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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22220
    작성자 : 지퍼래빗
    추천 : 4
    조회수 : 539
    IP : 222.235.***.155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5/10/19 22:29:39
    http://todayhumor.com/?readers_22220 모바일
    1. 나는 문학적 소질이 없다
    옵션
    • 창작글


    1. 나는 문학적 소질이 없다

     

     

     

    아주 캄캄한 방 안에서 소심한 인기척이 일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바짝 붙었다가 떼어지면서 나는 찝찝하고 불결한 소리. 쥐가 그러는 것보다도 조용하고 가벼운 움직임은 작게, 작게 낡고 먼지 낀 바닥을 돌아다녔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밤의 을씨년스런 호흡이 방을 가득 채웠다가 겨우 안에 있던, 이미 초라해진 생기를 모조리 빨아들여 버렸다. 그것에 생명마저 빼앗긴 듯이 이제 방을 배회하는 무기력한 기척은 귀신의 행색처럼 흐리고 옅어져 갔다.

    그러다 그 발걸음의 주인은 무슨 골똘한 생각 중이었던지 이제 와 허둥지둥 창문을 닫고 밤의 들숨으로부터 방의 온기와 향기를 지켰다.

    물가에 내놓는 처녀의 발목처럼 창을 통해 드리운 달빛은 앙상한 남자의 메마른 얼굴을 비췄다. 남자의 얼굴은 수척했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 달빛 위에 잠시 머무른 그는 닫힌 창문 앞에서 이제, 망자라도 된 듯이 시선에 초점을 잃어갔다.

     

    남자는 방 안을 서성였다. 느리지만 느긋하지 않은 초조함으로. 조용하지만 침착하지 않은 소란함으로.

    그는 이따금씩 코를 벌렁거리며 퀴퀴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만족스러운 듯, 얼굴에 슬며시 홍조도 일었다. 그는 새빨간 혀를 꺼내어 입술에 침을 바르고 몇 번이고 콧구멍으로 허공에 남은 흔적을 삼켰고 자신의 폐부에 그것을 남겼다.

    황홀한 표정, 남자는 지저분했고 무력했지만 방의 공기를 머금을 때마다 그는 봄에 있었고 여름에 있었다.

    남자에겐 영롱한 빛이 내리쬐고 그가 입은 옷은 고급 원단을 사용해 부드러웠으며 어느새 사람들은 남자를 향해 박수를 쳐대며 미소 지었다. 남자는 우쭐해져서 손을 뻗어 유영하는 찬란함을 만졌으나 이내 불은 꺼지고 바로 손끝에서 빛나던 금물결은 부서진 하얀 먼지로 변해 그의 손을 떠나고 있었다.

     

    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끈적한 소리. 불쾌하고 불길하며 음흉한 욕망을 들고 움직이는 소리. 남자는 그 앙상한 몸으로도 기댄다면 허물어져 버릴 듯이 낡은 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깃이 군데군데 빠진 초라한 펜을 쥐고 잉크에 촉을 적셨다. 이제 음침하고 소곤대던 그의 발소리는 종이를 긁어대는 날카로운 펜촉의 매서운 열정으로 바뀌어 방 안을 채웠다.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로, 기록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펜을 집어던져버렸다. 그리고 편집증 환자처럼 검지로 빠르게 탁자를 두들겨댔다. 초조한듯 나머지 손으로 더러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손톱을 깨물고 눈을 비볐다. 자신의 뺨을 긁고 또 주먹을 움켜쥐다가 남자는 다시 일어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듯이 방 안을 떠도는 관념을 마셨다. 그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 싶었다.

     

    남자는 창가로 가 종이를 달빛 위에 놓고 그것을 읽었다. 어느새 말라버린 입술은 떨리며 힘겹게 떼어지고는 늙은이처럼 쉬어버린 그의 목소리를 흘려냈다. 남자는 처음엔 자신이 써낸 것을 읽는 듯 했지만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손에 쥔 종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소질이 없다. 저주받아 마땅한 신은 정녕 나의 어버이신가. 내게는 어째서 눈이 있는가. 어째서 코가 있고 입술이 있는가. 눈을 감지 않아도 아른거린다. 어째서 내게 그녀를 표현할 방법을 주지 않으셨는가. 사랑스러운 그녀를. 눈을 감지 않아도 아른거린다. 엷은 입술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과실보다도 생기 있는 그녀의 두 뺨. 보석으로도 견주기 힘든 아름다운 눈동자가 언제나 내 눈앞에 있다.’

     

    남자는 창가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탁자에서 그랬던 것보다 훨씬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구름이 달을 반쯤 지나고 있었다. 눈앞에서 어둑함이 짙어지자 남자는 창틀에 손을 기대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결국 모든 걸 체념한 듯이 힘없이 탁자로 걸어가 종이를 내려놓고 창의 반대편 벽으로 그늘로 걸어갔다. 더욱 드리운 어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은 남자는 또다시 코를 벌렁거리며 숨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남자가 마주하는 벽에는 하얗고 창백한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구겨진 얼굴은 그가 말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고통의 절규였다.

    그는 여자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 바닥에 흥건한, 방 안의 유일한 색을 밟고 섰다. 여자의 가슴을 관통해 벽에 단단히 박힌 쇠못을 손으로 더듬으며 남자는 여자에게 코를 대고 숨을 빨아들였다. 마치 그녀의 떠나지 않은 영혼을 마시려는 것처럼.

     

    남자는 낡고 구겨진 구두에 새빨간 발을 넣었다. 그리고 먼지가 잔뜩 쌓인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썼다. 그는 방 안을 돌아봤으나 어둠에 숨은 여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더럽고 악취 나는 방을 가렸다. 사악함과 음흉함에 희생된 피해자의 끔찍한 절규가 가득한 방의 문을 닫아버렸다. 낡은 나무집 위로 세상은 검었으나 새하얀 눈 때문에 대지는 빛났다. 남자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검은 시선의 끝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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