 것을 받고서는 영조가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여 영조에게 1년 만에 진현을 찾아왔었다. 1년만에 행한 진현은 자신의 관서행이 들켰는지에 대해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그 뒤로 관서행이나 진현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관서행을 들킬 수 있다는 불안감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영조가 세자의 관서행을 알게 된 시점은 5개월이 지난 9월이었다. 5개월이란 시간동안 대신들은 물론 유생들까지도 알고 있었던 세자의 관서행을 영조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혹 알고도 모른 척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자가 관서행을 영조에게 들킬까봐 두려워했고, 관서행을 알게 된 그날 영조는 5월의 <일기>를 살펴 관서행에 대한 기록을 찾게 했다는 점을 봤을 때 그동안 몰랐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만약, 노론세력들이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는 세자를 탄핵하고, 모함하려고 했더라면 관서행이나 세자의 비행을 즉시 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론의 신하들은 5개월 동안 영조가 직접 알게 되기 전까지는 세자의 관서행에 대해 알리지도 않았다. 또한 이후로도 세자의 잘못(시전에서 돈을 빌려 쓴 행위,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해서도 묵과하였다. 세자의 비행이 모두 밝혀지는 나경언의 고변 때 영조는 당시 입시해있던 모든 신하들에게 "오늘날 조정에서 사모(紗帽)를 쓰고, 띠를 맨 자는 모두 죄인 중에 죄인이다. 나경언이 이런 글을 올려서 나로 하여금 원량(元良)의 과실을 알게 하였는데, 여러 신하 가운데는 이런 일을 나에게 고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나경언에 비해 부끄럼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는 그동안 영조가 세자의 잘못과 비행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들을 봤을 때, 사도세자가 소론을 옹호해 노론의 반발을 사서 노론의 탄핵이나 모함에 의해 죽게 되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게 되어버린다.

    영조가 친노론이었다는 점의 한계점

    또한, 당쟁설에 대한 한계점으로는 영조가 당쟁으로 인해 아들을 없앴을 만큼 친 노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노론세력이 아무리 세자를 모함했다고 해도 영조는 노론의 모함에 휘말려 자신의 아들을 죽일 만큼 판단력이 부족했던 임금은 아니었다.

    영조는 매우 냉정하고, 치밀했던 성격으로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이용하여, 신하들을 압박하고는 하였다. 영조는 숙종 이후 떨어진 왕권을 강화시켜 대부분의 기득권층이 손대지 않던 민생의 안정에 힘써 조선 후기의 부흥을 불러왔다.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웠고, 정국을 주도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던 임금이었다.

    또한, 영조는 탕평정치를 지향했던 임금이었다. 물론 후기에는 노론이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으나, 이는 단지 영조가 친 노론이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경종을 죽인 것은 노론과 영조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소론(그중 준론이 가장 심하였다.) 세력들은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고, 각종 역모계획을 꾸몄다가 전부 실패하면서 대부분의 소론 준론들은 와해하게 된다. 이후의 소론은 최소한의 완론 세력들만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에 영조의 탕평 정치는 노론 위주의 정치로 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모사건 이후에도 영조는 소론에 대한 강경한 처벌이나 노론 중심의 정치를 저지하였다. 자신과 노론을 신원하는 책인 <천의소감>을 편찬할 때 영조는 서론에서 소론이 지나치게 폄하되는 기록에 대해 “이 책이 당론에 대해 지어졌는가?”라고 하며, 분개하여 노론의 신하들로부터 당론을 하지 않겠다는 소를 받아내고, 붕당정치에 대해 강한 경고를 날리기도 했었다. 다만, 노론 위주의 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외척세력을 끌어들인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 외척 중 대표적인 인물이 홍봉한으로 홍봉한은 노론이기도 했지만, 영조에 의해 실세로 떠오른 인물이었고, 때문에 홍봉한은 영조의 뜻을 앞세웠다. 영조는 자신의 뜻을 따르는 이들을 바탕으로 왕권 중심의 정치를 확립한다. 강력한 영조의 왕권은 죽기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고, 영조는 탕평정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사도세자가 죽고 난 후에는 한유라는 자가 홍봉한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서 ‘일물(뒤주를 일컫는 표현)을 바친 죄’를 다스리라는 부분에서 영조는 ‘비록 홍봉한이 바쳤다고 해도 그 물건을 쓴 사람은 내가 아니더냐?’라고 하였다.

    결론

    사도세자가 친소론으로 친노론이었던 영조와 정치적으로 대립하였고, 노론이 세자를 탄핵하거나 모함하여 영조를 분노케 하였으며, 때문에 세자는 당쟁에 휘말리게 되어 죽게 되었다는 당쟁설에 대해 사도세자와 관련한 실록의 기록들을 살펴봤을 때 당쟁설과는 반대되는 기록들이 더 많았다. 영조의 뜻에 따를 뿐이었던 대리청정 과정에서 사도세자는 소론을 옹호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노론이 대부분이었던 조정의 신하들은 세자를 모함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관서행이나 각종 잘못, 비행들을 영조가 직접 알게 되기 전까지 상소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로 유력하다는 당쟁설은 그 근거가 조금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콩국수의 꼬릿말입니다
    출처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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