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전공을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도움을 구하러 오는 일이 많다보니
지금까지 한 40개 좀 넘는 사건을 다뤄본 것 같아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베스트 5를 뽑아봤습니다!
- 5위 -
<조기축구회 앞니 사건>
학생때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평소에 연락 안 하던 교회 친구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근데 흥분한 목소리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자기네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축구를 하는데
골키퍼를 보던 막내가 굴러오는 공을 분명 엎어져 두 손으로 잡았는데도
달려오던 아저씨가 그대로 달려와서 무릎으로 막내의 입을 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얘는 앞니가 두 개 나가고,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병원으로 갔는데
아저씨들이 보상 얘기는 커녕 "니네가 보험을 들었어야지"하면서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출동!
가서 우선.. 제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기선제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좀 긴장하고 갔어요.
가해자 아저씨 누군지 묻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위에 써놓은 것처럼
막내가 엎어져 공을 잡았는데 저 아저씨가 그대로 달려와서 무릎으로 애 입을 쳤다고 하더라고요.
가해자 아저씨는 말이 없고, 다른 아저씨들이 막 욕하거나 손가락질하는데
거기서 제가 다음부터 욕하면 경고없이 곧장 경찰불러서 고소조치할 거라니까 잠잠..
그 다음에 제가 가해자 아저씨한테 보상을 어떻게 해줄 거냐고 물으니까
조기축구회 회장 아저씨가 나서서 "보험 안 들었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시전.
제가 "충분히 달려오는 거 멈출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려와서 무릎으로 친 거면 과실치상으로 갈 수도 있다" 시전.
다른 아저씨가 "고소하라 그래!" 시전.
제가 "그럼 고소할게요. 여기서 대화 끝내시고, 가해자 아저씨 이름이랑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시전.
그제서야 조기축구회 회장 아저씨가 중재 시작.. 결국 막내 치료비 보상해주는 걸로 하고 끝났는데
나중에 또 친구에게 전화가 옴.. 들어보니 가해자 아저씨네 회사에서 돈 걷어서 주기로 했다는데, 10만원 모았다고.. 그거 주겠다고..
근데 막내는 임플란트 2개 심음..
그래서 저도 화나서 막내 고소 도와줌.(요건 생략)
경찰이 가해자 아저씨네 회사에 왜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가해자 아저씨네 회사 난리나고..
저는 한참 머리 굴리고 있는데
막내 왈 "형, 그냥 제 아버지 돈으로 치료할게요. 이러는 거 좀 양심에 찔려서요."
그리고 고소 취하..... 결말이 허무해서 기억에 남았던 사건.
(여기서부터 음슴체..!)
- 4위 -
한때 집이 넘 가난해서 정말 싸고 엉망인 방에서 살았는데
집주인이 너무 간섭이 심함...
저 혼자 집에 있으면 들어와서 제 아버지 욕을 2시간 하고, 저한테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고 감.
근데 아버지가 집주인한테 밉보인 건
집에 물이 새서 옷이 다 망가졌을 때 아버지가 배상하라고 하니까 집주인이 못하겠다고 해서 싸웠던 것뿐임.
그래도 집주인이니까, 별로 갈등 생기기 싫으니까 해서 그거 다 일일이 들어주면서 넘어갔음.
그러다가 그마저도 못살 집이 돼서 다른 데에 거소를 마련해놓고 왔다갔다하는데
아무리 적은 월세이지만 고정적으로 나가는 게 부담돼서 계약 해지하려구 집주인에게 연락했다가
집주인이 보증금 중 일부를 일부러 줄여놓은 걸 확인했음.
그래서 계약 해지 못하겠다고 하고 집주인이랑 다툰 다음에 그달 월세를 안 냈는데
다음달 4일쯤 돼서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막 사진찍어서 저한테 보냄.
집을 엉망으로 해놨다고 손해배상청구한다고..
저는 얼씨구나 싶어서 그 자료 그대로 서에 제출하면서 주거침입으로 고소함.
선고는 지난 여름에 했다는데 아직 결과를 확인 못했음..
결과 확인하면, 이제 보증금 중 일부에 대해 사기, 주거침입 당시 있던 물건들에 대해 절도로 고소하고
아직 못 돌려받은 보증금 + 이자 + 위자료 명목으로 손배청구 예정임.
이것땜에 내일 법원가야함..귀차농..ㅠㅠ
- 3위 -
<여친 특수한정승인 사건>
사귀던 여친에게 갑자기 멘붕이 옴.
왜냐고 물으니까, 연락 안 하고 지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근데 돌아가신지 두달 좀 넘었다고 함.
오빠가 그나마 연락하고 있었는데, 일부러 안 알려주다가 3개월이 될 때쯤 알려준 거라고 함.
상속 한정승인을 하려면 재산조회를 해야 하는데, 그때 남은 기한이 일주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함.
그래서 방향을 특수한정승인으로 바꾸고, 차근차근 자료 모아서
A부터 Z까지 다 처리해줬음.
웬만해서 법원까지 같이 가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여친이 너무 당황하고 그래서 직접 운전해서 지방까지 내려가고 그랬었음.
요건 여친의 가정사(?)를 알게 됐던 사건이기도 하고, 가사소송은 거의 다뤄보지 않았던 저이기에 새로운 경험이었기도 해서 기억에 남음.
- 2위 -
<금고 사건>
법학을 하고 가장 먼저 맡았던 사건이었음.
아버지 친구분이 5000만원을 빌리고 1억을 빌린 걸로 현금보관증을 작성해줬다고 함.(나중에 1억으로 갚기로 하고)
그런데 한 4000만원 정도를 못 갚아서, 돈 빌려준 사람들이 그 금액에 대해서 아버지 친구분의 땅을 상대로 소송을 건 사건이었음.
당시 전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가던 20대 초반이어서, 또 사시 준비한다고 관련 강의만 골라듣는 열정적인 학생이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 상대측 소장에 1억을 빌려줬다는 증거가 약하다는 걸 발견했음.
상대측은 5000만원을 계좌이체하고 나머지 5000만원은 현장에 있던 금고에서 꺼내줬다고 하는데
증거는 1억짜리 현금보관증만 있었을 뿐임.
게다가 돈을 건내준 장소가 공인중개사사무소였는데, 공인중개사사무소에 금고가 있다는 증거도 없을 뿐더러 평소 금고를 두는 장소도 아님.
당시 입회했던 사람도 상대측 사람뿐이고, 제3자는 없었음.
그래서 저는 상대측이 금고에서 꺼내어 줬다는 5000만원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했음.
그리고 승소했음. ㅎ
- 1위 -
<혼인빙자간음,(feat. 도망자)>
이건 대학 2년째였을 거임.
폰도 없앤 상태에서 가사소송법 관련 강의를 몰아듣는데
형이 저에게 갑자기 자기 친구한테 연락좀 해달라고 함.
그래서 연락했더니, 하는 말이..
자기 여동생이 남친하고 사귀고 있는데
남친이 콘돔없이 하고 싶었다고 함.
근데 여동생이 거절을 하니까 남친이 결혼하자고, 그렇게 고백을 하고 결국 콘돔없이 했다고 함.
근데 여동생은 임신을 했고.. 남친이라는 작자는 시골로 도망가서 잠수를 타버린 거임.
이 경우에 뭐 할 수 있는 게 없냐고.. 했는데
그때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2009년 12월이었을 거임.
마침 2009년 11월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 결정이 나서, 인정을 못받는 상황이었음.
그래서 아무리 찾아봐도 양육비 청구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거임.
혹시 몰라 교수님께 여쭤보니 교수님도 그렇다고..하셔서 그렇게 전해줬더니
이 형이 고맙다고는 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애 지웠다고 함. 남친이랑은 헤어지고.
지금까지 약 8년 정도 간접적으로 다룬 사건까지 포함하면 한 6~70건 정도 될 건데
그중엔 사기, 특수폭행, 강간 등 중죄도 있는데
가장 기억나는 건 아무래도 이 사건이었음.
결말이 가장 슬퍼서였나.. 아니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였나..
여튼 좀 그랬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