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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cook_217602
    작성자 : 중장비여신
    추천 : 9
    조회수 : 1210
    IP : 125.130.***.4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8/03/25 07:09:21
    http://todayhumor.com/?cook_217602 모바일
    식당의 추억(5)-삼각지 대구탕(생태?)집
    그를 다시 만난 건 6개월만이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마음이 식어서, 너무 바빠, 또는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는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올 수가 없었다.
    6개월간 그는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음주여부에 따라 연락이나 친밀감 표시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급기야 만나기 한달쯤 전일까, 메시지 때문에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내게 대답을 종용했었다.
    너는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뭐라고 생각하는데?’
    ‘... ? , ... 아니... 아니, 그럼 오빠한테 나는 뭔데..?’
    그냥 친구와 여자친구의 중간쯤? 글쎄, 하여간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자친구는 아니야.’
    기분이 나빴다거나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니, , 그럼 지난번에, 그리고 또 그때 *&^$ 한 건 뭐야...--;;;’
    술먹어서 그랬나부지.’
    ...
    대화는 그렇게 어영부영 끝이 났고, 어찌어찌 관계는 다시 좋아졌고, 그는 휴가를 받아 한국에 왔다.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우리는 삼각지에 있는 대구탕(생태탕?)집에 가기로 했다. 그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때 자주 갔던 곳이라고 했다.
    남대문이나 삼각지 이런 곳은 제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 있다해도 그걸 먹으러 나혼자, 혹은 가족과, 친구와 거길 부러 찾아 가지는 않을 곳이다.
    식당은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있고 어느 골목인지 찾아갈 재간도 없을뿐더러, 테이블은 다닥다각 붙어있으며 테이블마다 시끄러운 아저씨들과 직장인들이 빨리빨리 먹고 나가야 하는 곳.
    메뉴도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곳.
    그래도 그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내겐 즐거움이었다. 단 한번도 맛이 없는 식당이었던 적도, 메뉴였던 적도 없었고 나는 평소에 먹는 것 보다 엄청나게 먹고, 엄청나게 떠들었다.
    커다란 전골냄비에 푸짐하게 생선과 미나리, 각종 채소 등이 올려져나왔다.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생선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식욕을 자극했다.
    생선이 익어가자 그는 생선살의 가운데부분을 발라 끊임없이 내게 놓아주었다.
    갑자기 지난번 그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자친구 운운이 생각났다.
    사실은 갑자기라기 보다 그의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우울이 묻어있기도 했으므로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돌직구를 날렸다
    됐어, 이런건 여자친구한테나 하는거지. 알아서 먹을께.’
    아무렇지 않은척 쿨하게 말했으나 사실은 쿨하지 못하게 심장은 쿵쾅대었고 몇초간 겁이 났다. 그는 약간 당황한 듯 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생선살을 발라주었다.
    국물은 시원하고, 그런 식당에서 기대할법한 맵고 짠 맛이 아니었다. 그냥, 집에서 어릴때부터 엄마가 끓여준 것처럼 적당히 심심하고, 적당히 담백하고, 적당히 매콤한 개운한 맛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엄마처럼 생선살의 깨끗한 부분을 내게 발라주고, 먹기 복잡한 부분을 열심히 먹었다.
    ...
    사실 내가 심장이 쿵쾅대며 쏘아붙인 말은 반은 진심이 아니었다.
    , 무얼 먹든 좋은건 내게, 맛있고 깨끗한 부분은 내게 먼저 주고 자기는 먹기 힘들고 맛없는부분만 먹었던 사람. 아니, 내게만 그렇게 했던건 아니었다. 천성이 그랬으니까.
    자기한테는 인색하고 남에게는 베풀고 희생만 하며 산 사람이었다.
    그걸 알고 만났다.
    그걸 알았을 때,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은 평생 저렇게 자기를 위해선 맛있는 것도, 좋은것도 못하고 살겠구나.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저 사람은 평생 저렇게 자기를 챙기며 살진 않겠구나. 그래서 늘 그를 만나면서 뭘 그에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생선살을 발라주고, 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주고, 그럴때마다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그에겐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 것도 습관이자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아는터라 열심히 받아 먹었었다.
    그리고
    아냐, 나 이제 배불러 주지마. 오빠 먹어.’
    라고 대충 이야기했었다.
    이제, 생선도, 돼지뼈도, 새우살도, 모듬초밥 중 맛있는 것들도... 그는 그냥 혼자 맛있게 다 먹으면 된다.
    잘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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