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조의 문치주의로 무를 경시했다' <div>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더라고요.<br><div>물론 문치주의 내세운건 사실이고 병법 좀 읽은 <b>문인</b>을 장군에 봉한다던가 하는 병크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중원의 자잘한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흥성한 나라가 송나라인데 무를 경시할수만은 없었습니다.</span></div> <div>970년대 초 22만 명이던 군대가 태조 치세 후반기에는 약 38만 년에 달하게 되고요, 송 태종의 제위 시기에는 66만 명으로 늘어납니다.</div> <div>다음 황제였던 진종은 군사를 줄이자는 의견을 내놓는데 이 때 송군의 수는 91만 2000명.</div> <div>송나라는 매년 제정의 70%를 국방비에 쏟아부었고, 맹화유궤, 당차, 연발궁노, 포석기(당나라때도 비슷한게 있었지만), 벽력화구 같은 수준높은 무기들을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수입하거나 자체제작할 정도로 군사력에 관심이 많았던 나라였습니다. 장갑차 비스무리한 것도 만들어졌고.</span></div> <div><font color="#0c0c0c">원군과 송군이 회수 강에서 싸울 때 송나라군대의 배에서 폭탄이 날아오니까 </font><span style="color:#0c0c0c;font-size:9pt;line-height:1.5;">몽골군대가 쇼크받았다는 기록은 덤.(물론 원나라도 당시에는 회회포라던가 하는 사기급 무기들이 있었지만 배에서 폭탄쏘는것까진 생각못한듯)</span></div> <div><font color="#0c0c0c"><br></font></div> <div><font color="#0c0c0c">어떤 분들은 또 이렇게 질문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요 금 원한테 뚜들겨맞고 다녔냐. </font></div> <div><font color="#0c0c0c">당나라가 동돌궐 서돌궐을 잇달아 정복하고 (고종 말년에 둘다 독립했지만)사마르칸트를 넘어 서역 72개국을 정복한다던가 하는 간지폭풍 기세에</font></div> <div><font color="#0c0c0c">유목민들은 컬쳐쇼크받고 스스로 각성하게 됩니다. 이후 요의 건립자 야율아보기에 의해 새로운 기병전술이 도입되고 중국의 공성기술도 적극적으로 </font></div> <div><font color="#0c0c0c">받아들이면서 빠른 시간 안에 강국이 되었구요. 송나라가 약해졌다기 보다는 주변 이민족들이 강해졌다고 보아야지요.</font></div> <div><font color="#0c0c0c"><br></font></div> <div><font color="#0c0c0c"><br></font></div> <div><img src="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news/20081208/6-2.jpg" alt="">이게 맹화유궤인데, 맹화유는 석유를 뜻합니다. 안에 있는 기름이 불에 붙으면 폭발하면서 분사하는 방식. 물론 송나라가 직접 개발한건 아니고 동남아에서 수입한 거라네요.</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img src="http://cfile214.uf.daum.net/image/125076414D57FD4D1A7B86" alt="">당차. 공성전에서 주로 사용.</div> <div><br></div> <div><br></div> <div>그리고 사진은 없지만 벽력화구는 똥그랗게 생겼습니다.</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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