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4학번입니다.<br><br>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br>참 풍요로운 시절이었습니다.<br>그 시절엔 몰랐지만 <br>제대를 앞두고 터진 IMF 사태를 겪으며,<br><br>X세대로 상징되는 그 또래들이 <br>얼마나 행복한 20대를 보냈는지 <br>새삼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 모두가 <br>시대의 아픔을 외면했던 것은 아닙니다.<br><br>95년 어느 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br><br>두 시간 짜리 지루한 강의를 듣고 있던 도중에<br>같은 과 친구가 뒷자리에 들어 와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br><br>뭐하다 이제 들어 오나 싶어 그 친구를 봤는데,<br>터진 입술에 피가 말라 붙어 있었고<br>머리는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더군요.<br>시커먼 손등에는 무엇엔가 긁힌 자국들이<br>멀리서 보기에도 확연했죠.<br><br>누구랑 싸웠을까?<br><br>수업이 끝나고 그 친구가 금방 사라진 탓에<br>그 친구에게는 아무 것도 물어 보지 못했고,<br><br>나중에 선후배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br>힘 없는 철거민들을 대신해 용역들과 맞서 싸우는<br>동아리에서 그 친구가 활동 중이었다는 거였죠.<br><br>왜인지 저는 미안했습니다.<br><br>그 이후로도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br>선배, 동기, 후배들이 경찰서에 끌려갔다더라 하는<br>소문을 들으며 그들과 함께할 용기가 없었던<br>저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했었죠.<br><br>저와 삶의 결은 다르지만 용기를 내어 <br>사회의 부조리와 맞서 싸웠던 친구들을 보면<br>저는 한낱 날라리에 불과했던 시절이었습니다.<br><br>"뭐라도 도울 일이 있으면 삐삐쳐라"<br><br>저는 그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지만<br>정작 그들의 연락을 자의반 타의반으로<br>외면해 왔던 것도 사실이었기에<br>그 미안함을 간직한 채 살아왔고,<br><br>저의 거의 유일한 정치활동이었던 투표에서는<br>나 대신 정의를 위해 싸워준 진보세력에게<br>꼬박꼬박 표를 던져 왔던 것이 <br>마치 그 마음의 빚을 더는 일 같았죠.<br><br>저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정의당과<br>심상정 후보에게 화가난 상태이지만,<br>진보 세력 모두를 싸잡아 비난할 마음은 없습니다.<br><br>다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br>그 빚을 갚기 위해 애쓴 제 마음의 곳간이<br>텅텅 비어버린 것만 같습니다.<br><br>세상이 바뀌고 적폐가 하나 둘씩 일소되면서<br>제 맘 속에 텅빈 공간이 채워지게 되면<br><br>적어도 우리 나라에 진보주의를 표방하는<br>정치세력이 소멸되어서야 되겠느냐 하는<br>생각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겠지만<br><br>지금은<br><br>더 이상 마음의 빚은 품지 않으려 합니다.<br><br>적폐청산의 꿈이 현실이 되는 그 날까지...<br><br>[아래 윤갑희 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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