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걸로 기억하니까(1학년일 수도 있어요) 한 10년 됐나 봅니다. 저와 친했던 중학교 친구 두명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합창반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한명이 알토고 한명이 바리톤인가..? 어쨌든 그랬지요.
두 친구가 속한 고등학교는 용문고등학교이고 저는 홍대부고에 다녔습니다. 그래도 워낙 친한 친구들이라 학교 축제때 자주 놀러가곤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용문고교 합창반이 KBS주최의 전국 고교합창대회에 나간다고 하더군요. 저녁 시간에 하는데다 저도 방송국이란 곳 한번 구경 가 볼까 하고 친구들 응원을 갔더랬습니다.
8시에 시작했던가..? 그래서 12개 학교인가가 참가해서 대충 끝난 시간이 11시 정도.. 그런데 합창단이라 그런지 힘이 넘치더군요.. 11시가 넘었는데도 KBS별관 앞에 모여 뒤풀이를 사칭한 광란의 시간을 보내더군요(다들 둥글게 모여서는 악을 써가며 노래 부르는데.. 방금 부르고 나왔잖아!!).
어쨌든 대충 뒤풀이 까지 끝내니 12시 반.. 일단 집에 돌아가기 위해선 버스는 힘들 것 같고, 택시를 잡아 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동을 하는데, 8시부터 계속 긴장해 있어서 그런지 두 친구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더군요. 물론 저도 좀 소변기운이 있어서 대충 어찌어찌 화장실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한밤중에 대충 해매다 찾은 곳이라 정확한 위치까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여의도 광장 한쪽 끄트머리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그 주변엔 아무도 없고 두명의 정복 경찰관 두명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저희는 아무 생각없이 화장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큰거 싼다고 들어가고 나머지 한 친구와 저는 소변을 보고 잇었죠. 저보다 먼저 싼 친구가 문가로 가서 저희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드르륵! 하는.. 그 왜 미닫이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학생들.. 다 쌌으면 빨리 나가!"
저는 당시 소변기 앞에 있어서 목소리밖에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때 문가에 있던 친구 말로는 여자 화장실쪽의 벽에 있던 조그만 창문이 열리며 진짜 구미호같은 영화에나 나올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화난 듯이 자기를 쳐다 보며 빨리 나가라고 구박을 하더랍니다. 저와 그 친구는 왠지 기분이 나빠져서 문 밖으로 나가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당연히 청소하시는 할머니인줄 알고(그냥 싸러 들어오신 분이라면 남자 화장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변보러 들어갔던 친구가 갑자기 문을 박차며 뛰어나오더군요.
"야! 장난 치지 마! 무섭잖아 따샤들아!"
"뭐??"
난데없는 소리에 저와 나머지 친구는 어이가 없었지요. 아니, 멀쩡히 소변보고 나온 우리보고 무슨 장난을 쳤다는 거야??
"너희들이 내가 들어간 자리의 창문을 막 두드렸잖아!"
"예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그랬습니다. 아니 우리가 뭐 할 일이 없다고 화장실 창문을 두드리나?? 라는 생각에 저는 뒤를 돌아다 봤죠.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우리가 이런거 뛰어 넘어서 저 뒤까지 갈 수 있겠냐?"
"응?"
친구녀석이 제가 가리킨 곳을 보니, 약 1. 2m정도의 높이로 난간이 있었지요. 그 외, 쇠창살로 된 거 있잖습니까? 뒤편이 잔디지역이라 그런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높이도 높이지만 일부러 그 뒤로 들어갈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어지지도 않은데다, 그 바로 뒤에 나무가 있어서 상당히 애매한 위치였던 겁니다.
"이상하다? 그럼 누가 두드린거야?"
"아마 바람에 나무가지라도 부딫힌 거겠지"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차를 타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마침, 그 할머니의 얼굴을 본 친구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야, 우리도 이상한 할머니를 봤다. 괜히 우리보고 막 나가라는 거야. 저 창문을 열....."
그러면서 친구는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키다가 딱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화장실은 전형적인 화장실 형태로 한쪽이 남자화장실, 한쪽이 여자화장실인 2열짜리 화장실이었습니다. 저희 키만한 높이로 창문이 몇개 달려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거의 창문이라곤 없는 구조.. 특히! 여자 화장실과 남자화장실 사이에 달려있던, 제가 목소리를 듣고 친구가 할머니 얼굴을 봤던 그 조그만 창문...
그게 다시한번 돌아봤을 때는 없더군요.... 사실 남자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조그만 창문으로 연결시켜 둘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그 다음에야 깨닫긴 했지만..
어쨌든 순간 오싹해진 우리는 슬쩍 여자 화장실 쪽으로 가 봤습니다. 아무도 없더군요. 그때까지 주변에 남아있던 경찰관분 들께도 물어봤습니다만..
"어? 우리 여기 한시간 정도 대기하고 있었는데, 12시 이후론 너희밖에 못봤어"
순간 등뒤에서 누군가 잡아 챌 것 같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진 우리들은 그냥 냅다 밝은 빛이 비추는 곳(도착해 보니 국회 의사당이더군요)으로 뛰어 버렸죠. 마치 뒤쳐지면 그 할머니가 와서 잡아 챌 것 같은 느낌에.. 죽어라 뛰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가 뭔가를 잘 못 본 것일거다. 사실은 그 화장실 관리인 할머니였을 것이다 등 갖가지 상상을 하면서 웃고 즐기고는 있지만, 글쎄요..
그 화장실에 다시 가 보라면 도저히 못가볼 것 같네요.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구요. 어쨌든 10년전 겪었던 저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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