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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freeboard_1999944
    작성자 : closingmoon
    추천 : 5
    조회수 : 658
    IP : 221.150.***.187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12/17 02:55:39
    http://todayhumor.com/?freeboard_1999944 모바일
    이태원 희생자를 추모하며
    옵션
    • 창작글
    우연히 읽게된 시집 
    오래된 거리처럼 나는 너를 사랑하고 에서 
    세월호 추모 시를 보고는 써본 시인데 
    혹여 오해가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감춰 두었다가
    최근 그곳에서 살아남았으나 사람들의 악플에 결국 슬픈선택을 한 아이를 보고는 
    추모하고 함께 슬퍼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처음것은 수많은 이들이고 
    다음것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돕다 생일전날 하루 나갔다던 청년을 떠올리며 저혼자의 짐작으로 써보았습니다. 
    만약 불편하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

    점심시간

    너는 점심을 먹으며 햇살처럼 재잘거렸다
    저녁의 파티를 꿈꾸며 들떠있었다. 
    장고 끝에 고른 옷을 입고 뽐내던 너의 모습은
    내 품에 처음 안기던 순간처럼 티 없이 맑았다.

    우리는 점심을 2, 3교시에 다 먹고 
    교실 뒷편으로 모여들었다
    너는 이거 나는 저거 서로의 캐릭터를 정해주고 
    그날의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녀석은 수업이 끝나면 일을 하러 달려가곤 했다.
    너무 바빠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던 녀석이
    생일이라며 오랜만에 시간을 내었다.
    녀석과 함께 이태원을 갔다.

    너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랜 코로나를 견디어 내는 동안
    그 예쁜 청춘을 얼마나 빛내고 싶었을까
    그 곳에 간 것이 무슨 죄란 말이냐

    미안하다. 
    먼저 조금 더 오래 산 우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아야 했다. 

    기억할게. 
    너희가 아름다운 삶 속에 있다 갔음을

    찾아낼게.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 속에서 너희의 심장을

    막아낼게.
    더이상 모두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


    점심

    고릴라 같은 모습을 하고 너는 세상엘 왔다.
    태어나서부터 통잠을 자던 너는 타고난 효자였다.
    여느 말썽꾸러기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인생 2회차라도 되는 양 꼬마일 때조차 듬직하던 너도
    때로는 놀다가 다치고 돕다가 그릇을 깨트리고는 했다.

    너의 볼은 가을에 새빨갛게 무르익는 사과보다도 더 붉었고,
    너의 두 눈은 겨울 밤하늘에 선명해지는 오리온자리의 가장 밝은 허리띠처럼 눈이 부셨다

    남들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처형장의 망나니 마냥 돌변한다던데
    마음이 여렸던 너는 내게 큰소리를 처음 내던 날 
    그 밤에 잠든 내 머리맡에 와서 죄송하다 눈물 흘렸다.

    그런 네가 성인이 되어 군대에 입대하던 날
    이 아비는 수많은 신문 속 사건들이 너의 일이 되지 않도록
    매일 아침 출근길에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그 누구라도
    너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믿을 수 있었지.

    아비의 일은 전쟁터 같은 현장
    여전히 뒤뚱거리는 오리 같던 너를 
    나는 목마 안에서 머물기만 바랐다.

    80년대 사우디에서 일하다 온 사람 같던 나를 닮지 않도록
    네 엄마는 부지런히 선크림을 보냈지.
    어렸을 적, 쪼글쪼글 귀엽던 아기 고릴라는
    제대 후 킹콩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발뒤꿈치가 없는 아킬레스처럼 거침이 없던 너는 
    나의 만류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비의 일터로 진군했다.
    새빨간 산수유 열매처럼 여물었던 너의 스물 다섯.
    꽉 채우는 너의 스물 다섯을 하루 앞두고 
    나는 너와 점심을 함께 했다.

    그 점심에 나는 너를 허락하지 말걸.
    생일인데 놀라고 부추기지 말걸.
    코로나로 생계가 묘연하니 단 하루도 쉬지 말라고.
    너도 이제 성인이니 책임을 지라고
    엄하고 단호하고 이기적으로 굴 걸 그랬다.

    스물 다섯이나 된 놈이 놀 궁리나 한다고
    네 학비나 벌어야지 거렁뱅이처럼 군다고
    IMF시절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네가 아느냐고
    꼰대 라떼 아저씨마냥 훈수를 둘걸 그랬다.

    그러면 마음 여리고 효자인 너는
    단박에 약속을 취소하고 전장으로 돌아왔을 테지.
    너의 나약함을 자책했을 테지.
    여전히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을 테지.

    아비의 전쟁터에서 청춘을 제대로 여물지 못한 너는
    딱 하루, 빛나기 위해 날아갔던 너의 날, 
    파리스의 화살을 맞은 아킬레스 영웅처럼 
    그대로 빛이 되어 미련 없이 날아갔다.

    나의 영웅이었던 너는 책임감이 비석 같았는데
    그리스도 로마도 아닌 원더키디의 세상에서 
    너와 같은 책임감의 어른은 없더라.

    이제 막 맺혔던 158개의 푸른 산수유 열매는
    영글지 못한 채 그대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의 그 속에서
    너희는 타버린 재처럼 힘없이 허물어져갔다.

    노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던 새들의 바다 
    8년 전 그날 내가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일까
    27년 전 붕괴 된 분홍 선물 상자 속 그들을 잊었기 때문일까
    28년 전 한강 위로 날아오르던 천사들을 
    안드로메다 성운처럼 바라봤기 때문일까

    나는 펄펄 끓는 기름통 속에 떨어진 물 한 방울
    나는 폭발하여 블랙홀이 된 초신성
    나는 4차선 고속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납작해진 들개

    나의 눈은 햇볕에 노출된 카메라 필름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의 귀에 들어 온 소리는 동굴을 헤메다 갈 곳을 잃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의 발아래엔 굿을 하는 무당의 발처럼 녹슨 칼날이 곧게 서 있고
    나의 가슴... 가슴 그곳엔 너를 따라 올라간 탓에
    빈 허공만 가득 메워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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