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짜증나는 서폿 남자 얘기를 하려고 한다. 매번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뻑이 섞인 말을 하고, 가끔씩 쓸모있는 장신구를 판매하고 있는 남자 이야기다. 그 남자는 그랑플람 판매점 근처에 산다. 그를 묘사하는 건 별로 소용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짜증나는 남자는 아침에 한 번 중급 진격을 돌고, 오후에 한 번 일반전을 하고, 클랜원과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이 주일이 지나면 장신구를 바꾸어서 판매했다.
그건 언제나 똑같았고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그랬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번은 특별한 날이 찾아왔다. 햇빛이 비치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이었다. 새들이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아이들이 불타고 있는 그런 날 말이다. 다른 날과 달랐던 점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신발을 찍고 이속킷을 빨아가며 걸음을 재촉했고, 춤추듯 무릎까지 까딱까딱 흔들며 즐거워했다. 수호자가 있는 Y존 앞으로 들어서자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했고, 언덕에 다다라 박스위로 올라가서는 주머니에서 그랑주화를 꺼내 한타를 열었다. 그러나 공성전은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허리 하나, 바지 두 개, 셔츠 두개. 그리고 본진에 돌아가자 다시 트루퍼 리젠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모든 기쁨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엄청난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두 눈을 꽉 감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힘껏 쥐고 쳐들었다가 책상을 내리쳤다.처음에는 한 번, 그리고 나서 또 한 번 내리쳤고, 그런 다음엔 책상 위를 북치듯 두들겨대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달라져야 해, 달라져야 한다구!"
그러자 시계 가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양손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목이 쉬어버렸다. 그리고 시계 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나 똑같은 신발, 언제나 똑같은 장갑, 똑같은 셔츠, 똑같은 바지 순서야. 그리고 나는 장갑을 장갑이라고 부르고 모자를 모자라고 하고, 신발을 신발이라고 부르지. 또 바지는 바지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사이퍼즈 사람들은 시바 포를 '시바'라고 하고 센티넬을 '립', 수호자를 '수호구', 그리고 욕은 '♡♡'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롤하는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말이 통한다.
"어째서 신발을 장갑이라고 부르지 않느냔 말야."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웃음을 터뜨렸는데, 이웃들이 벽을 두드리며 '조용히 합시다' 하고 고함 지를 때까지 그는 웃고 또 웃었다.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신발을 '궁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진격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진격전의 매칭을 기다리는 채로 이제부터 장갑을 뭐라고 부를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장갑을 '바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릭우리브루스를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궁링'을 신고, 1바지에 1모자를 찍고 있었다.
그러나 모자는 이제 더 이상 모자가 아니었다. 그는 모자를 '허리'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남자는 첫 시작에 궁링을 찍고 달려가면서 1바지와 1허리를 찍고 몰려오는 철거반을 맞이하며, 무엇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신발을 궁링이라고 불렀다.
장갑을 바지라고 불렀다.
머리는 허리라고 불렀다.
허리는 머리라고 불렀다.
셔츠는 목이라고 불렀다.
바지는 장갑이라고 불렀다.
목은 셔츠라고 불렀다.
후퇴핑은 공격핑이라고 불렀다.
유니크는 언커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브론즈는 에이스라고 불렀다.
남자는 이 일에 재미가 들어 온종일 연습해서 새 단어들을 암기했다. 이제 모든 것의 이름이 달라졌다. 그 자신도 이제는 서폿이 아니라 근딜이 되었다. 그리고 스톰쉐도우는 고인이 되고 근딜은 탱커가 되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나름대로 계속 써나갈 수가 있다. 여러분도 이 남자가 한 것처럼 다른 단어들을 바꿔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 남자는 모든 사물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을 익혀가면서 차츰 원래의 명칭을 잊어버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혼자만 알고 있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했다.
어느새 그는 이 새로운 언어로 가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배운 노래들을 자기 언어로 바꾸어 그 노래들을 작은 소리로 혼자 불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처럼 자기 언어로 번역을 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옛날에 쓰던 언어를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위키에서 원래의 뜻을 찾아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이 물건을 뭐라고 부르는지 한참 생각해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그래서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난 도망갈 꺼에요!" 하고 말하면 그는 큰 소리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또는 이런 말을 들어도 웃음이 나왔다. "꼴에 애쓰는군."
이런 말도 우습긴 마찬가지였다. "눈떠!! 눈뜨라고..!!"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모든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사실 우스운 얘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 시직되었고 슬프게 끝이 난다.
오리진을 입은 그 뚜벅이 서폿 남자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이해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신고를 당해 3일간 게임접속 금지가 걸린 그는
그때부터 채팅과 보이스를 누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아군과 적을 차단했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했고,
더 이상 인사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