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햇볕이 좋은 날, 혼자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설거지를 하는 중에 자꾸 소매가 흘러내리는데, 그걸 걷혀 줄 사람이 옆에 아무도 없어 잠시 슬펐습니다. 그리고 흠뻑 젖은 소매를 수건으로 닦는 동안, 제가 여태 상처를 준 이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br><br>어제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또 굳이 안 해도 됐을 말을 기어코 꺼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내 탓이 아니야'라는 화풀이였습니다. 제 슬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제가 아닌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통화를 마치기 전에 제게 몇 번이고 입을 맞춰 주셨습니다.<br><br>있잖습니까, 저는 그저 제가 싱크대의 왼쪽에 서서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닦는 동안, 제 오른쪽에 서서 제가 건네주는 그릇을 물로 헹궈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서로 아무런 대화 없이,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으로도 함께 편안해 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br><br>예쁘게 들립니까? 이런 묘사가. 실은 얼마 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글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고. 글을 쓰는 사람의 진심이란 결국엔 알 수가 없는 거라고. 사람 속이기 참 쉬운 게 글이라고. 그 얘기에 저는 뭐라 대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어떤 글을 읽으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나오는지. 내 몸이 일으키는 그 모든 반응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그게 그저 감동인지, 동감인지, 사랑 비슷한 무엇인지, 아니면 진짜 사랑인지를요. <br><br>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쁘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함께 설거지를 하는 제가 사랑해 마지않을 그 사람과 제 모습을 글로 묘사한 게 아닙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당신과 정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닿을 방법은 글밖에 없으니까요.<br><br>제가 그랬지 않았습니까. 평생 글을 쓰고 싶다고요. 그런데 지금껏 글을 쓰다 보니 말입니다, 제가 해피 엔딩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그런 제 글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제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닮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전부 저보다 아픈 곳도, 아는 것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저 제 삶의 끝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제 삶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열어 봤을 때, 거기에 적힌 마지막 문장이 무엇인지 대충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도 해피 엔딩이 아닐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결말이 글 전체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려나요.<br><br>부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진심인지 아닌지, 읽는 사람은 알 길 없는 한낱 글일 뿐이지만.<br><br>더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습니다. <br><br>누군가가 제게 입을 맞춰 줄 때,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br><br>그럴 수만 있다면, 굳이 해피 엔딩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