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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22318
    작성자 : 지퍼래빗
    추천 : 1
    조회수 : 289
    IP : 222.235.***.155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10/25 21:09:31
    http://todayhumor.com/?readers_22318 모바일
    3. 퇴고는 할 수 없어

     

    3. 퇴고는 할 수 없어

     

     

      “해리!”

    벌어진 어깨로 집 한 채는 가릴 만큼 덩치가 좋은 남자가 지저분한 손으로 코밑을 닦았다. 그는 굉장히 난폭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딱히 화가 들끓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항상 그랬다.

    해리! 어서 와라! 느려 터졌구나, 정말로.”

    남자의 뒤에서 힘겹게 숲길을 오르고 있는 쪽은 젊은 사내였는데 흰 피부를 위에서 덮고 있는 금발의 곱슬머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힘에 겨워 숨을 토해대는 해리의 비취색 눈동자는 눅눅해진 낙엽과 숲의 이끼 사이에서 그저 여린 사슴처럼 선하고 신비하게 보였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남자는 바쁘게 손짓을 하면서 해리의 걸음을 재촉했다. 해리는 서둘러서 남자를 따라잡았다. 남자는 해리가 짊어진 가방을 한 손으로 낚아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뭘 들고 다니는 거냐. 이래서 내가 혼자 사냥을 다니는 거지. 너 같이 허약한 놈은 사냥을 하는 게 아니라 당하고 말 거다. 내 말 명심해. 여긴 늑대도 있고 곰도 있으니까 말이지. 특히 여기 늑대들은 곰도 사냥한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어린 수곰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도 믿지 않았을 거다. 여기 늑대들은 면도칼처럼 사납고 자비가 없지. 너 같은 놈을 사냥하는 건 심심풀이 놀잇감도 못되는 일 일거니까. 사냥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지금이라도 접으라고.”

    해리는 그저 순하게 웃을 뿐이었다. 남자도 그런 해리의 표정을 보고는 뭐가 마음에 들었던지 호탕하게 웃으면서 앞서 걸었다. 남자의 큰 걸음 뒤를 따르는 해리의 모습은 마치 덩치 좋은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처럼도 보였다.

     

     남자는 스프러스를 이용해 수공식으로 지어진 산장의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의 경첩에서 녹슨 쇠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들어와라.”

    해리는 남자를 따라 오래되고 음침해 보이는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고 불쏘시개를 집어넣어 해가 뜬지가 한참인데 여태 눅눅한 산장 안을 밝혔다. 훈훈한 열기가 퍼져나가며 산장 안을 데우는 건 꼭 동화에서 마법을 쓰는 장면처럼 멋지고 빨랐다. 남자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내서 해리에게 던졌다.

    숲에선 해가 일찍 저물거든. 지금은 사냥을 나가봤자 수확이 없으니까 빵하고 육포로 배나 채워둬.”

    받아든 주머니에서 마른 빵 한 조각을 꺼내서 반을 나눈 해리는 한쪽을 입에 물고 씹었다.

    그런데 해리 너는 사냥 같은 거랑 어울리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를 따라오겠다고 한 건지 말해봐라. 마리한테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던 게냐?”

    남자는 난로 앞에서 불쏘시개를 던지면서 웃었다.

    그냥 사냥을 배우고 싶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안 계셔서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노아 아저씨가 나서는 걸 보고 그냥, 따라오고 싶었습니다.”

    그래. 마리가 고생이 많았지. 널 혼자 키우느라고 말이야. 덕분에 지금은 곰보다도 사납게 변해버렸어. 예전에 마리는 손수 빵을 구워서 나눠주고 그랬었는데. 마리한테 잘 보이는 건 쉬웠지. 그냥 뭘 주던 간에 받아서 꿀꺽 삼키고 맛있다고 칭찬하면 그만이었거든.”

    노아 아저씨는 어째서 재가를 하지 않으시나요?”

    , 마리하고 나하고 중매라도 서려던 참이냐?”

    해리는 노아의 말에 안색에 그늘이 졌다. 노아는 그저 껄껄 웃어대기만 했다.

    마리하고 나하고 이어졌어야 했지. 마리가 예전엔 진짜 끝내줬거든. 축제 때마다 춤추는 걸 보려고 모든 남자들이 꼬리를 흔들고 따라다녔지. 물론 네 엄마가 헤펐다는 얘긴 아니다. 마리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은 어딜 봐서 그런 모습을 상상하겠니.”

    노아는 의자를 끌어서 엉덩이 밑에 쑤셔 넣었다. 거기에 무거운 몸을 앉히고는 해리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었다. 난로에서 퍼지는 진홍색의 열기는 그의 얼굴을 물들였는데 난폭하고 사납게 생긴 얼굴이 조금은 자상하게 비쳐졌다.

    고민이 있거든 말해봐라.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소문은 내지 않으마. 입이 무거워서라기보다 나랑 말을 나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팔짱을 낀 노아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해리도 표정이 누그러졌지만 웃지는 않았다.

    너도 혼기가 찼으니까 말이다. 여자 문제가 있을 테지. 나보다 여자를 잘 아는 놈은 이 주변에 없고말고. 여자는 말이야. 무슨 얘길 하든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어. 어차피 그녀들한테 의미가 있는 건 행동이거든. 그러니까 말이다. 네 아랫도리가 비실비실하지 않다면 그냥 과감하게 질러버리라고. 무슨 얘길 하든 귀담아 듣지 말고 말이야. 멋지게 성공해내기만 하면 얼굴을 붉히고 네가 나쁘다고 말할 거다. 그래, 항상 그렇게 되지.”

    노아는 뭔가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너는 이렇게 얘기해주면 되는 거야. 주제도 모르는 년, 너를 이렇게라도 안아주는 남자는 나뿐이니까 고마워하라고! 이렇게 말이지. 여자가 욕을 하는 건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야. 나한테 엉덩이를 들이밀고 싶은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지. 모든 여자가 그래. 알겠니?”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남자끼리 주고받는 퇴폐적이고 허풍이 가득한 우스갯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을 뱉어대면서 노아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해리는 그의 이빨에 낀 이물질 때문에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노아의 이에 낀 썩고 있는 찌꺼기에서 악취가 풍기고 그 노린내가 살을 파고들어 피부 아래의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해리는 가만히 앉아있기가 불편해졌다. 그의 위장이 요동치고 가슴 안에서 공기가 끝없이 팽창하며 견디기 힘들게 몰아붙였다. 해리는 진심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시큼한 토사물의 냄새와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골목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그들을 제지하고 있었다. 골목의 안에서 코를 비비며 나온 남자는 경박한 걸음으로 뒤를 따르는 남자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루이스 검사님. 아까 경감이 그러는데 여자의 신원은 길거리 창부랍니다. 꽤나 성질이 나빠서 거리에선 유명했다고 하네요.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괜히 독설을 뱉어대고 그랬다고 합니다. 뭐 재수 없게 범인의 기분이라도 건드렸을까요?”

    루이스가 올리버를 옆에 나란히 걷도록 하고 얘기를 받았다.

    범인은 이번에도 편지를 남겼지. 희생된 여자와 전혀 다른 인물에 대한 형편없고 정돈되지 않은 묘사를 해둔. 펜촉이 발견되지도 않았고, 저 자리에서 뭔가를 썼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아마도 미리 써온 것이겠지. 계획을 했을 거네.”

    맞습니다. 이번에는 둔기로 뒤통수를 부숴버렸어요. 그리고 피해자의 가슴에 편지를 두고 갔단 말이죠. 꼭 우리에게 보이기 위해 그런 것처럼?”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용은 우리한테 보낸 메시지라는 생각은 안 들더군.”

    올리버는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긁어댔다.

    경감이 저번에 현장에서 지문은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여자의 것과 산장 주인의 것은 찾긴 했는데 무엇보다 종이와 펜, 잉크, 탁자 등에서 지문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포기한 거 같아요.”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잡기 쉽지 않을까요? 지문을 파내거나 지워버린 녀석일 테니까.”

    아니야. 장갑만 끼워도 지문은 발견할 수 없잖은가. 굳이 지우지 않아도 지문을 감추거나 다른 이의 것으로 속이는 것쯤은 쉽지. 이스데일 살인범도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살해현장에 잔뜩 찍혀있던 지문의 주인은 하수도에서 쥐한테 뜯어 먹히고 있었어. 살인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말이야. 오히려 지문보다 더 선명한 게 있네.”

    올리버가 그게 뭐냐는 얼굴로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는 손에 쥔 범인의 편지를 들여다봤다.

    필적이지. 진심으로 써낸 글에 남긴 필적. 여기엔 범인의 심리와 직업, 나이와 성별부터 성격까지 담겨있을 거네. 우리가 그걸 해독할 수 없다는 게 한스럽군.”

    에든버러에 유능한 수사고문이 있잖습니까. 돋보기를 들고 다니는 괴짜 같은 사람. 그 사람에게 자문을 청해볼까요?”

    아니. 이 정도는 우리가 해결해봐야지. 여기 경찰들이 무능하다는 인식을 퍼트려서는 곤란해.”

    올리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편지를 들여다봤다. 사실 그는 루이스가 자신의 경력에 흠이 가는 걸 꺼려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젊고 유능한 편이기도 했기 때문에 수긍이 되었다.

    피해자의 신원파악은 아직이라고 하던가?”

    . 금방 찾을 겁니다. 얼굴을 도시 곳곳에 뿌려대고 있으니까.”

    루이스와 올리버는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갈라진 길을 나눠서 걸었다. 루이스는 계속 편지를 들여다보고 범인의 동기를 찾는데 몰두했고 올리버는 경감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걸음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불꽃을 들여다보고 웃어댔다. 계속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어떤 여자들을 만나서 어떤 식으로 몸을 섞었는지, 그 여자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충실했는지에 대해서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러면서 해리에게 은근히 자신을 떠받들기를 부추겼지만 해리는 그저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어떠냐, 해리. 혹시 여자와의 경험이 아직인 거냐? 네 거시기가 제 구실을 하는지 못하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손으로 백날 붙잡고 졸라대도 네 게 그 여자보다 기가 셀지는 모르는 거라고. 말 그대로 상대를 하는 거니까 말이야. 평소에 멀쩡하던 놈도 실전에 부딪히면 기가 팍 꺾여버리기도 하니까. 네가 얼마나 센지 스스로 기억해둬야 해.”

    노아 아저씨는 여자를 자주 상대하시나요?”

    해리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나 애쓴 만큼 감췄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여린 떨림이 속해있었다. 우쭐대고 있는 노아의 귀에는 그것이 유의미하지 않았으나 해리는 토해지는 복장의 떨림을 더는 감추기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진짜 남자지. 꽃다발을 주고 시를 읊어주고 간지러운 서약이나 지껄이는 놈들은 전부 거시기가 부실한 것들이야. 한심한 것들이지. 여자를 홀려서 감추는 거라고. 나약하고 한심한 아랫도리를 말이야.”

    노아는 혓바닥으로 아랫입술을 문질렀다. 해리는 노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얼마나 여자를 자주 상대하느냐고 물었냐? 그래. 어떻게 여자를 만족시키는지 궁금했던 거로구만.”

    해리의 질문에 노아는 잔뜩 으스대면서도 정작 대답은 속 시원히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해리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노아를 바라봤는데 이번에는 노아가 해리의 시선을 피했다.

    바깥에 나가봐야겠다. 곰이 노크를 하면 잠이 깰 수도 있으니까.”

    싱거운 농담을 구실로 문 쪽으로 걸어가는 노아를 해리는 매섭게 바라봤다. 그러고는 가방 안에 든 단단한 나무조각상을 거꾸로 쥐고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노아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노아는 비명조차 뱉어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피를 뿜어대며 움찔움찔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노아를 내려다보는 해리의 눈동자는 오한이 일듯이 싸늘하고 오싹했다.

    해리는 바닥에 누운 노아의 경련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결국 그의 몸이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하자 자신의 가방에서 작게 말아진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해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노아의 가까이로 가지 않고서 콧구멍으로 숨을 잔뜩 빨아들였다. 비릿한 피 냄새와 음습한 죽음의 향기를 가득히 머금고서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섰다.

    해리는 자신의 가방에 피가 스며든 나무조각상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방에 들어있는 와인 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고 노아의 등에 뿌렸다. 그건 비릿한 동물의 기름 냄새를 풍겼다.

    다시 한 번 차갑게 노아를 내려다보는 해리는 누구하나 듣는 이가 없음에도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사랑. 당신의 웃는 걸 보는 게 이토록 행복한 만족을 주는 일인 걸 아시나요? 당신의 웃음을 봐요. 그건 번번이 나를 풍요롭게 하지요. 평생을 보고 살 수 있다면 온종일 그늘에 서 있어도 좋아요. 정오에 해 아래 누워 있어도 좋아요. 하지만 지나간 향기는 멀어져가는 걸요. 계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쫓을 수 있다면 좋을까요. 그것은 떠났기에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네요.’


     해리는 산장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바닥에서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워 문이 닫히지 않도록 개었다.

    해가 어느새 숲의 가장자리에 걸쳐져 모든 어둠들이 오히려 해를 쫓는 모양새가 되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해리는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갔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렸으나 해리는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꼭 오늘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는 것처럼 그의 걸음은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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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27 09:07:14  122.43.***.29  petrichor  540299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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