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font size="3">조금은 이 게시판의 사람들도 신라에 대해서 우리( 한국 일본 포함)<br />가 알고 있는 고정 관념과 신라의 형성은 조금 다르다고 하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br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지만 <br />형식을 조금 바꾸어서 신라에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자 합니다 <br /><br />풍림화산이 게시판에서 자주 이야기 했던 황당한(?) 北史 기록에 대해서 <br />먼저 풍림화산의 의견을 이야기 합니다..<br /><br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br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신라왕은 원래 백제 사람이다 바다를 통해서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와 왕을 물려 받았다. 처음에는 백제의 속국이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 그 부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相率歸之해서 강성함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 가야에 종속하게 되었다. </font></div> <div><font size="3"> </font> <div><font size="3"><br />北史 列傳第八十二 新羅 기록 </font></div> <div> </div> <div><br /><br /><font size="3">신라왕이 원래 백제 사람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br />다음의 2가지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br /><br />1. 三韓 중에서 秦韓王은 馬韓王이 하였다 라는 기록을 秦韓을 신라 馬韓을 백제 <br />이렇게 치환해서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br /><br />2. 우리의 고정 관념과는 다른 신라 형성 과정이 존재한다<br /><br />풍림화산은 은 2번의 가능성이 80% 1번이 20% 정도라고 보는데 그것에 대해서 <br />다음의 梁職貢圖 기록을 보도록 합니다.<br /><br />治所城曰固麻 謂 邑 ;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魯 分子弟宗族 爲之 旁小國有 ; 叛波 卓 多羅 前羅 <font color="#c00000"><strong>斯羅</strong></font> 止迷 麻連 上巳文 下枕羅等附之<br /><br />다스리는 곳을 固麻라고 하고 邑을 이르기를 ;魯라고 하는데 중국으로 치면 郡縣이라고 한다. 22개 ;魯가 있어서 아들과 형제 종족에게 나누어 준다. <br />그리고 그 22 ;魯를 소개하면서 旁小國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명을 설명합니다. 풍림화산 AD 369년 이라고 추정한 神功 49年 기록과 원문 자체가 같은 지명이 눈에 뜨입니다. 일단은 斯羅에 주목해서 봅니다.</font></div><font size="3"></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 <div> <div style="text-align: left"><img style="border-bottom: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right: medium none" alt="DSC00474.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6/CMaT2fmSAjUM4MTiT1LKyAacnnI8wt8c.jpg" width="570" height="763" /></div><br /><br />斯羅는 新羅의 다른 이름도 되는데 <br /></div></font></div> <div><br /><br />斯羅는 新羅의 다른 이름도 되는데 <br /></div><font size="3"></font> <div><font size="3"> <div>삼국사기 신라 本記 智證 麻立干 기록을 보도록 합니다 <br /><br />四年, 冬十月, 群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 斯羅 或稱 斯盧 或言 新羅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br /><br />始祖가 창업을 한 이래로 나라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혹은 斯羅 혹은 斯盧 또는 新羅<br />라고 하였습니다. 新은 덕업이 매일 새롭게 된다는 뜻이고 羅는 모든 것을 덮는다는 뜻이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함이 이를 국호로 해야 합니다<br /><br />新羅의 以前 이름에 斯羅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 기록에 백제의 제후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제시한 가설 A B 에서 B.. 신라 초기 형성 과정은 삼국사기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고정관념과 다르게 백제의 제후국으로서 斯羅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br /><br />그렇다면 일본서기에 대한 궁금증.. 앞의 七支刀 연립 방정식 속편에서 神功 49년 즉<br />AD 249 + 120 이것이 AD 369 유물에 세겨진 七支刀 연대에 부합하고 돌 위에 앉아서 <br />맹세하는 ( 石上) 맹세하는 백제 速古 大王을 기록하고 있는데 <br /><br />어째서 여기에 倭는 등장하지 않을까요? <br /><br />물론 실제 역사를 접한 일본서기 창작자들이 인위적으로 연대를 2甲子 인상시키고 <br />신라 여인을 motive로 창작한 神功 이라는 가공 인물을 창작해서 그 연대에 <br />삽입시켜야 했다는 것은 倭라고 하는 것을 일본서기 창작자들이 기록하고 어려웠다는 <br />의미입니다( 혹은 倭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 <br /><br />그렇다면 일본서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한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br />한가지를 응용해 봅니다 <br /><br />삼국사기 <br /><br />奈勿 尼師今<br /><br />十三年春, 百濟 遣使, 進良馬二匹<br /><br />일본서기 應神記<br /><br />十五年秋八月壬戌朔丁卯 百濟王遣阿直伎 貢良馬二匹 <br /><br />백제는 신라에 馬 주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倭에는 馬 주었다는 기록은 없는데 <br />동일한 良馬二匹이 나온다는 것은?<br /><br />여기에 대해서 <br /><br />그 당시에 倭를 일본서기 창작자들이 기록할 수 없었다. 즉 倭라고 하는 것의 <br />실체는 없었다.. 단지 일본서기 창작자들의 조상인 열도의 신라인이 존재했을 뿐이다.<br />따라서 良馬 2匹의 은유를 공유했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열도 version 반도 version으로 나누어서 기록된 것일 뿐이다..<br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br /><br />이제 한반도 七支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div></font><font size="3"></font></div> <div><font size="3"> <div><br /></div></font><font size="3"></font></div> <div><font size="3">P.S 글이 반대 테러로 삭제되면 <a target="_blank" href="http://blog.naver.com/ibm1082" target="_blank">http://blog.naver.com/ibm1082</a> 에서 본문을 볼 수 있습니다 <div><br /></div></font></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