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class=userContent>  <DIV id=id_5162e1331895f3d51927217 class="text_exposed_root text_exposed"> <P style="TEXT-ALIGN: center"> * * * * * * </P> <P> </P> <P> </P> <P>우리는 같은 초록색 방에서 잠이 들었지. 그리고 또 신기하게도 같은 시각에 눈을 뜰 때 네 첫마디는 '초록의 방이다.' 였지. 나는 네 그 말 한마디에 너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신발 한짝 들어가기 힘든 틈새로도 빗방울은 떨어진단다. 내가 비를 맞고 걸을 때, 너도 우산이 없었잖니. 하늘에 비한다면 우리 머리 두 덩이 정도야 신발 한짝 못 들이밀 작은 틈새일텐데도 우리는 똑같이 머리가 폭삭 젖었었어. </P> <P> </P> <P>나는 1993년에 '줄이 길어 결국 자기부상열차를 못탔다' 라고 쓴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 날 무턱대고 대전으로 내려갔어. 너는 거짓말일게 분명하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야. 밤 열 시에는 엑스포가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출발한 곳과 달리 대전에는 억수처럼 비가 온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을 수도 있어. 그래서 네가 나를 꼭 품듯이 안고 잤을까. 그 때 너는 역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어. 네 머리는 허리까지 올만큼 길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머리카락이 아직도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 생각했어. 나는 예전부터 궁금하던 사실을 물어보았을 뿐인데. 너는 직접 펴보라며 담배를 건넸어. 비가 와도 불은 붙더라고. 담배 한 개를 나눠 태우고, 결국엔 네가 거의 피우긴 했지만. 우리는 영화 한 편을 같이 보았어. 너는 엑스포가 아침 10시 쯤에 열 것이라 말했지, 팝콘을 집어먹으면서. <BR></P> <P><BR>내 손에 묻은게 팝콘 기름인지 땀인지 모르겠어. 나는 축축한 손으로 마찬가지로 축축한 네 손을 잡았고, 너는 내게 키스했어. 그 순간 네가 나를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어. 이상하지. <BR></P> <P><BR>초록색 방 안에서 너는 절 앞에 버려져 비구니들을 엄마, 아빠로 알고 지낸 친구 이야기 해주었어. 스님들과 지내서일까, 내가 맞추지 못한 외계인 문제를 그 친구가 정확히 맞췄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어. 솔직히<SPAN class=text_exposed_hide>...</SPAN><SPAN class=text_exposed_show> 말하자면 샘이 났어. 그래, 외계인이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둘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어. 나는 내가 썼던 동화들을 이야기해주었고, 너는 그 동화들의 공통점이 '둘'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집어내었어. 그래 둘. 고슴도치와 선인장이 만나 서로 불평하는 이야기에도, 생쥐와 고양이가 서로의 이름을 지어주는 이야기도 모두 둘이 등장해. 둘이 아니라면 나머지 하나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BR></SPAN></P><SPAN class=text_exposed_show> <P><BR>다음날 우리는 늦잠을 잤어. 급하게 버스를 탔지. 다른 도시에서 타는 버스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어. 너는 두 정거장만에 내려서 화장실을 가야했던 날 놀렸었지. 결국 엑스포에 도착했을 땐 너도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왔는걸. 내 일기장 속에 있던 번쩍이던 탑도, 꿈처럼 신기하던 과학실도 모두 낡은 골동품이 되어 있었어. 첫사랑을 다시 보거나, 재밌게 읽은 만화책을 또 다시 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을까. 너는 늘 교통용으로만 쓴다는 작은 카드를 꺼내 자기부상열차 티켓을 두 장 샀어. 마치 비행기 승무원처럼 차려입은 안내원이 단 둘만 타는 열차인데도 우리를 성의있게 안내해주었어. 이것은, 자기부상의 원리인 자석이며...<BR></P> <P><BR>1분간의 비행은 허무할 정도로 아름다웠어. 미안, 사실은 지하철이랑 별 다른 걸 못느끼겠더라. 일기장에는 8시간을 기다렸다고 되어 있었는데. 역시 그 때 탔어야 했나봐. 9시간을 기다려서라도. 1분만에 우리는 또 키스를 두 번 했기때문에 나는 나와 닮은 널 두 번이나 만났어. 레일을 미끄러져 가는 쌍둥이 극들 위에서. 도착지점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 한번 더 탈까? </P> <P><BR><BR>비맞은 옷에는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옆자리 아저씨는,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추적하려 애쓰고 있었어. 너는 버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지. 나는 창문을 눌러 손가락 끝으로 이렇게 썼어. </P> <P> </P> <P> </P> <P><STRONG>'네가 없다면 나는 무엇일까?' </STRONG></P> <P> </P> <P> </P> <P>너의 긴 머리카락이 멀리서도 너를 알아보게 만들었어. 둘이 등장하는 동화에 널 써도 될까? 편도로만 탔던 자기부상열차 얘기도? 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마치 그런 것 처럼 보였어. 정말로. <BR></P> <P> </P> <P> </P> <P> </P> <P> </P> <P>2012. </P> <P>가을, 헤어지던 날. </P> <P> </P></SPAN></SPAN></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