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고질병에 붙일 이름을 못찿아
관찰병이라고 붙혀봅니다
전 초3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동화책부터 백과사전까지 무지하게 읽었어요
시골학교 도서관이라 초5쯤 되니
아주 희얀한 장서 빼고는 거의 다 읽다시피해서
도서담당 선생님이
1년에 두번 새책 들여올 때
제게 그렇게 호기있는 표정으로
볼테면 봐라
도서관 문을 열어 주셨죠
여고가 함께 있는 여중을 다니면서는
학교도서관도 커졌고
새로 생긴 불면증과 함께
정말 책을 또 어마어마하게
읽었죠
50권짜리 세계명작을 서너번씩 보기도 했죠
폭풍의 언덕, 테스, 주홍글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자셨던 고모부가 기자실에 보내지는 신간을
명절때 모아오시면
화장실 갈 때도
양장판 세계지도책을 끼고
다원이 여행한 곳곳을 찾을 정도였으니,
기이한 여자 아이였죠
그래서 초5 아들이 베르베르의 개미 5권짜리를
일주일만에 읽는게 놀랍지도 않았죠
그 엄청난 독서 덕분에 이상한 병에 걸렸죠
사람을 관찰하는 병,
먼저 대화를 많이 하진 않는데
조용히 관찰해요
그리고 서사를 만들죠
그래서, 머리속에 단편드라마가 가득 들어 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주인공으로
한두번씩은 드라마에 등장했죠
가끔은 이게 재능이 되나...
글을 써볼까 하다가도
그 방대한 노동에 지레 포기하지만
등산하면서
요리하면서
이렇게 새벽에
또 어김없이 단편드라마 하나를 찍어요
동생이 방송국 작가를 한적이 있는데
그 때 살짝 질투를 했지만
그렇게 부지런 떨기는 싫었죠
오유에서 가끔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네요
그래서 그렇게 자랑할만큼
독서하고 글 써서
뭘 얻었냐고,
남편은 무지 무지 잘생겼어요
시골 촌에서만 산 제게,
서른쯤,
태권도로 다져진 어깨 넓고
뽀얀 그 남자는 정말 잘생겨 보였죠
인품, 지성, 개나 줘버려
인물보고 걸혼했죠
아닌척하며..
열심히 편지를 썼죠
그 편지는 운동만 해온 남편에게
지성의 빛 같았겠죠
다 드라마틱하게 계산한거였죠
딱 한번
그 많은 독서로 얻은 관찰병으로
남편 하나 얻었죠
좀 잘생긴...
그럼 됐죠 뭐
이젠 늙어서 그 잘생김은 주름졌지만
그래도 웃음만큼은 여전히 잘생긴
남편 하나 옆에 친구처럼 있으면 됐죠 뭐
책 죽어라 많이 읽은 큰아들
책은 죽어도 안읽는 작은아들
행복은 작은아들 편입니다
책 대신 사람을 보고 저렇게 미친듯이
웃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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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06/28 05:36:24 119.194.***.254 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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