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발달된 자그마한 도시, 큰 불편함이나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 사는 냄새' 가 나는 도시의 외곽 동네엔 언제나 여인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br><br> "이번에 205호 아들 서울대 간대"<br> "옴마! 그거 대박이다잉"<br> "205호면 신길댁인가?"<br> "신길댁 고거 남편은 쌍놈인데 자식 농사는 잘 했네"<br> "에? 신길댁 남편이 와?"<br> "너는 눈 뒀다 어디에 써? 신길댁 면상 시퍼렇게 멍든거 남편이 아니라 누구겠어?"<br> <br> 여인네들은 목소리를 줄여가며 '신길댁'의 가정사를 이리저리 논했다. 신길댁이 두들겨 맞다가 길가에 나체로 쓰러진 일이라던지 엄마가 코뼈부러지도록 맞는 와중에도 아들 은 수학의 정석을 외우던 독한 놈이였다던지 보고 들은 것에 허구를 더해 이리저리 입방아를 찧어댔다.<br><br> 여인네들이 품평회를 하던 그 시각 행복맨션의 205호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항상 두들겨 맞는다던 '신길댁'은 여인네의 말들과는 달리 인상이 온화하다. 온화한 표정위로 남겨진 얼굴의 상처는 그와 대비되어 꽤나 인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br> 신길댁은 주방에서 아들의 성공적인 대학 입학을 축하하기 위한 상을 차리고 있었다.<br><br> "엄마"<br> "아들 왔어? 닭 백숙 만들었는데 간 좀 봐봐 어때?"<br> "괜찮은데?"<br><br> 신길댁의 아들은 아비를 닮아 체격이 컸다. 아마 지금은 아비보다 클터이다. 식탁엔 상차림이 올라가고 신길댁과 아들은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먹고있다.<br><br> "엄마, 아빠한테 갈 때 안되었나?"<br> "음?"<br> "닭 맛있네."<br> "너는 신경 쓰지마. 엄마가...."<br> "오늘 저녁에 다녀올께, 엄만 그냥 집에 있어"<br> "기훈아, 그냥 엄마가 다녀올께"<br> "됐어"<br><br> 기훈은 남은 밥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넣고 대충 삼켰다. 엄마가 나체로 길가에서 맞아 쓰러진 날 이후 세달이 지났다. <br> 기훈은 그때 여인네들의 말과 다르게 수학의 정석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경찰서에 달려가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단순 부부싸움은 관여하기가 어렵다.'였다. 그때의 기훈은 이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 한지 깨달았다.<br><br> 그는 분홍색 열쇠를 챙기고 길을 걸었다. 중소도시의 외곽인지라 길 멀리엔 논과 밭 그리고 비닐 하우스가 보인다.<br> 기훈은 대략 사십분을 걸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어느 기점부터는 쥐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로등도 없는 길을 십분이나 더 걸어서야 도착한 곳은 기훈의 친할머니의 생가였다.<br><br> 기훈의 친할머니는 이년전에 죽었다. 빌어먹을 아비의 어미답게 신길댁에게 지독한 시집살이를 시킨년이였다.<br><br> "후..."<br><br> 그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 이 아닌 창고로 사용했던 지하실로 내려갔다.<br> 그 곳엔, 신길댁의 남편이 사지가 묶인채로 누워있었다.<br><br> "안녕, 아빠 밥 주러왔어"<br> "읍...웁"<br><br> 기훈의 아비가 되는 지석의 입엔 테이프가 칭칭 감겨져 있다. 기훈은 지석의 입에 달라붙어 있는 테이프를 거칠게 떼어냈다. <br> 테이프의 한쪽엔 지석의 입술 살점이 붙어있고 지석의 입몸과 입술은 누렇게 딱지로 눌러붙어있다. 이짓거리를 수십번을 하자 입술과 입몸은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터 였다.<br><br> "내가...내가 잘 못했다...용서해다오."<br> "아빠, 내가 용서 해봐야 달라지는게 있겠어?"<br><br> 기훈은 닭백숙의 살점만 발라내어 지석의 입에 우겨넣었다. 지석은 씹는 것 조차 괴로운지 얼굴이 시뻘개 진 채로 밥을 삼켰다. <br> 괴로운 와중에도 삼일을 굶었으니, 고통보단 배고픈이 우선이였으리라 생각된다.<br> 기훈은 지석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리 한쪽이 괴사하고 있었다. 기훈은 머리가 아파왔다.<br> 그가 바란 것은 이게 아니였다. 그는 그저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던 착한 아들이였다.<br><br> 삼 개월 전, 신길댁이 나체로 길가에서 폭행당하던 그날 기훈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렸다. 지석은 미친개처럼 화를 내며 달려들었지만 이미 장성한 아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br> 그 날 자기를 낳아준 아비에게 주먹을 꽂고 천륜에 어긋한 행동을 한 날 새벽녘 그는 아무도 모르게 아비를 버려진 집에 버렸다.<br> 그건 패륜이라기 보단 후일이 두려워, 아이가 두려움에 도망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일주일 뒤, 신길댁이 퇴원하자 기훈의 가족은 조금 더 이상한 가족이 되어버렸다.<br><br> 아비가 죽을 것이 두려워 기훈은 신길댁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아비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배를 걷어찼다고 그리고 할머니집에 버려두고 왔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혼자 갈 수가 없다고. 그 길로 신길댁은 시모의 집으로 달렸다.<br><br> 걸음이 멈춘 그 곳엔, 난생 처음 보는 무기력한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신길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묘한 쾌감이 자신을 휘젓는 것을 느꼈다.<br><br> "엄마 미안해"<br><br> 기훈이 아비에게 다가가 사죄하며 밧줄을 풀고 있었다.<br><br> "기훈아, 다시 묶어"<br> "어...?"<br> "묶어."<br><br> 신길댁은 지석이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자. 이제까지의 분노가 심장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을 차지한 분노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피를 만들어 냈다.<br><br> 신길댁은 그 날 처음 누군가를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새로운 피가 뇌를 감싼 그날, 신길댁은 '해방' 되었다. 그날 이후 신길댁의 얼굴에 문신처럼 남은 칼자국은 더이상 신길댁을 속박하지 못했다. <br><br> 그렇게 혁명이 시작되고, 삼 개월이 지나자 신길댁의 가족의 생태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신길댁이 이집의 최상위 포식자이다.<br><br> 그녀는 지석을 만날 때 마다 집요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 이십년을 보상을 하겠다는 의지로, 그리고 아들과는 달리 어떠한 식량도 주지 않았다. 그녀가 지석을 만나는 용건은 새로워진 생태계의 "위치 확인"일 뿐이였다.<br><br> 그리고 오늘 기훈은 괴사가 진행되는 아비의 다리를 보며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br> 이 모든것의 시작 점은 자신이고, 이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 겨우 웃게된 어머니가 다시 우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기훈은 또 다시 '어쩔수 없는 일'이 라며 자신을 속였다.<br><br> 상 위에 닭 백숙이 올라온지 삼 일, 길가의 여인네들이 다과를 먹으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오늘은 여인네들이 즐겨보는 드라마가 절정을 맞이해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br><br> "어?"<br> "신길댁!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br> "어머 지민이네 어머니 제가 요새 아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br> "이번에 서울대 들어간다며? 너무너무 축하해"<br> "옴마, 아들 서울대 간다고 얼굴도 환해진거 봐, 보톡스 값 벌었네!"<br><br> 여인네들과 어울려 웃는 신길댁의 모습은 꽤 행복해 보인다. 적당한 과시와 겸손을 오가며 자신의 자랑을 부각 시킨다.<br><br> "요새 남편이랑도 좋나봐?"<br> "네?"<br> "요샌 조용하길래"<br> "아 언니는 이런데다 초를치요 꼭"<br><br> 시기어린 날카로운 질문에 신길댁은 웃었다. <br><br> "궁금해 할 수 있죠. 남편이랑은 잠깐 별거중이에요."<br> "그래?"<br><br> 여인네들은 새로운 소식에 귀가 쫑긋해졌다. 신길댁은 표정하나 변화없이 거짓을 늘어놓았다. 그이가 새로운 직장을 얻게되서 다른지역에 갔으며, 별거 이후 둘 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는 이야기, 그녀는 단 한줄의 진실이 없는 문장을 진실처럼 이야기했다.<br> 이건 그녀의 심장에서 새로운 피가 돌고 난 이후 생겨난 능력 중의 하나이다. <br><br> "어머 너무 잘됬다."<br> "고마워요."<br><br> 신길댁은 수줍다는 듯이 웃었다.<br><br> "근데 오늘 화장이 곱네, 신길댁 어디가?"<br> "오랜만에 남편보러가요."<br> "어머머 아주 신혼으로 돌아갔네!"<br><br> 꺄르르- 하고 여인네들은 여고생처럼 웃었다. 신길댁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여인네들은 신길댁의 가방속에 15cm짜리 식칼이 들려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br> 신길댁이 진심으로 웃고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을 끝장내기 앞서 느껴지는 통쾌함이라는 것도 여인네들은 정말 몰랐을 것이다.<br><br> "저 그럼 이제 진짜 남편 만나러 갈께요." <br><br> 신길댁은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