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네이버 닉네임 diotima96 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
한 오년전의 일이군요. 저는 그때 네덜란드의 할렘이란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관광엽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갸름하고 좁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였죠. 살던 집은 지은지가 백년이 넘는 고옥이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침침하고 으리으리한 고딕풍의 유령저택이 떠오르실텐데, 전혀 아니었답니다. 거기 건물들이 대부분 외관은 유지하고 안은 리모델링을 해서 안에서는 한국의 아파트들과 다를바가 없었죠.
집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서 옆집의 아기우는 소리까지 다 '진동'으로 들릴정도 였던 평범한 외관의 그 집에서 저는 학교와 도서관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과 집들이 표면적을 줄이려다보니 벽들을 공유하고 서있는 곳이었죠)
외국에서 살다가 점점 불어나는 살을 감당못하다가 어느날인가는 큰돈을 들여 러닝머신을 사서 위층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초저녁마다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처음만 좀 힘들었지 점점 재미가 나더군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한 5키로정도 넘어가면 runner's high가 약간씩 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사람기척이 느껴지는 겁니다. 발소리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누군가가 방에 있다'는 느낌. 불쾌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한 그 느낌이 몇주나 지속되서 결국은 같이 살던 현지 친구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벌써 그집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었고, 리모델링전에도 있었는데, 참으로 무심하게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위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고 ? 아직도 거기 유령이 있나 ? "
"뜨아.. 무슨 얘기야 ? " 여기서 살인사건이라도 있었어 ? "
친구는 웃더니 자기가 본 유령들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리모델링전에는 오래된 고가구들도 있고, 벽들도 예전모습 그대로였는데 친구는 이따금씩 가구들에 겹쳐보이는 사람형상들을 본 모양이었습니다. 19세기옷차림의 허름한 노동자계급의 남녀들이 실제가구에 투명하게 덧씌워진 가구유령(?)의 서랍을 열고 닫거나 좁은 벽도를 걸어가거나 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물론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지만 곧 유령들이 자기를 못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죠. 못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잘못 상영된 프로젝터의 영상처럼 스쳐가기만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이후로도 한번도 실제로 그 유령들을 본적은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인기척이 느껴지는 일도 없었구요. 다만 그 달리기에 몰두해서 자신을 잃는 그 찰나의 순간들에만 어렴풋이 그 방안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던 존재들이 자신을 알리곤 했습니다.
제가 느낀 그 존재들은 몹시 피로하고 우울한 빛깔이었는데, 죽어서 100년이 흐르도록 지상에 남아있는 그들은 살아있던 이들의 잔영일까요 ? 카세트테이프를 지우고 다른 노래를 녹음해도 이따금 남아있는 원래 곡의 자취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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