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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데에 가장 필수적 요소는 바로 창의력입니다.
빛나는 아이디어! 기억하세요. 그리고 또 중요한건.."
화사로운 햇빛이 대낮의 회의실을 환하게 밝힌다.
널리 울려퍼지는 부장의 목소리에 부원들은 시종일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쭈그린다.
나 역시 그중의 한명으로 지긋지긋한 똑같은 연설을
거침없이 매번 해대는 악질부장 밑에서 일하고 있다.
".. 노력입니다! 노력이 바로 개개인의, 나아가 회사의, 더 나아가 사회의 원동력이 되는겁니다!!"
고문이다. 이 회사는 정말 고역이다.
부장의 목소리가 공허한 회의실안에 울려퍼질때마다
다시금 몰려오는 심각한 두통, 그리고 말종 우울증. 젠장.
답이 없다. 매일 매일 은행 이자처럼 쌓이는 스트레스.
약을 먹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보통 두통이 아니니.
물론 절친한 우애들과 노래방을 가서 신나게 악을 쓰고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하룻밤 만난 여자와 눈맞아 번질나게 놀면 이따위 스트레스야.
하지만 그건 미친짓이다. 그래, 미친짓이지.
"..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창의력, 노력, 그리고 집착력 입니다."
부장이 다시금 소위 가장 중요한 "세가지 필수적 요소"에 대해 역설한다.
나도 부장의 의견을 존중한다. 수능도 쪽같이 망쳐서 고졸밖에 못한 나도
그 세가지 요소에 대해 전적으로 수긍하는 바이다.
하지만 막상 그 요소를 다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 이론을 모조리 꿰차고 있다 해도 손재주가 좋은 것은 아니잖아.
" 아, 돌겠네. 졸리고, 따분하고, 회의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 그러게. "
" 씨발.. 야, 말이 쉽지. 완전 잠이 쏟아지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 그럼 자든가. "
" 미쳤냐? 잤다가는 미친 부장이 또 '회의에 대한 집착력이 부족.. ' 어쩌고 할텐데. "
입사 동기인 경헌이가 짜증을 참지 못하고 투덜거린다.
가뜩이나 답답해 죽겠는데 짜증나는 투로 말하는 걸 보니 나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쩐지 회의실 공기가 후끈 달아오른 것 같다. 아마 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스트레스에 돌아버릴 지경일 것이다.
"달콤한 담배나 빨았으면 원이 없겠다."
"그러게."
"야, 너네 조용히 좀 해."
뒤에 앉아 있던 지훈이 보다못해 불쑥 얼굴을 내밀며 한마디했다.
"뭐?"
"수다떨지 말고 회의나 열심히 하라고. 니들만 있냐?"
"뭐라고?"
"됐다. 조용히하라고."
경헌의 몸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지훈의 말투가 약간 거슬렸나 본지, 경헌의 얼굴이 실룩실룩 거린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건 상관없지만, 부장이 이쪽을 보고있다.
갑자기 짜증이 치솟는다. 씨발, 너네 둘 때문에 나까지 싸잡혀 꾸중듣게 생겼잖아.
부장의 특유의 내리까는 눈빛. 남을 하찮은 벌레 보는 듯한 표정이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우리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네가 있는 회의를 참고 버티는 게 얼마나 고역일지.
짜증난다. 이 모든 상황이 짜증나.
경헌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자꾸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낸다.
정서불안처럼 손을 가만 두질 않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지훈은 그러건 말건 무시한채 부장의 연설에 열중이다.
경헌이 계속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이 무척 신경쓰인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핏줄이 솟아있다.
아직까지 부장은 내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짜증난다.
경헌은 아까부터 계속 뭐라고 중얼중얼 거린다.
" .. 씨발.. 무시하는거야.. 씹새끼가.. "
뭐라는 거야?
계속 작은 소리로 쫑알쫑알대니 짜증이 치솟는다.
해도 너무하네.
"야, 조용히 좀 하고 가만좀 있어."
보다 못해 경헌에게 한마디 했다.
경헌이 순간적으로 날 바라본다. 아무말없이, 그냥 노려본다.
그만해. 그만 보라고. 의미 없이 뭐하는거야?
부장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잖아. 그만 좀 봐.
아, 울컥 짜증이 난다. 계속.
경헌이 날 노려보던 것을 멈추고 지긋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잘했어. 계속 봤으면 나도 어떻게 했을지 몰라.
"..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상!"
아, 드디어 끝났다. 망할 놈의 회의, 망할 놈의 부장.
이제 가서 담배나 한방 피워볼까.
"아, 거기 세명은 잠시 남도록. 할 얘기가 있으니."
부장의 손가락이 우리 셋을 가리킨다.
잠시 얼떨떨 했다. 뭐? 세명? 나까지?
짜증난다. 두 명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나까지 찍히다니.
경헌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짐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계속 주섬주섬 가방 속을 뒤지고 있다.
뭐하는 거야? 니 가방 속엔 종이랑 펜 밖에 없잖아?
또 다시 신경 쓰인다. 젠장, 시끄럽게 미친놈처럼.
지훈 역시 신경 쓰이는 지 경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미치겠네.
우리 셋 외의 부원들은 회의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기쁜 얼굴로.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피곤한 것도 모른채 신나게 담배나 빨러 가겠지.
회의실 문이 닫히면서 시끄러운 소음을 낸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 경헌, 지훈, 그리고 부장. 이렇게 넷이다.
경헌은 아직까지도 꼼지락거리면서 가방을 연신 뒤적거린다.
정말 시끄럽고 신경쓰인다. 울컥 짜증이 난다.
지훈이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섰다.
"야, 뭐하는데 지금 그렇게 시끄럽게..'
"뭐 이 씨발 새끼야!!!!"
경헌이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가방을 팽개치고 벌떡 일어났다.
계속 우릴 주시하던 부장과 나, 지훈은 텅 빈 회의실에 울려퍼지는
너무도 큰 소리에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행동을 멈췄다.
경헌의 몸이 아까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햇다.
부장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난 예상할 수 없던 경헌의 행동에
놀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지훈도 물론 경헌의 고함소리에
하던 말을 멈추고 그저 경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경헌씨, 지금 무슨 짓.."
"으아아아아아!!!!!!!"
괴기한 행동을 한 경헌에게 한마디 하러 온 담임을 바라보며 경헌이
다시 고함을 질러댔다. 깜짝 놀라 부장이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손에
커터칼을 쥐고 있던 경헌이 부장의 목을 사정없이 갈라버렸다.
부장이 외마디 비명도 지를 새 없이 목에서 피분수를 쏟아내며 스러졌다.
난 본능적으로 경헌에게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재빨리 출입문을 향해 죽어라 뛰는 사이, 멍청히 서서
쓰러져 움찔 거리는 부장을 바라보는 지훈에게 경헌이 천천히 다가갔다.
지훈의 얼굴은 부장의 피로 인해 유난히 새빨게 졌다.
충격으로 가만히 서있던 지훈의 목덜미에 커터칼이 깊숙히 꽂혔다.
쿨럭거리며 스러진 지훈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나왔다.
이제 경헌의 칼은 내게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버렸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같이 밥을 먹으며 부장을 욕하고 있었는데.
부장의 몸이 계속 움찔거린다. 경헌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부장의 몸을 칼로 마구 내리찍었다. 내리찍을 때마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이미 회의실 바닥은 온통 피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부장의 몸을 난자하고 있는 경헌은 얼굴에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미친놈.
난 허겁지겁 출입문을 열어 젖히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경헌의 표적이 부장이 된 덕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복도로 빠져나와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그저 회의실에서 멀어질 수 있으면 되었다.
경헌은 자신을 짜증나게 만든 상황에 대해 누구든 죽이려 할 것이다.
그 시초가 나니까 모든 분노를 표출시키면서 나를 죽이려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더 짜증이 났다. 젠장, 왜 내가 경헌이 새끼한테 쫓겨다녀야 돼?
그렇게 얼마 뛰지 않자 저멀리 수위실 아저씨가 보였다.
살았다, 아저씨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아저씨!! 사.. 살려주세요!"
멈춰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내게 수위 아저씨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는 표정으로 수위아저씨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저씨! 저..저기, 회의실에서.. 사람이.. 경헌이가.."
"뭐라고요?"
"사람이.. 경헌이가.. 죽였어요.. 짜증나서.. 칼로.."
"침착하고 말해보세요. 잘 들리지가 않는구만."
"사람이.. 죽었다고요!!"
"무슨 소리야, 그게.. "
흥분한 나머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수위아저씨는 못 알아듣는지 계속 되묻는다. 옛날부터 이 아저씨는 귀가 어두웠지.
이런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안된다니, 미치겠네.
난 최대한 침착하고 난 후에 다시 얘기했다.
"회의를 하다가, 부장이 세 명을 남으라고 했는데, 그 중 한명이 부장하고 다른 한명을 죽였다고요!!"
수위 아저씨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 못미더운 모양이다.
못알아들은거야? 방금 정확하게 말했잖아!!"
"일단 숨 좀 돌리고, 차근차근 정확히 얘기해봐."
아..
이 새끼가 돌았나.
옛날부터 그랬지. 하는 말 못알아 처먹고 대 여섯번 씩이나 얘기하게 만들었어.
이 개새끼. 이젠 못참겠다.
왜 못알아 듣는 거냐고!!!!
순간적으로 온갖 짜증이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난 주머니에 있던 날카로운 펜으로 수위 아저씨의 눈깔을 찍어버렸다.
괜찮은 촉감이었다. 찌름과 동시에 거무튀튀한 액체가 내 얼굴을 적셨다.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수위 아저씨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게 왜 사람 말을 제대로 안들어. 말이 말같지가 않냐? 엉?
왜 못알아 듣냐고!! 니가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니잖아!!
나는 다시 펜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연거푸 찔렀다.
이젠 모르겠다. 짜증이 너무 나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속이 시원하다. 깨질것 같이 찾아오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다.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경헌이 피로 범벅된 칼을 들고 뛰어온다.
이 새끼. 모든 원흉은 너야, 이 새끼야. 회의 중에 말을 걸질 않나, 부스럭 대질 않나, 시끄럽게 꼼지락대질 않나, 투덜대질 않나.
눈 앞에서 사람까지 죽이고, 새끼가.
이 미친새끼야.
갑자기 짜증이 치솟는다.
젠장.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열받게 하는거야. 난 일 열심히 하고 있엇다고.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는거야? 왜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거야?
왜 날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야?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이 새끼.
경헌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스트레스다.
출처
웃대 - 사린충동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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