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본 글은 애니메이션 '스폰지밥' 중 '메롱시티' 에피소드에 대한 스포일러성이 짙은 글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추천드립니다.
1990~2000년 사이 태어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기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입니다.
국내에선 EBS 채널의 '스폰지송', 니켈로디언 채널의 '스폰지밥' 두 이름으로 알려져 있죠.
패스트푸드점 '집게리아'의 종업원인 '스폰지밥'과 비키니시티에 사는 이웃들간의 일화를 다루는
옴니버스식 구성 애니메이션으로 몇 가지 설정은 이어지지만 한 스토리가 다음 스토리에 미치진 않습니다.
익살맞은 주인공, 너무 진지하거나 혹은 너무 우스꽝스러운 주변인들간의 콩트가 웃음을 부르는 애니메이션으로
어른들도 시청하지만 보통 학생 때 접하게 되는 만화입니다.
헌데 여러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서 '스폰지밥'의 한 에피소드가 '기괴하다는' 이유로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공포스러웠던 경험을 묻는다거나, 기괴한 장면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 아동이 보는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스폰지밥은 미국TV 비평가협회 우수 어린이 프로그램 수상과 미국 Kids Choice Award를 수상한
'어린이'에게도 교육적인 만화인데요!)
오늘 이야기 할 주제는 바로 해당 에피소드인 '메롱시티' 편입니다. (원제는 ROCK BOTTOM)
메롱시티 편의 대략적인 전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폰지밥과 뚱이는 장갑 축제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냅니다. (장갑풍선과 장갑랜턴, 장갑캔디 등을 사고 즐거운 시간!)
집에 가는 버스를 잘못 탄 둘은 비키니 시티를 벗어나 음산하고 더러운 이웃마을에 가게 되는데….
버스를 잘못 탄 사실을 알아채지만 때는 늦었고, 버스는 수직 경사를 타고 심해로 떨어집니다.
도착한 곳은 '메롱시티', 어둡고 음산한데다 괴상하게 생긴 주민들은 '메롱'이란 말을 중간중간에 섞어쓰는 특이한 곳입니다.
[ 남녀용 구분이 모호한 화장실에서 나오는 주민들 역시 정체 모를 심해어의 모습 ]
[ 너무도 낯선 모습에 뚱이와 스폰지밥은 겁에 질립니다. ]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면 되잖아, 당연한 생각에 스폰지밥은 건너편 버스를 타려하지만 버스가 마치
스폰지밥을 의도적으로 태우려하지 않는 듯이 행동합니다. 신발끈 묶다 놓치고, 풍선 놓쳐서 잡으러가다 놓치고.
(버스가 메롱시티로 가는 줄도 모르고 둘을 메롱시티까지 데려온 뚱이는 그 와중에 버스를 타고 먼저 탈출합니다.)
장갑 축제에 다녀와 먹을 것이라곤 장갑 캔디 (배고픔에 먹어보지만 장갑맛이 납니다.) 밖에 없던 스폰지밥이 캔디를 먹고자
자판기로 가자 도착한 버스는 밀고 당기기를 하다 결국 가버립니다.
화가 난 스폰지밥은 표를 끊어서 비키니시티로 가는 버스에 당당히 타겠다며 터미널로 달려가지만
험악한 심해어 주민들에게 기가 눌려 결국 대기열의 가장 끝에 서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오자 열변을 토하지만 스폰지밥의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메롱'을 섞어쓰지 않아서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 앞에 서려하지만 메롱시티 주민들에 기가 눌려 결국 329번째까지 밀려난 스폰지밥.
사실 저 번호표는 앞사람의 알이라서 몇 마리가 더 나옵니다. ]
패닉에 빠진 스폰지밥이 " 버스를 메롱 타고 메롱 집에 메롱 가야 메롱 한다구요 메롱메롱-!! " 하고 울부짖지만
돌아오는 건 비정한 말. " 오 이런, 불쌍하지만 메롱, 막차는 메롱, 방금 출발했어 메-롱! "
마침내 조명마저 꺼진 채 스폰지밥은 외로움과 추위, 배고픔 속에 떨게 됩니다.
아하 ㅡ ! '장갑랜턴'이 아직 남아있잖아? 이걸 키면 밝고 따뜻할거야-
그러나 장갑랜턴 역시 스폰지밥을 배신하는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메롱' 소리와 붉은 형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의 접근에 겁먹은 스폰지밥은 정신없이 도망가지만
메롱 소리는 더욱 크고 빠르게 쫓아옵니다. '메롱, 메롱, 메롱, 메롱!'
결국 스폰지밥은 낯선 형상에게 잡히고야 말지만,
그 붉은 빛의 정체는 마음씨 좋은 메롱시티 주민입니다.
[ 스폰지밥을 쫓아와 공포에 떨게 하지만 사실 마음씨 좋은 주민이죠. ]
그는 스폰지밥이 앞서 잃어버린 장갑풍선을 돌려주기 위해 여태껏 스폰지밥을 쫓아왔던 것이죠.
또한 장갑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스폰지밥이 비키니시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날아가는 동안 스폰지밥은 말 없이 호의를 베풀어준 메롱시티 이웃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메롱' 밖에 할 줄 모르던 이웃은 '천만의 말씀~!' 이라며 멀쩡히 얘기하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이후 뚱이가 스폰지밥을 구하기 위해 뒤늦게 버스를 타고 메롱시티로 들어가며 에피소드는 끝납니다.
( 뚱이는 얄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친구네요.. 정말.. 스폰지밥을 그 위기에 처하게 했지만 자기도 무서워했던
메롱시티로 들어가다니- 흑흑. )
이 에피소드는 저도 몇 번이나 본 에피소드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곳곳에 개그 요소가 꽤 많아서 즐겁기도 하죠.
그런데 한편으론 작품 초반부터 후반까지 깔린 음산하고 낯선 세계의 이미지가 에피소드를 지배하고 있기에
'웃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놀라운 건 저 혼자만이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넷 네티즌 분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메롱시티'에 대한 감상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메롱시티 초딩때 충격과 공포였음 개무서웠는데 ㄷㄷ... " (오늘의 유머 - 미다 님)
" 전 메롱시티 볼 때마다 완전 울기 직전까지 가고 속이 덜덜 떨리더라구요 어렸을땐 그랬는데 지금은 어떨지..
아무튼 핑구 물개편도 그렇고 메롱시티도 그렇고 너무 무서움 ㅠㅠㅠㅠ " (오늘의 유머 - 원더월 님)
" 메롱시티가 심해라고 다들 그러시다라구요 아귀도 나오고 하는걸 보면 심해에있는 마을이고 주민들은 심해어... 그래서 무의식중에 공포를 느낀것 같아요 저도 무서웟음ㅋㅋㅋ " (오늘의 유머 - ㅎㅇㄱ 님)
" 거기 마을버스가 계속 같은자리 돌기만하고 탈출못해서 겁나 갑갑하고 무서웠는데ㅜㅜ 그리고
메롱시티가 어두침침해서 더 공포스러웠던듯 거기 물고기주민들 메롱거리는것도 징그러움.. " (오늘의 유머 - 여고생임 님)
" 메롱시티편 봤을때 무서웠음 ㅎ 어둑어둑해서 ㅋㅋㅋㅋ 저만 무서운줄 알았더니
다른 분들도 이편은 무서웠다고 하더라구요 ㅎ " ( 다음 - 그린티챱챱 님)
" 어렸을때 메롱시티 처음봤을땐 너무 무섭더라구요 물론 지금보면 내가 저걸 왜 무서워 했지...
특히 맨마지막에 스펀지밥 풍선에 바람불어서 나갈수있게 해준 아귀처럼 생긴 물고기는 특히 생긴것 때문에 무서워 했어요ㅠㅠ
나중에 알고보니 착한놈이였지만 그때는 무서움에 착한놈 나쁜놈 가릴 생각이 없었죠 " ( 네이버 - 월드딕 님)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미지는 '심해', '어둠', '낯선'입니다.
이 이미지를 받치고 있는 건 바로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죠.
즐겁게 장갑축제 구경을 마친 채 잔뜩 기념품까지 사서 돌아오던 스폰지밥과 뚱이가 떨어진 곳은
수직으로 깊숙이 떨어진 해저, 말은 통하지 않고, 온통 어둡기까지 합니다.
주위에 다니는 정체 불명의 생물들 모두 심해어 같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죠.
자신이 믿을만한 유일한 존재인 '뚱이'는 먼저 버스를 타고 가버리고,
유일한 탈출구인 '버스'는 스폰지밥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켜줄거라 믿었던 모든 건 ( 배고픔을 달래줄 장갑캔디는 장갑맛이고, 빛과 온기를 전해줄 장갑랜턴은 고장나고,
소중했던 장갑풍선은 잃어버리죠. ) 자신을 져버립니다.
기댈 곳 하나 없고 믿을 것 하나없이 어둠 속 추위와 굶주림에 노출된 스폰지밥에게
다가오는 건 '메롱' 소리와 함께 낯선 그림자.
낯선 곳에 혼자인 것도 무섭지만, 혼자가 아닌데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는 경우는 더욱 무섭죠.
스폰지밥이 위기에 처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는 은근한 공포를 느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냥 웃고 넘어가기엔 우리의 친구 스폰지밥이 처한 상황이 너무도 어둡게 느껴지니까요.
(내가 메롱시티에 떨어진다면? 이라고 생각해보게 되구요.)
우리를 '웃섭게' 만든 메롱시티,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떠신가요? 이제는 웃으며 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결말에 스폰지밥이 행복하게 웃으며 비키니시티로 돌아간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탄 버스가
우연히 수직으로 떨어지며 메롱시티에 도착한다면, 말은 통하지 않고 심해어들 사이에 어둠과 추위, 배고픔이
우릴 찾아온다면, 그때 저 멀리 붉은 빛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그 불빛을 호의라고 믿고 선뜻 다가가실 수 있나요?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은 결말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된 지금,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메롱시티는 믿을 만한 곳인가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H.P.러브크래프트
[ 외국의 '메롱시티행' 컨셉 롤러코스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