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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ㅂㅎ한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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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computer_340609
    작성자 : ㅂㅎ한
    추천 : 1
    조회수 : 444
    IP : 117.111.***.97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7/04/09 21:08:53
    http://todayhumor.com/?computer_340609 모바일
    그 늙은 것과의 이별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처음 맡은 냄새는 비가 개인 뒤 아침 공기였다. 정말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차가운 공기와 침대에서 밍기적대는 게으름이 만든 고즈넉함과 문 밖에 흙내음이 살짝 섞인 바람이 그런 느낌을 줬던 모양이다.

    그때 그 늙은 것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를 들었다. '풀썩' 그 소리였다.

    침대맡에 올려뒀던 노트북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였다. 익스플로러 창 두 개면 켜둬도 멈추곤 했던 늙은 노트북이었다. 가난했던 지난 4년 세월을 함께 했던 노트북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이 늙은 것과의 이별을 맞이했음을 깨달았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몇 년 전  시험 준비 도중 도서관에서 떨어트렸을 때 생긴 상처에 눈길이 갔다. 이내 몇 년 전 전여친에게 차이고 나서 술을 마시다가 술을 엎질렀던 키보드 K버튼과 "버튼 사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든 게 어제와 다른 바 없었다.

    "징한 놈, 부서지면 새로 샀을텐데 겁나게 튼튼도 하네"

    맘에 없는 궂은 말 한 마디를 내놓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눈은 그 동안에도 늙은 노트북의 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충전기가 꽂혀 있는 바로 그 포트였다. 충전기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포트에 꽂혀 있었지만 그 각도는 어제와 같지 않았다. 충전기는 기묘한 각도로 노트북에 꽂혀 있었다.

    '하.. 허.. 허어..'

    그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차마 형언하기 어려운 참혹한 광경이었다. 저 늙은이는 떨어져도 하필이면 자기 몸에 꽂혀 있던 충전기 방향으로 떨어졌고 결국 충전기와 충전기 포트는 정상적인 위치에서 크게 이탈해 있었다.

    황급히 충전기를 포트에서 뺐다가 다시 꽂곤 이러저리 휘저었다. 다행히 충전기와 포트는 제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모든 걸 명확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나도 알고 있었다. 노트북을 다시 켜고 충전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해보면 모든 건 확실해진다. 하지만 그걸 확인해버리면, 자칫 지난 4년을 함께해준 저 늙은이의 죽음을 내 손으로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다.

    노트북을 켰다. 화면이 들어온다. 평소보다 좀 더 빠르고, 화면도 보다 더 밝은 느낌이다. 기분이 퍽 좋다. 세상 일이 언제나 나쁘게만 돌아가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눈길을 서서히 오른쪽 그리고 아래로 내린다. 충전이 되지 않고 있다.

    희망은 없다. 충전기를 꽂아뒀어도 더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백날을 충전해도 저 늙은 것은 그 전력을 소화시키고 흡수할 기력조차 없다. 그간 고락을 함께 해 온, 저 늙은 것의 상처와 얼룩의 냄새를 맡아본다. 상처와 얼룩에 얽힌 추억보단 이 것과 함께 해온 기억들의 냄새가 더 짙었다.

    늙은이에게 남아 있던 자료를 백업시키고, 마지막으로 남은 베터리 잔량이 13%임을 확인했다. 거추장스럽게 달려 있던 충전기를 떼고, 나는 내 친구이자 늙은 노트북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이별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준비돼 있지 않은 이별도, 모든 걸 준비한 이별도, 이별의 순간에는 그저 이별의 순간만 남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오늘 아침으로 축축한 밥 위에 눅눅해진 김을 얹어 먹었다. 갑자기 그냥 눈물이 났다.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7/04/09 23:27:56  175.206.***.103  일어나기귀찬  736888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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