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가 생긴 배경에 여성이 현재 사회적으로 받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완벽하게 동등한 지위엔 이르지 못했으니까요.
메갈리아에서 자주 꺼내는 말 중 여성혐오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을 2등시민같은 느낌으로 남성과 구분하여 보는 것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여자가 말하는 것보다 남자가 말하는 걸 좀더 귀기울여 듣는다거나, 여자 직원이 응대하면 남자 직원을 바꿔달라고 한다거나,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여자라고 생각하는 등의 악의 없는 대접들이 여성혐오의 예시지요. 즉, 악의가 없이도 여성혐오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이 억눌려온 세월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메갈리아는 명확하게 잘못된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간베스트의 경우에도 인터넷상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일방적으로 억압받던 상황에서 반작용으로 태어난 사이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억압받던 시절이 있었다고 해서 일간베스트의 패륜적인 언행에 동조해줄 이유가 있었나요? 아니었습니다. 온 사회가 하나가 되어서 일간베스트를 막으려 노력했지요.
그런데 당시에도 일간베스트를 막는 걸 돕지 않은 집단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요? 그랬다면 굳이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런 분석에 따른다면 일베 등의 현상은 단지 입을 틀어막고 처벌한다고 사라지는 수준의 일시적·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곧바로 ‘사이트 폐쇄’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른바 진보라 분류되는 지식인들조차 형사처벌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일베의 ‘막가는’ 발언들에 분노하는 건 자연스럽다. 광주 희생자를 두고 ‘홍어택배’ 운운하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자 나 역시 손이 떨렸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걸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일베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도, 흔히 말하는 진보쪽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래놓고 이제는 일베에 유일하게 대적한 게 메갈리아라고 주장하더군요.) 저는 그렇기에 진보가 정말 사회를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한국의 진보는 약해보이는 사람을 돕지, 옳은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간혹 강자가 더 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아요.
이와 같은 헤이트 스피치는 막아야 하는게 맞고, 그게 올바른 방향입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헤이트 스피치를 막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요.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보다도 헤이트 스피치를 막는 것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헤이트 스피치가 무분별하게 허용되면 사회의 갈등은 굉장히 쉽게 전파되고, 사회 구성원들 중 약자일수록 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니까요. 실제로 메갈리아의 헤이트 스피치 역시 한국 남성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남자 동성애자나 남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건 본인들이 명분으로 들고 있는 인권 문제 등과도 전혀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갈리아같은 단체는 존재해선 안됐고, 앞으로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전라도 혐오 등을 내뱉는 일베가 사라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만, 메갈리아의 탄생 과정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았던 불합리한 대우 자체는 눈여겨볼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여성이 받고 있는 사회적 억압이 아니었다면 메갈리아같은 곳이 생길 여지가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메갈리아같은 혐오 단체의 지지기반이 이와 같이 여성이 받고 있는 사회적 억압이라면, 이런 사회적 억압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 메갈리아를 지지자들과 갈라놓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메갈리아같은 혐오 단체와 어떻게 하면 싸울지 고민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뿌리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거지요.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자도 충분히 많은데(트럭 운전자 등의 흉폭운전은 다들 겪어보셨을 겁니다) 여자에 대해서만 김여사라고 부를 때,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면 "여자가 운전을 더 못하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하기보다는 "앞으로 이런 표현을 쓸 때는 고민해 보겠다" 하는 등의 의식적인 개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후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개선노력 등, 실제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해결할 노력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메갈리아같은 혐오단체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면 사법기관에 연락을 하는 등의 노력을 동시에 하는 것이,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지금 메갈리아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메갈리아에 대한 응원이 여성 인권에 대한 응원이라는 잘못된 관념에 얽혀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혐오단체에 대한 응원은 그냥 혐오에 대한 응원인거고,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은 그와 별개인 거죠. 그리고 저희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이 둘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메갈리아에 대한 사회의 지지 역시 중장기적으로 끊어질 것이고, 단순한 혐오를 목적으로 메갈리아를 했던 사람들이 이상한 명분을 쥐게 되는 상황 역시 타파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