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b> <div style="display:inline;"></div><b></b></div> <div></div> <div><b></b> <div style="display:inline;"></div><b></b></div> <div> <div style="display:inline;"></div></div> <div> <div style="display:inline;"><img alt="" src="http://ncc.phinf.naver.net/ncc01/2010/7/30/158/0908_02_.jpg?type=w646"></div></div> <div> <div style="display:inline;"><b><b><br></b></b></div></div> <div><b></b> <div style="display:inline;"><b><b>西北明積雪</b></b></div><b></b></div> <div><b>萬戶凜寒飛</b></div> <div><b>惟有深宮里</b></div> <div><b>金爐獸炭紅</b></div> <div><b>서북은 쌓인 눈으로 밝은데</b></div> <div><b>백성들은 추위에 떠는구나</b></div> <div><b>오직 궁중 안에서</b></div> <div><b>육포를 굽는 황금난로의 재만 붉구나</b></div> <div><br></div> <div>"윗사람으로서 먼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div> <div>백성이 배고프면 나 또한 배고프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청조 11대 황제 광서제(光緖帝)애신각라 재첨(愛新覺羅 載湉)</div> <div><br></div> <div>어릴적부터 개념이 있었던지 학문을 즐기고 부지런했음.</div> <div>꼬맹이 시절에 신하들을 만나고는 "호남에는 아직도 가뭄이 들었습니까? 북경에도 가뭄이 심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비를 원합니다." 라고 말하고 서태후로부터 '앉으나 서나 공부한다'고 칭찬듣기도 함.</div> <div>매일 새벽 <b>3시</b>에 일어나 정무를 보았고</div> <div>34년 제위기간동안 모친상으로 11일간 빠진걸 제외하면 조정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적은 없었음</div> <div>서양 문물에 별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었는데다 영어를 배울 정도로 호기심도 많아 유럽에서도 이미지가 좋았던 군주</div> <div>의화단의 난때 8국과 맞서는건 자살행위라는걸 예상하고 서태후에게 간하기도 함(서태후는 씹었지만)</div> <div>민국 초기의 역사학자 범문란은 광서제를 "서양의 사고를 받아들일수 있었던 만주 귀족" 이라고 호평</div> <div><br></div> <div>근데 이양반 10년동안 영대에 유폐되었다가 서른여덟에 쥬금</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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