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국민 우롱하는 비겁한 ‘새누리 비박계’

등록 :2016-12-02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7일 오후 6시까지 내년 4월 퇴진을 분명히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탄핵안 표결(9일)에 동참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뜻 보면 박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최후통첩이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탄핵 추진에서 발을 빼는 수순이며, 박 대통령에게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대통령직을 보장하겠다는 술책일 뿐이다. 수백만 촛불의 열기에 놀라 금세라도 국민 편에 설 것처럼 행동하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어찌 이리 얍삽하고 비겁할 수 있는가. 박쥐처럼 처신하는 정치인은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대통령 옹위에 앞장섰던 친박계는 그렇다 치자. 그나마 국정 파탄에 대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던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을 코앞에 두고 국민과 야당의 뒤통수를 치는 행태는 치사하고 얄밉기 짝이 없다. 비박계는 ‘4월 퇴진’을 말하면서 박 대통령의 즉각적인 2선 후퇴나 직무정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몇달간 박 대통령에게 인사권을 비롯한 통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속셈이다. 헌법을 유린하고 추호의 반성도 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

애초 탄핵을 먼저 주장했던 건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었다. 심지어 김무성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을 만난 걸 가장 후회한다”며 탄핵 발의에 앞장서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신뢰를 잃은 대통령의 모호한 담화 한마디를 이유로 탄핵에 반대하니,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쏟아지는 항의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단지 ‘홍위병의 선동’(정진석 원내대표)이라고만 치부해선 새누리당 전체가 박 대통령과 함께 촛불의 분노에 녹아버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