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한 소녀가 있었다. </div> <div>어린 소녀는 발레리나를 꿈꿨고, 또래 소녀들과의 대화가 마냥 즐거웠다.</div> <div>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일보다, 발 끝으로 서는 일이 즐거웠다는 소녀였다.</div> <div>소녀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말은 틱틱거려도 언제든 속내를 드러 낼 수 있는 친구,</div> <div>서로의 집에 언제든 찾아가 함께 밤을 지내울 친구였다.</div> <div> </div> <div>친구에게는 오빠가 하나 있었다. 두 살 위의 오빠는 어릴 때부터 보던 사람으로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div> <div>또래의 소년이었다. 긴 속눈썹을 가진 까만 눈동자가 맑은 소년.</div> <div>가끔 집에서 보면 짖궃게 놀리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친구의 오빠는 밉살맞았다.</div> <div>새카맣게 탄 얼굴에 흰 이를 가진 소년은 대학생이 되었고, 소녀는 서울에 대학을 간 소년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div> <div> </div> <div>대학에 갈 때쯤, 서울에 놀러온 소녀는 친구의 소개로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div> <div>그저 밉살 맞던 동네 오빠는 어느새 남자가 되어 있었고, 이상하게 예전에 없었던 감정이</div> <div>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미묘한 떨림을 갖게 되자 마치 죄를 진 것처럼</div> <div>후끈거리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했다. </div> <div> </div> <div>자신의 머리를 무심히 쓰다듬는 남자의 행동에 불현듯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div> <div>소녀는 어쩌면 자신의 미래를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div> <div>그렇게 두 사람은 이유도 없이, 대책 없는 사랑에 빠졌다.</div> <div> </div> <div>소녀의 학교 앞에는 언제나 그 남자가 있었다. </div> <div>그렇게 남자는 소녀를 언제나 기다렸고, 소녀는 기다림을 아는 남자의 웃는 얼굴을 사랑했다.</div> <div>그러나 행복은 짧아야 인생인지라, 소녀에게는 큰 시련이 있었다.</div> <div> </div> <div>바로 남자가 군대에 입대해야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소녀에게 청혼을 했고,</div> <div>두 사람은 이리저리 재지 않고,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친구를 증인 삼아 그날 바로 결혼을 했다.</div> <div>남자는 그렇게 입대를 했다. 소녀는 자신의 몸에 벌어진 이상한 변화를 눈치 채고, 학교를 그만 두었다.</div> <div>그 소식에 화가난 소녀의 부모는 소녀를 집에서 쫓아냈고, 소녀는 이상해게 울음도 나지 않았다.</div> <div> </div> <div>소녀의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배 속에 있는 아기는 엄마 목소리만 들리면 배를 팡팡 찼고,</div> <div>소녀는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군대에 간 남편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div> <div> </div> <div>오빠 대신 먹을 것을 조달해 오던 친구의 도움으로 출산을 하던 날,</div> <div>남편이 없는 출산, 친정 부모님을 부를 수 없어, 시부모의 도움으로 병원을 잡고 </div> <div>친구의 도움으로 스무 시간의 진통의 시간을 견뎌냈다.</div> <div> </div> <div>아이는 건강했고, 팔다리가 길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모두 붙어있었고 소녀를 빼닮아 있었다.</div> <div>긴 속눈썹과 새카만 눈동자는 남자의 것의 그대로 빼닮았다.</div> <div>느긋한 성격에, 크는 동안 애 한번 먹이지 않았던 장남을 낳은 날이다.</div> <div>어렵기만한 시댁 살이에서도 아이만 보면, 서운한 것도 사라지고 서글픈 것도 사라졌다.</div> <div> </div> <div>그렇게 눈치 빠른 둘째도, 예민하고 입 짧은 셋째도 낳았다. 소녀는 또래의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할때,</div> <div>등에 아이를 업고 양 손에 아이를 들고 시장을 보러 다녀야 했다.</div> <div>앳된 소녀는 여자가 되었고,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div> <div> </div> <div>우아한 발레리나의 꿈은 멀어졌어도, 그 꿈을 포기하고 얻은 것들이 많아 후회하지는 않았다.</div> <div>셋 쯤 낳고 사니, 소녀의 부모님은 소녀와 남자를 용서했다. </div> <div>몇년이 지나서야 손자들을 안아 보는 부모님을 보고 소녀는 많이 울었다.</div> <div> </div> <div>아이들이 크는 재미에 소녀는 지루할 틈이 없이 삼십년이 지나갔다고 한다.</div> <div>넷째를 가졌을 때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아이를 지우려고 병원까지 갔다가 집에 있는 어린 아들, 딸을 낳았던 순간이 생각나</div> <div>펑펑 울면서 돌아왔고, 어려우면 더 쪼개서 살림하고 더 아껴서 같이 살아보자 생각하고 낳았다.</div> <div>넷째를 낳은 일을 한 번도 후회한 일이 없었다. 어린 세 자식 덕에 제대로 된 태교를 해본 적도 없는데,</div> <div>기특하게도 아이는 밝고 긍정적이었고 애교도 넘쳐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div> <div>넷째가 태어나면서 일도 잘 되었고, 웃을 일도 많아졌다. </div> <div>소녀는 시어머니보다 아들을 더 많이 낳았다는 승리감을 가지기도 했다.</div> <div> </div> <div>넷을 데리고 다니면 언제나 행복했고 든든했다. </div> <div>속깊은 첫째와, 애교 많은 둘째, 아빠 껌딱지 셋째... 그리고,</div> <div>넷째는 소녀를 닮아 몸이 날랬고 어느 아이보다 동작을 잘 따라했다. 소녀의 기쁨이되었다. </div> <div> </div> <div>한 소녀가 중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 지났다.</div> <div>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div> <div>사랑에 빠진 소녀는 엄마가 되었다.</div> <div>늙을 수록 멋져지는 남자와 함께 이제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