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br><br><br><br>이 전에 글을 올린것 이어서 글을 맞춰 올려봅니다<br>밑에 글은 수정도 안되고 아예 멈춰져 있네요 ㅠ<br><br><br><br><br><br>죄송하지만 먼젓글 창을 띄워놓고 브금을 들으시면서 이어 보시면 더 맛이 나실껍니다 ^^:;<br><br><br><br><br><br><br><br><br><br><br>“사실 제가 사적인 자리에서 기범씨를 만났다면 날씨가 좋다거나 커피를 좋아한다 등의 쓸데없는 이야<br><br>기로 시작을 하겠지만 지금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바로 본론만 말씀드릴게요.”<br><br><br>‘꿀꺽’<br><br><br>두 손을 테이블위에 얹고 몸을 앞으로 내밀며 이야기하는 그녀 앞에서 기범은 마른 침을 삼켰다.<br><br>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그녀는 굉장히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br><br><br>“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그 능력’이 필요해요. 여기서 우리라고 한다<br><br>면 제가 속해있는 기업이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신을 통해야만 고칠 수 있는 병이 있어요. 당<br><br>신은 그저 그 병을 고쳐주기만 하면 돼요.”<br><br><br>“죄송하지만 뭔가 착각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전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br><br><br>“네 알아요. 제가 말을 잘못해서 의사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은데 당신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br><br>요. 바로 당신의 귀와 그 귀를 통한 표현력이죠. 당신은 ‘그 능력’을 사용해서 저희 회장님의 병을 고칠 <br><br>수 있어요.”<br><br><br>‘그 능력’이라는 단어를 계속 강조하는 그녀의 말투에서 기범은 약간의 불쾌함을 느꼈다.<br><br><br>“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보다 귀가 약간 좋을 뿐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br><br>니고 그것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치유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br><br><br>“저희 회장님은 마음의 병을 앓고 계세요. 어느 특별한 기억을 잃어버리셨고 그 기억에 대하여 굉장한 불<br><br>안감을 보이시죠. 그러나 회장님은 자신이 어떠한 기억에 대하여 불안해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앓기만 <br><br>하시죠.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시지 않다가 어느 특별한 순간이 되면 발작을 일으키시는 것처럼 거품<br><br>을 물고 쓰러지시죠. 가끔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알 수 없는 괴상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셔요. <br><br>의사나 무당 등 여러 사람을 불러놓고 치료하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어요. 회장님은 그렇게 손도 못쓴 채 <br><br>계속 앓기만 하셨어요.”<br><br><br>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범이 입을 열었다.<br><br><br>“그런데 왜 하필 저를 찾아오셨죠? 저는 누군가를 치료해본 적도 없고 제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br><br>람도 아닌데...”<br><br><br>“기범씨... 지금 당신이 유명하고 안 유명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 많은 유명한 사람을 불러<br><br>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지금은 그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이라고요. 부탁드릴게요. 이건 저<br><br>희 기업에서 부탁드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간절한 제 부탁이기도해요.”<br><br><br>“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제가 할 일은 무엇이죠?”<br><br><br>“간단해요. 당신은 그저 회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목소리를 통하여 그림을 그려주기만 하면 돼요.”<br><br><br>“후....”<br><br><br>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기범은 입을 열었다.<br><br><br>“죄송하지만 저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며칠 후에 연락드려도 될까요?”<br><br><br>“급한 일이지만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알겠어요. 대신 며칠 후에 온 연락이 긍정이었으면 좋겠네<br><br>요.” <br><br><br>기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범에게 명함을 하나 주었다. 명함을 확인한 기범은 <br><br>놀랄 수밖에 없었다.<br><br><br>‘한신기업’<br><br><br>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자 세계적인 명성가운데 세계시장에 자리 잡은 ‘한신기업’이 자신을 필요로 <br><br>한다는 사실에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br><br>자리에서 일어나 놀라는 기범을 향해 천천히 다가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br><br><br>“당신이 만약 우리를 돕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저와 한 이야기는 절대적인 비밀로 해주세요. 만약 이 <br><br>사실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당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어요.”<br><br><br>그녀의 목소리에서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느낀 기범은 카페를 빠져나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br><br><br><br><br><br>머리가 깨질 듯 아픈 두통에 기범은 머리를 잡고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시작된 것이다.<br><br>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며 기범은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하나의 트라우<br><br>마였다. 무엇인가 진지한 생각에 빠져 고민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두통과 함께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br><br>그것은 꿈을 꾸는 것도 아니며 현실에서의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두통이 시작되면 앞이 새하얗게 변하면<br><br>서 젊고 긴 생머리를 한 여성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여성의 얼굴은 기범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러한 여<br><br>성이 아니었다. 눈, 코, 입, 귀가 없었으며 그저 사람의 형체를 한 환상이었다. 행여나 이것이 현실이란 생<br><br>각이 든 기범은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 인간이나 생물체는 없었다. 또한 주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br><br>지 않지만 가끔씩 무엇인가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에 집중해보았지만 웅얼거리는 소리이외에 알 수 있는 것<br><br>은 없었다. 그러한 환상 속에 기범은 몇 번이고 그 환상과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br><br>고 그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런 환상은 한 번 시작되면 짧으면 몇 분 길면 몇 시간이라도 계속되었다.<br><br>다행히 기범은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환상에서 깼다. 하지만 그의 기분은 몹시 좋지 않았다.<br><br>집으로 돌아와 한신기업의 제안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던 끝에 트라우마가 시작된 것이었는데 이번의 두<br><br>통은 이상하게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두통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때 기<br><br>범은 다시 한 번 명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br><br><br><br>사실 그녀의 부탁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당연히 긍정의 대답을 했어야 하지만 <br><br>기범은 그 일에 대하여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수많은 감정들이 그의 대<br><br>답을 더욱더 망설여지게 만들었다. <br><br>그녀와 만났던 그날이후 정확히 3일이 지났을 때 기범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과감히 전화기를 들고 명<br><br>함에 표시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br><br><br>“예 저 최기범입니다.”<br><br><br>“전화기다리고 있었어요. 대답은 ‘예스’인가요?”<br><br><br>기범은 전화기 넘어 느껴지는 그녀의 초조함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약간의 뜸을 드린 후 입을 열었다.<br><br><br>“예 제 대답은 ‘예스’입니다.”<br><br><br>“와... 다행이네요.. 지금 드리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는데 역시 서두 없이 본론만 말씀드릴까요?”<br><br><br>“예 그렇게 해주시죠.”<br><br><br>“우선 저희랑 하는 모든 이야기와 접촉은 비밀로 해주세요. 아시다시피 저희가 작은 기업이 아니라 한 나<br><br>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혹시나 이번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아마 사<br><br>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어요.”<br><br><br>“네 그런 것은 걱정 마시죠.”<br><br><br>“또 이번 일을 도와주시게 된다면 치료의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그에 맞는 엄청난 보수가 따르게 될 거에<br><br>요. 보수에 대한 걱정은 안하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br><br><br>“그것 또한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br><br><br>“그렇다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네요. 조금 급하지만 요즘 회장님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 하루라<br><br>도 빨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내일 당장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일 시간이 되나요?”<br><br><br>“다행이도 그것도 가능할 것 같네요.”<br><br><br>“좋아요. 그럼 내일 오전 10시 당신의 집 앞으로 사람을 보내죠. 괜찮나요?”<br><br><br>“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br><br><br>“일이 잘되면 그에 맞는 돈을 입금 시켜드릴게요.”<br><br><br>“네.” <br><br><br>“내일 뵙죠.”<br><br><br>“후...”<br><br><br>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기범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무엇인가 큰일을 마무리 지은 듯 온몸에 힘이 없었다.<br><br>기분전환을 위하여 기범은 스테레오의 전원을 켜고 멘델스존의 시디를 찾았다.<br><br><br>‘《violin concerto in e minor, opus. 64》’<br><br><br>1악장을 건너뛰고 2악장을 틀고 쇼파에 앉아 연필과 종이를 손에 쥐고 음악을 감상하였다.<br><br>경건하고 종교적인 색채를 자아내며 아름답고 맑은 선율이 서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br><br>연필은 그의 손을 따라 그리고 음악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고 음악은 2악장을 지나 3악장이 모두 연주되<br><br>고 끝이 났다. 모든 그림을 마무리 지은 기범은 자신의 그림을 관찰하기 위하여 그림을 확인해보았다.<br><br>하지만 그는 들고 있던 종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br><br>그가 그린 그림에는 눈, 코, 입, 귀가 없는 긴 생머리를 가진 형체가 가득 차있었다. <br><br><br><br><br><br>기범은 그날 밤 악몽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꿈에서는 계속 그 환상의 여인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고 <br><br>그는 겁에 질려 도망치던 중 잡힐 때가 돼서야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그렇게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 <br><br>때까지 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br><br>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뜬 기범은 자신이 잠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제의 피로가 누적된 <br><br>듯 기범은 얼굴을 찌푸리며 화장실로 향하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여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br><br><br>“후....”<br><br><br>며칠사이 쏙 들어간 눈이며 탄력 없이 처지는 살들과 헝클어진 머리는 잠을 거의 못잔 그의 모습을 그대로 <br><br>그려주고 있었다. 욕조에서 가장 차가운 물을 틀고 그동안의 악몽과 함께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오랜 시<br><br>간 몸을 닦았다. 그렇게 샤워를 마친 기범은 토스트를 먹으며 시간을 확인하였다.<br><br>오전 10시가 되기까진 아직 30분정도의 여유가 있었고 기범은 옷장을 열어보며 신중히 옷을 골랐다.<br><br>남색셔츠에 진한 회색계열의 니트와 검정색 마이를 입고 진한 청바지를 입고서야 기범은 흡족하다는 듯 고<br><br>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시간은 10시 정각을 향하고 있었고 기범은 자신의 그림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 집을 <br><br>나섰다. 집 앞에는 검정색 벤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며 문을 열어주는 기사의 행<br><br>동에 적응하지 못하여 엉거주춤 감사의 표시를 하며 차를 탔다.<br><br>운전기사는 가는 차 안에서 아무런 말도 없었다. 라디오를 듣지도 않았으며 신호에 걸렸을 때 핸드폰을 만<br><br>지작거리거나 창문을 열어 날씨를 감상한다는 등의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운전만 하였을 뿐<br><br>이다. 기범은 그러한 모습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br><br>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운전이 끝나고 다시 문을 열어주는 기사는 자신을 안내하였다.<br><br>기범이 기대한 것만큼 호화스러운 주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집은 흰색과 갈색이 섞여 있는 <br><br>아담한 크기의 단독주택이었다. 대문을 지나 잘 가꾸어진 정원을 바라보며 현관에 이르렀을 때 두 명의 경<br><br>호원들이 기범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정원과 마찬가지로 잘 꾸며져 있었으며 깔끔하고 편안한 인<br><br>테리어와 코끝으로 느껴지는 그윽한 향기가 그의 기분을 더욱더 편안히 만들었다. <br><br>그렇게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쇼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위층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br><br>다. 기범은 그 발걸음이 한신기업 회장의 발소리라는 것을 금방 느끼고 그 발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br><br>보았다. 별로 크지 않은 체구의 남성은 한눈에 대기업을 이끄는 회장임을 금세 알 수가 있었다. <br><br>발걸음 소리와 회장을 바라보던 기범은 회장의 발걸음이 걸어오는 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br><br>발걸음 소리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아마 병 때문에 몸이 많이 처진 탓일 것이다.<br><br>기범은 회장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br><br>흐른 후 기범은 본격적으로 회장의 병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작은 방에서 둘<br><br>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다던 회장의 요구에 경호원들은 당황하였지만 결국 회장의 고집으로 작은 방에는 회<br><br>장과 기범, 둘만이 남게 되었다.<br><br><br>“미리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일은 절대적인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br><br><br>“예 알겠습니다.”<br><br><br>“또한 지금 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줄 겁니다. 놀라지 말고 그냥 내가 이<br><br>야기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주세요.”<br><br><br>“네 그렇게 하겠습니다.”<br><br><br>“시작하죠.”<br><br><br>회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작게 들리는 호흡소리는 점점 <br><br>불안해지기 시작하며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기범이 알고 있는 회장의 모습<br><br>이 아니었다.<br><br><br>“낯선 곳에서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br><br>젖가슴을 만지는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일 뿐이다. 어머니는 그<br><br>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웃는다. 우리는 행복하다.<br><br>그러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행복을 잃는다. 마을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마을에서는 하늘에 기<br><br>도를 한다며 굿판을 벌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br><br><br>흰자가 보일만큼 뒤집힌 눈동자에 귀신이 쓰인 것 같은 목소리에 기범은 당황했지만 이내 집중을 하기 시<br><br>작하여 이야기를 따라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림을 본 기범은 공포감을 느꼈다..<br><br>그 그림에서는 굿을 하며 웃고 있는 무당과 그 뒤로 재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누워있는 여성 그리고 무당과 <br><br>대조적으로 울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림 주위로는 굿을 올리는 눈이 뒤집어진 주민들의 <br><br>모습이 그림에서의 공포감을 더욱더 고조시켰다. 기범은 그 그림에서 재물로 바쳐지는 여성을 보고 경악했<br><br>다.<br><br><br>“이 여자.....”<br><br><br>‘휙’<br><br><br>눈동자를 뒤집고 이야기하던 회장은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그림을 낚아챘다.<br><br>그림을 본 회장은 눈동자가 급속도로 커지며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br><br>럼 그림을 찢기 시작했다.<br><br><br>“으아아아악!!!”<br><br><br>기범은 실성한 회장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br><br><br>“여기 재물로 바쳐지는 이 여자 누구죠!!!”<br><br><br>큰소리에 놀라 들어오는 경호원을 바라보고 기범은 더 크게 외쳤다. .<br><br><br>“여기 이 여자 누구냐고!!!”<br><br><br>“으아악!!!!!”<br><br><br>하지만 실성한 회장은 계속 소리만 질렀고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한 기범은 끌려가며 소리를 질렀다.<br><br><br>“누구야 씨발!!!!!”<br><br><br>기범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집을 빠져나왔다. 그가 그린 그림에서 재물로 바쳐지는 여성은 분명 자신을 괴롭<br><br>히는 환상속의 여성이었다. 기범은 집을 나온 순간부터 극심한 두통을 느꼈고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br><br>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br><br>채 어제 그린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br><br><br><br><br><br>“♪ ♬~♬~”<br><br><br>핸드폰의 알람에 겨우 정신을 차린 기범은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br><br><br>‘편집장’<br><br><br>전화를 받지 않을까 하고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았지만 다시 핸드폰을 바라본 후 전화를 받았다.<br><br><br>“여보세요”<br><br><br>“어~ 최작가 난데 이번 주 그림말이야, 아직 메일이 안 와서 그런데 확인 좀 해줄 수 있어?”<br><br><br>“아....편집장님 죄송하지만 이번 달에 휴재할 수 있을까요? 제가 급한 집안일이 생겨서 그런데...”<br><br><br>“뭐라고? 휴재한다고? 한 달 동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최작가가 한 달이나 휴재한다니...”<br><br><br>“그게 어머니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시골에 올라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br><br><br>“후... 이거 살다보니 최작가가 이런 날도 있네... 뭐 알겠어. 집안일인데 쉬어야지...”<br><br><br>“죄송해요. 연락드릴게요.”<br><br><br>4년간 단 한 번도 휴재 없이 작품을 내오던 기범이 무려 한 달 동안의 휴재 통보는 편집장에게 적잖은 놀<br><br>라움을 준 듯했다. 기범은 전화기를 다시 바라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br><br>기범은 잠시 고민하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br><br><br><br><br><br>장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기범은 피곤한지 고개와 허리를 몇 번 돌리고 나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하<br><br>늘은 불안정하던 기범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기범은 자신의 가야할 장소를 찾아 발<br><br>걸음을 옮겼다. 그가 내린 곳은 그의 집에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올 수 있을 만큼 외진 곳에 있었다. <br><br>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다보면 이따금씩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어르신들이 <br><br>그를 알아보고 안부를 묻곤 했다. 그렇게 20분정도 걸어서 기범이 도착한 곳은 쓰러질 것 같은 기와집이었다.<br><br>기범은 그 집을 한 번 바라본 후 대문을 통하여 집을 들어갔다.<br><br><br>“엄마 저 왔어요.”<br><br><br>“아이고 이게 누구야!”<br><br><br>마당에서 일을 하던 허리가 굽고 흰머리가 가득한 여성은 기범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반겼다.<br><br><br>“우리 아들 기범이 왔구만! 기범이 왔어!”<br><br><br>“짐 좀 내려놓고 올게요. 피곤해요.”<br><br><br>“그래그래 어여 놓고 와”<br><br><br>짐을 놓기 위해 낡은 문고리를 열고 들어간 방을 보고 기범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음을 느꼈다. 심지어 그<br><br>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 놓고 갔던 모자까지 책상위에 그대로 있었다.<br><br>기범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그의 어머니는 먹을 것을 쉬지 않고 가져왔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음<br><br>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외국 과자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가져왔다. 중간에 기범이 계<br><br>속 만류하였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밭일을 하고 들어온 그의 아버지 또한 그를 반겼고 그날 저<br><br>녁은 직접 잡은 닭을 통해 삼계탕이 차려졌다. 군것질을 계속한 기범은 삼계탕까지 먹고 나서야 먹는 것을 <br><br>그만둘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졌을 때 기범은 가져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종이 한 장<br><br>을 꺼내어 부모님 앞에 내놓았다.<br><br><br>“이게 무슨 그림이여?”<br><br><br>“저 여쭤볼게 있는데요. 혹시 이 여자 누군지 아세요?”<br><br><br>“시방 안경을 안 껴서 앞이 안 보이는디 누군데 그려?”<br><br><br>“음... 그게... 옛날에 혹시 이 마을에서 굿판 벌이지 않았어요?”<br><br><br>“굿? 옛날이야 굿 많이 했지”<br><br><br>“그때 제물로 뭘 드렸어요?”<br><br><br>“뭘 드리긴 각종 음식이나 가끔은 동물을 드렸지. 근데 그런 건 왜 묻는겨?”<br><br><br>“음... 혹시 그때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적도 있어요? 한 40년 전쯤 아주 가뭄이 심했던 해에...”<br><br><br>기범의 말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몹시 놀라는 듯 했고 기범은 그러한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br><br>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br><br><br>“그게 시방 무슨 소리여? 멀쩡한 사람을 왜 제물로 드려? 어디서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헛소리 하지 <br><br>말고 이불 깔고 얼른 잠이나 자!”<br><br><br>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모습에 기범은 움찔했고 그는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집을 나왔다.<br><br>별이 많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담배를 한 대 태웠다. 그는 아까 그의 어머니가 말했던 말을 다시 <br><br>한 번 곱씹어보았다. <br><br><br>“그게 시방 무슨 소리여? 멀쩡한 사람을 왜 제물로 드려? 어디서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헛소리 하지 <br><br>말고 이불 깔고 얼른 잠이나 자!”<br><br><br>그녀의 목소리는 거짓말을 나타내듯 몹시 떨리고 있었다. <br><br>기범은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 말을 속으로 되풀이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br><br>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집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집은 몹시 조용했고 그 또한 조용히 이불에 누워 눈을 <br><br>감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일에 대하여 기범은 끝없이 생각했다. 중간에 계속해서 들리는 개 짖<br><br>는 소리와 올빼미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느끼지 못하는 어느 순간 그의 뇌가 멈추<br><br>어버린 듯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를 영원히 재울 것 같은 깊은 밤이었다.<br><br><br><br><br><br>다음날 기범이 눈을 뜨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또한 어제보다 쌀쌀해진 날씨<br><br>에 몸을 웅크렸다. 해가 이제 막 뜬 것을 확인한 기범은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던 그의 어머니와 방에서 나<br><br>오던 그의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지만 서로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한 침묵은 그가 방에 있던 낡<br><br>은 우산을 집어 들고 집을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br><br>방수도 제대로 되지 않는, 몇 년은 쓴 것 같은 녹슨 우산이었지만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br><br>범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간에 새는 비에 옷이 젖고 포장이 되지 않는 도로에서 고인 물에 신발이 젖<br><br>기도 했지만 기범은 계속 걸었다.<br><br>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이장의 집이었다. 파란 지붕에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이장의 집을 <br><br>보고 있던 기범은 집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마찰음에 기범은 미간을 찌푸렸다.<br><br><br>“이장님!”<br><br><br>그렇게 대문을 두드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br><br><br>“예 누구슈?”<br><br><br>“이장님 저 기범이에요.”<br><br><br>머리가 반쯤 까지고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은 부스스한 몰골에 기범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br><br>이장이 기범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내 웃으며 그를 안으로 불렀다.<br><br>그의 방에 들어간 기범은 노인에게서 나는 알 수 없는 냄새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방에는 시골의 노<br><br>인들이 대게 그렇듯 특별한 화려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갈색계열의 장롱과 걸려있는 옷 몇 벌이 눈에 들어<br><br>왔다. 기범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br><br><br>“그간 건강하셨어요?”<br><br><br>“어이구 나야 항상 건강하지~ 자네는 별 일 없었나?”<br><br><br>기범의 앞에서 어떻게든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는 듯 애쓰는 이장의 모습을 보고 기범은 씨익 웃었다<br><br>기범은 그가 쓰는 표준어에 불편함을 느끼어 표준어 대신 사투리를 쓸 것은 권했지만 이장은 끝내 고집을 <br><br>꺾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후 기범은 어제 그 그림을 꺼내며 물었다.<br><br><br>“이장님 저도 이제 어른이고 이장님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도 들은 것<br><br>이 있고 알아야 할 것도 있어서 이장님께 말씀드리는 거에요.”<br><br><br>“.....”<br><br><br>이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범은 숨을 깊게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br><br><br>“이 마을에서 있었던 과거를 알고 싶어요. 정확히 말하면 한 40년 전쯤 있었던 가뭄과 그때 벌였던 굿<br><br>판, 그때 제물로 바쳐진 여성과 아이.... 모두 말씀해주세요.”<br><br><br>“후... 담배 한 대 태워도 되겠나? 언젠간 이런 날이 오는구만...”<br><br><br>“예 괜찮아요...”<br><br><br>낡은 책상을 뒤적거리며 담배와 성냥을 꺼낸 이장은 성냥을 몇 번이고 마찰시키고 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br><br>였다. 기범은 그러한 이장에 행동에도 어떠한 움직임이 없이 이장의 행동을 주시하였다.<br><br><br>“내가 14살 때, 그러니까 정확히.... 44년 전에... 이 마을에 심각한 가뭄이 들었어. 땅이 메마르고 풀과 <br><br>곡식이 죽어가고 사람들은 점점 생기를 잃게 되었지. 그 당시에 이 마을은 풍족하진 않아도 서로서로 필요<br><br>한 것이 있으면 나누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는 그런 살기 좋은 마을이었지. 가뭄이 계속되어 먹을 것<br><br>이 부족하게 되자 마을에서는 굿판을 벌이기로 했네.”<br><br><br>굿판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기범은 몸의 자세를 바르게 고치며 몸에 힘을 주었다.<br><br>담뱃재를 재떨이에 털며 헛기침을 한 번 하는 이장은 자신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자신<br><br>을 응시하고 있는 기범을 바라보며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물고 잠깐의 뜸을 드린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br><br><br>“우리 마을에서는 가끔 한 해의 안녕과 풍요로운 추수를 기원하며 굿판을 벌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 했던 <br><br>굿판은 상당히 이상하고 이질적이었지.”<br><br><br>“이상하다면... 설마...?”<br><br><br>“그래 자네가 들고 온 그림처럼 한 여성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어.”<br><br><br>“꿀꺽”<br><br><br>“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였지만 계속된 가뭄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던 그들은 어느 순간 굿<br><br>판을 벌여 한 여 성을 제물로 삼자는 의견과 그렇지 말자는 의견이 대립하게 되었네. 문제는 바로 여기서 <br><br>시작되었지. 굿판을 벌여 마을의 한 여성을 제물로 바치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누구일 것인가의 문제였어. <br><br>마을에는 적지 않는 수의 여성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지.”<br><br><br>“그 제물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은 어떻게 선택된 것이죠?”<br><br><br>“후.... 처음에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정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혹시나 자기가 걸리게 될 수도 <br><br>있다는 불안함에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제물로 삼으려 했네. 그렇게 남<br><br>을 내세우며 헐뜯던 마을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 되었던 사람이 있네. 바로 한국전쟁이후 남편을 잃<br><br>은 채 9살 된 아이를 기르고 있던 참한 여성이었는데 남편을 여윈 후 혼자서 여자가 혼자하기엔 궂은일들<br><br>도 말없이 하는 그런 여성이었네.”<br><br><br>다 닳은 담배를 이장은 재떨이에 짓눌러 끈 후 깊은 호흡을 한 번 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br><br>기범은 어느 순간 이장의 어설픈 표준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br><br><br>“마을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가며 그녀를 제물로 바치자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던 마을사람들이 <br><br>언제부턴가 하나같이 그녀를 제물로 바치자고 입을 모았지.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br><br>소문도 알지 못했어. 항상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지. 그렇게 굿을 벌이는 날이 되었고 아무런 통보 <br><br>없이 제물로 서게 된 그 여성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9살 된 아들 또한 <br><br>지 어미를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소리를 쳤지만 이미 무당은 굿을 시작하였고 몸부림치는 여성과 아이를 제<br><br>압한 마을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굿판이 계속되는 동안 하늘에 기도를 했네. 그 굿판은 오랜 시간 계속<br><br>되었고 결국 그 여성은 제물로 바쳐졌네....”<br><br><br>“아....”<br><br><br>“나는 그때 그 상황과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여성이 죽기 전에 갑자기 표<br><br>정이 바뀌며 언젠간 반드시 복수하겠다던 그 말과... 울고불고 소리치던 그녀의 아이가 그녀가 죽은 순간부<br><br>터 울음을 그치더니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던 그 모습... 5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구만....”<br><br><br>“그 아이는 어떻게 된 거죠?”<br><br><br>“문제는 바로 지금부터네. 그 굿판이 성공했는지 다행히도 다음 해에는 적당한 비가 내렸고 마을사람들은 <br><br>기뻐했다네. 제물로 바쳐진 여성의 아이는 당시 이장을 맡고 있던 나의 할아버지가 맡아서 키우기로 했어. <br><br>그 아이는 그 굿판이 벌어진 이후 단 한 번도 감정의 표시나 말을 한 적이 없네. 가끔씩 내가 말을 걸어주<br><br>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마을사람들도 죄책감 때문인지 그 아이를 보면 다들 피해 다니기 바빴<br><br>지. 하지만 그러는 것도 굿판을 벌인 몇 년간 뿐이었고 마을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 날의 일을 다 잊은 사람<br><br>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네. 그렇게 시간을 흘러 그 굿판이 벌어진지 14년이 되던 해였지. 그 아이는 어느덧 <br><br>청년이 되어있었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항상 혼자서 지냈지.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홀연히 <br><br>자취를 감추었어.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br><br><br>“자취를 감추었다고요?”<br><br><br>“그래... 정말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어....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원래 존재감이 없었던 아이<br><br>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 아니, 오히려 기뻐했을지도 모르지...그런데...”<br><br><br>“...?"<br><br><br>“문제는 그 아이가 간 이후 우리 마을에 세 명의 처녀가 임신을 하였고 그가 떠나기 전 날 그녀들을 범하<br><br>고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는 이 마을에 그 당시 살고 있던 모든 처녀를 범했<br><br>고 그중에서 세 명의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이지. 마을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는 사람<br><br>을 찾을 수는 없었지... 마을사람들은 그녀들의 출산을 반대하였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br><br>이고 하여 결국 그녀들은 출산을 하였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명의 여성이 낳은 아이는 9살이 되던 해에 <br><br>생일 날 모두 사고로 죽었다네... 마을사람들은 단순한 우연의 사고라 하였지만 나는 알고 있네. 그것은 단<br><br>순한 사고가 아닌 그 아이의 저주야..... 굿판이 벌어지던 그 날에 그녀가 내렸던 저주가 일어난 것이<br><br>지...” <br><br><br>“잠깐만요. 세 명이 아이를 낳았는데 두 명의 아이가 죽었으면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된 거죠? 살아 있<br><br>는 건가요?”<br><br><br>기범은 말끝을 흐리는 이장의 말을 끊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장은 그러한 기범을 바라보며 쉽사리 <br><br>입을 열지 못하는 듯 망설이다 조용히 입을 열고 말했다.<br><br><br>“나머지 한 명의 아이가 바로 자네야.....”<br><br><br>“네...?”<br><br><br>"살아 있는 나머지 한 명의 아이가 바로 자네라네..."<br><br><br>평온하던 기범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되기 시작했다. 기범은 이미 그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느꼈다. <br><br>그는 몸에서 불에 타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던 담배연기에 강한 현기증을 느꼈다.<br><br>현기증과 함께 머리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앞이 하얗게 변하며 이장의 행동이 느릿하게 보였다. 자신의 몸<br><br>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갔다. <br><br><br><br><br><br>낯선 곳에서 기범은 자신이 존재함을 느꼈다. 트라우마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예전에 경험<br><br>했던 그러한 풍경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방안에서 두 남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체 상태로 <br><br>저항하는 여성의 옷을 강제로 벗기는 남성이 한신그룹의 회장이며 저항하는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였다.<br><br>하지만 기범은 그것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실에서 그들<br><br>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환상 속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신의 어머니 입에 재갈을 물<br><br>리고 강제적인 겁탈행위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어머니는 저항을 포기한 <br><br>듯 입을 꽉 물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남성은 얼마 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방을 나<br><br>섰다. 기범을 그러한 남성의 뒷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그 남성의 등에는 그의 어머니가 업혀 있었다. <br><br><br><br><br><br>정신을 차렸을 때 기범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br><br>상태를 묻는 여러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표시를 하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기범과 <br><br>마찬가지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범의 그녀의 눈에서 깊은 슬픔을 보았다. 그렇게 몇 초 동안 <br><br>어머니의 눈을 응시하던 기범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며칠 더 쉴 것<br><br>을 권했지만 기범은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아무렇게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방문을 열었다.<br><br>밝은 햇살에 기범은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며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였다.<br><br>그가 집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범은 집에서 가지고 온 모자를 푹 눌러쓰고 <br><br>걸으며 다짐했다. 자신의 손으로 이 사건의 마무리를 짓겠다고...<br><br><br><br><br><br>달리는 버스 안에서 기범은 휴대폰을 들고 가지고 있던 명함을 보며 전화를 걸었다.<br><br>저번과 마찬가지고 신호가 얼마가지 않아서 전화를 받았다.<br><br><br>“여보세요.”<br><br><br>“최기범입니다.”<br><br><br>“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요?”<br><br><br>다짜고짜 화를 내는 그녀의 말에서 기범은 분노의 감정이 섞여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쓰<br><br>지 않는 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br><br><br>“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화 드린 겁니다.” <br><br><br>“회장님은 당신과 만난 이후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소리만 지르고 계세요. 의사들도 무슨 병인지 몰라 손<br><br>을 놓았다고요.”<br><br><br>“회장님은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들렸어요. 제가 하는 말을 믿고 말고는 당신의 자유에요. 하지<br><br>만 지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회장님을 원한을 가지고 있는 그의 어머니 때문에 돌아가실 겁니다.”<br><br><br>“.....”<br><br><br>“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내일 10시까지 우리 집 앞으로 차량 한 대 <br><br>보내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당신들이 나를 믿고 말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도 관련된 문제고 내 <br><br>자신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기 때문에 말씀드린 겁니다.”<br><br><br>“....”<br><br><br>여성은 끝까지 침묵하였고 기범은 전화를 끊었다. 기범은 그녀가 내일 차량을 한 대 보낼 것을 알고 있었<br><br>다.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이 날 것이다. 원한 들린 회장의 어머니, 결국 자신의 할머니의 복수는 자신이 해<br><br>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범은 떨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눈을 감았다.<br><br>저녁에 되어 집에 도착했을 때 기범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루사이 달라진 것은 없었고 기범은 거울<br><br>을 보며 며칠 동안 손질하지 않은 수염을 깨끗이 밀어버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후에 알람을 맞<br><br>추고 잠이 들었다. 별다른 꿈을 꾸지 않았고 중간에 깨는 일도 없었다.<br><br><br><br><br><br>다음 날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 기범은 그가 평소에 하던 일상을 시작했다. 노래를 틀고 가볍게 빵을 <br><br>굽고 그 위에 토마토와 계란, 햄과 치즈를 얹어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머리를 감고 옷을 단정히 입었다.<br><br>시간이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한 기범은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가리키<br><br>고 있었고 기범은 천천히 집을 나섰다.<br><br>집 앞에는 기범이 예상했던 것처럼 검은 벤츠와 문을 열어주는 기사가 서있었다. 기범은 차에 탔고 기사는 <br><br>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범은 그런 그에게 시디를 한 장주며 틀어 줄 것을 부탁했다. <br><br>조용했던 차에서 나오는 음악은 답답했던 기범의 기분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 <br><br>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범은 차에서 내린 후 깊은 호흡을 하고 집을 향해 걸었다.<br><br>집에 들어간 기범은 그가 왔던 며칠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느꼈다.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고 한<br><br>다면 그를 대하는 집안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못미더운 듯 기범을 쳐다보았지만 기범을 크게 신경 쓰<br><br>지 않았다. 그는 그들과의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이층으로 올라가 그들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br><br>방안에는 쇼파에 앉아 있는 회장이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br><br>가 귀에 거슬렸음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범과 함께 들어온 경호원은 문 옆에 서서 기<br><br>범의 행동을 주시했다. 기범은 회장에 등에 업혀 있는 흰 옷을 입은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회<br><br>장의 앞으로 갔고 회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회장이 기범의 행동에 고개를 돌려 <br><br>기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둘의 눈이 마주쳤을 때 회장은 발작을 일으켰다.<br><br><br>“끄어어어....”<br><br><br>회장의 발작에 경호원이 몸을 움직였지만 기범은 그에게 멈추란 신호를 보냈다.<br><br><br>“제가 알아서 합니다. 지켜보기만 하세요.”<br><br><br>기범은 괴성을 지르는 회장의 얼굴 양쪽에 손을 대고 자신의 얼굴을 그의 앞에 가까이하고 눈을 마주쳤다.<br><br>그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있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br><br><br>“당신 나를 똑바로 쳐다봐!”<br><br><br>“끄어어어!! 으어어어!!!”<br><br><br>회장은 좀비처럼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며 기범을 공격하였지만 기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br><br><br>“날 봐! 당신의 원한을 나는 느낄 수 있어. 내 눈을 봐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제발 내 눈을 봐.”<br><br>회장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두 손에 힘을 주며 기범은 계속해서 회장의 눈을 응시하였다. 계속해서 저항하<br><br>던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괴성을 멈추고 초점을 맞추어 기범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br><br><br>“44년 전 당신이 느꼈던 고통과 원한을 나는 풀어주고 싶어. 이렇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br><br>것은 당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잖아. 44년 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마을사람들은 모두 후회하고 있어. 이<br><br>제 당신을 좋은 곳에서 쉴 수 있게 해줄게.”<br><br><br>기범의 눈에는 눈물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기범의 얘기를 듣고 있던 회장 또한 어느새 팔을 내려놓고 <br><br>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범은 회장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회장은 계속 눈물<br><br>을 흘리다 쇼파에 기대 잠을 자기 시작했다.<br><br><br>“이제 모든 것이 끝났네요.”<br><br><br>기범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 말없이 회장을 계속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을 나섰<br><br>다. 계속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경호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방을 나가는 기범을 바라 보았다. 기범<br><br>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장의 집을 나왔다. 집 앞에 활짝 핀 벚꽃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br><br>봄의 꽃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또한 나무사이를 가르는 바람소리가 그의 청각을 자극했다.<br><br>기범은 긴장했던 까닭인지 자신의 몸이 굉장히 무거움을 느꼈다.<br><br><br>“어?”<br><br><br>기범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다시 몇 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곤 자신의 몸<br><br>에서 나올 수 없는 무게의 발소리를 들었다.그의 머릿속엔 회장을 처음 보았을 때 회장의 발걸음소리와 한<br><br>은서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복합적인 감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br><br>갑자기 온몸을 누르는 것 같은 강한 압력을 느꼈다. 또한 눈앞이 벚꽃을 따라 하얗게 변하며 현실에서의 감<br><br>각이 무뎌짐을 느꼈다. 기범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br><br>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긴 생머리의 여성을 보았다. 그녀는 눈, 코, 입, 귀가 모두 있었다. 기범은 웅<br><br>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소리가 확실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br><br>다.<br><br><br>“너 내 목소리가 이제 들리는구나?”<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출처<br><br><br><br><br>웃대 - 모두자냐?作</p><p><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