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아버지.<br><br>제 손으로 아버지를 염하고 땅에 묻은지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br><br>편안히 지내고 계신지요.<br><br>언제나 말씀하신 대로 망자들만의 세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br><br>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장의사 일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br><br>비록 누군가는 껄끄럽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 역시 아버지처럼 장의사 일에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br><br>망자에게는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대로<br><br> 망자들 하나하나가 미련 없이 이승을 털어내도록 인도해 주고 있습니다.<br><br>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제 손을 거쳐 갔지만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합니다.<br><br>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 역시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br><br>죽은 시신일지라도 기억은 남아있어서 마음을 열면 그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아버지의 말.<br><br>사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저 역시 알 수 있습니다.<br><br>시체 안치실에 홀로 있자면 그들의 이야기가 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옵니다.<br><br>생전 자신의 기구한 사연과 죽음의 이르게 된 과정들....<br><br>사실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br><br>부모에게 버려져 길거리를 전전하며 구걸하다가 굶어죽은 아이,<br><br>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과 노쇠한 부모님를 혼자 남겨둔채 사고로 죽은이 까지...<br><br>집에 불이나서 순식간에 가족 모두가 새카맣게 그을린 채 들어온 경우도 있었습니다.<br><br>죽기직전까지 꼭 끌어안았는지 어린 아들을 가운데 두고 세 가족이 한데 뒤엉켜 죽은 끔찍한 시신을 보는 것보다 <br><br> 그들의 시신이 전하는 기억들이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br><br>그뿐만이 아닙니다.<br><br>그들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이 제 맘속으로 절절히 흘러들어옵니다.<br><br>그들의 슬픔, 그들의 고통, 그들의 두려움과 그들의 분노.... 그리고 그들의 미련.<br><br>익숙해질법도 한데 아직 제겐 힘겹습니다.<br><br>아버지께서도 저와 같은 고통을 겪으셨겠지요.<br><br>집안 내력이라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망자들과 함께하신 아버지와 조상님들께 새삼 존경심이 듭니다.<br><br>전 아버지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br><br>적어도 제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은 견디겠다 약속했으니 쉽사리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br><br>망자들에겐 이승에서의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br><br> 그건 오로지 저만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br><br>그러니 힘이 닿는 데까지 저의 책임을 다할 생각입니다.<br><br>하지만 얼마전 일 때문에 조금 힘에겨워 아버지께 조금 하소연을 해보려합니다.<br><br><br><br><br>지금 제 눈앞에는 세구의 시신이 있습니다.<br><br>며칠전에 들어온 시신이 두구. 그리고 어제 들어온 시신이 한구.<br><br>언제나처럼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맘편히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br><br> 그들의 사연을 들여다보았습니다.<br><br>첫 번째 망자는 젊은 여자였습니다.<br><br>돈 문제, 집안문제로 어린나이에 나이차 많이 나는 부자에게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간 여성이었습니다.<br><br>순수하고 맑았던 어린 소녀는 괴팍하고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맘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br><br>전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br><br>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br><br>그런 상황이다 보니 남편 대신 결혼 전 사랑했던 남자에게 눈을 돌렸는지도 모릅니다.<br><br>옳지 않은 일이란건 알고 있었지만<br><br> 남편 몰래 그 남자를 만나던 그 짧은 순간만이 여자에게 있어 유일한 빛이었습니다.<br><br><br><br>5년 가까이 이어졌던 행복은 결국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br><br>아내의 바람을 용서할 만큼 그녀의 남편은 자애롭지 않았으니까요.<br><br>시신의 상태는 끔찍했습니다. <br><br>뭘로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머리뼈가 거의 깨진 도자기처럼 망가져 있었습니다.<br><br>그 고통을 느낄수 있는 저는 염을 하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br><br>그녀를 죽인 남편에 대한 원초적인 분노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정도였지만,<br><br>너무 슬프게도 그 분노는 두 번째 시신을 마주한 순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br><br>두 번째 망자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으니까요.<br><br>그의 죽음이 통쾌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감정이 전해져서 그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br><br>남편의 시신 앞에서 그의 감정을 전해 받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br><br>말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맘속으로 가져왔던 아내에 대한 애정.<br><br>첫딸을 품에 안았을 때의 행복감.<br><br>그리고 그 딸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br><br>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br><br>분노를 넘어선 분노라고 하면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습니다.<br><br>친자확인 검사결과를 받아들고 한참을 덜덜 떨다가<br><br>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본 순간,<br><br>그는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혀서 대충 손에 집히는 무언가를 들고 그녀에게 돌진했습니다.<br><br>정신을 차렸을 때 아내는 피칠갑이 되어있었지요. <br><br>자신이 무슨짓을 했는지 깨달은 그가 곧바로 목을 매버린것도 그녀에 대한 사랑의 증명이었을까요?<br><br>아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br><br>아니 머리는 이해하기 힘든데 마음이 이해하고 있습니다.<br><br>감정이 전해지니 이런 터무니없는 모든 것들이 전부 납득이 갑니다.<br><br><br><br><br><br>그런 심란한 상황에서도 전 아버지가 해오시던 것처럼, <br><br>그리고 제가 가르침 받았던 것처럼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우려했습니다.<br><br>그래서 망자의 생전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기로 했지요.<br><br>곧 그들의 기억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br><br>둘은 서로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br><br>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것을 원하는것과 마찬가지였지요.<br><br>여자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던 남자와의 결실인 자신의 딸과 함께 하고 싶어 했습니다.<br><br>남자는 아내 외도의 증거인 다른 남자의 씨앗이 살아 숨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br><br>두 개이자 하나의 소원.<br><br>그로인해 세 번째 시신이 들어온 것입니다.<br><br>꽃피우지 못한 5살 소녀의 기억에는 세상이 뒤집어 질 정도로 큰 슬픔이 담겨있었습니다.<br><br>제 머릿속으로 서럽게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br><br>갑자기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울었고<br><br> 칼을 들고 찾아온 낮선 남자가 무서워서 울었고<br><br> 심장을 찔릴때의 끔찍한 아픔이 생각나 울었습니다.<br><br>저 역시 그 소녀처럼 슬피 울었습니다.<br><br>그녀를 죽인 당사자인 제가 이리도 서글프게 울다니 <br><br> 이 역시 아이러니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br><br>이것은 그녀의 눈물일지 저의 눈물일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br><br><br><br><br>아버지. <br><br>다시 한번 제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br><br>제가 하는게 올바른 일이라고.<br><br>오로지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br><br>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불안감이 가시질 않습니다.<br><br>그녀의 절망감, 그의 분노. 그리고 어린 소녀의 슬픔.<br><br>그 감정들이 저를 너무도 괴롭히고 있습니다.<br><br>이 편지가 닿는 다면 꼭 제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br><br>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br><br>그래야 제가 조금이나마 이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br><br>존경하는 아버지. <br><br>아버지께서는 평생을 이 고통과 함께 하셨겠지요. <br><br>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시기 직전까지 아버지께서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고 계셨을지 전 짐작하기 힘듭니다.<br><br>전 아버지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br><br>제가 아버지가 견디신 시간만큼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br><br>오늘밤 제꿈에라도 나타나 제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br><br>전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br><br>그저 망자를 인도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br><br>이제 더 이상 악몽은 꾸고 싶지 않습니다.<br><br>부탁드립니다. 아버지.<br><br><br><br><br><br>By. neptunuse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