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4년 전이었을 거다.</div> <div><br></div> <div><br></div> <div>학부 시절, 복학한 동기들끼리 한창 몰려 다닐 때였다.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들 몇몇이 같이 점심을 먹쟀다. 알바비가 들어오려면 한참은 남은 상황에서, 난 식당에 갈 돈이 없었다. <b>'난 도시락 싸왔어'</b>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div> <div><br></div> <div><br></div> <div>정말 도시락을 싸오긴 했다. 맨밥에 간장만 비빈 도시락이었다. 난 그 도시락을 들고 학생회관 식당에 가서 300원짜리 나물 반찬 하나 사다가 먹었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학생회관 식당에 무리지어 온 동기들과 마주쳤다. 애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당황 반 동정 반이었다. 내 표정도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br></div> <div>상처를 들키는 데엔 비장함이라도 있지, 가난을 들키는 데엔 초라함밖에 없었다. 살짝 처참한 기분으로 고시원 방에 돌아왔다. 5호실 아저씨가 공용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담금주를 몇 잔 훔쳐 마시고는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말라붙은 모기 몇 마리로 장식된 벽지가 보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벽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나에겐 벽에 붙은 모기를 때려 죽일만큼의 열의는 있었지만, 제 손바닥에 터져 죽은 모기 시체를 떼어내어 내 삶을 개선시킬 의지는 없었다. 벽지가 나더러 이 상황이 모두 네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br></div> <div>모든 게 싫었다. 그냥 이대로 장판이나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초여름 습기와 땀이 접착제가 되어 나는 장판에 쩍쩍 달라붙고 있었다. 그러곤 잠들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다음날 아침, 누군가 공용 주방에서 끓이는 김치찌개 냄새에 잠을 깼다. <b>'백한아 김치찌개 다 됐으니까 일어나서 밥 먹어'</b>라고 말하는 것 같은 냄새였다. 그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다. <span style="font-size:9pt;"><b>'나한테 5천 원이 있으면 고기도 사고 두부도 사고, 김치도 얻어와서 김치찌개 끓여야지,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 해먹어야지' </b>생각했다.</span></div> <div><br></div> <div><br></div> <div>상상으로는 모자라서, 마치 정말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해먹은양 요리게시판에도 궁상 맞은 글 하나를 올렸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대신, 그 게시물에 달린 몇 마디 위로들을 아침거리로 삼았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엊그제,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간절히 먹고 싶어했던 4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803/1521514317347f3dc0f4fe4e119f8d88fc9ccbfa57__mn224088__w1440__h1080__f201311__Ym201803.jpg" alt="KakaoTalk_20180320_104942295.jpg" class="chimg_photo" style="border:none;width:640px;height:480px;" filesize="201311"></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망했다. 돼지고기를 너무 많이 넣었다. 돼지고기 맛밖에 나질 않는다. 마지막 고깃덩이를 넣기 전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갈망이 클수록 판단력은 약해지는 모양이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