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PAN class=userContent> </SPAN></P> <P><SPAN class=userContent> </P> <DIV id=id_51589ffec5b171331475274 class="text_exposed_root text_exposed">상가 거리를 지나다 신간 행사를 하는 곳에 잠시 들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여자가 내게 굵은 매직펜과 나뭇잎 모양으로 잘라놓은 초록색 색종이를 건넨다. <BR>“가장 좋아하는 한 단어만 써보세요.” <BR>나는 잠시 망설이는 척을 했다.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펜을 받기도 전부터 적을 단어가 있었다.<BR>“어머, 정말로 이 단어인가요?” <BR><BR><SPAN class=text_exposed_hide>...</SPAN><SPAN class=text_exposed_show> 너는 재채기에 대해 얼마나 아니? 그러면 이렇게 되묻는 사람들이 꼭 있어. 너는 얼마나 알길래? 솔직히 말해주지, 나는 재채기의 달인이야. 재채기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지. 믿기지 않는다면 내 설명을 들어봐.<BR>수업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단어는 물체를 의미하는 이름으로, 같은 언어권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거야. 노란 육질에 빨간 껍질을 가진 과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모두들 그걸 ‘사과’라고 부르지. 단어는 실은 거짓말인거야. 만약 모두들 사과를 코딱지라고 부르기로 동의한다면, 내일부터 우리는 아침으로 군침 도는 코딱지를 먹을 수 있겠지. <BR>내가 아는 한, 그 거짓된 관계를 벗어난 유일한 단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재채기야. 재-채기는 (그래 재-채기야말로 재채기의 올바른 표기법이야. 하지만 네가 익숙한 재채기로 쓰기로 하자.) 그 어떤 단어로도 대체될 수 없어. 왜냐하면 재채기 자체가 이미 재채기를 내포하니까. 나를 따라 조심스럽게 발음해봐. 아주 천천히, 네 혀와 성대를 공기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잘 느껴야 해. ㅈ이 성대를 울리며 나오기 시작해, ㅐ은 네 턱을 살짝 열어주지 그러면 네 혀끝이 아랫니를 향하겠고. 여기까진 작은 준비운동이야, 그 다음이 압권이지. 작게 열렸던 입은 다시 꾹 다물어 지고 공기를 압축해, 그 다음에 터져 나오는 ㅊ-ㅐ의 파열을 위해. ‘채’를 진지하게 발음한 나머지 침이 나온 사람도 있을 거야. 자책하지마, 그거 정상이거든. 그리고 마지막‘기’에 이르러선 입은 조용히 닫히고 호흡이 마무리 되지. 국민체조 마지막 동작 ‘숨고르기’처럼. 이 모든 과정이 네가 재채기를 할 때 똑같이 일어난다는 일을 알고 있니? 사람들은 재채기를 하며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재채기를 발음하고 있는 거야. <BR>언어가 확립되지 않았던 고대 사람들은 ‘재-채기’라고 재채기를 했다지. 네가 재채기를 하는 순간이 네 언어와 네 행동이 가장 순수하게 일치되고 있는 순간이야. 그 0.1초에서 0.3초 사이의 시간에 네 침과 더불어 네 순수성이 함께 튀어나오지. 난 그래서 누군가의 재채기를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 <BR>잭-채기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은 조금 급한 사람들이야. 오늘 저녁에 해야 할 중요한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 반면에 ㅈ-ㅐ채기인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야. 아무 것도 무서운 게 없어. 네가 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재채기 한 번만 하면 돼. 그러면 곧바로 네가 꽁꽁 숨겨둔 성격과 내면의 상처들이 튀어나오게 될 걸. 내가 산타클로스라면 아이들에게 재채기를 해보라고 하겠어. 얼마나 착한 일을 했는지 적어놓은 두루마리 같은건 필요 없어, 그저 한 번의 재채기로 그 간의 행실이, 그 아이의 정직성이 만천하에 공개되니까. <BR>어때? 넌 재채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재-채기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게 특이하다는 게 아니란 걸 이제야 알겠지? <BR><BR>원래 저 정도의 설명이 필요하지만, 줄여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갈색 머리 여자는 작게 웃으며 내가 되돌려준 나뭇잎을 코르크판에다 박았다. 사랑, 용기, 행복, 로또, 그리고 누군가의 연인과 부모님들의 이름 사이에 새겨진 내 ‘재채기’나뭇잎을 보고 있자니 슬금슬금 코가 간지러워졌다. <BR><BR>재-채기.</SPAN></DIV></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