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사건은 그 일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습니다.
그 날은 아마 꽤 오래 쉬는 명절이었을 겁니다. 아마...설날이었던가?
일주일 정도를 쉬는 명절이었어요.
중국이 땅이 넓고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연휴가 일주일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고향에 가보기라도 할 수 있거든요.
덕분에 일주일동안 저희는 간만에 별 생각없이 쉬게 되었습니다.
그 휴일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두번째 사건에서 언급한 은XX목사는 놀랍게도 태권도 동아리(실은 무에타이 동아리)의 책임자였고
도장 안에 자신의 검은띠(2단이라고 했을 겁니다 아마.)도 걸어놨었는데
새로 들어온 배XX가 도장의 책임자가 된 뒤로 도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새해고 하니 도장 청소를 하자는 동생의 제의를 받아들여 4명이서 도장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문득 한 녀석이 그 검은띠를 들고 오더니 모아놓은 쓰레기더미 위에 패대기를 치는 겁니다.
동생과 동갑이었던 그 녀석은 그 때만 해도 행동이 좀 아웃사이더 경향이 강해서 왕따를 당했다가
저희와 친해진 뒤로 늘 저희와 함께 다녔었는데
그 돌발 행동에 전 처음엔 좀 놀라서 만류했지만 워낙 은 목사의 이미지가 이미지이기도 하고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이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쓰레기더미는 그냥 도장 앞에 두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치우지 뭐, 하면서요.
물론 그 검은띠도 그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진 채였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멍하니 남동생과 저는 배드민턴을 치기로 했습니다.
그 때는 유난히 이상한 배드민턴을 쳤는데
운동장에 서로 저 멀리 서고 있는 힘껏 셔틀콕을 쳐서 날립니다.
방향은 고려하지 않고요.
하여간 그러면 상대가 죽어라 달려서 그걸 어떻게든 칩니다.
역시 방향은 고려하지 않고요.
그런 이상한 기인열전이 나름 명물이었죠.
저랑 남동생 말고는 그런 배드민턴 보통 안 치니까요.
그렇게 한 시간을 죽어라 치던 중
남동생이 문득 도장에 갈 일이 생겨서 도장으로 향했습니다.
왜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터덜더덜 지쳐서 배드민턴 채를 들고 운동장에서 한국부 건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다가
마침 배드민턴을 든 저를 보더니 같이 치자고 해서
그날따라 왠지 그 말이 굉장히 즐겁게 들린 저는
그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고, 격렬한 운동이었던 배드민턴이
여자애들과 노닥거리는 스포츠로 변한 것이 소소한 행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도 길었으면 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은 금새 끝났습니다.
목에 긁힌 자국이 잔뜩 나고 티셔츠도 잔뜩 늘어난 채로 남동생이 씩씩거리며 한국부 건물로 향해 오더니
한국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한국 아이들 다 나오라며 고함을 치는 겁니다.
당연히 저도 주변 아이들도 깜짝 놀라서 남동생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남동생이 씩씩거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다음은 동생의 시점입니다.
내가 도장 앞에 도착했을 때 도장 앞에는 배XX가 서 있었다.
아마 어제 쓰레기더미에 던져둔 은XX의 검은띠를 발견한 듯하다.
이걸 누가 그랬는가하고 나에게 물어오길래 난 모른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도장 관리도 안하던 사람들이 새삼 뭐 참견인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도장 키를 내놓으라고 한다.
앞으로 자기가 관리하겠다나 뭐라나.
나는 싫다고 했다. 내가 일단 한국 유학생 중 체육부장이기도 했고
이 도장은 그동안 우리가 운동하는 공간으로 잘 쓰이고 있었으며
나름 청소도 하고 애정을 들여 관리한 곳인데 여분의 키가 있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내 키를 달라는 것은 우릴 도장에서 내몰겠다는 뜻으로 들렸고
키를 달라는 태도도 지나치게 고압적이었다.
그리고 배XX의 대답은...폭력이었다.
그는 처음에 '뭐?' 라고 되물으며 내 목에다 손을 댔다.
그냥 댄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손 안쪽으로 때려댔다.
당연하지만 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그럴 때마다 뿌리쳐버렸다.
그런 행동을 몇 번 반복하던 그 배XX는 제대로 약이 오른 듯
빗자루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당연하지만 이런 건 내게 그냥 맞아줘도 딱히 위협이 되는 공격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굉장히 화가 났다.
맞으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눈 앞의 상대를 죽여버릴까? 한 방에 찢어버릴 수 있는데...라고
계속 고민을 했다.
하지만 별 자격이 없어도 일단 선생이라고 불리는 놈이니 폭력을 쓰기도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뿌리쳐서 넘어뜨리고 이렇게 왔다.
난 내가 왜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좀 맞으면 쫄아서 빌빌거릴 줄 알았나본데
학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학교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백 목사를 앞에 두고 남동생이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말이 끝날 때 쯤에는 나 역시도 스스로가 제어가 되지 않을만큼 분노했죠.
사실 검은띠를 버린 건 잘못한 것이 맞지만
그에 대한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증만으로 이런 짓거리를 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어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죽여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동생의 말이 끝나자 나도 말했습니다.
"백 선생님. 제가...제가 지금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아시겠죠?"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진정을 해라."
"진정을요? 배 선생, 그 빌어먹을 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겁니까?
나잇살 처먹고 애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서 주먹이 올라가요? 우리가 힘이 없었으면 꼼짝없이
두들겨 맞았겠군요. 이 사실, 어머니께 알리도록 하죠. 어디 우리 어머니가 나서고 나서 이 학교가
무슨 꼴이 날 것인지 한 번 두고 봅시다."
사실 우리 집은 무슨 배경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죠. 다만 성격이 하나같이 너무...자세한 설명은
이만 하고, 내가 전에 몇 번 우리 성격은 어머니나 아버지에 비하면 정말 온화한 편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성격이라면 분명 한국에서 아이들이 무사한지 오매불망 기다리던
부모들에게 소문이 커져 엄청난 클레임이 들어올 것은 뻔하고 특히 우리 어머니의 전화를
네다섯시간이고 받아야 할 것이 뻔하다.
더불어 한국부의 존립 자체가 위태해질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배경이 없지만 여기 아이들은 크게는 국회의원의 손녀도 있고
적어도 집안이 어느 정도는 잘 나가는 집안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우리가 공개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그 쪽도 당연히 바라지 않을 것이었죠.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라. 너희 심정은 이해하지만 우리 입장도 좀 생각해 주렴.
이렇게 하자. 우리가 배 선생을 처벌하겠다. 그러니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가 줘라.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한국부 전체를 대표해서 일단 너희가 당한 일은
내가 사과하마."
굉장히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기는 했지만 백 선생, 정확히는 백 목사는 평소에 나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름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나이도 오십 줄인 선생이 이렇게까지 숙이고 들어오니
나도 계속 밀어붙이기는 힘들었지요.
"일단 백 선생님께서 정히 그리 말하시니 제가 우선은 물러서지요. 하지만 제 동생과 저는
지금 진심으로 저 배 나부랭이를 죽여버리고 싶고 이 일로 더는 한국부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만일 배 선생에 대한 처벌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할 시, 즉시 집에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부디 어설프게 넘어갈 생각은 말아 주시죠."
그렇게 말하고 나와 내 동생은 교무실로 이용되는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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