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새내기였을 적의 일이었다.<br>교수들은 학과MT에 안가면 결석처리라며 새내기는 일 명 열외없이 가도록 강요했다.<br>선배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새내기의 이름과 취미따위를 물었다.<br>중고등학교에서는 상상도 하지못했던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br>부모님이 고른 집 옆에 산다는 이유따위로 친해지는 사이가 아니었다.<br>같은 반이어서 친구의 친구여서 친해지게 되는 운명적 관계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br>상대의 색깔과 맛을 느껴보고 친구라는 호명을 허락하는 최초의 선택적 관계였던 것이다.<br>자유라는 맛에 설레였다.<br>하지만 좋은 두근거림은 낮의 한 때로 끝이었다.<br>밤이 되자 이른바 군기잡기라는 미명하에 새내기들을 전원 집합시켜 얼차례를 치렀다.<br>좀 전까지만 해도 상냥했던 선배들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졌다.<br>학교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기 맑은 곳에서 미니 군대를 체험했다.<br>어쩌면 가장 군대와 흡사한 환경을 골라서 MT를 추진한 건지도 몰랐다.<br>한차례 근육의 뒤틀림과 영혼의 쪼그라듬이 끝나자 술파티가 이어졌다.<br>선배들의 얼굴은 언제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밝게 돌아와 있었다. <br>인간의 양면성을 몸소 보여주는 솔선수범이란.<br>나는 나중에 저러지 않으리라 비릿한 조소를 품었다.<br><br>공포는 그로부터 대략 3년 정도 뒤에 일어났다.<br>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나의 눈에 새내기들의 행동이 거슬렸다.<br>선배들이 땀흘리며 학과일을 하고 있는데도 새내기들은 담배나 태우며 수다를 떨었다.<br>이런 새내기들의 건방짐이 마음에 안들기는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br>조교로부터 교수님들이 새내기의 예절교육을 시키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br>우선은 웃는 낯으로 그들을 초대해야했다.<br>MT에서 벌어지는 지리멸렬한 술주정을 영웅담으로 포장했다.<br>앉으라면 앉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12년 정규교육에 길들여진 새내기 따위 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br>다들 강아지같은 눈망울로 MT를 신청했다.<br>밤이 되자 한 달 남짓 참아왔던 분노가 나를 휘감았다.<br>이번 기회에 사회의 엄격함을 보여 주리라.<br>나는 새내기를 돌리고 또 돌렸다.<br>그들은 공포에 물들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br>이제 그들은 복도에서 교수님을 마주치면 깎듯이 인사하리라.<br>선배들의 고충을 보고 달려와 일을 거들리라.<br>교정은 성공적이었다.<br><br>대학을 졸업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br>뉴스에서는 여전히 대학 MT의 얼차례문화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나왔다.<br>이제와 생각해본다.<br>그때의 얼차례가 과연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br>꼭 그런 식으로 했어야 했는지.<br>나에게 숨 죽였던 그 새내기들은 그들의 후배에게 똑같이 했는지.<br>지금도 돌이켜보면 거대한 무언가에 사로잡혀 마왕의 탈을 썼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br>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br>내가 지켜주지 못 했음을.<br>내가 나를 잃어버렸음을.<br>못난 내가 그들과 그들 이후의 그들에게 그 공포를 전염시키지는 않았을까 너무 두렵다.<br>그들이 그 당시의 나를 비웃고 반면교사로 삼기를 간절히 바란다.<br>이런 글을 써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성묵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해방하는 자가 구세주다.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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