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도 그 내용은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div>건륭 58년 영국대사 메카트니가 와서 교역을 청하였으나 삼궤구고를 올리지 않자 황제가 분노해 결국 취소되었다는.</div><div>많은 사람들이 이 일화를 근거로 건륭제를 '오만함에 빠져 적을 무시하였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였다' 며 비난하기도 하는데</div><div>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div><div><br></div><div>많은 역사사이트를 돌아다녀보니 이 사건에 대해 건륭제가 서방에 대해 무지했다고 평하던데</div><div>이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div><div>어렸을 적 조부인 강희제 앞에서 영국산 유리를 예찬하는 시를 지어보이고</div><div>황제가 된 후에는 서양의 자명종이나 망원경 같은 기구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div><div>주세페 카스텔리오네 같은 선교사를 통해 서방세계에 대한 견문을 키우기도 했습니다.</div><div>비단 황제뿐만 아니라 고위층 인사들도 유럽풍을 선호하며 마차를 사용하고 서양의 의복을 자랑스레 입는 모습이 흔했습니다.</div><div>청 제국에 있어서 유럽은 '무지한 오랑캐' 가 아닌 친숙하고 세련된 존재였던 것입니다.</div><div>건륭 연간에 편찬된 '황청직공도(皇淸職貢圖)' 라는 책이 있습니다.</div><div>여기에는 스웨덴, 폴란드, 심지어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에 대한 소개는 물론</div><div>프랑스는 영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으나, 영국에 조금 밀린다 라는 상세한 내용도 있습니다.</div><div>이쯤되면 의문이 갑니다. 정말 건륭제가 영국의 위력을 몰라서 그랬는가?</div><div><br></div><div>잠시 18세기 말의 인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div><div>당시 인도는 영국과의 교역에서 열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div><div>산업혁명이후 질좋고 갚싸고 양도 많은 영국산 면직물에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급격하게 몰락하였고,</div><div>결국 이것은 경제의 몰락을 이끌어 종국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보호국 수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div><div>건륭제가 '영국과 직접무역을 할 경우 인도꼴이 날지도 모른다' 라는 불안감에 메카트니의 요구를 거절했을거라는 추측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div><div><br></div><div><div>엄밀히 따지자면, 영국과의 무역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div><div>물론 직접적인 무역이 아니라 광저우 같은 일부 항구를 개방해 공행을 두고 간접적으로 주고받는 방식이었지만 </div><div>이 방법으로도 청의 국고에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span></div></div><div>이런 보호무역 체제로 영국으로 가는 수출품은 많아도 영국에서 오는 수입품은 적어 청나라는 항상 무역흑자를 맛보았습니다.</div><div>만약 메카트니의 요구에 따라 무역을 하는 항구를 늘린다면? </div><div>그래서 영국산 면직물이 청에 쏟아져나와 인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이 중국에서까지 되풀이된다면?</div><div>이것은 건륭제가 예상한 가장 최악의 결과였습니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그는 이렇게 되기를 절때 원하지 않았을 거구요.</span></div><div><br></div><div>건륭제의 '불안감' 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습니다.</div><div>메카트니가 황제와의 교섭에 실패한 후 군기대신인 화신和伸에게 이를 상의하였으나 </div><div>화신은 무역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말을 돌리면서 교묘하게 대답을 피했다고 합니다. </div><div>정말 '영국이 문명국인 청나라의 법도를 이해하지 못해 빡쳐서' 의 단순한 이유로 황제가 그의 교섭을 거절한 것이라면, 굳이 신하를 시켜서 주제를 피해가려고 인간힘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div><div>삼궤구고를 시킨 것도 영국을 오랑캐로 대해서가 아니라, 기선제압을 위한 것이라면?</div><div><br></div><div>또다른 일화도 있습니다.</div><div>건륭제는 메카트니를 비롯한 영국 사절단에게 '러시아는 당신네 나라와 친하느냐',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어디에 있느냐', '프랑스와 영국은 어떤 관계이냐' 같은 시답잖은 질문을 주구장창 물어봅니다.</div><div>사실 이에 대한 답은 건륭제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div><div>청나라의 서방에 대한 인식 수준은 당시 서적인 황청직공도로도 충분히 알 수 있고, 황제의 서제에는 비교적 정확한 세계지도까지 걸려있었습니다.</div><div>알고 있는데도 굳이 물어봤다면 우리는 그의 의도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div><div>'우리는 서양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고로 당신네와 무역을 할 생각도 없다'</div><div>건륭제는 사절단에게 서양에 대한 자신의 수준낮은 인식을 반드시 각인시켜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div><div><br></div><div>메카트니의 건의를 거부한 것은 또한 이 이유만이 아닙니다.</div><div>영국 사절단의 주청하는 내용은, 간추려보면 이것입니다.</div><div>1. 주산 지방의 무장되지 않은 섬에 영국상인들이 살게 해 주시고</div><div>2.그 영국상인들에게 비용을 대 주고 영원히 살게 하며</div><div>3.광주 부근에도 동일한 권한을 달라</div><div>사실상 영토할양 요구나 다름없지요.</div><div>건륭제는 이에 한마디로 일축합니다.</div><div>'비록 섬이나 사막이라 할지라도 경계는 분명하다.'</div><div>덧붙여 '각자에게는 자신의 것이 있으며, 그러므로 이 일은 윤하할 수 없다' 고 답하구요.</div><div>물론 이런 건의만으로 영토할양이라고 하는 것이 억지일 수는 있지만, </div><div>변방에 대한 황제의 지배권이 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건륭제가 서양에 대해 무지해서인지, 아니면 오히려 통찰력이 뛰어났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span></div><div>어느 쪽이든 서구로부터 청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사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div><div><br></div><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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