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내년 4월 30일 스스로 물러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차질을 빚는 것은 특검의 수사 일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수는 최순실 씨에 대한 재판이다.
4월 30일 이전까지의 정치 일정 및 검찰 수사 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특검 기간 동안 박 대통령은 온전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된다. 특검 가동은 11월 30일 개시됐고, 최장 120일 동안 수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3월 말에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을 써야 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쓰는 공소장과, '퇴진 (혹은 직무정지) 대통령'에 대해 쓰는 공소장은 완전히 다르다.
특검 수사? 제대로 될 리 없다. 박 대통령은 현재까지 대통령 신분으로서 해야 할 업무와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등의 이유를 들어 검찰 수사를 세 차례나 거부해왔다. 특검 조사에 성실하게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통 이런 경우 검찰은 강제 구인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왜?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만약 탄핵과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가 조기에 나오거나,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시점을 임기 만 4년을 채운 2월 하순 정도로 상정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기간 안에 박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가 가능해진다. 박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서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성실한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 4월 말 퇴진은 특검을 대비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4월 말을 제안한 것은, 결국 대통령직을 유지하면서 특검 수사 공소장을 받아보겠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 다음 변수는 최순실 씨 등에 대한 재판이다.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1심 공판은 오는 13일부터 시작된다. 1심 재판에서 직권남용·강요·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놓고 치열하게 법리 다툼이 시작되겠지만, 박 대통령이 받는 혐의는 '직권남용 공범' 수준이다.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를 못했던데다, 수사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앞의 공소장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재판 일정을 감안하면, 1심 판결이 내년 4월 전에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만약 최 씨 등이 직권남용 부분에서 무죄 판단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박 대통령은 면죄부를 쥐게 된다"고 했다. 이 점을 박 대통령의 변호인들이 노리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직권 남용의 경우 법원이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재단이 공식적으로 정부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직권 남용이 해당될지, 검찰이 이를 어떻게 입증해 낼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특검이 수사하게 될 뇌물죄에 대해서도 "전두환, 노태우가 '포괄적 뇌물죄'에 적용됐던 이유는 본인들이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과연 박 대통령이 '제3자 뇌물죄'를 적용받을지 여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 종합하면 '4월 말 퇴진'이라는 시점은 박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 등, 본인의 법률 보좌진의 조언을 참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직의 이점? 매우 많다. 내년 1월에는 검사장급을 포함해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다면 검찰 인사에 관여할 수 없지만, 박 대통령이 직을 유지하면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최 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 유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까지 간다면 내년 1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 그리고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명권도 박 대통령이 가져간다.
만약 최 씨의 재판 결과가 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박 대통령은 퇴진 약속을 뒤집고 임기를 채우려 할 가능성이 높다. 퇴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친박계와 박 대통령의 최종 목표인 '임기 만료'는 여전히 아직 진행중이다. 박 대통령의 일정표에는 사실 '탄핵'도, '조기 퇴진'도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내년 4월까지 보장하는 것은 그래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특히 야당 입장에서는 '독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차기 권력을 이미 다 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야당이 정치적 일정에 매몰돼 계산기를 꺼내들 때, 박 대통령은 차근차근 '무죄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고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성명을 내고 "국민은 4월까지 기다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며 "4월 퇴진은 범죄자 박근혜가 자신의 혐의를 세탁하는 시간일 뿐이다. 여야 당쟁으로 국정혼란은 더 가속화되고, 불법 통치가 계속되는 재앙의 시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4월 퇴진' 선언 뒤 시나리오는?
탄핵 무산→박 대통령, 특검 수사 거부→차기 정부 추가 수사 포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시한'이 일주일 뒤인 9일로 정해지면서 정치권에서 전망이 분분하다. 부결 변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4월 퇴진'을 선언하는가 여부다. 다만, '촛불 민심'과 야당은 '4월 퇴진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며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관련 기사 : "4월 퇴진? 민심 역행하는 여의도서 촛불을 들자!")
만약 오는 7일께 '4월 퇴진론'이 현실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비박계는 탄핵 불참을 통보하고, 9일 탄핵안은 정족수 미달로 부결될 확률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국정에 복귀하고,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동안 '불소추 특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특검은 박 대통령을 기소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이 '국정 수습' 등의 이유를 들어 대면 조사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관련 기사 : "4월 퇴진"은 '박근혜 무죄 프로젝트')
한 정치학자는 2일 "탄핵안이 부결되면 대통령이 4월에 명예롭게 하야하고, 대선이 치러질 것"이라며 "대선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당과 비박계는 연말부터 2017년 4월까지 개헌 논의에 올인할 것"이라고 봤다. 또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국민 통합 차원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추가 수사를 하지 않고, 박 대통령은 퇴임 대통령의 예우를 받으며 편안한 여생을 보낸다. 이로써 청와대와 비박계가 계획한 '명예 퇴진'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면에 "국민은 '내가 이꼴을 보려고 그 추운데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정치 혐오에 빠지게 된다"며 "제2의 김기춘, 우병우가 정치판에 넘쳐나고, 한국 민주주의는 막장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정치학자는 "탄핵은 상대가 분열했을 때 정신 없이 몰아붙여서 하는 것이지, 계산할 것 다 해가면서 하면, 제 꾀에 속아넘어가기 마련"이라며 "정치에는 기세와 타이밍이 있다. 탄핵은 끝났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이변이 없는 한'에서 이제 남은 유일한 이변은 '촛불'"이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촛불 민심이 비박근혜계를 압박해서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시나리오', 이에 끌려가는 (척 하며 손익 계산에 바쁜) 야당들에게 방심할 틈을 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는 다소 낙관적인 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11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박의 이탈로 탄핵 소추안이 부결되면 어쩌냐고요? 임시 국회를 소집해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 사이 '친박' 외 '비박'도 매장되겠지요"라고 적었다. 임시 국회를 소집하려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동의가 있거나, 의원 20명의 발의로 국회의장이 결단해야 한다.
한동안 균열 조짐을 보였다가, '9일 탄핵안'으로 한 목소리를 낸 야권은 국회에서 '탄핵 촉구 농성'을 벌이며 탄핵안 처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4월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통령을 못 믿어서 약속을 안 지키면 '의원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하는 판에 누가 그 말을 믿습니까?"라며 "박근혜가 수일 내 4월 퇴진을 수용하는 대국민 사기극을 또 벌인다 합니다. 속지 맙시다. 탄핵만이 국민의 뜻입니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