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어느덧 10년 전 일이다.</div> <div><br></div> <div>제대로 취업 활동도 안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일자리를 찾아 혼자 관동으로 향했다.</div> <div><br></div> <div>우선 아르바이트를 구해 어떻게든 생활은 이어갈 수 있게 됐을 무렵, 나는 어느 지방 방송국 로컬 프로그램에 꽂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매일 방송을 VHS에 녹화해 돌려보고, 프로그램이 송출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친구한테 빌려주면서 전도할 정도로 광팬이었다.</div> <div><br></div> <div>그 프로그램은 30분 남짓 하는 짧은 방송이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내내 나오는 일일 방송이었다.</div> <div><br></div> <div>결국 처음 그 프로그램에 빠지고 반년 가량 지날 무렵이 되자, 내 방은 그 프로그램을 녹화한 VHS로 가득차게 되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녹화와 시청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어느날.</div> <div><br></div> <div>나는 여러 사정으로 녹화만 해놓고 쌓아뒀던 며칠분 영상을 정리하며 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다른 작업을 하며 VHS 영상을 틀어놓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문득 위화감이 느껴져 TV로 시선을 돌리니, 화면에는 방금 전까지는 전혀 없던 노이즈가 심각하게 잡혀 있었다.</div> <div><br></div> <div>자세히 보면 그것은 노이즈라기보다 수신할 수 없는 채널을 잡았을 때의 영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div> <div><br></div> <div>심하게 왜곡된 영상에는 무언가 찍혀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소리도 나고는 있었지만, 잡음이 너무 심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div> <div><br></div> <div>"우와, 녹화할 채널 설정을 잘못했었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div> <div><br></div> <div>잠시 뒤 화면은 선명한 영상으로 바뀌고, 평소처럼 로컬 프로그램 오프닝이 나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하루치 녹화를 망친 건 아쉬웠지만, 그 이후 분량은 제대로 녹화되어 있었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고, 며칠 후에는 그나마도 잊어버렸다.</div> <div><br></div> <div>혼자 나와 살게 된 이후 첫 설날, 고향에 다녀오려고 집에 연락을 했더니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div> <div><br></div> <div>친가에 사는 남동생이 자기 방에 DVD 레코더를 사다놨다는 것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전까지 쓰던 비디오 데크도 멀쩡히 있으니, 2대를 연결하면 VHS에 녹화된 영상을 DVD로 더빙할 수 있을 터였다.</div> <div><br></div> <div>나는 방에 쌓인 대량의 VHS를 박스에 채워넣고, 친가에 택배로 보냈다.</div> <div><br></div> <div>이윽고 설날, 무사히 친가에 도착한 나는 먼저 와 있던 짐을 뜯고 동생 방으로 가 더빙 작업을 준비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설명서를 정독하고 방법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VHS 영상을 재생하면서 동시에 더빙하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는 듯 했다.</div> <div><br></div> <div>즉, 12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더빙하려면 꼬박 2시간이 그대로 걸리는 것이다.</div> <div><br></div> <div>내가 녹화한 테이프를 다 더빙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테지만, 그렇다고 좁아터진 방에 그걸 계속 쌓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곧바로 더빙 작업을 개시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귀성하고 사흘이 흘러 설날도 지났지만, 더빙 작업은 그리 빠르게 진행되질 않았다.</div> <div><br></div> <div>내가 어디 다녀올 일도 있었고, 동생도 [방에서 게임할래.] 라며 TV를 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니까.</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남은 휴가는 이제 이틀.</div> <div><br></div> <div>집으로 보낸 VHS를 전부 더빙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참에 최대한 많이 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br></div> <div>마침 동생은 그날따라 아침부터 파칭코를 하러 나간 터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24시간 달라붙을 각오로 더빙 작업을 시작했다.</div> <div><br></div> <div>비디오 하나 더빙이 끝날 때마다 테이프를 바꿔넣는 지루한 작업을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반복했다.</div> <div><br></div> <div>저녁 6시가 지날 무렵, 조금 이른 저녁밥을 거실에서 먹고 있는데 동생이 돌아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야, 새해 처음 간 날부터 엄청 터졌다니까.]</div> <div><br></div> <div>자랑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동생에게, [더빙하고 있으니까 DVD 손대지 마라.] 라고 엄포를 놨다.</div> <div><br></div> <div>동생은 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식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2층에서 갑자기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리고 동생이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왔다.</div> <div><br></div> <div>[야, 저거 뭔데!]</div> <div><br></div> <div>[뭐가, 임마.]</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TV에 이상한 거 나오잖아!]</div> <div><br></div> <div>놀라서 나는 식사하다 동생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div> <div><br></div> <div>저녁밥 먹으러 가면서 불은 끄고 내려왔기에, 동생 방은 깜깜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와중에 더빙 작업 중이던 TV 화면만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 화면에 나온 영상을 보고, 나는 졸도할 뻔 했다.</div> <div><br></div> <div>군데군데 노이즈가 낀 조악한 화면 속, 눈을 치켜뜨고 입을 쫙 벌린 채 목을 옆으로 기울인 여자 얼굴이 가득 나오고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순간 나는 녹화에 실패했던 날을 떠올렸다.</div> <div><br></div> <div>다음날부터는 녹화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잊고 있었지만, 지금 넣은 비디오 테이프가 바로 그 때 그거였다.</div> <div><br></div> <div>동생과 할 말을 잃고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나는 정신을 차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평정을 가장하며 [어라? 뭔가 더빙이 잘못됐나보네.] 라고 말하고 비디오 데크 리모콘을 들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div> <div><br></div> <div>반응이 없다.</div> <div><br></div> <div>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영상이 멈추질 않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비디오 데크 카운터에는 숫자도, 영어도 아닌 이상한 표시들이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DVD 리모콘도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다.</div> <div><br></div> <div>그 뿐 아니라 채널 변경이나 전원 버튼 등 어떠한 조작도 먹히질 않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콘센트에 꽂혀져 있던 코드를 멀티탭채로 뽑아버렸다.</div> <div><br></div> <div>"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div> <div><br></div> <div>TV 불빛으로만 비춰지던 방은 암흑으로 가득 차, 나는 황급히 불을 켰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동생은 완전히 놀라서 할 말을 잃은 듯 했다.</div> <div><br></div> <div>나도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지만 [우선 밥이나 먹자.] 라고 평정을 가장하며 거실로 나왔다.</div> <div><br></div> <div>진짜 큰일은 그 다음부터였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비디오를 데크에서 꺼내려고 했는데, 헤드에 테이프가 엉겨 나오질 않았다.</div> <div><br></div> <div>억지로 뽑아내봤지만 쭈글쭈글해져서 감겨있는 테이프를 데크에서 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div> <div><br></div> <div>드라이버를 투입구에 집어넣어 어떻게든 감긴 테이프를 뽑아낸 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후, DVD를 확인했다.</div> <div><br></div> <div>더빙 작업은 도중에 중단됐지만, 그 이전까지 녹화된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DVD를 확인하고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챕터 선택 메뉴의 썸네일 미리보기가 아까 봤던 그 여자 얼굴이었던 것이다.</div> <div><br></div> <div>그것도 열몇개는 되는 챕터 미리보기가 죄다 똑같이 여자 얼굴이었다.</div> <div><br></div> <div>곧바로 꺼내기 버튼을 눌렀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비디오와는 달리 멀쩡히 나온 그 DVD를 나는 양손으로 쪼개버렸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아까 쓰레기통에 버렸던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봉투에 넣은 후, 작게 접어 테이프로 빙빙 돌려 감았다.</div> <div><br></div> <div>부엌에 있던 어머니에게 [이것 좀 버려주세요.] 라고 전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후 그렇게 광팬이었던 프로그램이 웬지 싫어져, 녹화는 커녕 보지도 않게 되어 버렸다.</div> <div><br></div> <div>얼마 후 다시 이사를 했기에, 지금은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종종 심야에 케이블 채널 같은 곳에서 다시보기로 접하게 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div> <div><br></div> <div> <div style="font-family:gulim, Dotum, Helvetica, AppleGothic, sans-serif;line-height:21.6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br></div> <div style="font-family:gulim;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 <div style="font-family:'돋움';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color:#333333;">[email protected] 으로 직접 겪으신 기이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투고 받고 있습니다. </div> <div style="font-family:'돋움';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color:#333333;"> </div> <div style="font-family:'돋움';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color:#333333;">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div> <div style="font-family:'돋움';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color:#333333;"> </div> <div style="font-family:'돋움';line-height:21.6px;margin:0px;padding:0px;color:#333333;">티스토리 블로그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a class="tx-link" href="http://vkepitaph.tistory.com/m" target="_blank" style="color:#333333;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http://vkepitaph.tistory.com/m</a>)</div></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