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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47889
    작성자 : 뿡분
    추천 : 9
    조회수 : 1417
    IP : 112.146.***.6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5/18 22:19:29
    http://todayhumor.com/?panic_47889 모바일
    소설] 붉은 비가 내리는 마을 上

     

    ( 저번에 연재하던 글입니다.

     상중하로 나눠집니다. 전에 2편까지 읽은 분들은 상편 거의 끝나갈쯤부터(?) 보시면 됩니다.)

     

     

     

     

     

     

     上>

     

     

    오랜 가뭄이 끝날 무렵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내리는 빗방울이 반가워, 한달음에 뛰쳐나가 비님을 맞이한 농부의 미소 어린 입가에 곰팡이같은 붉은 반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지 나흘만의 일이었다.

     

    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내에 나가서도 차를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으니, 이 마을까지 차가 들어올 일도 없었거니와 들어올 찻길조차 없었다. 산길을 지나면 큰 마을로 이어지긴 했지만, 평소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기 어려웠다. 간혹 큰 마을에 오일장이 들어설 때면 몰라도. 덕분에 수많은 세월동안 사람 발길이 닿은 오솔길 위에는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병이 돌기 시작하니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찰을 한번 받으려면 의원이 사는 마을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의원을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신이 노하신 게야.”

     

    나이 많은 노인이 이 빠진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였다. 노인이 이렇게 중얼댈 때마다 사람들은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고들 했다. 하지만 팔할은 헛소리라도 이할은 맞을 때도 있어서, 노인을 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우연히 맞아들었을 수도 있고, 젊을 때의 총기를 잃은 대가로 받은 특별한 능력일수도 있다.

     

    “에잇. 아버지 괜한 소리 마시오. 왜 겁을 주는 게요?”

    “정말이래두. 빨간 계집애,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그러지 마시래두. 집으로 들어가십시다.”

     

    노인의 아들이 나서서 그를 집으로 끌고가듯 데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나왔으니 주워담을 수 없었다.

     

    빨간 계집애, 라는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리 굳어졌다. 아직도 성황당에 소원을 비는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미신을 믿기 쉬웠고 동요되기 쉬웠다.

     

    자급자족하며 조용하게 살고 있던 이 마을에 최근 변화가 찾아왔다.

    바깥세상을 점령한 도시화는 아니었다. 눈이 아프도록 급변하며 생활을 침식해오는 서구문화도 아니었다. 바깥의 물이 여기까지 스며들려면 한참은 더 걸릴 테니까. 그러니 이들에게 있어 최근 변화라고 해봤자 ‘외부인 부녀’ 밖에 없었다. 몇해전 이맘때쯤 스며들 듯 나타나 살기 시작한 부녀. 혹자는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도 했고, 혹자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숨어든 거라고도 했다. 어느 소문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 부녀와 사람들 간의 소통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 아버지도 안색도 나쁘고 침울해 보이는 것이 꽤 의심스러웠지만,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은 건 딸이었다. 키가 멀대같이 큰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작은 여자 아이.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 계집아이. 새하얀 피부에 흑단같은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통통한 볼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인 예쁘장한 소녀. 여태까지 어린애라고 해봤자 땟물이 줄줄 흐르는 개구쟁이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한테 소녀의 출현은 충격이었다. 특히 그 고운 색의 원피스는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나풀대곤 했다.

     

    소녀는 꽤 여러사람의 신경을 건드렸다. 소년들은 남몰래 마음앓이를 했고, 소녀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라는게 갖고 싶어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을 터였다.

     

    노인은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중얼중얼 염불을 외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마을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그 부녀에 대한 말이었다.

     

    “무당집에서 산다지 아마?”

    “빈집 중에 성한데라군 거기뿐이니 별 수 있나. 용케도 그런데서 애를 키우네.”

    “그 부녀가 무당집에 들어간 다음부터 가뭄이 시작됐지, 아마?”

    “귀신이 씐거지. 생전에 그렇게 용했다더니 죽어서까지 귀신이 돼서 사람들을 갖구 노는 거야.”

     

    마을의 인구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서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빈집이 늘어났다. 그래서 부녀가 마을에 나타났을 때만해도 빈집 중에 몇몇 집은 꽤 살만했다. 하지만 여름의 장마와 겨울의 한파를 반복해 거치면서 삭아 무너져 내렸다. 지붕부터 빗물이 줄줄 흘렀다. 장마라도 오면 비오는 날엔 비가 새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거처를 옮겨다녔다. 그러다가 무당의 집까지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벌이가 좋았던 무당이 생전에 기왓장을 새로 올렸던 덕분에, 적어도 비가 새는 걱정은 덜었다. 그리고 무당 집에서 아직까지 지내는 모양이었다.

     

    사람도 적고 면적도 적은 마을이라서,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당의 집이라니....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조금 전에 노인의 말을 들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몰랐다. 한번 불길하게 여겨지니, 부녀의 행적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평소에 노인의 말을 헛소리라 콧방귀를 뀌던 마을 유일의 노총각 최도 눈을 부라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치맛자락만 보일라쳐도 소금을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 소녀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어린애들도 생겨났다. 그걸 목격한 부모는 잔인한 행동을 꾸짖기는커녕 독려했다. 덕분에 소녀는 며칠만에 마을의 공공연한 놀잇감이 되고 말았다.

     

    가뭄.

    그리고 가뭄이 끝나자마자 찾아온 역병.

    이 연이은 재난을 탓할 데가 필요했던 거다.

     

    마을을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자기들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희생해서라도. 책임을 돌려서 어떻게든 희망을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 이 잔인한 따돌림은 공포로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소녀를 가엾게 여겨서 떡이며 감자 같은 걸 남몰래 가져다주던 아낙이 있었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으레 들고오던 음식이 담긴 소쿠리는 내팽겨두고 맨몸으로 찾아와 문구멍에 눈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그녀가 목격한 것들은 세배, 네배쯤 과장되어 퍼져나갔다. 곧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수습이 불가능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취객이 ‘화형 시키자’고 외쳐댔다. 그를 비난하고 힐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모두 그들의 잘못 인양 분위기가 흘러갔다.

    소녀와 아버지는 하루종일 방에 웅크리고 있다가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남의 집 부엌을 털어 허기진 배를 채웠다. 개가 컹컹 짖는 일도 간혹 있었다.

     

    온 마을에 여름비가 촉촉하게 젖어들던 어느 밤이었다.

    처음 병에 걸렸던 농부가 목숨을 잃었다. 화상을 입은 것마냥 온몸이 붉게 뒤덮여 피칠갑을 한 채로 숨이 끊어진 걸 그의 아내가 발견했다.

     

    농부의 아내는 박희완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잠에 취해있던 박희완은 밤중에 심상찮은 곡소리와 함께 누군가 찾아왔으니, 필시 심상치 않은 일이라 짐작했다. 그는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희완은 마을의 유지였다. 바깥세상에서야 별볼일 없는 재산일지 몰라도, 이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만큼은 만석꾼 부럽지 않은 몸이었다. 게다가 이런 산골에서는 드물게도 양반의 후손이었다. 혹자는 그의 조상이 한양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었지만 유배를 당했다고도 했다. 조상이 무슨 사연으로 이 산골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양반이 대단하긴 대단한지 그 위엄은 박희완의 대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모두 박희완을 대감처럼 대했다. 그가 가진 재산만큼 그를 존경하며 우러러보았고, 그의 말을 착실하게 따랐다. 그가 가진 소양이나 지식의 깊이 따위야 아무러면 어떠냐는 듯.

     

    박희완 앞에 엎드려서 흐느껴 울던 농부의 아내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 표독스런 눈빛에 박희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필시 저주가 내린 거예요.”

    “저주라니, 누구의 저주 말이오.”

     

    그 눈빛은 광기에 가까웠다. 누구 탓으로 돌리려는진 몰라도 확신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구나. 박희완은 그녀를 잘 달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타일렀지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여자애가 나타난 뒤로 마을이 이상해졌어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병을 퍼뜨린게 분명하다구요!”

     

    “그거야 살던 집이 변변치 않으니 옮겨 다닌거고, 사람이 병에 걸리는 건 하늘의 뜻일 터.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재난을 내리고 저주를 내린단 말이오?”

     

    “허지만 그렇담 그 애는 왜 멀쩡한 건가요? 예? 다들 병든 가축마냥 픽픽 쓰러져 가는데 여전히 꽃을 꺾으러 다니고 먹을 걸 구걸하러 다니잖아요. 그 애 아버지만 해두 온 얼굴이 울긋불긋 한 걸요.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멀쩡한 건 그 애 하나예요.”

     

    그녀는 흙을 한줌 움켜 잡고 있었다. 분에 못이겨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먹 위로 불긋한 반점이 피어올라 있는 걸 보니 남편 간호를 하다가 병이 옮은 듯했다.

    박희완이 겸연쩍게 중얼댔다.

     

    “나도 건강하질 않소. 우리 안사람도, 식솔들도.”

     

    농부의 아내는 그의 다리에 답싹 달라붙으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어르신은 저희집하고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매일 붙어 다니는 아비까지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저만 혼자 멀쩡하답니까?! 사람이라면 병이 옮아야 하잖아요.”

     

    “이러지 마십시오, 부인. 부인께서 정신을 다잡고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소.”

     

    장례라는 말에 정신을 조금 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돌변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 애를 데려다가 지키게 하겠어요. 두고 보라죠, 그래도 멀쩡하다면 귀신이란 증거 아니겠어요?”

     

    “지키다니, 무엇을?”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박희완의 물음이 허망하게 뒤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벌써 대문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미처 잡을 새도 없었다. 달음질치느라 펄럭이는 치마 아래로 보이는 두 다리에 불긋한 점들이 빼곡했다.

    박희완은 몸서리치며 밖으로 따라 나갔다.

    농부의 아내는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밤이 새도록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소녀를 찾아 다녔다. 어느새 해가 떳고, 농부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덩달아 소녀를 찾기 시작했다. 한바탕 난리 속에 해가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포기하고 말리라고 생각했던 박희완은 도깨비불처럼 둥둥 어둠속을 떠다니는 횃불들을 보고 주저 앉아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동요되고 있는건가. 그들은 기어코 그 가여운 소녀를 잡아내고야 말 것이다. 아무리 박희완이라고 해도 이 일을 말릴 수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박희완의 아내가 밖으로 나와 박희완의 곁에 섰다.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요. 그 불쌍한 애한테.”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시신 옆을 지키게 하려는 거야.”

    “네에?”

     

    박희완은 놀란 아내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광기가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천벌 받을 일이로군. 거참...”

     

    그 순간 저 멀리서 어둠을 뚫고 개가 컹, 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린 직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횃불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찾던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박희완은 눈을 가늘게 좁혀 횃불이 모여드는 장소를 확인했다. 뒷산의 초입이었다. 저 산에는 큰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가여운 부녀는 밤을 틈타 다른 마을로 도망치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갔지만.

     

     

     

     

     

     

     

    소녀는 아버지 손을 꽉 붙잡았다. 어두운 산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으니 어죽 무서웠을까. 하지만 어둠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을 사냥이라도 하려는지 달려드는 사람들. 웅성대는 말소리가 들릴 때면 아버지는 재빨리 소녀를 끌어당겼다.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해지면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소녀의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넘어지며 생긴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조급한 마음으로 소녀를 재촉했지만 어린애를 데리고, 이 어두운 산길에서 이 이상 속도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 순간 개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개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컹컹!!

     

    개들은 합창을 하듯 입을 모아 짖어댔다. 아버지는 개들을 쫓아내려고 돌을 집어 던졌지만 성질을 돋우는 꼴밖엔 되지 않았다. 약이 바짝 오른 개들이 앞뒷길을 차단했다. 그리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드러난 이빨은 몹시 날카로웠고, 입새로 침이 줄줄 흘렀다.

     

    휘익.

     

    뾰족한 돌멩이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깨갱!

     

    운이 좋았다. 명중했는지 어둠 속에서 깨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틈을 타, 부녀는 재빨리 수풀이 우거진 산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버지는 커다란 고목 나무 아래 소녀의 작은 몸을 감췄다.

     

    “쉬잇...,”

     

    그리곤 조용히 하라고 일러두곤 몸을 일으켰다.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혼자 남겨진 소녀는 공포와 싸우며 속으로 ‘하나, 둘, 셋, 넷.....’하고 숫자를 세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그때.

    불빛이 나타났다.

     

    “잡았다.”

     

    히죽.

     

    농부의 아내였다. 그녀는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는 소녀의 작은 몸을 휙 낚아챘다.

    소녀의 희게 질린 얼굴 위로 횃불의 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 *

     

     

     

     

    “히이익......!”

     

    범석은 뒷걸음질 치다가 벌렁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는 아픔도 잊고 눈을 벅벅 문질렀다.

     

    ‘조금 전에 뭘 본거지?’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빼꼼 열린 문 사이를 쳐다보았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달달 떨리고 있었다.

     

     

     

     

     

     

     

     

    불과 몇분전.

    범석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장례식에 온 참이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어른들과 술을 한잔씩 주고받고 있었다. 경험대로라면 술자리는 밤늦도록, 혹은 밤이 새도록 이어질 것이다. 범석은 어느새 깜빡 잠들어버렸다. 그대로뒀다면 분명 아침까지 곯아 떨어져 있었을 거다. 그런데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범석은 번쩍 눈을 뜨고 요강을 찾았다. 집이 아니니 머리맡에 요강이 있을 턱이 없다. 그는 아쉬운대로 아버지를 찾았으나, 아버지는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범석은 마루에서 내려와 뒷간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집 뒤쪽의 헛간에서 무언가 쿵,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사내아이가 그렇듯, 범석도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는 가득 차오른 오줌보를 까맣게 잊고 소리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막 모퉁이를 도는데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이 보이기 전에 치맛자락이 먼저 보였다. 이번에 돌아가신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남달리 예뻐했기 때문에 범석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곤 했었다. 물론 범석도 그녀를 곧잘 따랐다.

    그녀는 바로 지척에 범석이 서있는 것도 몰랐다. 묵직한 자루를 끌고 나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루에 크고 묵직한게 들어있는 듯했다. 어른의 힘으로도 쉽게 들어올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루를 끌고 안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안채에는 아저씨가 누워있었다.

     

    ‘저걸 왜 안으로 끌고 가지?’

     

    범석은 호기심을 못이기고 아주머니 뒤를 살금살금 뒤따랐다. 자루 안에 뭐가 들었는진 몰라도 자기 몸하고 얼추 크기가 비슷했다.

     

    ‘저건 감자일까?’

     

    하지만 아저씨가 돌아가신 밤에 감자자루를 나르다니 이상하다. 것도 혼자서. 말도 안 된다. 범석은 도리질 쳤다.

     

    ‘그러면 뭐가 들었지?’

     

    결국 범석은 안채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안방으로 자루를 끌고 들어갔다. 그 광경을 몇몇 어른들도 목격했는데, 다들 에헴, 헛기침이나 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못본것처럼. 아주머니의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건 범석 뿐인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주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에 감자자루를 들고 들어가서 뭐하는 거야?”

     

    범석이 코를 찡긋거리면서 중얼댔다.

    호기심은 가라앉긴 커녕 점점 눈덩이처럼 덩치를 불러갔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고 안채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아버지가 안채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던게 생각났지만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조심만 한다면 들키지 않을 거다.

     

    범석은 툇마루 위로 올라가 무릎걸음으로 문까지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은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긴장 때문이기도 했고, 흥분 때문이기도 했다. 안에는 무슨 비밀이 기다리고 있을까?

    동그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가 또로로 흘러내렸다. 범석은 힘을 주어 문고리를 당겼다.

     

    끼이익...

     

    ‘이크!’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가 났으니 들켰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호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범석은 눈을 뜨고 동태를 살폈다. 어른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있었다. 처마밑에 아롱아롱 달린 등에는 날벌레가 윙윙 대며 달라붙어 있었다. 아까나 지금이나 똑같은 풍경이었다. 범석은 이제 방안으로 눈길을 돌렸다. 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게다가 불빛 하나 들지 않아 어두웠다.

    어둠속을 눈으로 더듬던 범석은 붉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속으로 꽥 비명을 질렀다.

     

    ‘그 애다!!!!’

     

    꽃입처럼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 새침하게 생겨선 남자애들처럼 들이며 산을 겁도 없이 쏘다니던 그애.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입도 틀어막혀 있었는데, 입술이 찢어져서 피로 얼룩덜룩했다. 소녀는 입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입이 막혀서 억눌린 신음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명대신에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툭 부러질 것처럼 가는 팔도 뒤로 묶여 있었다.

    조금 전 아주머니가 끌고 온 자루에 뭐가 들었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소녀가 이불처럼 깔고 누운 커다란 자루. 아주머니가 끌고 가던 자루하고 똑같은 거였다.

    모든 걸 깨닫자 범석의 팔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순간.

     

    “..........!!!”

     

    붉게 충혈된 눈이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씨익 웃고 있었다. 아니, 가만 보니 부르튼 입술 주변에 딱지가 내려앉아있어서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눈빛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으니까.

     

     “히이익!!!!!”

     

     범석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엉덩이가 시큰거렸다.

     

     끼이익....,...탁!

     

     아주머니는 말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무표정하게 범석을 쳐다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두억시니 같은 표정이었다.

     

    범석은 소맷부리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뒤늦게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몸에 냄새가 묻어버렸는지 고약한 냄새가 떨어질줄을 몰랐다.

     

    범석은 손을 땅바닥에 문질러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랑이 사이가 뜨끈해졌다.

     참고 있던 오줌보가 놀란 바람에 그만 터져버린 것이다. 그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범석이 너, 얌전히 있으랬지! 어휴, 이건 뭐야, 응?"

     

     때마침 아버지가 나타나 범석의 등짝을 짜악 소리가 나게 때렸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는 영락없이 오줌을 지린 꼴이었다. 그 모습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위에 올라있던 소금 종지를 받으라고 내밀기도 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범석이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제 집으로 뛰어갔다. 소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 *

     

     

     

     밖에서 일어난 소동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소녀는 밖에서 울고 있는 남자애가 범석이란 걸 알았다. 범석은 워낙 울보로 유명했다. 그러다보니 소녀도 범석이 우는 소리를 몇번 들은 적이 있다.

     

    농부의 아내는 귀를 틀어막았다. 울음소리가 신경을 자극하는지 한껏 인상을 찡그렸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달빛을 받은 손등은 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죽은 남편 옆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쏘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소녀는 그녀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음을 눈치챘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겠지. 그러니 누가 구해주기를 기대해야 되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관하고 있었다. 범석이 때문에 껄껄 웃기는 해도 안에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이 일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이 마을 사람들은 한편이니까.

     

     이를 깨닫자 깊은 설움이 치고 올라왔다.

     

    소녀는 재갈이 물린 입술을 벙긋거리며 길게 흐느꼈다.

     

     "........아.........빠........"

     

     그 소리에 여자의 얼굴이 휙! 소녀쪽으로 향했다.

     붉게 충혈된 눈이 광기로 희번뜩거렸다. 단순히 울어서 저렇게 눈이 빨갛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 병이 눈자위에까지 옮겨간 게 분명했다.

     

    여자는 저와 똑같이 붉은 반점으로 뒤덮인 남편을 끌어 안았다. 뻣뻣한 몸을 끌어안고 앞뒤로 상체를 흔들흔들 거렸다.

     

     "네가 나타난 뒤로 나쁜 일이 생겼어. 갑자기 가뭄이 들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지. 넌 산에서 내려온 귀신이야.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온 귀신이지...."

     

     ".............!!"

     

     "내가 그걸 증명할테야. 네가 귀신이란 걸......."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하얀 소복자락이 바닥 위를 사락사락 스쳤다. 방을 돌며 서성이던 여자가 우뚝 멈춰섰다. 그리곤 남편 쪽으로 소녀를 휙 끌어당겼다. 작고 마른 몸은 속절없이 시체 옆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여자는 남편의 시체를 옆으로 돌려 눕혔다. 

      

     눈이 뒤집어진 시체가 소녀의 얼굴 앞에 드밀어졌다. 공포감에 이빨이 다다다닥 부딪쳤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재갈이 물려 있어서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으......으으........"

     

     '살려주세요, 아줌마.....'

     

     눈빛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여자는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달그락 거리며 문고리를 걸어 잠그는 소리도 들렸다.

     

     소녀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버렸다.

     시체와 함께.

     

     눈을 뜨면 시체의 얼굴이 보였다. 농부는 눈을 까뒤집고 죽어 있었다. 게다가 온 피부는 울긋불긋한 반점으로 뒤덮여 있어서 눈뜨고 볼 광경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을 감으면 극심한 공포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금세라도 농부가 입을 쩍 벌리고 자기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

    소녀는 도망치려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억울함에 눈물과 침만 줄줄줄 흘러내렸다.

     

    소녀는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암시하듯이 속으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저건 안 움직여. 시체니까, 움직일 수 없어.

     나를 괴롭히지 못해. 저건 시체잖아.

     나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 

     

     

     기기기긱.....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

     

    소녀는 눈을 뜬 걸 후회했다.

     

     눈을 하얗게 뒤집은 농부가 소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검은색이어야 할 눈동자는 시뻘갰다. 벌어진 짐승의 뱃속처럼. 

     

    농부는 억울한 죽음을 토해내려는 것 같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사지를 움직여 소녀 쪽으로 조금씩 기어왔다. 비정상적으로 꺾이는 팔다리의 관절이 기괴했다. 소녀의 작은 몸은 공포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져갔다.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고,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 소녀는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밧줄에 꽁꽁묶인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 순간 농부가 손가락을 갈퀴처럼 세웠다. 그가 잡으려는 건 소녀의 머리채였다. 붙썩은 냄새를 풍기는 손가락이 눈앞에 왔다갔다 하자 소녀의 입에서 겁에 질린 비명이 터져나왔다.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옆으로 젖혔다. 갈고리 같은 손이 아슬아슬하게 빗겨갔다. 하지만 안심하는 건 일렀다. 두 번째, 세 번째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꽈악.

     

    머리채를 움켜잡은 농부가 흐흐 웃음을 흘렸다.

    바로 코앞에 시체의 얼굴이 드밀어졌다.

    악취에 덤덤해진 후각으로도 지독한 악취를 느낄 수 있었다.

    소녀가 자지러지듯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재갈에 짓눌린 혀는 그리 큰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내 토기가 올라온다.

     

    “우욱......욱........”

     

    침과 눈물이 줄줄 흘러 소녀의 앳된 얼굴을 뒤덮는다.

    농부는 소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이를 지탱하곤 앞으로, 앞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붉은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소녀의 얼굴을 보려는 행동 같기도 했고, 위협하려는 행동 같기도 했다.

    농부의 시체는 눈을 부라리고 소녀의 얼굴을 자기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피에 얼룩진 입술이 쩍 벌어졌다. 점액질같은 침이 주욱 늘어지며 거미줄을 쳤다.

     

    그 순간 소녀는 그만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렸다.

     

    곧 소녀의 작은 몸에 평온이 찾아왔다.

    정신을 놓아버리니, 더 이상 무섭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오늘 겪은 일은 하룻밤에 불과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소녀는 또다시 혼절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녀는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범석아범, 게 있나?”

     

    아침 일찍 수탉이 울기도 전에 손님이 찾아왔다. 박희완은 부러 문간 쪽으로 기침소리를 내었다. 막 이불속에서 빠져나온 범석아범이 뜻밖의 손님에 놀란 얼굴을 내밀었다.

    도포까지 두른 박희완은 상투만 안틀었다 뿐이지 양반의 차림 그대로였다. 양반의 후예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자다 일어난 사람한테 옷 매무새를 지적할 건 아니지만, 범석 아범의 차림은 박희완과 너무나 딴판이었다. 박희완은 뒷짐을 풀며 “이제 일어났는가”하고 말했다.

     

    범석아범은 눈에 묻은 눈곱과 졸음을 한번에 떼어냈다. 그리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부터 올렸다.

    “예, 어르신.”

     

    “요즘엔 대장간 일을 아주 그만뒀다지?”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참 새삼스런 물음이었다.

    범석아범의 집안은 대대로 대장간을 이어가며 살았다. 범석아범은 이 일대의 유일한 대장장이이자, 마지막 대장장이기도 했다.

     

    ‘대장간 일을 그만둔지 몇 년이나 됐는데, 여태 관심도 없더니 웬일이람?’

     

    범석아범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래도 늘 박희완을 존경했기 때문에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예전같지 않아서요. 농사짓는 사람이래봤자 늘 똑같구 농기구를 사는 일도 드무니.... 범석이 데리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려면 돈이 되는 일을 해야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칼이 필요해. 아주 예리한 놈으루.”

     

    “칼이요? 부엌에서 쓰는 건 아닐테구........설마.......?”

     

    범석아범의 눈동자가 번쩍했다. 최근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길한 일과 관련된 거라면...상상만 해도 소름이 쭉 끼쳤다. 그가 겁을 집어먹는 걸 본 박희완이 혀를 쯧쯧찼다.

     

    “내가 설마 그 어린것의 목을 닭 잡듯이 댕강 잘라버리리라 생각하는가? 달리 쓸데가 있어서 필요한 것뿐이네.”

     

    “허지만 시간이 걸릴 텐데요.”

     

    “서둘러주게. 값은 서운하지 않게 쳐줄터이니.”

     

    “저....어르신. 정확히 뭘 베려고 하십니까? 용도를 알아야 만들 터인데요.”

     

    그 순간 박희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범석아범은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했다.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귀신을 벨 수 있는 칼이 필요하다네.”

    “귀......귀신이요.....?”

     

    “지금 이 마을에 떠돌고 있는 귀신을.”

     

    소심한 범석아범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귀신을 잡는다니, 귀절도라도 필요한 건가?’

     

    그런 대단한 물건을 내가 만들 수 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귀신을 잡은다니. 누가? 백발이 성성한 저 노친네가?

    설마 박희완 저 어르신이 망령이 들었단 말인가?

     

    박희완은 이곳을 찾기 전에 범석아범의 망설임을 어느정도 예상했다. 박희완이 미리 준비한 돈을 꺼내 범석아범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네는 걱정 말고 칼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 알아서 할 테니. 완성되면 내 이것의 곱절로 더 쳐주겠네.”

     

    범석아범은 손에 쥐어진 돈의 감촉을 느꼈다.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홀아범으로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더구나 그는 원래 직업이었던 대장장이 일도 접고 남의 농사나 도우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곧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희완은 서두르라는 당부를 하고 새벽 안개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

     원래 제목이 '칼을 만드는 사내'였습니다. 범석아범이 주인공이었던 거죠.

     근데 아무래도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 바꾸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에서 밀려나게 된 범석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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