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회사가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였으면 완공예정일이 9월이면, 약 3월쯤 다 끝냈을 텐데, 여기는 세월아 네월아 입니다.
들어가기로 한 날까지 엘리베이터 검진 결과상 약간의 결함사항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또 미루었졌습니다.
그래서 들어간 날에도 계속 공사를 하느라고 회사가 정신이 없습니다.
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혹시나 캐나다 회사모습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 봐 몇 장 사진을 건졌습니다.
일단 저희 회사를 설명하자면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는 나름대로의 글로벌기업으로 한때는 세계 3대 필름메이커 중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지만, CEO의 판단부족으로 급속히 사양의 길을 걸었었죠.
90년대 중반 회사 중역실
CEO: 그래 오늘 주제가 뭐야?
이사1: 예. 요즘 들어서 디지털카메라의 발달로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요.
CEO: 대책은 무슨 대책이야? 인터넷 한다고 신문부수 줄어드는 것 봤어? 일시적인 현상이야. 니들이 그러니깐 내 밑에 있는 거야...
이사2: 역시 CEO님은 대단하십니다. 딸랑딸랑
CEO: 회의 끝났으면 단란한 곳이나 가지. 소피랑 나타샤 있는 곳으로 가
이사3: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예약 해 놓았습니다. 딸랑딸랑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정신으로 과감히 맞서다가, 아주 그냥 날로 그지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근근히 버티다가, 의료자료 디지털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나마 때를 잘 만나서 남들이 아직 진출하지 못할 때에 사뿐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은...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의료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같은데...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뭐... 퇴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있겠죠. 궁금하신 분들은 회사 홈페이지 들어가 보시길.
새 건물은 3층 건물로 거의 모든 부분을 저희 회사가 쓰고, 약 10% 정도만 세를 준다고 하네요.
여기에서는 땅이 넓어서 그런 지 높은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오피스 건물이 2~3층 정도...
제가 자리하게 될 2층입니다. 약 250명 정도의 직원들이 배치될 계획입니다.
사각형 파티션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제 책상입니다. 원래는 모니터가 4개였는데, 근무시간에 딴 짓하다가 메니저가 왔는데도 제가 어느 모니터에서 딴 짓을 했는 지 알 수가 없어서 2개를 반납했습니다.
메니저: 자네 머하나?
나: (깜짝 놀라며) 아 지금 프로그래밍 하다가 막혀서 한국의 프로그래밍 사이트 좀 보고 있다.
메니저: 그래? 그런데 별로 프로그래밍 페이지 같아 보이지 않는다.
나: 요즘 한국 프로그래밍도 발전해서 거의 한글로 프로그래밍 한다. 나는 로직만 따 온다.
메니저: 흠... 그런데 그 중간에 헐벗은 여자는 머냐?
나: ...광고다... 한국광고는 너무 대담하다... 정말 문제다...
아... 정말 국회의원도 아니고... 걸그룹 기사 하나 보기 너무 어렵습니다.
책상을 꾸밉니다. 책 정리하고, 딸내미 사진도 붙이고.
어느 프로그램에서 보니깐 여직원은 책상정리에 하루종일 걸린다는데...
남직원은 그런 것 없습니다. 10분이면 끝납니다.
딸내미 사진은 두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근무시간에 힘을 얻기 위함이고, 두번째는 딴짓을 하더라도 ALT+Tab을 누를 시간을 벌 시야전환용입니다.
회사 탕비실입니다. 커피와 티가 무제한 제공됩니다.
아침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냉장고에 도시락 집어넣고, 옆 기계에서 차 한 잔 타 가는 일입니다.
회사 커피는 정말 맛있습니다.
커피전문점까지는 안 되겠지만, 확실히 웬만한 커피전문점보다 맛있습니다.
종류도 그냥 커피에,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카페인이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회사커피맛이 너무 좋아서 몇 잔 마셨더니만, 밤에 가슴은 빨리 뛰고 잠은 안 오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잠자기 전에 커피를 마셔도 잠만 잘 오더니만, 나이가 있으니 이제 조그만 양의 카페인도 크게 작용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약은 안 듣고, 나쁜 건 잘 듣습니다.
제 책상에서 볼 수 있는 밖의 전경입니다.
쭉 둘러보니 저쪽으로 산책로가 보입니다. 점심 먹고 한 번 돌아봅니다.
겨울이 와서 남쪽으로 가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다 비우기로 했는 지, 이게 산책로인지 거위들 공중화장실인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경치는 좋네요. 점심 먹고 이렇게 한바퀴 도는 것도 괜찮겠네요.
대학교와 가까이 있어서 잔디축구장도 보입니다.
푸르른 잔디밭에서 거위들이 역시 배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이놈의 거위들을 진짜...
지금까지는 수렵활동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너무 개체수가 증가해서 곧 거위들도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 날이 오면 제가 유황거위집을 차리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투자하세요.
제가 화장실, 카페테리아, 피트니스실 등등도 찍어보려고 했으나, 아직 완공이 덜 된 상태라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직원보다 공사장 인부가 왕입니다.
기웃거리다가 혼났습니다. 머라고 할려다가 영어가 딸려서 그냥 꾹 참습니다.
그래도 그린빌딩이라고 화장실 모든 시설이 전자동입니다.
변기, 수도, 비누, 종이수건까지...
그런데 변기는 좀 불편하네요. 저같이 명상을 해야하는 타입은 명상하다가 조금만 움직여도 물이 내려오고는 해서...
이곳 캐나다화장실의 다른 특징 하나는 좌변기가 이 곳 사람 다리길이에 맞추어졌는 지 약간 높습니다.
특히 장애인용 화장실은 저같이 다리 짧은 사람은 약간 까치발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작업의 특성상 지면에 발을 탁 붙이고 힘을 줘야하는데...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제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세운 목표는 2년 안에 모든 소프트웨어에 통달해서 시니어개발자로 승진한 후, 5년 후에 메니저에 도전, 그후 두각을 나타내서 15년후 쯤에 CEO에 취임을... 은 택도 없는 시나리오구요.
목표는 한가지... 바로 무존재가 되는 겁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존재감을 없애서 자르고 싶어도 자르지 못하게...
10년 후 저희 회사 구조조정실.
메니저1: 가슴은 아프지만, 빨리빨리 하자구. 자 우선 마크...
메니저2: 그 친구 요즘 실적이 신통치 않습니다. 잘라야 합니다.
메니저1: 다음 카r알
메니저3: 그 친구는 회사에 꼭 필요합니다.
메니저1: 다음... 음... 이 친구는 누구야? 처음 보는데...
메니저들: 음... 저도 처음 보는데요. 회사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메니저1: 서류상으로는 13년전에 입사했다는데... 서류착오인가 보군... 알았어 다음으로 넘어가자구... 다음 리챠드...
이렇게 살아남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이상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