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남들은 결혼하면 바뀐다는데, 나는 결혼전이나 후나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숙취에 찌들어 쓰린 배를 움켜잡고 뭐 먹을거 없나하며 두리번 거리면서 주방에 나오다가 퇴근한 마누라를 마주친 뒤였다. </div> <div><br></div> <div><br></div> <div>"야, 이제 속 차렸냐?"</div> <div><br></div> <div><br></div> <div>하루종일 쳐 자다가 이제 겨우 깬 것을 눈치챈 듯, 핀잔을 툭 던진다.</div> <div><br></div> <div><br></div> <div>난 그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우리 미국 가서 살까?"</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그녀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유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아무말 없이 서로를 응시한 것이 몇 초쯤 지났을 까.. 그녀의 입술이 움찔움찔 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입술 사이로 아무런 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난 분명히 소리가 들려온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 새끼가 드디어 쳐돌았구나~'</div> <div><br></div> <div><br></div> <div>분명히 욕이 나올 타이밍인데, 그녀는 이제 포기라도 한 듯 한숨을 내뱉고 나서는 한마디 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래.. 어떻게 갈건데?"</div> <div><br></div> <div>"뭘 어떻게 가? 비행기 타고 가지~"</div> <div><br></div> <div>"아! 썅~ 장난치지 말고.. 말해봐.. 도대체 어떻게 가냐고??"</div> <div><br></div> <div>"인생 뭐 있나.. 무작정 가는 거지~"</div> <div><br></div> <div>"휴~~ 오빠.. 내가 말했지? 오빠 나한테 수백억 벌어온다 이런 말 하지 말고 그냥 고정 수입이라도 벌어오라고.. 내가 언제 많이 벌어오라 했어? 맨날 그런 헛소리 하지 말고 현실적인 말을 좀 해~"</div> <div><br></div> <div>"아놔.. 너 나 못 믿냐? 내가 뭐 한다면 못하는거 있었어? 우리 애들 보면 알잖아~"</div> <div><br></div> <div>"아씨~~ 그래서 오빠가 좀 허황된 얘기 좀 하지말라고.. 꼭 그런것만 실현되잖아~"</div> <div><br></div> <div><br></div> <div>와이프는 애들 띠 얘기하면 기겁을 한다. 결혼할 때 아이들의 띠를 호랑이띠와 용띠를 한 명씩 만들자고 한 말인데, 결혼시기를 따지면 가능하지 못한 일이었다. </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데 허니문 베이비로 한달 여 일찍 태어나 호랑이띠가 된 꽁알이(태명, 7세, 초1)와 연년생으로 태어나 용띠가 된 꽁순이(태명, 6세, 유)를 보면서 나의 헛소리가 실현되는 것에 이미 혀를 내둘렀기 때문이다. </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알았어.. 알았어.. 그냥 딴 소리 하지말고.. 갈래? 말래? 그것만 결정해.. 난 간다면 간다."</span></div> <div><br></div> <div>"그래.. 만약 갈거면 어떻게 갈건데? 돈은??"</div> <div><br></div> <div>"돈이야.. 뭐 집 팔고 가는 거지뭐.. 남들 얘기들어보니까 한 1년에 6~7천만원 쓰면 가능하다고 하던데.."</div> <div><br></div> <div>"집팔고 가면... 갔다와서 우린 어떻게 살게? 돈 벌 궁리라도 있어?"</div> <div><br></div> <div>"뭐... 그런거 따지지 말고 그냥 갈거면 가고 말거면 말어.. 다 내가 알아서 할께."</div> <div><br></div> <div>"아니, 그래도 내가 뭘 알아야 따라가고 말고 할거 아냐? 미국 아무나 갈 수 있어?"</div> <div><br></div> <div>"후후후. 내가 누구냐? 내가 맨날 술만 처먹고 다닌지 알아? 다 이게 나의 인맥 관리였단 말이지......"</div> <div><br></div> <div>"말이나 못하면... 알았으니까 뭐 어떻게 할건지 말해봐~"</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속닥속닥, 소곤소곤 ......... 은 아니고.......  </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너 백교수님 알지? 백교수님하고 전에 만나서 내가 만든 솔루션을 보여줬지. 교수님이 관심 있어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질렀지. '미국 초대해주세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알았데... 초청장 오면 가는거야~"</div> <div><br></div> <div>"뭔 초청장?"</div> <div><br></div> <div>"너 대학 교수들이 안식년한다고 1년씩 미국 가고, 해외 가고 하는거 알지? 그게 미국에 교환 교수나 초빙교수로 가는거야."</div> <div><br></div> <div>"그런데 오빠가 그거랑 뭔 상관이야?"</div> <div><br></div> <div>"응. 나도 그런 명목으로 초청받아 가는거지. 방문학자로~"</div> <div><br></div> <div>"오빠는 교수도 아니잖아~"</div> <div><br></div> <div>"교수만 가는거 아님. 그건 내가 알아서 하는거고~ 넌 갈건지 말건지만 결정해."</div> <div><br></div> <div>"아... 지금 그걸 어떻게 결정해.. 돈도 없고 가면 뭐할지도 모르고~"</div> <div><br></div> <div>"넌 가면 그냥 놀아~ 그동안 일하느라 고생했어. 그냥 놀아~ 내가 다 알아서 할께."</div> <div><br></div> <div>"뭘 알아서 해? 그 대학에서 돈 받는거야?"</div> <div><br></div> <div>"아니~ 그냥 우리 집팔아서 우리 돈질하러 가는거지~ 크크크크"</div> <div><br></div> <div>"아~ 이런 미친!"</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참나.. 처녀때 그 곱던 입에서 이제는 쌍욕이 봄바람의 나비처럼 춤을 추며 나부낀다.</div> <div><br></div> <div><br></div> <div>처음에 욕 한마디 한게 이뻐서 이쁘다 이쁘다 해줬더니.. 남편을 뭘로 알고 욕이 심해진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래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줬다.</div> <div><br></div> <div><br></div> <div>"참나! 내가 욕하지 말랬지? 욕을 해도 애들 듣는데서는 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div> <div><br></div> <div>"애들 자잖아~ 강아지아기야~(주1)"</div> <div><br></div> <div>"응.. 그래.. 계속 해~~"</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우리집은 뜬금없이 미국바람이 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거지도 영어하고 양주 먹는다는 미국이 얼마나 좋은지, 뭐가 좋은지 한번은 가봐야 하는거 아니겠어~ ㅎㅎㅎㅎ</div> <div><br></div> <div><br></div> <div>하지만 돈도 없고, 집을 팔아 생활비를 해야 한다는 말에 와이프는 자신없다고 망설였고, 나 역시 가서 마땅히 할것도 없는데 가서 돈질만 하고 오면 뭐하나 걱정도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래도 사업한답시고 돈도 못 벌어오면서 숱하게 밤새면서 개발한 솔루션을 언젠가는 미국에서 펴볼거라고 마음 먹었던 터고, 미국은 가보고 싶은 동네이기도 해서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자식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주변에서 영어유치원이나 영어 교육을 위해서 쓰이는 돈이 엄청나다. 안 가르치면 그뿐이지만 가르친다고 마음 먹으면 그 부담이 꽤 되는 것은 사실.</div> <div><br></div> <div><br></div> <div>와이프를 꼬시는 방법을 바꾸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잘 생각해봐. 지금 주변에 애들 영어 유치원 얼마한다디? 대충 알지? 생각해봐라. 만약 우리 애 둘을 거기서 학교 보내면 그냥 영어 공부 시키는거야. 만약 우리가 집 판돈 다 꼴고 와도 애들 영어 교육 제대로 시켰다 하면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겠어?"</div> <div><br></div> <div><br></div> <div>와이프는 여전히 가타부타 답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난 이미 교수님께 미국 갈 거라고 부탁을 해놓았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백교수님은 내가 대학원에 다닐때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프로젝트를 몇번 같이 했었었고, 미국 대학으로 정년을 받아 가실때도 소주 한잔 기울일 정도의 친분은 있었던 분이었다. </div> <div><br></div> <div><br></div> <div>최근에 학회일로 한국에 오셨을때 뵙고 솔루션을 소개하고, 미국에서 같이 발전시키자고 얘기가 오갔고 그 결론이 방문학자로 나와 가족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거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솔루션이 발전되면 좋고, 안되면 미국 경험에 애들 영어 교육했다손 치자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div> <div><br></div> <div><br></div> <div>그것보다도 인생의 발전이고 뭐고를 떠나, 맨날 술 처먹고 인생 낭비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와이프에게 보여주고 싶은 맘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와이프는 여전히 가는 것에 대한 확신이나 준비없이 묵묵부답이다.</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어느 주말, 처가집 농사를 도우러 포천에 갔다. 일손이 부족했던지 처 고모님들도 일을 도와주러 오셨다.</div> <div><br></div> <div><br></div> <div>마당에 둘러앉아 수확한 농작물을 포장하고 있는데, 고모님이 웃으면서 한마디 하신다.</div> <div><br></div> <div><br></div> <div>"어이, 자네~ 미국 간다며?"</div> <div><br></div> <div>"예?"</div> <div><br></div> <div>"햐~ 능력좋네~ 미국 교수가 능력보고 초대했다며?"</div> <div><br></div> <div><br></div> <div>뭔 말인가 싶어 마누라를 슬쩍보니 낄낄 웃고 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옆에서 포장지를 접던 처제가 깔깔대며 웃는다.</div> <div><br></div> <div><br></div> <div>"크크. 우리 형부 이제 미국 가는게 기정 사실이네~"</div> <div><br></div> <div><br></div> <div>눈치를 보아하니 마누라가 이미 미국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 놨는 모양이다. 안간다고 버티던게 엊그제 같은데, 뒤로는 호박씨 까고 있었구만.. 하하하하하</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러게~ 이거 못가면 어디 시골가서 1년간 잠적해야 겠다."</div> <div><br></div> <div>"깔깔깔"</div> <div><br></div> <div><br></div> <div>처제가 이 상황이 웃겼던지 너무 웃는다.</div> <div><br></div> <div><br></div> <div>나도 모르게 난 처가쪽에 능력있어서 미국에 초대받아 가는 훌륭한 놈이 되어 있었다.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좋은 소문은 그대로 두라는 어떤 분의 조언이 생각나, 난 그저 허허 웃으며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웃으며 넘겨버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하지만 그 웃음과는 달리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가고...</span></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사실 큰 소리는 뻥뻥 쳐놨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고 모아놓은 돈이라고는 은행 소유인 집밖에 없는데......</span></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뭐, 까짓거... 인생 뭐 있나?</span></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집을 팔고, 작년 12월에 초청장을 받아 들고, 1월에 비자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2월에 대망의 미국에 발을 디뎠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리고는 찌질한 인생 제2막이 펼쳐지게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