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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26682
    작성자 : caravan
    추천 : 1
    조회수 : 277
    IP : 125.180.***.8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6/10/19 19:37:26
    http://todayhumor.com/?readers_26682 모바일
    노량진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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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수업이 끝나면 저녁 6. 그리고 돌아오면 대충 7. 난 일부러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향해 느릿느릿 걷는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쭙잖은 자기위로와 합리화. 이 시간 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넘친다. 그 속을 걷고 있으면 나도 무언가 바쁜 일을 하고 온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일종의 사회부적응일 듯싶다. 수업은 땡땡이에 학점은 간신히 학고를 피할 정도. 자격증 하나 없는 백지상태 대학생 4학년.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닌 것이 학교에만 가면 도서관에 앉아 아무 책이나 핀다. 토익, 전공, 교양.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수업이 끝날 시간이면 인파 속에 걸음을 맡기며 바보가 되는 거다. 그렇게 바보가 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어.’‘전공이 나와 맞지 않아.’ ‘잘 되겠지.’ 라면서 막막한 미래를 생각한다. 그냥 생각만 한다.

    걷다보면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된다. 지루하고 피곤한 얼굴부터 좋아 죽겠다는 듯 활짝 핀 웃음까지. 저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들고 가는 청년은 얼굴에 한숨이 덕지덕지.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는 연신 친구들과 웃으며 깔깔댄다. 지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앳된 청년은 아르바이트가 막 끝났나보다. 그리고 나는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온갖 표정이 모인 이곳은 소음 속에 언제나 축제 분위기. 그러나 이곳 사람들이 모두 즐거울까?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고? 아마도 조금 늦은 출발 때문이겠지. 아니면 암담한 미래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미치도록 답답한 현실 때문에.

    이곳은 노량진. 미래. 아직 오지 않은 날. 이곳은 그 날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책을 펴고 공책에 빼곡히 무언가 적어가며 공부를 할 때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에도, 신발을 신고 잠시 나갈 때에도 자취방에 들어와 몸을 뉘일 때에도 언제나 마음 속 돌멩이는 조용히 우리를 짓누른다. 그러다 가끔씩 예고도 없이 굴러다니는 거다. 데굴데굴. 모난 것도, 맨들 거리는 것과 작은 것과 큰 것도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러다 문득 느낀다. 커다란 빌딩만한 솜뭉치가 머리위에서 덮쳐오는 느낌은 무거우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분명 숨은 쉬고 있는데 숨이 막히고 어둡지 않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 나는 매일매일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마음속 돌멩이와 머리에 인 솜뭉치를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옆방 불이 꺼져있다. 요 며칠 전부터 방이 빈 것 같다. 병석이 형의 방이다. 고시를 준비하던 형이었다. 포기한 것일까? 취직이라도 했을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궁금함은 빠르게 사라져간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내 방. 혼자 살기에는 큰 무리가 없는 방. 다만 캄캄한 어둠과 특유의 냉기가 우울하게 싫어진다. 평일이면 자취방에서 하는 건 잠 밖에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을 켜니 조금은 낫다. 대충 씻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금요일이라는데 연락할 사람 하나 없다. 있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해서 노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방에 있자는 생각으로 저녁도 거르고 왔다. 하지만 밥통에 밥이 있을 리가 있나. 냄비를 꺼내어 라면을 끓인다.

    좁은 방 안에 라면 냄새가 가득했다. 창문이라도 열까. 하지만 밤바람이 차가울 텐데. 그냥 관둔다. 후루룩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아니, 뱃속에 라면을 집어넣는다.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삼킨다. 일부러 게걸스럽게 먹는다. 조용한 방에 라면 먹는 소리만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라면을 끓인 시간보다도 짧게 나는 라면을 먹어 치운다.

    희미한 서러움이 올라온다. 애써 서러움을 누른다. 내가 서러울 자격도 있나? 없다. 스스로 공부에서 도망쳤고 다가올 미래를 외면하며 대비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를 바꿀 의지도 없었다. 안다.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치열하게 살 의욕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아는데, 나 스스로 무언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난 서러울 자격도 없다.

    속이 더부룩하다. 더부룩함은 곧 울렁거림으로 바뀌고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속에 든 것을 게워낸다. 온몸이 찌부러질 듯이 아프다. 역한 위액냄새에 눈물이 흘렀다. 눈물방울이 안경 안쪽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나는 울었다. 소리죽여 서럽게 울었다. 이게 뭐지? 나는 왜 이러지? 왜 이 모양이지?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이러고 있지?

    한참을 게워내고 나서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입안을 행구고 침대로 향한다. 몸에 힘이 없었다. 피곤하다. 졸리다. 힘들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싫다. 싫다. 다 싫다.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는다.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이 아련하게 들린다. 포근하다. 난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인 것 같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본다. 열한시 반. 열두시간이 넘도록 잠에 빠져있었다. 한숨을 한번 쉰다. 천천히 일어난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딱히 할 일이 없는 휴일. ‘오늘은 뭐하지.’ 라는 질문에 대답할 게 없다.

    세면을 하고 옷을 입었다. 밥도 거른 채 방을 나선다. 햇살이 눈부시다. 하늘은 파랗다. 바람은 선선하다. 가을이다. 푸른 가을하늘이 아름답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노량진역으로 향한다.

    노량진역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간다. 나는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주말이면 이곳에 앉아 궁상을 떤다. 그것도 심각하게. 무슨 궁상을 그렇게 떠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궁상이 다 그렇듯 대단한 건 없다. 사람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일 뿐이다. 저 아저씨는 어딜 가는 걸까. 어디 거래처라도 가는 것일까. 저 청년은 무슨 일을 할까. 나와 같은 학생일까. 아니면 취직했나? 나도 저렇게 어디론가 가고 싶다. 목적을 가지고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멍청히 사람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엉덩이가 아파올 때까지 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다. 나처럼 노량진에서 자취하는 친구. 아마도 놀자는 전화겠지.

    . .”

    . 뭐해?”

    나야 뭐 그냥 있지. .”

    너 또 역에서 궁상 짓 하고 앉아있냐? 대단하다 너도. 엉덩이 안 아프냐?”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친구에게 재촉했다.

    됐고. .”

    내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친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 놀자. 오랜만에 회나 좀 먹어볼까? 돈 있냐?”

    없어.”

    에이. 그럼 안 되지. 형이 산다.”

    월급 받았냐?”

    그럼.”

    언제.”

    이따가 저녁에. 병석이 형도 부를 건데 올 거지?”

    병석이 형? 요새 자취방 불 꺼져있던데.”

    취직했데. 그 형 집이 우리 옆집이잖아. 아주머니가 말해줬어. 아직 방은 안 뺐나봐?”

    몰라. 나도 자취방에 잘 없으니까. 아무튼 알았다.”

    오케이. 대충 일곱 시에 노량진역으로 나와.”

    .”

    내 대답을 듣자마자 친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찍 좀 전화할 것이지. 귀찮게. 속으로 욕을 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석이 형은 취직했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그 어두운 얼굴로 힘들어하던 형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럼 오늘은 형이 사는 걸까? 마침 돈도 없는데 저녁은 얻어먹어야겠다. 뭘 먹을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뗐다. 친구는 회를 먹자 했지만 이제 이 동네에서 회는 신물이 난다.

    노량진역을 벗어나자마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자연스레 다시 자취방으로 간다. 그래. 책이나 챙겨서 학교 도서관이나 가자. 가고 오는데 두 시간씩. 그러면 도서관에서 대충 시간을 죽일 시간은 된다. 의미 없는 시간 죽이기. 어차피 노량진역에 온 것도 의미 없었다. 허무하게 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하늘은 우울하게 아름답다.

    대충 책을 챙겨 나온다. 제목도 보지 않고 가방에 넣어 재빨리 방을 나선다. 저 방은 보금자리이기도 하지만 덫이기도 하다. 게을러지는 덫. 우습지만 무섭다. 나태해지는 나를 그대로 보는 감옥 혹은 고문실.

    누군가 그랬던가. 아파야 청춘이라고. 실패도 해보고 고생도 해봐야 크는 거라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나도 아픈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절망과 무력감, 허무함과 막연한 불안과 무너져버린 자존감은 인생의 거름이 되지 못하는 듯싶다. 아픈데, 이렇게 아픈데 난 청춘이 아닌가보다. 주위의 저 젊은이들은 아플 테지. 그리고 저렇게 빛나고 있다. 햇살 속에서 걷는 모두가 부럽다.

    벌써 해가 조금 기울었다. 가을의 해는 빨리 떨어진다. 유리처럼 맑다가 순식간에 탁한 금빛으로 변해버린다. 난 그런 햇빛이 싫다. 찬란한 햇빛은 뜨거웠고 그 뜨거움은 내게 부끄러움이란 걸 상기시킨다. 무대 위에 준비 없이 올라간 배우처럼 햇살 속에서 멍하니 살아가는 나를 보면 아플 수밖에 없다. 청춘이고 뭐고 아픈 나는 우울하게 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왜 또.”

    친구다.

    . 석훈아.”

    아까와 달리 침울한 목소리다.

    .”

    병석이 형 있잖아.”

    형 왜.”

    그렇게 물으면서도 손에 힘이 빠졌다. 친구의 침울한 목소리. 걸려올 리 없던 갑작스러운 전화. 소식이 없던 요 며칠. 그리고 말이 없는 친구.

    어디로 가냐.”

    주변사람의 죽음이 처음일 테인데도 묘하게 침착했다. 친구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강화도야. 퇴근하고 차 끌고 그쪽으로 갈게. 아니면 네가 이쪽으로 올래?”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럼 여섯시까지 이쪽으로 와.”

    전화를 끊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파란 하늘이다. 내 기분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맑은 가을하늘. 하늘은 병석이 형의 죽음과 아무 상관도 없다. 하늘이 개인에게 관심이라도 가져줄까? 아니겠지. 그랬다면 흐릿한 구름이라도 파란 하늘에 무늬를 그려 넣었겠지. 병석이 형이 죽었다는 것이 현실감이 없다. 난 덤덤하게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요새 일 어떠냐.”

    넌지시 물어본다. 친구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렇지. 내 나이에 뭐 힘들고 자시고가 어디 있냐. 취직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짧게 말했다.

    그래. 그건 그렇지.”

    노을은 빠르게 저물었다. 따뜻한 주홍빛은 사그라지고 차가운 푸른 하늘빛이 무심히 번진다. 도착하면 완전히 어두워질 것 같았다.

    병석이 형은.......어쩐 일이래?”

    나라고 뭐 알겠냐. 일하는데 어머니께서 전화오시더라고. 형 죽었다고. 자살이래.”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멍 할 뿐이었다.

    그렇구나.”

    알람처럼 똑같은 대답만 해주고는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차의 진동음과 둘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20분을 더 가니 장례식장이 보였다.

    얼마나 넣을 거냐.”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대충 5만원 넣을까 하는데.”

    지갑을 열어봤다. 43천원. 그것이 내 여윳돈의 전부였다.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내가 뭐했을까. 집에서 생활비를 받는 입장에 돈에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어깨로 한숨을 쉬고는 친구에게 말했다.

    돈 없다. 2만원만 빌려줘.”

    친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장례식장은 아직 한산했다. 손님은 집이 가까운 사람들만 되는대로 온 모양이다. 옆을 보니 형의 얼굴이 보였다. 꽃 속에서 웃고 있는 병석이 형. 웃는 모습이 낯설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 친구와 내가 절을 하고 일어서자 병석이 형 어머님께서 연신 고맙다고 손을 잡아주셨다. 순간 이게 뭐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하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랬다. 난 말없이 고개만 꾸벅 하고는 물러났다.

    친구와 함께 상을 받았지만 식욕이 없었다. 어제처럼 다 게워낼 것 같아 껄끄러웠다. 먹는 둥 마는 둥 대부분 남기고 친구를 보니 친구도 거의 먹지를 않았다.

    넌 왜 안 먹는데.”

    입맛이 없다.”

    그러냐.”

    이해했다. 친구는 병석이 형을 잘 따랐다. 둘은 시간만 나면 수산시장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가끔씩 그 자리에 나도 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마냥 즐겁지는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쩔 거냐.”

    시계를 보니 벌써 여덟시가 넘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던 까닭이었다.

    가야지.”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의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나오니 날씨가 더 쌀쌀해진 기분이었다. 친구는 병석이 형의 삼촌 쯤 되는 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석훈아. 한잔 할래?”

    대답 대신 친구의 어깨를 툭 쳐 주었다. 우리는 무표정하게 차에 탔다.

    올 때와 달리 가는 길은 어두컴컴했다.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도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밤하늘은 낮만큼 맑았다. 그 때문인지 더 서늘하게만 느껴진다.

    형 무슨 일 있었데.”

    “......”

    친구는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듯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기다렸다.

    , 형이 힘들었나봐. 집에 와서도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었데.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우울증.......이라던데.”

    친구는 믿지 못하겠는 눈치다. 형은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친구 기준에 형은 자살할 만한 이유는 없었을 거다.

    문득 저번 술자리에서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라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냐. 내가 뭐 나이가 좀 많긴 한데 너희보다 사회에 좀 늦게 진출하는 것뿐이잖아? 그리고 허세나 좀 부리는 거지. 너희보다 뒤처지게 보이는 건 싫으니까. 그리고 고시 공부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정도 나이는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니고. , 정 하다하다 안되면.......글쎄다. 그땐 확 뛰어내릴까? 하하하.’

    불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좌절했던 것일까.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형은 나보다 학점도 좋았고 자격증도 몇 개 있었다. 다만 고시. 여태 해 왔던 노력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 어영부영 5년째라고 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 때 했던 형의 말은 허세이면서도 진실이었나. 형은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지켰다기보다는 선택지가 그것 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어야했나. 당연하다는 듯 답이 나왔다. 그럴 수도 있겠지.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병석이 형 말이다.”

    ,”

    잠시 숨을 골랐다.

    창피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잠깐 동안의 침묵. 그리고 친구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한다.

    말 가려서 해라. 장난치지 말고.”

    친구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친구에게 병석이 형이 느꼈을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정말로 병석이 형이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장난치는 건 아냐. 단지.......”

    이 말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남들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

    뭔 소리야?”

    형 나이가 적은 건 아니잖아. 서른이 넘었다고. 고시 연령대가 높은 건 알지만 남들은 다 그 나이면 사회에서 돈 벌고 있을 나이니까. 남들 손가락질 받는 게 부끄러울 수도 있지.”

    그게 창피한 거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것 때문에 죽었다고?”

    안 될 건 없잖아.”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슬쩍 보니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그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일 뿐. 형이 무슨 생각으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형만이 알거다.

    하지만 이젠 물어볼 수도 없다.

     

    날씨가 서늘했지만 그렇다고 어디 들어가서 자리 잡고 마실 기분은 아니었다. 우린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병을 땄다. 과자 하나에 소주병 둘. 어차피 내일이 일요일이니 부담도 없었다. 주저 없이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채운다.

    건배 소리 없이, 잔을 부딪치지도 않고 한 번에 술을 비운다. 독하고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하지만 취하고 싶었다. 병석이 형의 죽음이 점점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너 그거 아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손은 이미 잔을 다시 채우고 있었다.

    .”

    친구는 내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했다.

    여기 애들 장난 아니게 죽어나가는 거.”

    그리고 곧바로 술을 비워버리는 친구. 나 역시 한 번에 마셔버린 다음 잔을 채운다.

    대충은.”

    치열하게 사는 만큼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그중에는 포기하는 방법이 극단적인 경우도 생각보다 많이 들려온다. 두 달 전엔 옆 건물 재수생이, 또 얼마 후에는 저쪽 학원의 공시생이, 그리고 이번엔 고시생이 죽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질만도 하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아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이곳은 사람이 떠나는 것 보다 들어오는 게 더 많은 곳이다.

    가득 채워진 술잔을 잡으며 친구가 말한다.

    도대체 왜 죽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기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 친구는 낮게 웃었다. 그다지 즐겁지 않은 웃음이었다.

    병석이 형도 그렇고 죽어버린 애들도 그렇고 대체 왜 죽는 건지 모르겠다. 그 부담이라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또 다시 잔을 비운다.

    근데 야. 석훈아.”

    .”

    병석이 형 왜 그렇게까지 고시에 매달렸을까?”

    형 법 쪽에서 일하고 싶어 했잖아. 예전부터 꿈이라고.”

    친구는 취기가 오르는 듯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후우. 그래. 맞아. 형이 원해서 한 거야. 그런데 죽었단 말이지. ........”

    친구가 잔을 든다. 나도 잔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마셨다. 이상하게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냥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만 있다.

    친구가 대뜸 묻는다.

    넌 뭐하고 살 거냐.”

    ?”

    친구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취직해야지 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딱히 무언가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친구는 다른 한 병을 따면서 웃었다.

    아무 생각 없네.”

    언짢았다. 친구가 나를 비웃은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별 뜻 없이 말한 것도 안다. 그래. 난 아무생각 없었다. 형처럼 뭔가 해보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너처럼 능력이 있어서 일찍 취직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나도 안다. 내가 별 볼 일 없다는 거. 그런데 그거 아냐. 내가 요즘 어떤지. 하루 종일 겁에 질려있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척 살고 있다는 거. 그러면 너는 말할 거다.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다니면서 아무것도 아닌 척 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면 나는 말할 거다. 여기 안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고.

    하지만 순식간에 떠오른 많은 생각은 입을 통해 전혀 다른 말이 되었다. 그것도 짧게.

    그러게. 나도 뭔가 해야 되는데.”

    바람이 차다. 옷을 여미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온통 검다. 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달도 없다. 눈을 굴려보니 학원 건물 옥상 모퉁이에 노란 달무리가 빛났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고 하늘만 검다.

    근데 내가 그렇게 성실한 사람은 아닌가봐.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저 막연히 미래에는 잘 되겠지. 아니면 그냥 시궁창 인생 살겠지. 또 뭐가 있겠냐.”

    그거 병석이 형이 하던 말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친구는 내게 술을 권했다. 나도 사양치 않고 마셨다. 대화 하나에 한 잔씩. 급하게 마시고 있지만 여전히 술에 취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반면 친구는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애초에 술이 센 녀석도 아니었다. 슬금슬금 혀가 꼬인 발음으로 친구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나도 취직 못했으면 너처럼 생각했겠지. 아니면 병석이 형처럼 뛰어내렸거나. 그래. 내가 좀 그랬네. . 내가 형을 몰랐네.”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울먹이며 말했다.

    병석이 형 왜 그랬냐. 좀만 더 참지. 뭐 그리 대수라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 그거 하나 못 참고 가냐. 그냥 포기하고 취직이나 하지. 굳이 그거 하겠다고 말야 고집이나 부리고. 멍청하게.”

    포기하기 힘들었을 거다. 삶에도 관성이 있다. 5년이란 시간동안 공부만 해온 형은 다른 길을 가기가 무서웠을 거다. 그래서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가버렸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뭐 하나 해보겠다는 거 없이 살아온 탓에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는 삶이 익숙해서, 그래서 계속 이 모양 이 꼴 아닐까.

    그렇게 몇 잔 더 마시더니 우리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친구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상태가 아닌 듯했다.

    일어나자. 날이 춥다.”

    조금 비틀거린 친구는 나를 보며 웃었다.

    석훈아.”

    .”

    넌 그러지 마라.”

    .”

    아냐. 아니고, 석훈아.”

    꽤나 취한 것 같다. 얼른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를 재촉했다.

    ,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데려다줄까?”

    아니. 됐고 석훈아.”

    얘기해.”

    넌 그러지 마라.”

    아 그러니까 무슨.......”

    친구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 표정을 보고 친구는 바보처럼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너 괜찮은 놈이야. 멋진 놈이고. 그러니까 그러지 마라.”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친구는 발걸음을 돌렸다.

    나 간다.”

    말없이 친구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뭐 저딴 놈이 다 있냐는 생각에 계속 바라보았다. 친구가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몸을 떨며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피며 생각했다. 친구가 한 말. 너는 멋진 놈이라고.

    그래. 언젠가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다. 남들보다 못하는 것도 있지만 잘하는 것도 많은 게 나라고. 적어도 남들보다 떨어지진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일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 꼴에 자존심은 있었는지 친구에게도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투정부리기 싫었다. 그래서 결국 뭔가. 나는 내 자신에게 투정부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 네 꼴은 뭐냐고.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고. 너는 어디에 있냐고. 네가 있을 곳은 어디냐고. 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냐고 따졌다.

    그래서 말했다. 내 꼴을 보고도 모르냐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내가 그딴 질문을 하냐고.

    그래도 지금 이것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가야할 곳은 좁아터진 내 방이다. 피식 웃었다.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바람도 차고 속도 차갑다. 취기는 오르지 않고 딸꾹질만 나왔다. 빌어먹게도 추운 날씨다.

    그리고 난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속을 게워내야 했다. 먹은 것도 없어서 그런지 위액까지 몽땅 다 토해낸 것 같았다.

    어제처럼 울지는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들만 보낸다. 사춘기 철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사춘기 치기어린 행동조차 하지 않는다.

    또 늦은 시간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온 몸에 힘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전부터 제대로 뭘 먹은 게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뭘 좀 먹을까. 하지만 겁이 난다. 또 토하면 어쩌지. 일주일 내내 밥을 먹는 게 고역이었다.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약을 먹으니 조금 나았지만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기분은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죽이라도 먹어야하나.”

    하지만 밥이 없다. 자취방에서 거의 식사를 하지 않으니 있을 리가 없다. 이틀 전 라면을 끓였던 냄비는 그대로 싱크대에 처박혀 있다. 한숨을 쉬고 일단 설거지부터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 사이에 끔찍하게 너저분해진 방도 치우고.

    그렇게 하니 오후는 금방 갔다.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할까. 컴퓨터를 켜고 구인광고 사이트에 접속한다. 하지만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있긴 하다. 소위 말하는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소기업은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지원하기가 꺼려진다. 자존심일까?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넌 뭐하고 살 거냐. 현실적인 문제가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나이다.

    뭐하고 살까. 어떻게 뭐해먹고 살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객관식이 아니라 언제나 주관식이니까. 아니지. 실기의 연속이다. 매번 평가받는 실기. 아마 수십 수백 번 평가를 받겠지. 내 점수는 어느 정도일까.

    뻔하지.”

    혼잣말을 해본다. 그렇다고 누가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조용한 방에 혼자 있으니 답답했다. 머리는 멍해지고 밖에 나가기조차 귀찮아진다. 대답도 없는 질문을 허공에 날려본다.

    석훈아, 너 뭐해먹고 살 거냐.”

    질문 하나.

    석훈아. 너 어쩌자고 이러냐.”

    질문 둘.

    석훈아. 너 어떻게 해야 하냐.”

    질문 셋. 그리고 혼자 답도 해본다.

    나도 모르겠다.”

    답 하나.

    나도 모르겠다.”

    답 둘. 이렇게 하니 괜스레 또 우울해진다. 유치한 자문자답은 관두자.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간.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 사이. 뜬금없이 배가 고파온다. 뭔가를 뱃속에 집어넣어야겠지만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바닥을 치는 점수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게으름을 피웠던 대가를 받는 것일까. 패자부활전은 없을까. 아직 시작도 안 한 인생 벌써부터 자격박탈은 너무하지 않을까. 한 번만 기회를 준다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 끝이 없다.

    공복감. 우울함. 슬픈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몇 시간을 모니터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다.

    겁이 났다. 마침내 깨달은 거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이해 못했다는 흔한 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동안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막연한 미래가 이제 바로 앞으로 다가온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휴대폰으로 날짜를 본다. 11월 초. 등줄기를 타고 저릿한 무언가가 지나간다. 동시에 뱃속에서 뭔가 울컥하며 올라온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속에서 우느라 다 말라버린 눈물은 내 눈가를 적셔주지 못한다.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갑작스럽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 아닌가. 아니면 그동안 내가 애써 외면했던 것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던 것뿐인가? 나는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어쩌자고 이 지경까지 나를 내버려 두었을까?

    화가 났다. 내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짝을 찾을 수 없는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앞에 있는 문제를 보고 외면해버렸다. 피할 수도 없는 문제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착실하게 내게 다가오는 현실을 보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시간은 있어. 뭐라도 어떻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은 없고 뭐가 어떻게 될 것도 아니다.

    병석이 형이 왜 목숨을 끊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았다. 그 형도 무서웠던 거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도 아니다. 사는 게 무서웠던 거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시간이 지나며 쓸모없던 것이 되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무섭다.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치도록 무섭다.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다. 그리고 실패자도 아니다. 무언가에 도전해야 패배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는 거다. 사람들은 나 같은 놈을 낙오자라 부른다.

    메아리도 없는 빈 소리가 방에 울린다. 입은 꾹 다물고 눈은 질끈 감는다. 머릿속은 뜻 모를 괴성으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한다. 얼마간 그렇게 속으로 실컷 비명을 내지르니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나약한 이성이 말한다. 힘들어. 다 싫어. 아무 것도 하기 싫어.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이성의 요구에 몸이 말한다. 이미 예전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망설임도 없이 입술이 움직였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놀라지도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죽자.”

    답 셋.

     

    떨리지는 않았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니 조금 추운 것 빼고는 괜찮았다. 폐에 들어오는 밤공기가 유리조각 같았다. 찢어질 듯 차갑고 베일 듯 날카롭다. 하늘을 바라봤다. 마지막 하늘일까. 여전히 검은 하늘이다. 검지만 구름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 하지만 노란 달 하나가 떠 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 달이 있다는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잠시 달을 보고 있자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느낌인 것 같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이 달이 떠 있는 하늘이라는 게 좋았다. 추위 때문에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러고 보니 이제 추울 일도 없지 않을까.

    난간에 올라섰다. 아래를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몸이 쑤욱 떨어지는 것 같다. 땅바닥이 끝없이 꺼지는 것 같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입 꼬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씰룩거리는데 입술은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다. 코는 거친 숨을 불규칙 하게 내쉰다. , 후욱, , .

    이게 맞는 걸까. 이걸로 끝나도 괜찮을 걸까. 결국 난 죽기 직전까지 머뭇거리는 걸까. 뛰어내리자. 죽는 건 그래도 내 의지로 하는 거잖아. 한 발짝만 앞으로 내밀면 되는데 왜 그게 힘들까.

    오기를 부려본다. 억지로 발을 내민다.

    빠아앙!

    하늘이 보인다. 바뀐 것 없이 깨끗한 하늘. 방금 보았던 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자세히 보니 별도 몇 개 떠있다. 별을 보는 건 처음인데. 바람도 분다. 여전히 밤바람은 차갑구나. 그리고 땅바닥도 차갑구나. 뒤통수가 좀 아프다.

    살아있다. 결국 뛰어내리지 못했다. 경적 소리에 놀라서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땅바닥에 뻗어있다. 몸이 떨렸다. 미치도록 추웠다. 겨울밤도 아닌데 온 몸이 뻐근해질 정도로 추웠다. 덜덜거리고 있는 이런 모습이 웃겼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내 모습이 우스워 미칠 것만 같았다. 시작된 웃음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난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었다. 기침이 날 때까지 웃어재꼈다. 오랜만에 시원한 웃음이었다. 웃으며 생각했다. 친구 녀석이 떠올랐다.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시간이면 퇴근했을 시간이다.

    . 석훈아. 웬일이냐. 네가 전화를 다하고.”

    .”

    말해.”

    너 때문에 안 한 거 아니다.”

    ?”

    너 때문에 안 한 거 아니라고.”

    야 뭔 소리 하는.......”

    자취방 옥상으로 와. 지금 열려있어.”

    전화를 끊었다. 친구를 기다린다. 뛰어서 오면 금방 올 거다. 5분도 걸리지 않아. 얼른 와라. 춥다. 누구에게 뭐라고 말은 해야겠다. 그러니 얼른 와라.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휴대폰을 켜보니 전화한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빨리 왔네.”

    친구는 가쁜 호흡을 진정시킬 생각도 않고 나를 껴안았다. 따뜻하다.

    야 임마. 뭔 생각이었냐. ? 뭔 생각으로 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친구. 넌 좋은 친구다. 그러니 내 이야기 좀 들어줘.

    그냥, 그냥 무서웠어. 병석이 형도 나처럼 무서웠을 거야. 그 기분 알아? 그게 말야. 아무것도 못한다는 기분이 참 그렇더라고.”

    온기가 돌아온다. 친구의 품 안에서 그제야 난 죽을 뻔했단 사실에 바들바들 떤다. 그럼에도 입은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뭔가 제대로 해본 게 없어. 모아놓은 돈도 없고 기술을 배운 것도 아냐. 그렇다고 내가 스펙을 쌓아놓은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섭더라.”

    일단 들어가자. 너 몸 너무 차다. ?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들어가자. 자자. 일어나.”

    친구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내가 뭘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야. , . 그 기분 모르지? 모르는 게 좋을걸. 진짜 기분 더럽거든. 진짜 힘들거든. 근데, 근데 그게 너무 힘들잖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일어나.”

    친구는 간신히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난 걸음도 옮기기 힘들었다. 몸은 여전히 덜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나도 떨어지려 했는데, 그랬는데 저기.......저기 경적 소리에 놀라서.......흐하핫.”

    다시 웃었다. 몸은 떨리는데 웃음은 나오니 그건 그것대로 고역이었다.

    .”

    . 일단 걷자.”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친구는 내 방으로 나를 끌고 올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친구는 바닥에 마주 앉았다.

    .”

    “.......말해.”

    친구의 표정은 복잡했다. 다행이다 싶은 표정과 화가 난 표정에 놀람까지 섞여있으니 그 모습이 꽤나 볼만했다.

    나 좀 도와줘라.”

    친구는 말이 없다. 그게 더 고마웠다.

    죽을 때 죽더라도 병석이 형처럼 뭔가 해보고는 죽어야지.”

    그래도 병석이 형은 5년 동안 계속 부딪혀왔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고 좌절감에 빠져 도망쳐버리기는 했지만.

    그딴 걸로 농담하지 마라.”

    변한 건 없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돌멩이가 굴러다닐 거다. 머리 위에 솜뭉치는 심심하면 날 짓누를 거다. 그러면 난 또 우울하게 살아갈 거다. 또 애써 맘 잡은 것이 풀어져 버릴 날도 분명 올 거다. 뭔가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힘들다고 투덜거릴 거다.

    웃음이 나왔다. 그게 웃겼다.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뛰어 내리려 했다. 남들이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이 날까. 웃긴 놈이라고 하겠지. 저놈 왜 죽었데? 라고 물으면서 말이다. 적어도 웃음거리는 되기 싫었다.

    실실 웃지 말고. 병석이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자꾸 왜 이러는데! 나도 같이 따라 죽는 꼴 보고 싶냐?”

    홍역이 아닐까. 우리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앓는 홍역. 아니면 독한 감기라거나. 어쨌든 사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이 병을 이겨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스스로의 의지든 친구의 도움이든. 이제 이 병을 이겨냈으니 나도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그런 확신이 든다. 시궁창 같은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고 삶에 의욕도 생길 것이다. 나도 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병석이 형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스스로 병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라. 씁쓸하게 웃으며 친구에게 부탁한다.

    아무튼, 좀 도와줘라.”

    도대체 뭘.”

    뭐든. 아무거나.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면.”

    또 병신 짓거리 안할 거냐?”

    .”

    친구는 아직 날 못 믿겠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날 쳐다본다. 친구가 내게 물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배가 고팠다. 뭔가 먹고 싶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조금 민망했다. 그래도 한번 떨어진 입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밥 좀 사줘. 배고프다.”

    밖으로 나왔다.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았다. 새까만 하늘에 달이 보였다. 가을 밤바람도 슬슬 익숙해지는 것 같다. 친구 어깨를 툭 쳤다.

    회 먹으러 가자.”

    caravan의 꼬릿말입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썼던 단편이에요.

    지금 읽으니 유치하고.....부족한 모습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쓴 글이니까 너그러이....보아주세요.

    노량진 블루스는, 더욱 더 많은 등장인물들과, 더욱 더 많은 삶들이 교차하는

    제 꿈이랍니다.

    그 첫 번 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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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20 16:09:46  175.223.***.146  eee..  65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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