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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23259
    작성자 : bosquemadura
    추천 : 5
    조회수 : 755
    IP : 61.192.***.181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5/12/20 2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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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단편] 너랑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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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랑 나랑

     

    이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좋은 시절의 이야기. 지금 내가 바라는 꿈은 이미 그때 이루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쩌면 우린 커가면서 꿈을 찾고 이루는 게 아니라, 오래전에 이미 이루었지만 잊어버리고만 꿈을 커가면서 기억해내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너는 지금 그 꿈을 기억해냈을까.

     

    어려서부터 남자아이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며 자랐다. 나는 그런 말을 언제나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여자아이가 예쁘고 귀엽다는 말을 듣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분홍색 공주 드레스나 곰인형 따위가 아니었다. 텅 빈 놀이터에 나 말고도 내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으면 했다. 풀잎으로 노래를 연주할 수 있고 잠자리를 내 손으로 잡을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나는 풀잎을 부는 대신 누구나 배운다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자리가 아닌 파브르의 곤충기를 부모님에게서 선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어린아이의 행복한 웃음을 얻는 것이라고, 좋아하는 만화에서 읽었기에 알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힘이 들었다. 이루어진 건 첫 번째 소원뿐이었다. 나는 너를 놀이터에서 만났다.

     

    그날도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미끄럼틀 그리고 정글짐, 그다음에 또 미끄럼틀, 그러다 다시 정글짐. 철봉엔 매달릴 줄 몰랐고 그네도 혼자서는 타지 못했다. 그렇게 같은 곳을 빙빙 돌다가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오 분 동안은 언제나 시소를 보곤 했다. 미끄럼틀 위에서 그리고 정글짐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두 개의 시소는 꼭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오래된 보물 같았다. 아주 가끔은, 반짝이는 그 보물이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볼품없는 고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학교 애들이 남자라고 놀려도, 그리고 텅 빈 집에서 혼자 불을 끄고 잠을 자도 아무렇지 않던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이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 눈물은 잠자리의 날개만큼 가벼웠고 쓴 풀잎 맛이 났다. 

     

    “왜 울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시소 옆에 나 만한 남자애가 한 명 서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슬프니까 울지.” 나는 그런 당연한 것도 모르냐는 듯 대답했다. 눈물도 닦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그땐 정말 창피할 테니까.

    “사람들은 기뻐서 울 수도 있는 걸.” 남자애의 표정이 진지했다. ‘유진이가 간절히 원하면 다 이뤄질 수 있어라고 말하던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갑자기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간절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울지 말라고.”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꾸를 하려다 말고 빤히 쳐다본 남자애의 얼굴이 예뻤다. 내가 스케치북에 자주 그리는 얼굴이었다. 커다란 두 눈에 작은 코와 입, 진한 눈썹과 검은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빛났다. 그런 얼굴이라면 울 줄 모를 테지.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멋대로 생각해 버렸다. 너는 울지 않는다.

    “여기 내려와 봐. 나랑 같이 시소 타자.” 네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이쪽에서 손을 뻗는다고 해도 닿지 못할 거리인데.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고 말하는듯한 너의 태도가 나에게도 옮아 버렸다. 한 손을 너에게 뻗은 채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데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네가 있었다. 그 미소에 나는 내가 세상의 수많은 아이가 기다린다는 크리스마스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너와 시소를 탄 날, 바로 앞에 마주 앉아 있는 네가 아닌 하늘을 올려다봤던 이유는 별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내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네가 많이 좋았다. 바닷속에 숨겨진 보물만큼이나 말이다.

     

    너를 처음 만나고 집에 돌아왔던 그 날, 침대에 누워서야 온갖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묻지 못했다는 것, 또 어디에서 사는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묻지 못했다는 것. 너에 대해 아는 점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기보다, 단지 너와 다시 빨리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의 첫만남만으로도—-잠깐 고물이 되어버렸던 내 보물과 닦지 않은 눈물과 찾아보지도 않았던 별들과 영영 없어지지 않을 네 미소만으로--네가 누구인지 전부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열한 살밖에 먹지 않은 초등학생인 주제에. 알약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우는 표정으로 가루약을 수저에 담아 먹고, 엄마가 도시락으로 싸주시는 시금치 반찬을 그대로 버리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이 나고 마는, 그런 꼬맹이가 어떻게 누군가를 전부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바로 그런 꼬맹이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는 거니까. 어쩌면, 내가 만약 너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후에 만나게 됐더라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전부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열한 살의 내가 만난 너였다.

     

    다음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피아노 학원, 그리고 영어 학원에 다녀온 후에 우리가 이미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놀이터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의 시소 위에 앉아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 미끄럼틀과 정글짐 쪽으로는 고개를 조금도 돌리지 않았다. 해가 져 어둑어둑한 하늘을 보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그리고 네가 나타났을 때, 너의 뒤로 보이는 그 깜깜한 하늘이 예뻐 스케치북에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색연필 말고, 다른 여러 색의 색연필로.

     

    시소 탈래?” 네가 물었다.

    .”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너는 시소 타는 게 제일 좋아?” 네가 또 물었다.

    . 시소 타는 것도 좋고. 그네 타는 것도 좋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째서 여태 혼자라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불쑥 떠올라 네게 그것들이 좋다는 말을 한 건지.

    나랑 똑같네.” 네가 답했다. 나는 머지않아 네가 그 말을 자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랑 나랑 똑같다는 말.

     

    그렇게 너를 두 번째로 만난 날, 우리는 시소를 타다가 그네를 탔다. 그네에 타기 전에 나 좀 밀어줄 수 있느냐고 머뭇거리며 묻는 내게 너는 망설임 없이 당연하지’, 라고 답해주었다. 시소를 탈 때 내 건너편에서 땅을 힘껏 내딛는 너의 발과 그네에 탄 나의 등을 살며시 미는 손을 느끼며 나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하고 아빠가 없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꺄르르 거리는 내 웃음소리가 놀이터를 가득 메웠다. 네 웃음소리는 내 웃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은 동네의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오 학년 이 반임을 고백했을 때 너는 기쁘다는 듯이 너 또한 오 학년 이 반이라고 말했다. 진짜 같은 반인 것도 아닌데, 그저 ‘5’‘2’라는 숫자가 겹친 것뿐인데, 너는 그게 뭐가 그리 좋았던 걸까. 너는 내 이름을 듣고 나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이유진이야.”

    이름 예쁘다.”

    아냐. 우리 반에는 유진이라는 이름이 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어. 6반에도 정유진이라는 애가 있고. 내 이름 하나도 안 특별해.”

    특별해.”

    아니라고.”

    내 이름에도 자가 들어가는데. 김도유.”

    김도유?”

    . 너랑 똑같이. ‘’. 그러니까 내 이름도 너처럼 특별해. 예쁜 이름이야. 이유진.”

     

    나는 너의 그 설명에 알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며칠이 지나, 여느 때처럼 학원을 마치고 놀이터에 가는 길에 등 뒤에서 누군가가 유진아’, 라고 내 이름을 불러 뒤를 돌아봤고, 그 유진이가 내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네 생각이 났고, 그러다 아직 아무도 씨를 불어 날리지 않은 민들레 꽃 한 송이를 발견했고, 그것을 꺾어 꽃씨를 불으려다 멈췄고, 그렇게 꺾은 민들레를 마지막 성냥을 켜 움켜쥔 성냥개비 소녀처럼 손에 쥐고 놀이터에서 너를 기다렸고, 네가 내 앞에 섰을 때 그 꽃을 네게 건넸다. 하지만 고맙다며 꽃을 받아 든 너도 나처럼 꽃씨를 불어 날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 보물이 한순간에 고물이 되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눈이 시렸다. 처음 겪는 그 감정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조차 알 수 없었던 나는 꽃씨가 전부 떨어지길 기다리는 네 민들레를 그저 계속 바라만 봤다.

     

    그날 밤 나는 너와 함께 하얀 민들레 꽃밭에서 뛰어노는 꿈을 꿨다. 눈이 내렸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눈이 아니라, 하나도 차갑지 않은, 따뜻한 민들레 꽃씨였다. 손바닥 안에서 민들레 꽃씨가 녹아내렸다.

     

    너를 만난 후로 나는 말이 많아졌다. 아니, 나는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말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난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더는 마음속에 묻지 않고 네게 물었다. 인어공주는 정말로 거품이 된 건지, 네 잎 클로버는 어떻게 찾는 건지, 옆집 강아지 홍시는 예쁘다고 하는 내 칭찬을 알아듣는 건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별똥별이라는 것은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건지, 그리고 나도 언젠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될 수 있는 건지. 별자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너라면 뭐든 알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너의 모르겠다는 대답마저 정답이라고 믿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겐 한 번도 꺼내 보이지 않았던 질문을 네 앞에서만 꺼내 보였다. 그러면 너는 온 마음을 다해 내 얘기를 듣고 답을 내주었다. 종종 내가 잠이 든 엄마, 아빠의 가슴에 귀를 대고 숨을 확인하는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이다. 나와는 달리 큰 그 눈을 들여다보자면 알 수 있었다. 네 눈 속에 가득 담긴 나는 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네 말이 맞구나. 너랑 나랑 똑같구나. 처음 보는 나 자신의 그런 모습에 너의 눈엔 분명히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보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부럽다기보다는 감동적이었다. 학교에서 내주는 독후감 숙제에 버릇처럼 쓰던 감동이라는 말을 나는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감동이란 분명, 네가 보는 나였다.

     

    기다리던 여름 방학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나는 방학이 되면 너와 드디어 온종일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그날 저녁 헤어지기 전에, 내일은 우리 집에 와서 놀지 않을래, 라고 물으려던 나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네게 먼저 말할 기회를 줬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방학 내내 할머니 댁에 있을 것 같아. 여기서 굉장히 멀어. 미안해.”

     

    그 말에 나는 바로 그래? 괜찮아라고 답했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주제에,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양치질을 하고, 손발을 깨끗이 씻고, 곧장 방에 들어간 후, 불을 끄고 홀로 침대에 누워 아빠와 함께 붙였던 야광별이 가득한 천정을 멍하니 쳐다봤다. 어두워진 방에 눈이 익숙해지자 처음엔 유난히 밝게 빛나던 천정의 별들이 더는 빛나지 않았다. 그걸 보자니, 그제야 네가 미웠다. 하지만 바보였던 나는, 네가 밉다는 생각을 하는 게 싫어서 다른 생각을 하려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예전에 빌었던 소원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소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슬픈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재미없던 여름 방학이 끝났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을린 구석 하나 없이 하얗기만 했다. 똑같은 서로의 모습에 내내 서운했던 마음을 풀며, 너를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게 짧은 미소로 화답한 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네 방학에 대한 얘기들을 내게 들려줬다. 그때 그 순간의 네 짧은 미소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가 아주 조금 바뀐듯한 기분이 들게 한 미소였다. 그날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가 막 지기 시작하는 시각에 만난 날이기도 했다. 그래, 노을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가 달라진 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 달라진 것이었다. ‘왜 그렇게 웃는 거야라는 질문을 네게 꺼내지 못한 이유는 무언가가 끝이 나고 있다고 외쳐대는 노을 때문이었다. 나는 일부러 점점 모습을 감추는 해를 보지 않으려 했다. 너만 보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앞의 너는, 저 멀리 지는 해를 따라 밝은 주홍빛에서 담갈빛으로, 그다음엔 남빛으로, 마지막엔 어두운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나 이사 가. 내일부턴 기다리지 마. 미안해.”

     

    겨울방학에 대한 생각을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너는 또,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에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누군가를 다시는 못 본다는 일을 난생처음 겪은 나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널 보며 더러운 손만 꼼지락거렸다.

     

    . 그래.”

     

    내 대답은 너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내일부터 너를 기다리지 말라는 네 말을 듣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내가 내뱉은 건 그저 두 개의 단어였다. ‘이럴 거면 오늘 같이 놀지 말지 그랬어.’ ‘나 이제 그네 혼자 탈 줄 알아. 너도 그거 알았잖아. 그런데 왜 계속 모른 척하고 밀어준 거야.’ ‘난 네가 하는 미안하다는 말이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가루약보다, 시금치보다 싫어.’ ‘왜 내 눈 피해. , 네 눈 좋아하는데. 엄마,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데.’ 하고 싶었던 그 모든 말을 대신해 나온 두 개의 소리였다.

     

    네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에게 잘했다며 칭찬을 하고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더럽다는 건 기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손가락이 차다는 걸 쓰다듬어지는 머리의 피부로 느꼈고, 그러고 나서야 손가락이 시리단 걸 손가락의 피부를 통해 직접 깨달았다. 그 서투르고 느린 깨달음의 과정에 나는 결국 울어버렸다. 내가 목이 터져라 크게 울면 혹시 네가 그걸 듣고 다시 나를 보러 오지는 않을까, 잠시 나다운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아니, 어쩌면 너도 나처럼 울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동시에 목청껏 우느라, 서로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서로에게 나한테 빨리 와줘라고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외치느라,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 그래.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는 건데, 내 꿈은 너를 만나는 거였다. 그렇다면 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너도 나랑 같았을까.




    00. 정말 오랜만에 쓴 단편이에요. 한 달 전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끝냈어요. 원래는 며칠 뜸?을 들였다가 고치고 올려야 하는데. 그냥 후딱 해치우고 싶어서 바로 올려요. 이 단편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이야기도 뭔가 계속 길어지려고 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말이 안 나오네요. .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던 글이었어요. 동화 같은 느낌,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났으면 했는데. 예쁜 척하는 느낌이 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네요.  


    놀이터에서.jpg

    01. 며칠 전에 지금 머무는 동네 구경을 했어요. 그냥 그 날은 집에 들어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런데 정처 없이 걷다가 작은 놀이터를 발견해서, 거기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터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은 거지만. 보여드리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02. 방학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 원래 겨울 좋아하는데, 이제 안 좋아하려고요. 큰일이다. 여름도 안 좋아하는데.

     

    03. 제가 홍시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 단편을 쓰면서, 나중에 애완동물 기르면 홍시라고 지어도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04. 제 꿈은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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