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첫 날인 오늘의 데이트를 위해 여친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는 지하철 안. 평소와는 다른 한산함에 뭔가 이질감을 느낀 나는
황급히 뉴스공장을 들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랜만에 느낀 한산한 지하철 풍경에 1,2,3,4호선의 그 지옥철이 떠오르는 찰나에
씻어도 티가 안나서 5만원을 받지 못한다는 공장장의 발언에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도착해서 역 밖으로 나와서 걸으니 보이는 즐비한 높은 빌딩과 비싼 아파트, 빌라.
너무나 큰 이질감에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경상도 놈이 서울로 대학와서 취직도 하고 그렇게 살았지만 여전히 익숙지 않은 서울의 고층빌딩과 고가의 아파트. 고가의 빌라.
같은 평수의 같은 아파트라도 위치에 따라서 가격이 너무 차이나는 슬픈 현실에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느끼는 순간에
여자친구가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여자친구는 내 양 볼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날 맞이해준다.
뭔가 벽이 있는 상황에서 여자친구가 애써 허물어준다는 느낌을 받는 느낌. 고맙고 미안하고......
여자친구는 미용실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더 비싸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며 따라갔는데
여자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헤어디자이너는 여자친구의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이었다. 설 연휴인데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멋지기도 했고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뛰어든 모습에 나보다 성숙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2번 자리에 앉아서 어떤 스타일로 하겠냐는 말에
그저 투블럭. 잘 모르기도 했고 익숙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 나는 그저 투블럭. 마치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이 중립국을
고집하는 그 모습이랄까? 접수받은 여자친구의 동창은 집도 시작. 옆의 조수는 완전 신입인지 스펀지로 머리카락만 쓱쓱 닦아내고.
나에게 여자친구랑 잘 지내는지 얼마나 만났는지 기타 등등 묻는 말에 여자친구에게 말해도 된다는 허락의 눈빛을 받은 나는 하나씩
답변. 그러자 여자친구의 절친은 여자친구가 나의 자랑을 되게 많이 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더니 연애를 하더니
사람이 변했다면서. 첫 연애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람이 달라졌다는...... 나를 지칭해서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했다.
'따뜻한 사람.' 정말 괴리감이 큰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한 단어의 대상이 될 줄이야. 당황스러웠다. 칭찬이라도 해도.
그러자 여자친구는 읽던 잡지를 가지고 와서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 머리를 관찰.
휴대폰을 꺼내들면서 날 촬영하고. 헤어샵 원장이 있었으면 생각도 못할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원장은 설 때문인지 부재.
여자친구는 머리가 끝난 내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웠는지 밝게 웃었다. 무딘 내가 봐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 머리.
여자친구가 계산을 하려고 하자 나는 만류했는데 내 손을 뿌리치며 카드로 쓱. 여자친구는 날 보며 웃었다. 여자친구의 동창과 작별 인사를 하는
그 시점에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표현. '따뜻한 사람.' 여자친구에게 정말 내가 따뜻한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오빠는 따뜻한 사람이고 내 꺼야." 라는 말과 함께 내 입술에 뽀뽀를 해주는 여자친구.
참 살다살다 이 정도의 호사를 누려보나 싶었던 순간. 과연 살면서 이 사람이 아니라면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