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구 서림동 '나비를 품은 세상'에서 생활하는 길고양이 두 마리는 화장실과 급식소가 설치돼 있는 이곳을 터전 삼아 지내고 있다. 모두 길고양이 10여 마리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사진은 고양이 급식소 ⓒ스카이데일리
도심 속 길고양이들로 인한 피해 예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한데 이어 배설물 관리를 위한 화장실 설치에 나서 효과가 주목된다.
고양이는 습성상 모래를 이용해 자신의 대변을 처리한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 모래가 쌓여 있는 곳이 흔치 않아 도심 고양이들이 어린이 놀이터 모래 놀이 공간과 화단에 배변하면서 이로 인한 악취 문제가 계속돼 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증가했고, 전염병을 우려해 주민이 길고양이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취재 결과 어린이 모래 놀이터에 쌓인 길고양이 배설물에 대해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신성초등학교에 다니는 10살 아이를 둔 이지연(38·여·가명) 씨는 “구청에서 모래를 주기적으로 소독한다고 하지만, 때때로 고양이들이 모래에서 배변하는 것을 목격해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 고양이화장실 설치…어린이 모래놀이터 오염 방지에 효과
관악구 소재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현지(11·여·가명) 어린이는 “모래를 가지고 놀다 오래된 대변을 발견한 적이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어린이 모래 놀이공간에 대한 조사결과 2곳에서 선충류 기생충이 검출되기도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지자체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청은 청룡동, 서림동에 이어 최근 중앙동에 길고양이 전용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2017년 기준 1191건의 동물 민원 중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724건, 소음과 배변 관련한 민원 이 194건이 접수됐다”며 “이를 해결하기 전용화장실 설치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 관악구 서림동의 길고양이 화장실 지원사업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 주민은 자원봉사자들이 지속적으로 고양이 배설물을 치우는 등 관리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악취 등의 피해는 줄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길고양이 전용화장실.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길고양이 전용화장실 운영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관악구 서림동과 청룡동을 찾았다. 서림동에는 ‘나비를 품은 세상’이란 이름이 적힌 직사각형 모양의 길고양이 전용 화장실과 전용 급식소가 설치돼 있었다.
치즈태비 고양이 한 마리가 여유롭게 그루밍하는 모습과 삼색이 고양이 두 마리가 편안하게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겨울철 추위를 대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비닐 텐트 안에는 고양이 집이 있었다.
이곳의 한 주민은 “서림동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고양이는 7~10마리 정도다”며 “이전보다 수가 늘어났고 이곳에 모여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인근 한남 운수차고지에서 근무하는 유학수(54·남) 씨는 “떠돌아 다니던 고양이들에게 한 곳에서 먹이를 주고, 자원봉사 학생들이 깨끗하게 치워 예전보다 훨씬 청결해졌다”며 “고양이들이 사람을 보면 애교를 피워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동료인 정용무(55·남)씨는 “고양이 화장실 설치 현상은 바람직해 보인다”며 “설치 이후 주변 환경이 깨끗해졌고 동물 애호가들이 세심한 신경을 쓰며 관리를 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악취도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청룡동 길고양이 주민갈등 사라져…“서울시 관련조례 제정 필요”
관악구 청룡동은 과거 한 주민이 길고양이 10여 마리를 죽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길고양이와 관련해 홍역을 앓았던 곳이다.
▲ 길고양이들은 겨울철이 되면 보일러 시설 등 따뜻한 곳을 찾는다. 이로인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다. 사진은 캣맘 등 자원봉사들이 겨울철 추위에 대비해 길고양이들이 지낼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고양이 집 위에 비닐 텐트가 쳐 있는 모습.(사진) @스카이데일리
하지만 지난해 12월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설치한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청룡동에서 캣맘으로 활동하는 김갑선(65·여) 씨는 “구청에서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설치하면서 길고양이들의 배변을 한곳에 모아 치우게 돼, 주민들과의 다툼이 줄어들었다”며 “고양이들이 쥐를 퇴치해 주고 있어 주민들이 길고양이에 대해 우호적으로 대한다”고 전했다.
이곳 주민 최금자(67·여) 씨는 “예전에는 쥐가 자주 출몰했지만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고양이 전용 화장실이 설치된 이후 환경이 훨씬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인영 러브펫동물병원 수의사는 “고양이는 한곳에서만 배변을 보려하는 만큼, 일정한 장소를 정해 배변을 보게 한다면,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길고양이 배변 문제를 한정된 지역으로 줄일 수 있다”며 “유기묘 파악 및 고양이 생태 파악도 쉬워져 많은 이점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전용 화장실과 급식소를 찾아오는 길고양이가 수가 늘어나면서 개체 수 파악 및 계획적인 포획도 수월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관악구청은 길고양이 중성화(TNR)사업을 통해 지난 2008년부터 모두 2290마리를 중성화 시켰지만, 올해 중성화 사업 목표치는 700마리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관내 길고양이는 6000마리로 추정된다.
정연중 관악구청 일자리경제과 반려동물팀장은 “현재 사업비 1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앞으로 캣맘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과 협조해 고양이 전용 모래를 사용하고 지속적 관리를 해 나갈 계획이다”며 “앞으로 21개소로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확대할 방침이다”고 설명했다.
김광수 서울시 의원은 “어린이 모래 놀이터를 매일 소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언제든 각종 오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설치한다면 어린이 모래 놀이터 오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