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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4408
    작성자 : 分福茶釜
    추천 : 11
    조회수 : 1298
    IP : 210.105.***.9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7/24 15:48:57
    http://todayhumor.com/?panic_94408 모바일
    GOP에서

    벌써 세월이 많이 흘러서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여기에 메모를 해둡니다

    제가 실제로 겪은 100% 실화입니다 그리 공포스럽진 않을 수도 있지만 심장이 약한 분이 읽기엔 좀 부적절한 것 같아서 여기 올립니다

    육군 사병 중 많은 비율이 전방에 배치되니까 GOP 경계 근무를 하신 분도 많겠지만
    간략히 설명 드리자면 GOP 경계는 대대별로 로테이션 됩니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군복무할 당시엔 한 대대가 GOP에 투입되고 경계 근무를 하다가 6개월 지나면
    FEBA(GOP가 아닌 지역)에 있던 다른 대대가 투입되어 교대되는 형태였습니다

    해 떨어지기 30분 전, 해 뜨기 30분 전엔 철책 앞 각 초소에 전원 투입되어야 합니다
    빈 초소가 생기면 안되기에 GOP에 인원을 많이 지원해야 하므로
    FEBA 대대에는 몇 개월 간이나 신병이 들어오지 않는 현상도 발생합니다
    소위 꼬인 군번 풀린 군번이 생기는데, 풀린 군번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등병 때 온갖 잡일을 혼자 다 해야 했습니다

    제가 처음 배치받은 중대는 GOP와 몇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민통선 안에 있는 독립 중대였습니다
    그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막사 뒤에 있던 산에 산사태가 나서 탄약고가 통째로 쓸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우리 중대 막사 바로 옆에 수색중대의 FEBA 막사가 있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GP에 투입되기 전에 몇 달 간 조금 긴장을 푸는 소대인 것 같았습니다
    어느 일요일 날 빨래터로 자주 이용했던 개울 쪽에서 펑 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얼마 후 앰뷸런스가 왔고 들것에 실린 사병을 보았습니다
    발목 위가 잘려서 발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그 순간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30분 쯤 지나자 그게 얼마나 끔찍한 장면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탄약고에서 쓸려 내려간 발목지뢰를 수색중대 병사가 운 나쁘게 밟은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GOP 철책이 무너진 곳이 많았습니다
    GOP에 있는 인원들은 밤에 경계 근무를 해야 하기에 낮에는 자야 하므로
    GOP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중대원들이 매일 철책에 가서 무너진 철책을 보수공사하는 임무를 맡아서
    여름 내내 우리 사단 철책의 모든 섹터를 다 밟아 봤습니다
    경치 좋은 곳도 많고 왠지 음침한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GOP에 투입될 시기가 왔습니다 투입되기 며칠 전 선발대가 인수인계를 받으러 먼저 가야 하는데
    우리 소대에 있었다가 행정병으로 차출되었던 2개월 선임이 통신대기(?)인지 뭔지 행정반에서 당직 근무를 했고
    제가 행정반 앞에서 혼자 멍하니 불침번 말번초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그 선임병이 심심했는지 행정반에서 나와서
    입대 전 고향에서 있었던 얘기, 여자 친구 얘기, 부모님 얘기를 하염없이 저에게 쏟아냈습니다
    저는 졸립기도 하고 별로 흥미로운 얘기도 아니어서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 고참은 제대 후 뭘 하고 싶고 졸업 후에 뭘 하고 싶다는 얘기들을 끝도 없이 쏟아냈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말이 많지 않던 사람이어서 오늘따라 왜 이리 말이 많을까 속으로 생각할 때쯤
    기상 알람이 울렸고 그 고참은 행정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낮에는 다른 행정병 고참이 앞산 창고에 볼 일이 있어서 제 동기 녀석과 3인조로 산에 올라 갔습니다
    일은 금방 끝났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철책 쪽에서 두다다다다다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에게는 도로 공사 할 때 땅 파는 소리같이 들렸는데 행정병 고참이 심각한 표정으로
    '사고났나 보다'하기에 저는 그런갑다 하고 무심코 넘겼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사람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도 낯설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동철이(가명)가 죽었단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말을 들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새벽에 한 시간 동안 나에게 별 재미도 없는 얘기들을 수없이 쏟아냈던 그 고참이 죽었다는 말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그 장면을 목격했던 선발대 고참에게 들어보니
    기존에 GOP에 있던 타 대대 보급계 행정병이 물품 갯수가 맞지 않은 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인수인계할 때 그것이 탄로가 날 것이 지나치게 두려운 나머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선발대가 오자 대공 초소에 거치되어 있던 M60 기관총을 탈취해서 무차별 난사했다고 합니다
    저와 새벽에 얘기를 나눴던 동철이 고참은 얼굴을 맞아 뒤통수가 날아가버렸다고 합니다

    제대 후 우연히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허원근 일병이 죽음을 당했던 바로 그 소초에서 동철이 고참도 죽음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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