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영화화 된다면서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우리 동호회 사람들 중에 k씨가 제일 성공한 것 같아."

 "성공은요. 운이 좋았던 거죠."

 k씨는 쑥쓰러운 듯 볼을 긁으며 사람들의 축하인사를 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샴페인잔을 높이 쳐들고 영화의 흥행을 빌어주었다.

 자기일도 아닌데 하나같이 들떠 있었고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k씨는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자기 책의 표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어두운 방안에 앉아서 시간이나 죽이며 살고 있었겠지.

 책으로 출판되어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것도 아직 얼떨떨한데, 영화화된다니...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주인공 역은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로 내정되어 있었다. 

 요즘엔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주 행복한 꿈을.

 아마추어 작가였던 k씨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작년에 웹상에 연재하기 시작한 글 덕분이었다.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을 다룬 소설은 충격적 소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금세 유명세를 탔다.

 주인공은 비록 정신병력이 있는 살인마였지만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빠져든 독자들은

 그의 유년시절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며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손꼽았을 정도였다.

 유명 포털사이트를 가도 k씨의 소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고, 곧 팬카페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출판사쪽에서 먼저 연락을 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나선 주위의 평판이 달라졌다. 

 어딘지 음침한 구석이 있었던 성격은 고독한 사색가로 포장되었고,

 서른이 넘도록 벗어나지 못한 반지하의 분리형 원룸은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인 '작업실'로 불렸다.

 동호회 내에서의 입지도 올라갔다.

 사실 가장 글을 잘 쓰고 잘나갔던 회원은 J씨로, 겉으로 보기엔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평범한 남자였지만, 동호회 회원을 통틀어 유일하게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성격은 다정다감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소극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하던 K씨를 챙겨주기도 했다.

 K씨는 J씨의 글솜씨와 안정된 직장을 늘 부러워했다. 그는 빛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고 자신은 어둠에 속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J씨는 K씨의 열렬한 독자를 자청하며 늘 독려해주었다.

 비어있는 냉장고를 채우는 일도, 새로 쓴 글을 퇴고하는 일을 돕는 것도 늘 J씨의 몫이었다.

 K씨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본 것도 J씨였다.

 한밤중 충동적으로 써내려간 글이었다. 과연 이런 글이 평가받을 정도의 수준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다.

 빠른 속도로 써내려간 글이었던 데다가

 그에게 보여줄 때는 겨우 초입부만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쑥스러웠지만,

 몇페이지 안되는 글을 정독한 J씨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K씨의 걱정이 기우라는 듯, J씨는 상기된 얼굴로 극찬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늘 그렇듯 충고도 잊지 않았다.

 '주인공이 너랑 많이 닮았어. 작가의 삶이 소설과 인물에 반영된다고는 하지만 소재가 소재인만큼

 너랑 철저히 분리시키는게 어떨까? 나중에 의심받고 조사라도 받게되면 곤란하잖아.'

 '....그 정도예요?'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네가 연쇄살인범은 아닐테니 말야.

 소재부터 강렬하고 아주 근사해. 멋진 소설이야. 결말을 스포일러 당하고 싶을 정도로.'

 확실히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소설의 완성도는 지금보다 낮아졌겠지. 그의 안목은 비평가에 버금가게 정확했으니.

 J씨를 보지 못한게 일년쯤 됐다. 동호회 모임이 열렸다치면 둘은 꼭 붙어다녔기 때문에 오늘따라 J씨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한건 K씨만이 아닌지, J씨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여자가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요즘 J씨랑 연락하세요?"

 "아니요. 좀 오래됐습니다, 전화통화 한 것도..."

 "질투같은 건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질투요?"

 "사람들이 수근대는 소리 못들었어요? 솔직히 1년전만해도 J씨가 이 중에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었잖아.

 K씨가 자기랑은 비교도 안될만큼 성공하니까 쪽팔리기도 하고 배 아프기도 하니까 잠수탄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어요.

 내 연락까지 무시하는 걸 보니.... 온라인에서도 볼 수 없고.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가?

 K씨한테까지 연락을 끊었다는 걸 보면 정말 인 것 같아서요. 그래도 두 분이 단짝이었잖아요. J씨 그렇게 안봤는데 참 실망이야."

 "설마....개인적인 일 때문이겠죠."

 "아참. 마지막 희생자 말인데요. 그 다정하고 착한 남자 말이에요."

 "네."

 "캐스팅 누가 될까요? 마지막에 배신당하고 죽는 그 캐릭터가 인기가 많잖아요.

 주인공이 누가 될지보다 그 남자 누가 연기할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 역에 영화배우 S씨 어때요? 꼭 보고 싶다고들 난리야. K씨가 힘 좀 써줘요. 원작자니까 그 정도 입김은 있지 않겠어요?"

 "캐스팅에 대한 건 아직 의논중이라서요. 그래도 한번 의견을 내보겠습니다."

 "어머...."

 여자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K씨를 바라보다가 귓속말을 하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K씨, 알고보니 다정했구나. 성공하면 콧대가 높아진다고 하는데, 자기는 그 반대야."

 어느새 K씨에서 자기로 호칭이 변했다는 걸 여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자가 내미는 연락처를 받아쥐고 책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밤, 세번째로 받은 연락처였다.

 돈과 명예를 손에 쥐니 여자는 자연스레 따라 붙는 모양이다. 

 쏟아지는 별을 보며 K씨는 새삼스레 생각한다.

 역시,

 자서전인 걸 밝히지 않은 게 다행이야.....하고.

 J씨 한명이면 몰라도 저렇게 많은 사람을 해치우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