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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7160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17
    조회수 : 3270
    IP : 115.136.***.138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3/01/10 13:19:25
    http://todayhumor.com/?history_7160 모바일
    성리학 그리고 붕당정치의 역사
    <p>역게에 붕당정치를 쉽게 설명해 달라고 글이 올라서 한번 써봅니다 </p> <p>요즘은 인터넷에 하두 잘 정리된게 많아서 어느정도가 쉬운 수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p> <p><br>역사 과목은 수학의 공식이랑도 비슷해서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뼈대만 잡으면 </p> <p>이후에 연도 인물을 집어 넣으며 정리하기가 수월하더군요. 그 하나의 흐름을 잡는데 </p> <p>성리학 통채와 조선의 붕당을 연결해서 서술해 보고자 합니다. </p> <p>성리학과 붕당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정치사를 함께 서술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영역입니다 </p> <p>최대한 단순하게 서술해 보고자 합니다만 장문이 되는것은 어쩔수 없는것 같네요 </p> <p> </p> <p><br>우선 성리학의 탄생부터 시작해 봅니다.</p> <p> </p> <p>유교가 춘추시대 탄생한 이래 한나라를 거치며 효경을 통한 정치이념과 예법으로 </p> <p>중앙집권적 정치 수단으로 유교가 활용되기는 했지만 형이상학적 철학의 부재로 </p> <p>불교에 종교적 영향력을 내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p> <p> </p> <p>한말 불교가 전래된 후 유교는 정치예법으로 불교는 종교철학으로 활용되었으나 </p> <p>도교사상을 흡수한 불교가 당나라 시기를 거치며 선불교로 거듭나며 영향력을 확대하자 </p> <p>유학자들 역시 유교의 철학과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때가 송나라시대죠 </p> <p> </p> <p>당시 불교의 형이상학은 촌부조차도 금강경의 구절을 암송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p> <p>(오늘날 초등학생도 예수의 탄생인 성탄절을 알고 아담과 이브의 천지창조를 알듯 말이죠.)</p> <p> </p> <p>간단히 말해 정치예법에 불과했던 유교의 이념을 불교식의 형이상학으로 설명을 시도한게 </p> <p>바로 성리학을 말합니다. 송나라때 발생한 유교의 형이상학화 경향운동이죠 </p> <p>이것을 완성한게 남송시기 주자의 주자학입니다. </p> <p> </p> <p>예전 유교에 대한 정치관 서술을 하며 정치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p> <p>제도화한 시스템이니 그 정치의 기본은 그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p> <p>서술한바 있습니다. 이것이 춘추시대 성선설과 성악설 논쟁의 본면이고 </p> <p>유교는 이런 논쟁에서 성선설을 통해 정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 학문입니다. </p> <p>대표적인 맹자의 4단이 그것이죠. </p> <p> </p> <p>그렇담 이런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며 나타난게  </p> <p>즉 그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유교이념을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한게 </p> <p>이와 기의 상호작용을 논하며 장황한 썰을 풀었던 주자식의 본성론이고 </p> <p>이=성, 기=정 즉 성리학을 말합니다. </p> <p>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고담준론으로 어렵게 철학적으로 말한 학문이라 간단히 정리하심되요</p> <p> </p> <p>고려시대 이런 성리학이 조선에 전파되었고 </p> <p>유학을 수용한 지식인 층에게 영향을 주며 고려말 사대부계급을 양성하게 됩니다. </p> <p> </p> <p>정치의 철학화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p> <p>이 새로운 정치관을 종교적 신념의 수준으로 국가를 구축하고자 하는 경향을 내포합니다.</p> <p>(맑시즘이 철학화를 거치며 공산주의 혁명으로 어찌 적용되었는지 생각해 보심되죠 </p> <p>학문이 철학화되 이념이 된 이후의 힘은 냉전시절을 겪은 우리가 잘 알죠. ) </p> <p> </p> <p>고려말 성리학을 받아들인 사대부들은 이런 새로운 이념을 바탕으로 </p> <p>유교식의 본성론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이것에 맞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p> <p>강한 열망을 지니게 되었죠 이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p> <p> </p> <p>온건파와 강경파가 나뉘어지는데 </p> <p>온건파는 정몽주로 대표되는 사림으로 고려왕조를 기본으로 </p> <p>고려의 개혁을 통해 적용해고 바꾸어 나가자는 입장이고 </p> <p> </p> <p>강경파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관료층으로 불교국가인 고려왕조에서 </p> <p>이런 이상을 펼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p> <p>고려를 무너뜨리고 신왕조를 개창해 뿌리부터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입장입니다.</p> <p> </p> <p>유교의 이념과도 연계하는데 맹자의 역성혁명사상을 보듯 기본적으로 </p> <p>신왕조의 개창이란 이론이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p> <p>고려의 군왕이 맹자의 지적처럼 혼군과 폭군이 아닌이상 </p> <p>이를 거부하는 것은 또한 충효와도 연계한 신하의 도리를 넘어선 과한 행위거든요 </p> <p>국가의 개혁을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기도 하죠 </p> <p> </p> <p>성리학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두고 </p> <p>사대부들이 갈려져 </p> <p> </p> <p>강경파의 경우 조선을 개창하며 공신이 되어 훈구파가 되어고 </p> <p>온건파의 경우 고려를 옹호하며 은거하여 정계진출을 거부하였기에 사림이 됩니다. </p> <p> </p> <p>조선 건국 초기 훈구파와 사림은 그 뿌리는 같으나 </p> <p>사림은 여전히 조선의 건국을 반역으로 보는 입장이 강하여 문제가 안되었으나 </p> <p> </p> <p>조선 건국 100년이 지나며 고려의 재건이란게 이미 불가능한 시점이 되고 </p> <p>조선의 통치가 자리잡으며 사실상 신국가가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자 </p> <p>사대부 온건파 즉 사림도 100여년의 은거를 풀고 조선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시도를 합니다.</p> <p> </p> <p>이미 연산군조에 들어서게 되면 한정된 공신들이 권력을 독식하는 것에 대한 </p> <p>견제가 나타나게 되고 지방에서 오랜기간 학문을 연구하며 명분과 이론에 충실한</p> <p>인재들이 다수가 양성되는 가운데 단지 그 정계 진출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형국에서 </p> <p>훈구파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위협을 미연에 제거하고자 극단적으로 반응한게 </p> <p>바로 조선 초 사화라는 것입니다. </p> <p><br>이미 세조 연간부터 정계에 사림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며 </p> <p>연산-중종 연간에 이르러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탄압을 하여 억제하고자 한것이 </p> <p>무오사화, 갑자사화,기묘사회로 일컬어지는 사림숙청의 사화들입니다.</p> <p><br>이유는 다양한 사연이 있지만 기본 골격은 </p> <p>조선 건국 100년을 거치며 단순히 공신이라는 이유로 </p> <p>오랜기간 정계를 독식해온 훈구파가 </p> <p><br>그 기간 지방의 연고와 학문을 통한 제자의 배출이란 학연 </p> <p>그리고 이론적, 학문적으로 오랜기간 무장한 사림에 </p> <p><br>유교사상을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학문과 이념을 골격으로 </p> <p>건국한 조선의 정치시스템상에서 이를과의 학문적 역량 투쟁에서 </p> <p>경쟁력을 상실하며 사실상 도태되어 가고 있었단 이야기죠.</p> <p><br>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건국한 국가인 이상 </p> <p>심도있는 유교 학문과 이론으로 명분으로 무장한 사림의 진출은 </p> <p>더이상 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게 되고 </p> <p><br>조선 명종 연간을 거치며 구체적으로 마지막으로 훈구파가 </p> <p>영향을 끼치던 문정왕후 섭정 기간이 끝나며 </p> <p>사실상 조선 정치의 대세는 사림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p> <p><br>더불어 15세기~16세기가 세계적으로 천재가 가장 많이 등장한 시대라고도 하는데 </p> <p>조선에서 퇴계이왕, 율곡 이이같은 천재적인 유학자의 등장은 </p> <p>성리학을 보다 심화시켜 나갔습니다.</p> <p><br>영남학파로 상징되는(영남좌도 학파) 이황의 경우 </p> <p>주자의 이기이원론을 기본 골격으로 그 역시 이기이원론을 주장하며 </p> <p>주리론으로 발전시킨 사상가입니다. </p> <p><br>사실 성리학의 내용은 복잡한 형이상학 수사가 많아서 </p> <p>이해하기 힘들죠 </p> <p><br>때문에 이황도 성학십도라는 그림 책을 지어 </p> <p>청년시절 선조를 위해 좀 보고 배우라고 그림 10개로 설명한바 있습니다.</p> <p><br>간단하게 생각하면 사실 일상에서도 쉽게 사용하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p> <p><br>"저 사람은 본성은 착한데 기질이 나빠서 문제야" </p> <p>"저사람의 기질이 저러하니 ㅉㅉ " 이런 무심코 쓰는 용어가 </p> <p><br>성리학의 본성론이 일상화된 흔적입니다. </p> <p> </p> <p>이는 즉 성으로 인간의 본성을 의미합니다</p> <p>기는 즉 정으로 본성을 감싸고 있는 기질을 의미합니다.</p> <p><br>이가 인간의 본성으로 불변의 성질이라 한다면 </p> <p>기는 이것을 감싸고 외부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성향이란 말이죠. </p> <p><br>맹자의 4단 </p> <p>측인지심(아기가 우물가에 가면 일단 구하고자 하는 인의 마음)<br>시비지심(틀린것과 옳음을 구분하고자 하는 마음)<br>수오지심(악한것을 미워하는 마음)<br>사양지심(부끄러움을 아는 마음)</p> <p>이 것들은 어떤 교육과 경험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br>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성의 영역입니다. </p> <p>사이코패스가 아닌 정상인인 이상 따로 교육하지 않아도 <br>인간이기에 가지는 품성이고 </p> <p>반대로 맹자는 이렇기 때문에 <br>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증거라 주장했습니다.</p> <p>이 4단이 바로 의미하는게 "이"라는 즉 본성 "성" <br>불변하는 인간의 중심입니다. </p> <p><br>7정이라 하여 喜怒哀懼愛惡欲</p> <p>기뻐하는 마음 <br>화나는 마음<br>슬퍼하는 마음<br>두려워하는 마음<br>사랑하는 마음<br>미워하는 마음<br>욕심이 드는 마음</p> <p><br>이런 감정은 외부로 표출되는 인간의 성향으로 <br>사람을 교육하고 다스리는 정도에 따라서 </p> <p>기쁘나 내색하지 않을 수 있고<br>화가 나나 자제할수 있으며<br>슬프나 억제할수 있고<br>두려워하나 견딜수 있으며 <br>사랑하나 감출수 있고 <br>미워하고 참고 <br>욕심이 드나 다스릴수 있습니다 </p> <p>이것이 바로 "기" 이며 "정"이라는 것입니다. </p> <p>이황은 성학십도에서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길 </p> <p><br>본성이 그 중심에 있고 <br>이런 기질이 외부를 감싸 안으며 나타난다고 합니다</p> <p>흔히 "본성은 착한데 기질이 탁하다" 라는 말이 </p> <p>그 사람의 본성은 바른데 기질이 탁하여 본성을 가려서<br>겉으로 안좋게 보여질 뿐이라고 완곡하여 누군가를 평가하는 방식이죠.</p> <p>그러니까 배우는 것도 가려진 착한 본성이 드러나도록 </p> <p>기질을 다스리고 맑게 하여 본성을 드러내는게 바로 유교가 말하는 </p> <p>수신 즉 배움의 과정이 됩니다. </p> <p><br>이황은 본성과 기질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서로작용하여 나타난다 </p> <p>이기호발설 </p> <p> </p> <p>이것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p> <p>본성은 변하는 것이 아님으로 본성이 이끌고 나가며 기질이 뒤따른다 </p> <p>이발기수설 </p> <p> </p> <p>설령 기질이 앞선듯 보이지만 기나 표현하며 이가 이를 타며 나타난다 </p> <p>기발이승설이라 </p> <p><br>이런식을 인간의 본성을 주장하였습니다.</p> <p>이 내용이 이황과 기대승이 서신으로 논쟁을 하며 </p> <p>서로 나눴던 성리학의 논쟁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br>(인터넷 보니 기대승이 새파란 학자의 질의에 대유학자인 이황이 친절히 답문한 것을<br>학자의 기본 소양이자 이황의 품성을 보인다 칭찬하는 강사도 있더군요.)</p> <p><br>즉 인간의 본성은 바로 본성 즉 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p> <p>주리론의 입장을 요약하면 </p> <p><br>겉으로 표현되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p> <p>본성,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으로  </p> <p>서구식으로 따지만 현상 넘어에 있는 진리가 더욱 중요한 가치이니 </p> <p><br>철학에서 보면 연역적 사고와 관념적 추론을 중시한 </p> <p>대륙의 관념론적 철학 사조입장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 <p><br>반대로 이이의 경우 이에 반박을 하며 </p> <p>이기일원론을 주장합니다.</p> <p><br>이와 기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며</p> <p>이황이 말하는 사단과 칠정으로 구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된다고 주장했죠.</p> <p>즉 이와 기의 구분이라 설명한 4단과 7정은 따지고 보면 </p> <p>7정의 선한 부분만 골라서 구분한게 4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p> <p>모든 물체는 양면성을 가지며 존재함으로 선함과 악함 음과 양을 공유한다는 것이죠</p> <p>때문에 이와 기는 구분되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p> <p>하나의 존재가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된 양상에 불과하다 주장합니다.</p> <p><br>어떤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기라는 것이고 </p> <p>그것이 나타나는 이유가 이라는 것임으로 </p> <p><br>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은 가능하나 </p> <p>이를 발하고 기가 뒤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명합니다.</p> <p><br>때문에 양자가 결국 같은 존재를 다르게 구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p> <p><br>결국 궁극적으로 한 대상의 본질을 알기 위해 탐구해야 할 부분은 </p> <p>본성이나, 이의 영역이 아니라 </p> <p>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기의 영역을 지칭하게 됩니다.</p> <p>즉 현실의 영역을 어찌 다스리는가가 곧 인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됩니다.</p> <p><br>바로 주기론의 입장을 말합니다.</p> <p><br>이는 서구식의 경험론의 입장에서 </p> <p>겉으로 나타나는 행태와 결과를 보다 면밀히 보며 </p> <p>귀납적인 방식으로 기를 통해 발현된 현실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p> <p><br>보다 쉽게 정리하면 </p> <p>성리학이라는 정치에 적용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분을 </p> <p>조선식 언어로 관념론-경험론의 관점에서 상호 논쟁을 한 내용인것이죠 </p> <p>  </p> <p>조선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철학을 바탕으로 한 학자들이 </p> <p>인간의 심성이란 이런것이다. 이런 인간의 성향이 그러함으로 </p> <p>어떻게 교화를 시켜야 하며 이런 이론으로 다스리는게 곧 정치라는 마인드로 통치한 시대입니다 </p> <p>조선 특유의 학문기반의 정치사상 시대이기에 가능한 논쟁이기도 했습니다.</p> <p>조선의 관료들이란게 사실 따지고 보면 철학과 교수들과 비슷한 존재들로 </p> <p>먹물먹은 이들 한 자리에 모여 이론이 어쩌네 서로 쌈박질 하며 정치하는것이죠 ㅡㅡ; <br> </p> <p>이런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의 주리론을 바탕으로 학파를 만들고 제자를 양성하며 </p> <p>이런 인맥들과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치사상으로 정계에 나간 이들이 </p> <p>바로 동인이란 사림집단이고 </p> <p><br>이런 율곡 이이, 성혼의 주기론을 바탕으로 학파를 만들고 제자를 양성하며 </p> <p>이런 인맥들이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정치사상을 구축해 정계에 나간 이들이 </p> <p>바로 서인이란 사림집단입니다.</p> <p><br>선조연간을 거치며 훈구파는 정계에서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p> <p>위의 논쟁을 봐도 알지만 100년간 저딴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먹물잔뜩 먹고 </p> <p>조정에 나온 사림들을 이론이니 학문으로 어찌 이길까요 </p> <p>그저 묵묵히 현실 정치만 하며 국가에 공을 세웠다며 자랑하는 훈구파가 </p> <p>사림들이 보기에 얼마나 무식해 보였을까 또 무시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p> <p>실록보면 사림 인사들이 훈구파를 거의 대놓고 소인배, 무식한 놈 이런식으로 모욕해도 </p> <p>저런식으로 배운놈들한테는 말싸움 붙어도 이길수가 없죠, ㅡㅡ; </p> <p>어찌보면 조선 초기 사화의 정체가 말로 안되니 너무 빡쳐서 폭력을 쓴것이 아닌가,,,</p> <p> </p> <p>아무튼 </p> <p><br>조선 선조연간이 바로 조선의 붕당 정치가 개박된 시대입니다. </p> <p>사림이 동인 서인으로 갈려진 계기는 표면적으로 이조전랑이라는 자리를 놓고 나온 다툼 때문입니다. </p> <p>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있어 후배 사림들이 동인이라 불리워 지고 </p> <p>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어 선배 사림들이 서인이라 불리워 졌다고 하나 </p> <p><br>본질은 훈구파와 사림이 피를 보며 장장 150년을 투쟁한 이유가 </p> <p>한정된 조선의 관료직을 두고 경쟁한 것 때문이듯 </p> <p>이제 사람이 장악한 조선의 정계에서 다시 사림이 양분되는 것도 </p> <p>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합니다.</p> <p>관직과 언로와 연계한 청요직인 이조전랑 관직이 빌미가 된 것 뿐이죠.</p> <p><br>동인의 경우 이황과 조식의 학풍을 배운자들이 뭉쳤고 </p> <p>서인의 경우 이이와 성혼의 학풍을 배운자들이 뭉쳤죠 </p> <p><br>선조의 경우 양 붕당을 잘 조절하며 초창기 서로 예우도 하고 </p> <p>그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는 나름의 수완도 보였습니다.</p> <p><br>개인적으로 조선에서 가장 안타까운 왕이 선조입니다.  </p> <p>어려서 이황이 성학십도를 바치며 성군이 되기를 희망한 군주였고</p> <p>그야말로 천재적인 성리학자들이 대거 나오더 이 시기의 군주로 </p> <p>신권과 왕권이 조화를 이루던 성리학의 절정기였기에 </p> <p>선조는 가만히만 있어도 </p> <p>조선 최대전성기를 이끌었다 평가받을 왕이었느데 </p> <p>이때 터진게 그 임진왜란이고 본인 자체도 가만히 아닥하던 왕이 아녔죠.</p> <p><br>일단 동인의 학풍을 이끈 두 명의 학자를 보면 </p> <p>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입니다.</p> <p> </p> <p>동인 즉 영남학파의 경우 </p> <p>다시 영남 좌도학파와 영남우도 학파로 나눠지는데 <br>(주의 : 한양에서 보았을 때 좌우 개념입니다. 영남 우도가 낙동강 서쪽이죠.)</p> <p>인간의 본성성 심성론으로 이론체계를 새운 이황이 있는가 하면</p> <p>기본적으로 주리론을 인정하며 진리의 추구를 학풍으로 중심을 삼지만</p> <p>남명 조식은 심성론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p> <p>도덕과, 의리에 입각한 도덕론을 주장한 학자입니다.</p> <p>때문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남명 조식의 휘하에서 공부한  </p> <p>곽재우와 같은 의병장들이 대부분 동인 남명학파에서 배출되었습니다</p> <p>군왕에 대한 의리와 충절을 중시하며 대의를 위해 싸우자는거죠 </p> <p><br>선조 연간 동인 서인으로 학문적으로 경쟁하던 때 </p> <p>붕당정치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니 </p> <p> <br>이른바 정여립의 모반 사건입니다. </p> <p>기본적으로 서인이자  이이와 성혼의 제자로 총명하기 이를데 없던</p> <p>서인의 장래희망 정여립은 율곡이이 조차 천재라 칭찬한 인재입니다.</p> <p>워낙 기개도 있고 똑똑한 자라 </p> <p>이황이 그림 그려가며 성리학을 가르친 평범한 군왕 선조에게도 눈을 부라리며 </p> <p>간언하고 심지어 학풍을 초월해 서인에서 동인으로 넘어가기도 했죠.</p> <p>선조는 이런 행위를 두고 똑똑한데 스승을 배신하는 소인배라 경멸했습니다.</p> <p><br>그런 정여립이 모반을 했다고 황해도에서 고변이 있고 </p> <p>서인의 영수 정철을 중심으로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해 모반을 꾸몄다고 </p> <p>대대적인 역적청산이 진행되게 됩니다.</p> <p>이른바 기축옥사입니다. </p> <p><br>요점은 동인과 서인이 학문적으로 티걱 태걱하며 싸운정도나 </p> <p>이조전랑직을 두고 성품이 어쩌네 말다툼을 하던 시절을 지나 </p> <p>역모사건을 이유로 대거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입니다.</p> <p><br>문학책에서 등장하는 관동별곡, 사미인곡 같은 예쁜 문장을 쓴 </p> <p>송강 정철이 서인의 영수로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추국했는데 </p> <p>정철은 이때 연루된 동인 인사 1천명을 죽였습니다 </p> <p>반역이라 함은 당사자는 참수되지만 반대로 그 일가 친척은 </p> <p>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p> <p> </p> <p>단지 학문적으로 대립하던 시절에 </p> <p>동인 인사들 1천명을 죽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고 파장인지 </p> <p>생각해 보시면 됩니다만 이때 부터 붕당의 투쟁이란 것이 </p> <p>단순이 이론이니 학문적 이견을 말로 싸우는게 아닌 </p> <p>상대방을 실제 죽여버리고 나아가 가문의 멸족이 달린 </p> <p>생사의 투쟁으로 변질된 것이죠. </p> <p><br>이유는 예법이니 문장의 내용이 학문적 사상이니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p> <p>그 종국의 목적과 결과는 역모 관련으로 엮어 가족 모두가 멸족당하는 </p> <p>무시무시한 붕당식의 정적 제거가 등장한 것입니다. </p> <p><br>이에 대하여 선조의 자작극설도 있고 </p> <p>정여립이 실제 모반을 했다는 설도 있죠 </p> <p><br>신권이 급부상하던 시기 컴플렉스 쩌는 선조가 </p> <p>동인 서인 신하들의 관직투쟁을 보다 자극적으로 지휘해서 </p> <p>왕권강화의 빌미로 이를 활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p> <p>정철의 옥사가 정철의 의도가 아닌 선조의 지시라는 것이죠<br>(조선 후기 숙종의 극단적인 탕평도 생각해 보심되죠.)</p> <p><br>기축옥사로 서인의 집권이 단행되었지만 </p> <p>몇년 지나지 않아 </p> <p>기축옥사로 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한을 품었던 </p> <p>동인에서 반격을 한 사건이 건저의 사건 입니다</p> <p><br>세자책봉과 같은 문제는 왕권과 직결된 사안으로 </p> <p>신하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지만 </p> <p>선조 자체가 방계 출신인데(컴플렉스의 근원이고)</p> <p>세자도 없음에 대하여 동인으로 남아있는 이산해를 비롯 </p> <p>유성룡, 정철 3정승이 세자책봉을 건의하자 합의합니다 </p> <p><br>이때 동인측에서 작업을 하여 오히려 선조가 의중을 두고 있던</p> <p>신성군을 정철이 제거하려 한다는 소문을 낸다음</p> <p>막상 경연자리에서 세자책봉을 건의할 때 이산해는 출석하지 않았죠</p> <p>이미 뒤로 이런 내용을 들은 선조는 </p> <p>정철이 세자책봉을 언급하자 대노하며 정철을 축출하게 되고 </p> <p>서인의 집권도 막을 내리게 되었었습니다 </p> <p><br>다시 동인이 정권을 잡자 기축옥사에서 </p> <p>정철에게 한을 품었던 이들이 정철과 서인의 처우문제를 두고 </p> <p>강경파와 온건파로 또 나눠게 됩니다 </p> <p>이때 강경파가 특히 피해가 많아던 </p> <p>바로 남명 조식과 서경덕의 제자들로 </p> <p>이들이 바로 북인이 되고 </p> <p>온건파가 이황의 제자들로 </p> <p>이들이 바로 남인이 됩니다 </p> <p><br>이들 북인은 학파 특유의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경향을 바탕으로 </p> <p>임진왜란거치며 조선에서 주전론의 중심으로 정계에서 활동하며 </p> <p>학파의 제자들 역시 의병장으로 활약을 하며 </p> <p>임진왜란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p> <p><br>임진왜란 이후 북인이 정국을 주도한 가운데 </p> <p>선조의 후사문제가 대두되자 </p> <p><br>다시 의리와 명분을 기본으로 삼는 북인이 또 갈라지며 </p> <p>임진왜란 기간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 </p> <p>분조(전란기간 조정을 2개 만드는것이죠)를 </p> <p>이끌고 항전하며 공을 세운 광해군을 지지하자는 이들이 </p> <p>대북이 되었고 </p> <p><br>선조도 방계로 혈통에서 취약한데 또 서자를 후사로 세우면 문제가 된다는 논리로 </p> <p>명분상 적통인 영창대군을 지지한 이들이 </p> <p>소북이 되었습니다 </p> <p><br>광해군이 즉위하며 영창대군을 언급한 소북은 자연히 축출되었고 </p> <p>쫓겨난 이들 소북을 두고 대북이 또 나눠서 칭하길 </p> <p>비록 쫓겨났지만 염치있고 강직한 기풍을 유지한 이들을 청북이라 </p> <p>나머지를 탁북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p> <p><br>광해군 연간 집권한 대북의 경우 또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p> <p>앞서 언급했지만 같은 동인이라 하지만 남명 조식, 서경덕의 제자들로 구성된 </p> <p>북인의 경우 그 학풍이 일관된 성리학 학문의 이론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p> <p>도덕론, 의리론, 명분론이 대표적인 것을 보듯 어떤 일관된 이론을 견지하는게 아닌 </p> <p>뛰어난 학자의 스승에 따라 학풍이 난잡하게 갈려지는 </p> <p>다소 복잡한 학풍의 정치세력이기도 합니다.</p> <p><br>때문에 대북 내부에서도 각각의 스승과 학파에 따라 </p> <p>또 걸려지며 육북, 골북, 중북 이란 이름으로 구분하였다고 하지만</p> <p><br>사실 이런 구분 자체가 </p> <p>이후 광해군을 축출하고 집권한 서인이 </p> <p>대북의 난잡함을 성토하며 붕당을 이토록 많이 작당했다고 </p> <p>표명한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p> <p><br>이런 북인의 집권이 끝난게 무력으로 광해군을 축출한 </p> <p>인조반정입니다.</p> <p><br>연산군 이후 처음 사림의 집권 기간 왕이 아예 갈려진 </p> <p>반정이 성공함에 따라 북인은 사실상 절멸하게 되었고 </p> <p><br>인조반정의 공을 세운 서인이 독점하는 형세가 만들어졌습니다</p> <p>서인 즉 기호학파라는 것이 율곡이이와 성혼의 사상을 계승한 </p> <p>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사는 양반들 학풍을 말합니다 </p> <p>영남의 산지가 많은 분지지방에 서원을 만들고 </p> <p>조용히 형이상학적 학풍을 길러온 영남학파와 대조적으로 </p> <p>경기도 또는 과전법의 대상인 경기도의 한계는 넘은 인근의 토지 </p> <p>황해도 충청도 지방에서 지주로 경제적 기반을 만들며 </p> <p>주기론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학풍을 기반으로 한 </p> <p>현실 정치세력이죠. </p> <p><br>이들이 인조반정으로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고 </p> <p>이 과정에서 서인 내부에서도 </p> <p>인조반정에 가담한 부류를 공을 세운 공서 </p> <p>신하가 왕을 몰아내는데 가담하지 않았다 하여 청서 </p> <p>로 부르기도 했고 </p> <p> </p> <p>또 정계를 주도한 인조반정의 공신 인물을 중심으로 </p> <p>원평 부원군을 원두표를 중심을 모인 서인을 원당 </p> <p>낙평 부원군 김자점을 중심으로 모인 당을 낙당 </p> <p>송시열을 중심으로 모인당을 산당 </p> <p>김육 등을 중심으로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p> <p>한강 이북에 주로 거주한다 하여 한당 </p> <p> </p> <p>원당,낙당,산당,한당이 4당이 구성되며 </p> <p>정국을 평정한 인조연간 서인천하에서 주요 정파를 결성했습니다. </p> <p> <br>이중에 다시 공신들인 공서의 김류가 </p> <p>쫓겨난 북인의 잔당 중에 소북의 영수였던 </p> <p>남이공이 광해군에 탄압받은 소북인사이고 </p> <p>학문적으로도 업적이 많음으로 대사헌이 임명하려 하자 </p> <p>서인의 소장파들이 반발을 하며 </p> <p>이를 인정한 이들이 노서 소장파 서인을 소서라 구분하기 도 했죠 </p> <p><br>기본적으로 인조반정으로 정국을 독식한 상황에서 </p> <p>서인들이 정국을 나눠먹으며 나온 형세입니다 </p> <p><br>공신들이 이합집산하며 모인 4당의 분파는 </p> <p>효종 연간 송시열이 통합을 시도하며 서인으로 다시 뭉치게 됩니다. </p> <p>조선 후기 송시열의 등장은 서인 계보에서 특히 중요한데 </p> <p>정계에서 서인의 통합을 이룬 것도 그러하거니와 </p> <p>조선 후기 서인의 입장에서 성리학 사상을 정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p> <p><br>조선 후기 성리학의 주요 논제였던 의리론이 그러하고 </p> <p>사회개혁의 방향과 한계를 이이의 변통론에서 찾아 선을 그은 것도 그러합니다 </p> <p><br>의리론은 대명의리론을 말하는 것으로 중화로 인정하고 임진왜란의 도움을 입은 </p> <p>명나라가 망했다 하나 조선의 입장에서 청나라의 등장은 섬기는 사대의 대상이 아님으로 </p> <p>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만동묘를 만들어 명나라 2명의 황제 </p> <p>만력제(임진왜란 구원) 숭정제(마지막 황제)를 제사지내며 명백을 대신 이어가는 동시에 </p> <p>유일하게 남은 중화는 조선뿐이라는 논리로 소중화의식을 바탕으로 </p> <p>성리학을 보다 수호하며 중화의 명백을 조선이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죠 </p> <p>정치적으로 보면 송시열과 서인의 주도로 효종연간 북벌론이 대두된 것도 </p> <p>이러한 이유 때문이었고 이는 사상적으로 보면 성리학은 더이상 단순한 사상이나 </p> <p>정치이론의 차원이 아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화국가라는 명분으로 반드시 지켜야하는 </p> <p>성리학 자체가 숭배의 대상으로 철학화된 절대적인 학문으로 변질함을 말합니다 </p> <p>지방 관료조차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하는 만동묘의 존재를 보아도 </p> <p>사실상 국가권력 이상의 절대적 이념적으로 자리잡는 과정입니다 <br>(그 만동묘를 철폐한게 바로 흥선대원군이죠)</p> <p><br>이는 변통론과 또 연계하여 살펴보면 </p> <p>율곡 이이의 경우 일찍히 앞서 서술하였듯 이기일원론을 주장하며 </p> <p>이와 기는 하나일 분이고 양면의 발현이라 하였죠.</p> <p>주기론의 사상하에서 기는 표현의 대상인 동시에 변화가 가능한 영역입니다.</p> <p>주역의 말을 빌어 </p> <p>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지속된다는 말로 </p> <p>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지만 바꿀수 있다면 변화즉 변통을 지속하며</p> <p>개혁을 해나가야 한다는 이론입니다.</p> <p>여기서 바꿀 수 없는 것은 본질이죠 </p> <p>왕도, 인정, 삼강 같은 유교의 기본 원리는 변화가 불가능하지만 </p> <p>이와 수반되어 나타난 현상은 개혁의 대상입니다. <br>(이는 두루 통하고 기는 국환된다의 이통기국론도 이와 같은 논리입니다.)</p> <p><br>이는 정조의 개혁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p> <p>사회개혁의 중요성을 논하고 다양한 사상과 학문을 수용하며 변화를 꾀하지만</p> <p>정조 역시 도학군주로 성리학은 불변의 사상이라는 전제하에 </p> <p>서학(천주교)는 사학(邪學)이라 칭하며 성리학을 수호한 군주입니다. </p> <p>사회의 변화에 따라 필요로 인하여 개혁을 진행하지만 </p> <p>봉건질서는 결코 불편하는 대상으로 건드릴수 없다는 가치관입니다. </p> <p>개혁의 방향과 그 한계를 이론화 한 것으로 </p> <p>성리학 체제가 왜 장기적으로 지속 될 수 있었는지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p> <p>폐단이 존재하면 보통 개혁과정에서 그 체제가 갈려버리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인데 </p> <p><br>성리학의 뿌리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 되는것이죠 </p> <p>개혁으로 유지는 지속되지만 변화하지는 않는 체제가 완성됩니다 </p> <p>의리론과 연계하여 보면 그 이유도 소중화라는 조선의 국체와 또 직결되는 </p> <p>상당히 난해한 영역이 됩니다. </p> <p><br>이는 정조의 개혁이 왜 국왕중심의 보수개혁인지 </p> <p>흥선대원군이 개혁도 당장 만동묘를 파해쳤음에도 </p> <p>위정척사와 연계한 보수개혁이 되었는지 </p> <p>이후의 이른바 개혁운동의 방향성도 가늠하게 합니다 </p> <p><br>서인의 주기론의 입장 이기일원론은 </p> <p>이미 명나라 시기 중국에서 기의 중요성 </p> <p>즉 현실의 발현 실사구시의 중요성을 논한 </p> <p>기의 총체로 사물을 본 양명학의 대두와 함께 </p> <p>성리학의 본고장 중국에서 이미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었습니다 </p> <p><br>비슷한 주기론의 입장을 견지하며 </p> <p>임진왜란 시기 명나라 장수의 참전과 함께 조선에도 </p> <p>명나라의 양명학이 전파되었지만 </p> <p><br>송시열의 대명의리론, 변통론으로 조선의 성리학 중심 소중화체제를 </p> <p>정비함에 따라 양명학 역시 사학일 뿐 </p> <p>이미 절대화된 성리학에 이단에 불과한 취급을 받게 됩니다 </p> <p>송시열 말년에 이르러 서인이 분파되며 </p> <p>노론과 소론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런 송시열의 이론을 반대한 </p> <p>이들이 소론으로 집결하게 되고 </p> <p>소론의 인사들 중에서 양명학을 수용하기도 하였지만<br> <br>조선에서 더이상 뿌리내릴 수 없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br>  </p> <p>한편 임진왜란 이후 주전파 북인이 정국을 주도 하며 </p> <p>영남의 서원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살던 남인이 재등장 하던 시기가 </p> <p>인조연간이기도 합니다 </p> <p><br>기본적으로 인조반정을 옹호하며 정국을 주도한 서인들 틈세에서 </p> <p>공신들의 전횡을 견제하고 서인 소장파를 옹호하며 정국에 참여하던 </p> <p>남인들은 북인의 잔당을 흡수하며 정비를 하더니 </p> <p><br>효종 사후 현종 연간 이른바 상복을 몇년 입어야 예법에 맞는가? 라는 </p> <p>지극히 쓸데없는 논쟁 하지만 예법을 중시한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p> <p>왕실의 정통성과도 연계한 중요한 논쟁 유명한 예송논쟁에서 </p> <p>서인을 누르는데 성공함에 따라 <br>(예송논쟁도 상당히 복잡한데 서술하면 진짜 책이 될거 같네요 ㅡㅡ;)</p> <p><br>인조반정이후 서인 주도 정국에서 처음 정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하며 </p> <p>서인과 대비되는 남은 세력으로 정국의 주요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p> <p>사실 초기 남인 서인의 논쟁은 붕당정치의 꽃이라 불리워 지는 </p> <p>상호 견제하며 정국을 이끄는 지극히 품위있는 논쟁이기도 했습니다만 </p> <p><br>이런 정국은 풍운아 숙종이 즉위하며 극단으로 또 치닷게 됩니다 </p> <p>조선은 기본적으로 신권과 왕권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입니다.</p> <p>신권이 강해 질 때 마다 당시의 군왕은 좀 극단적인 방식으로 </p> <p>피를 보게 하여 반사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큰데</p> <p><br>선조도 그러했고 숙종도 그러했던게 아닌가합니다 </p> <p>예송논쟁의 본질은 따지고 보면 왕과 사대부가 예법을 공유할 정도로 </p> <p>사실상 동급의 존재인가 아닌가의 이론적 싸움이도 합니다 </p> <p><br>그 뒤를 이어 숙종이 즉위했을 때 </p> <p>나름의 탕평책인지 모르겠지만 </p> <p>군왕의 주도로 한 정파를 아예 제거하는 수단 </p> <p>거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p> <p>남인 또는 서인에게 정국을 독식하게 하는 </p> <p>정치행태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br> <br>이른바 환국의 시대입니다 </p> <p><br>주요 이유는 인현왕후 장희민의 이야기처럼</p> <p>군왕의 로멘스가 명분이지만 </p> <p><br>그 결과는 환국이 한번 실시되면</p> <p>반대파는 죄다 역적으로 몰려 죽어버리는 </p> <p>마치 선조연간 기축옥사처럼 수천명이 도륙당하고 </p> <p>그 가문이 노비로 전락하는 비극이 </p> <p><br>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오고가며 3번이나 발생하죠 </p> <p>예법이니 학풍이니 이론이니 철학이니 논쟁하는 것도 </p> <p>대화로 풀때 가능하지 </p> <p>당사자 혹은 스승, 친구, 동문, 일가친척, 지인들 </p> <p>한 다리 건너면 한번씩 상대방 정파의 보복으로 </p> <p>죽거나 도륙되어 멸문의 화를 당하거나 하면</p> <p>더이상 정상적인 경쟁이란게 성립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p> <p><br>마지막으로 벌어진 환국을 통해 서인이 정권을 잡으며 </p> <p>남인의 씨가 말렸을 때 </p> <p>서인을 통합한 영수 송시열은 서인가문에서는 뛰어난 학자로 존경하며 </p> <p>"송자"라고 스승 자 자를 존호로 올리며 동양의 대유학자라 불렀지만 </p> <p>남인의 가문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개의 </p> <p>이름으로 붙이곤 했다죠. </p> <p><br>장희빈 사건으로 남인이 축출 된 후  </p> <p>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자 </p> <p><br>집권 세력인 서인이 또 갈려지며 </p> <p>이를 지지한 소론과 이를 거부한 노론으로 나뉘게 됩니다 </p> <p>경종을 지지한 소론 </p> <p>훗날의 영조인 연잉군을 지지한 노론인데 </p> <p><br>이미 서인에서 숙종 연간 </p> <p>남인이 정국을 잡았을 때 </p> <p>서인을 강경하게 다 죽여버리자는 탁남 </p> <p>서인을 온건하게 처리하자 청남으로 분파되었듯  </p> <p>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정국을 잡았을 때 </p> <p>남인을 강경하게 다 죽여버리자 노론 </p> <p>남인을 온건하게 처리하자 소론으로 </p> <p>나뉘었던 분파이기도 합니다 </p> <p><br>남인에 온건하게 대한 정파로 </p> <p>다시 남인의 환국 또 마지막 장희빈의 사사와 남인의 축출로 </p> <p>서인이 집권하자 </p> <p>남인이 내세운 장희빈과 그 아들인 경종을 </p> <p>어찌하였건 군왕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p> <p><br>노론은 그 존재 자체가 서인의 위협임으로 </p> <p>연잉군을 왕세제로 내세운 것이죠 </p> <p><br>사실상 아무리 신권이 강하다 한들 </p> <p>젊은 군왕이 살아있는데 후사를 기다리는 것도 </p> <p>아닌 다른 왕자를 왕세제로 임명하라 주장하는 것 자체가 </p> <p>역모의 성향이 매우 큰 대담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p> <p><br>노론이 경종의 병약함을 이유로 대리청정을 주장하자 </p> <p>소론이 이를 문제삼아 충역의 문제로 비화 시켰고 </p> <p>노론 4대신을 처형하며 신임옥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p> <p><br>하지만 경종이 2년만에 승하하자 </p> <p>노론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영조가 즉위하였고 </p> <p>노론이 반격을 하며 소론 4대신을 처형하며 </p> <p>사실상 소론은 절멸하게 되었습니다 </p> <p><br>영조는 즉위 기간도 매우 길었지만 </p> <p>탕평책으로 유명하죠 </p> <p><br>아버지 숙종이 워낙 다이나믹하고 극단적으로 정치를 하는 바람에 </p> <p>소론,남인이 씨가 말라있는 상태에서 </p> <p>양자를 균등하게 기용하여 한쪽에 쏠려 주지 않는게 탕평이라는 </p> <p>논리로 남인을 대거 기용하며 정국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p> <p>영조의 이런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p> <p><br>경종이 간장 게장을 먹고 다음날 죽은 사건을 두고 </p> <p>경종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는데 </p> <p>이는 당시에도 소론과 남인은 간장게장을 먹지 않는다는 말로 </p> <p>영조가 경종을 시해하고 즉위했다 여기는 음모론이 유포될 정도였죠 </p> <p><br>이런 정국에서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노론을 견제하기 위해 </p> <p>남인을 기용하며 탕평을 외친 것은 사실상 정국을 주도한 노론을 견제하고 </p> <p>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의도가 더욱 큼을 의미합니다. </p> <p>영조의 탕평책은 이른바 숙종 연간에 이미 나온 붕당론에 기초한 것으로 </p> <p><br>붕당의 대립이라는 것이 결국 한정 된 괸직을 바탕으로 </p> <p>학 학파의 인물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p> <p>북인 남인 노론 소론을 구분하지 말고 모두 기용하여 정국을 이끌자 </p> <p>즉 탕평책을 이론으로 내세우며 등장한 것입니다 </p> <p><br>영조의 즉위와 함께 서로 잘하고 잘못한 것을 주고 받았으니 </p> <p>문제삼지말고 다 기용하자 라는 논리인데</p> <p>군왕이 정치에 적용한것은 노론 소론을 외척을 골고루 기용하며 </p> <p>이들로 하여금 이른바 탕평당을 만든 것이죠</p> <p>영조연간 이른바 완론(온건파)탕평 정치를 말합니다. </p> <p><br>노론과 소론의 온건파를 군왕의 측근으로 끌어들여 </p> <p>탕평당이라는 군왕을 위한 정치세력화를 시키는 작업이죠 </p> <p>명목은 탕평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고 </p> <p>내용은 노론, 소론 온건파를 외척으로 기용하는 것입니다. </p> <p> <br>문제는 탕평책을 써가며 정국을 주도한 시도는 </p> <p>영조 역시 당쟁에 말려들며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죠 </p> <p>강력한 군왕이 주도해 양자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 시도가 </p> <p>노론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에 막혀 왕권의 한계를 직시하게 하였고 </p> <p>균형이 어려움을 이유로 양자의 완전한 균형이 어렵다면 </p> <p>절충을 통해 그리고 주요인물들을 외척화 하여 이를 안정화 시키려 했지만 </p> <p>그 결과는 노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귀결되었고 </p> <p>다시 탕평당이라는 이름으로 비대한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p> <p><br>이는 이런 탕평당을 이끄는 군왕이 당쟁에 휘말리며 </p> <p>사도세자를 지지하는 시파와 이에 반대하는 벽파의 분쟁 <br>(시파 벽파의 본격적 등장 문제는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p> <p>나아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로 비화되자 </p> <p>임오의리의 문제라 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을 놓고 양분하게 됩니다 </p> <p><br>영조의 뒤를 이어 정조연간 이런 임오의리의 문제를 두고 </p> <p>시파와 벽파의 대립이 극명하게 되었음은 유명하죠 </p> <p>정조의 즉위는 그 역시 영조의 탕평정치를 이어간다는 명분으로 </p> <p>비대해진 영조연간의 완론탕평당을 척결하고 (홍봉한 같은 인물이 그러하죠)</p> <p>보다 강화된 탕평을 시도합니다 남인과 청류 노론까지 흡입하여 </p> <p>장용영이란 군사력까지 가미한 강력한 군주의 지원하에 탕평당을 만들죠 </p> <p>이른바 준론(강경파) 탕평정치의 시대입니다.  </p> <p><br>영조 정조의 통치시대는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군주의 주도하에 </p> <p>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개혁도 함께 진행된 시기임으로 </p> <p>표면적으로 조선의 르네상스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p> <p>이른바 실학이라는 것도 등장한게 그러하죠 </p> <p>주로 정계에서 쫓겨나길 반복하며 지방의 농지에서 살았던 </p> <p>남인들 계열에서 중농학파가 많이 나왔고 </p> <p>주로 정계에서 있으며 청나라도 다녀오고 도시에 살았던 </p> <p>노론들 계열에서 북학파와 같은 중상학파가 많이 나왔습니다 </p> <p><br>하지만 이런 강력한 군주가 정국을 주도하는 형세는 또한 내부적으로 </p> <p>상당한 문제점을 이미 간직한 위험한 정국이기도 했습니다 </p> <p><br>시파-벽파의 논쟁은 겉으로 보면 노론 벽파와 남인 시파의 문제지만 </p> <p>이미 양 군주를 거치며 비대해진 탕평당이라는 소수의 정파가 정국을 주도하는 풍조가</p> <p>일반화되게 됩니다. 명분도 붕당을 억제하고 탕평을 한다는 것으로 </p> <p>군주권의 강화를 위해 외척에 의지하는 형국에서 </p> <p>정조연간에는 보다 급진적으로 시행한다는 이유로 강경파를 대거기용함에 따라 </p> <p>붕당 특유의 정치 풍조 다른 당파는 물론 붕당 내부에서도 견제의 여유를 남기는 것이 위축되며  </p> <p>이런 강력한 왕권에 의지한 거대한 정치세력의 정국 주도라는 속에서 </p> <p>사실상 붕당정치가 종말을 향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p> <p><br>이는 명나라, 청나라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p> <p>유교식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p> <p>그 정치의 작용이 지나치게 사람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죠</p> <p><br>지난 역사에서 신권이 강화되게 되면 </p> <p>남북조 시대처럼 문신 재상이 찬탈을 하거나 무신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p> <p>이른바 신료들의 귀족정치 속에 허수아비 군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죠</p> <p><br>때문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이런 신권의 강화를 우려하여 </p> <p>막강한 황제의 권한으로 황제가 6부를 총괄하며 </p> <p>심지어 재상직 자체를 없애는 조치를 통해 </p> <p>군주의 독재를 크게 강화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었고</p> <p> </p> <p>황제권을 강화하는 것이 군주의 의무라는 의식이 </p> <p>역사를 통해 배운군주가 종종 지향하는 정치체제였습니다  </p> <p><br>문제는 이런 군주중심의 강화된 왕권의 정치는 </p> <p>현명하고 부지런한 군왕의 통치기간에는 </p> <p>신속하고 효율적이 정치가 될지 모르지만 </p> <p>반대로 평균이하의 군왕이 즉위한느 순간 </p> <p>시스템의 중심이 바로 무너지는 취약점이 있는 제도입니다 </p> <p><br>명나라가 죽을 때까지 밤새 공무를 보았던 주원장 </p> <p>카리스마가 넘친 군주 영락제 등이 사라진 이후 </p> <p>환관정치로 퇴보한 것이나 </p> <p><br>청나라가 강희, 옹정, 건륭 3황제의 현명한 황제가 </p> <p>사라지자 곧 황후가 국정의 중심이 되어 정국을 주도하는 </p> <p>외척정치로 나아간것이 그런 사례죠 </p> <p><br>영조-정조 연간의 이른바 탕평책이 세도정치로 나아간 것이 </p> <p>바로 이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p> <p><br>흔히 세도정치를 두고 500년간 대립한 신권과 왕권의 다툼에서 </p> <p>신권 즉 노론이 승리하여 나라가 망한거라 평하는데 </p> <p>거꾸로 생각해 보면 500년간 신권과 왕권이 투쟁한 것이 아니라 </p> <p><br>애초 조선이라는 나라는 성리학적 유교정치를 이상으로 한 국가로 </p> <p>신권과 신권이 대립하며 상호 견제를 통해 정당정치로 국정을 운영한 나라입니다 </p> <p> <br>이런 정상적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국에서 </p> <p>왕이 똑똑한 신하들 속에서 소외됨을 느끼는 경우나 </p> <p>때로는 자신이 더욱 현명하다 느끼는 군주가 종종 등장하며 </p> <p>인위적으로 경쟁을 극단적으로 부추기는게 강요된 형세죠 </p> <p><br>연산군이 그러하고 중종이 그러하고 선조가 그러하고 </p> <p>광해군이 그러하고 인조와 숙종이 그러하고 </p> <p>영조와 정조가 그러합니다. </p> <p><br>이런 극단적인 대립의 과정에서 종국에는 </p> <p>신권-신권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붕당자체의 기반이 무너짐에 따라 </p> <p>정치 경쟁 자체가 소멸한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p> <p> </p> <p>이는 정조의 강화된 개혁의 과정에서 지방 향약을 지방관이 통제하록 </p> <p>개혁함에 따라 당장은 강화된 왕권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p> <p>사림의 기반이 무너지고 지방의 정치와 언론의 표출이 </p> <p>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되는 체제가 구축된게 그러하였고 </p> <p> </p> <p>중앙은 이런 지방 사림의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 탕평당으로 시작한</p> <p>강력한 거정치세력이 외척과 왕권을 등에 엎고 정국을 사실상 독점하는 </p> <p>세도정치의 기반이 만들어진게 따리고 보면 정조의 통치기간 완성된 구조입니다. </p> <p><br>정조의 탕평시대는 이런 탕평당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p> <p>그 역시 또 다른 권력집중 세력을 양성하는데 그침으로써 </p> <p>정조의 갑작스런 승하로 이를 제어할 강력한 왕권조차 사라진 시점</p> <p><br>즉 어린 군왕이 즉위한 순종 연간이 되자 </p> <p>남겨진 외척중심의 소수의 가문이 정국을 주도하며 </p> <p>붕당 자체가 사라지고 소수정파와 가문이 정국을 독점하는 </p> <p>조선의 암흑기인 세도 정치시대가 개막하게 됩니다 </p> <p> </p> <p>조선의 성리학과 붕당이라는 거대한 내용을 한 게시물에 모두 연결해 담자니 </p> <p>너무 분량이 많아진 감이 있습니다 </p> <p><br>더불어 기본적으로 2분법 구분으로 단순하게 상호간 구조적인 연결점을 찾는 것은</p> <p>사실 역사적 사실이란 이토록 일관되게 흐르는게 아님을 고려하면 </p> <p>오히려 나중에 자세히 파고들 때 선입견을 가지되어 </p> <p>입체적으로 역사를 조명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하셨음합니다 </p> <p><br>디테일한 부분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p> <p>생략되고 지나치게 단순화한 부분도 있습니다 </p> <p>대충 이런 흐름이더라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셨음하는 소망입니다.</p> <p><br>어제 쓰자고 맘먹고 서술하다 막상 내려쓰니 너무 많아서 </p> <p>쓰던 저도 하루 쉬고 마무리 지었네요 </p> <p>쓰고나니 상당한 장문인데 행여 완독하신 분이 계심 감사드립니다 ㅎ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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