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도 한참 넘긴 아버지가 오십도 안된 어머니 목을 밟고 위협하는 것을 본 날부터 <div><br /></div> <div>아버지를 사람 취급하기를 그만두었다.</div> <div><br /></div> <div>20대 초반, 연년생인...가장 사랑했던 남동생을 잃은 뒤부터</div> <div><br /></div> <div>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족일지라도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 버렸기에 잘 지내려 했었다.</div> <div><br /></div> <div>하지만 알고 있었다.</div> <div><br /></div> <div>경찰서 정보과의 어린 여경과 동네에 유명한 주먹대장 출신인 버스 운전사.</div> <div><br /></div> <div>타고난 성향부터 다른 부모님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30년을 부부로 살며</div> <div><br /></div> <div>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같이 지낼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div> <div><br /></div> <div>자식을 잃은 슬픔도 그 한을 희석시키지는 못했다. </div> <div><br /></div> <div>오히려 더 불을 지폈겠지.</div> <div><br /></div> <div>나는 아버지를 도발하여 어머니에게서 떨어지게 했다.</div> <div><br /></div> <div>아니, 아버지는 없었다.</div> <div><br /></div> <div>한 마리 짐승이 내게 돌진했다.</div> <div><br /></div> <div>피할 수가 없었다.</div> <div><br /></div> <div>내 뒤에는 열 살 터울의 어린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div> <div><br /></div> <div>저렇게 화난 아버지에게 맞서는 일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div> <div><br /></div> <div>그 때 나이 스물다섯이었지만, 정말 무서웠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분명 두 분을 놓고 보자면 불쌍한 쪽은 어머니이다.</div> <div><br /></div> <div>바람에, 폭력에, 심지어 자식들을 인질삼아 위협까지 당하셨으니까.</div> <div><br /></div> <div>나이를 먹고도 아버지는 전혀 철이 들지 못했다.</div> <div><br /></div> <div>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div> <div><br /></div> <div>나에게는 어머니야말로 무서운 가해자였다.</div> <div><br /></div> <div>초등학교 내내 별 사소한 일로도 9시간씩 야구 방망이로 맞았다.</div> <div><br /></div> <div>어쨌든 여경 출신이며 강원도 소녀였던 어머니의 매질은 어린 나와 남동생이 견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div> <div><br /></div> <div>나 자신이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은 </div> <div><br /></div> <div>겨우 20대 초반에 날 낳은 당신 역시 철부지 꼬마에 불과했을테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라는 것.</div> <div><br /></div> <div>딱히 대단히 현명할 것도 없는,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을 그런 젊은 처자들 중 하나였을 어머니.</div> <div><br /></div> <div>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그 시절 맞은 것들을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div> <div><br /></div> <div>걸음마도 하기 전부터 계속 맞아왔다.</div> <div><br /></div> <div>걸음마를 하기 전의 기억조차 남아있기 때문에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지만</div> <div><br /></div> <div>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당한 일들을 잊지 못할 것이듯</div> <div><br /></div> <div>나도 어머니의 매질과 폭언들을 영영 잊지는 못하겠지.</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내게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짐승과 동급이 된 날 이후 3년 정도 흐른 것 같다.</div> <div><br /></div> <div>그 날부터 아버지는 한 집에 살지만 생활비를 끊어 버렸다.</div> <div><br /></div> <div>뭐 관리비 정도는 내는 것 같지만 당장 수입이 없던 나와 어머니는 큰일이었다.</div> <div><br /></div> <div>다행히 백화점 직원이었던 나는 어찌어찌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탰고,</div> <div><br /></div> <div>어머니도 당뇨에다 구타 때문에 성치 않은 몸으로도 이를 악물고 식당에 나가셨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이듬해, 대학에 입학했다.</div> <div><br /></div> <div>별로 대단할 것 없는 학교였다. </div> <div><br /></div> <div>검정고시 성적으로 수시를 썼는데 과 수석이었다.</div> <div><br /></div> <div>그리고 2년간,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 차석을 제외하고는 계속 수석이었다.</div> <div><br /></div> <div>물론 돈도 계속 벌었다.</div> <div><br /></div> <div>2년제라 그런지 학점은 매 학기 23학점이었다. </div> <div><br /></div> <div>일하면서 수석을 유지하려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잘 수 없었다.</div> <div><br /></div> <div>대학 시간제 강사 중 한 명이 나를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강사로 쓰겠다고 했다.</div> <div><br /></div> <div>백화점 직원에 비해 더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도움이 되니까 악착같이 일했다.</div> <div><br /></div> <div>그렇게 2년을 보내고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div> <div><br /></div> <div>수석이란 타이틀보다는 장학금 30만원이 더 기억에 남았다.</div> <div><br /></div> <div>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 문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지만, </div> <div><br /></div> <div>나 혼자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 수 없었다.</div> <div><br /></div> <div>나는 히어로물의 주인공 따위가 아니었으니까.</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졸업 후 편입 문제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일에 전념하려 했지만, </div> <div><br /></div> <div>어쩐지 마음이 공허했다.</div> <div><br /></div> <div>학원 강사는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div> <div><br /></div> <div>그렇다고 전공대로 글을 쓰자니 생계도 문제였고,</div> <div><br /></div> <div>무엇보다 내 글은 형편없었다.</div> <div><br /></div> <div>좋아하니까 10년이고 20년이고 노력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div> <div><br /></div> <div>다만 그걸로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div> <div><br /></div> <div>아직 공부를 더 해야했다.</div> <div><br /></div> <div>그보다 일을 해야 했다.</div> <div><br /></div> <div>어머니는 고된 일로 손톱이 몇 개 빠지고 말았다.</div> <div><br /></div> <div>그리고 가난의 상징인 결핵에 걸렸다.</div> <div><br /></div> <div>여동생은 고2가 되었다.</div> <div><br /></div> <div>가족들이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내 월급에 의지해야 한다.</div> <div><br /></div> <div>그것이 오히려 나를 기운 빠지게 하고 있었다.</div> <div><br /></div> <div>애초에 내 목표는 독립하여 자유롭고 싶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얼마 전 베오베에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div> <div><br /></div> <div>나도 기뻤다.</div> <div><br /></div> <div>그런데 그 이상으로 아팠다.</div> <div><br /></div> <div>작품을 읽으며 내내 답답했다.</div> <div><br /></div> <div>나는 시를 쓰니까, 라고 말하기엔 시 필사조차 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div> <div><br /></div> <div>창작에 도움도 안되는 교과서 작품들은 많이 보았다.</div> <div><br /></div> <div>쉬는 날에는 정말 무기력했다.</div> <div><br /></div> <div>기본적인 집안 일 말고 하는 일이라곤 오유 눈팅뿐이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어제 갑자기 아버지가 여동생과 나에게 말을 걸었다. </div> <div><br /></div> <div>집이 팔린다고 했다.</div> <div><br /></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그 시간, 어머니는 외출중이었기에 아버지는 내 핸드폰을 빌려 어머니에게 통화를 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br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통화였음에도, 닫힌 아버지의 방에서는 금세 고성이 울려퍼졌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br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한참 뒤,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span></div> <div><br /></div> <div>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연립주택 같은 곳에 집을 구해서 자신에게 방을 하나 내 달라고 했다.</div> <div><br /></div> <div>이 집이 팔리고도 같이 살자는 뜻이었다.</div> <div><br /></div> <div>당연히 거부했다.</div> <div><br /></div> <div>3년 전, 그 사건 이후 다같이 모여 집이 팔리면 아버지와 떨어져 살기로 약속했었다.<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 </span></div> <div><br /></div> <div>단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런 불편한 동거를 한 것일 뿐, 가능하다면 당연히 갈라서야 했다.</div> <div><br /></div> <div>아버지를 용납할 이유가 없었다.</div> <div><br /></div> <div>생활비 때문에 무리하다 뼈만 남은 어머니인데, 아버지는 어떻게든 어머니를 나쁜 여자로 만들고 싶어 계속 거짓말을 했다.</div> <div><br /></div> <div>나보다 스토리텔링에 재주가 있었던 것도 같다. </div> <div><br /></div> <div>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사치스럽고 개념없는 아내 때문에 초라해진 </div> <div><br /></div> <div>이<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 시대의 아버지상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br /></span></div> <div>아버지는 망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div> <div><br /></div> <div>나쁜 어머니로 인해 고통받는 착한 당신.</div> <div><br /></div> <div>그렇게 좋을대로 조작되어버린 기억 속에 들어가 자아를 보호하고 있었다.</div> <div><br /></div> <div>이미 미쳤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도망친 그 모습이 정말 불쌍했다.</div> <div><br /></div> <div>물론 그렇다고 아버지와 함께 살 생각은 없다.</div> <div><br /></div> <div>여기 이 집에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집을 판 뒤 남는 차액을 받기로 했다.</div> <div><br /></div> <div>아마 그 돈으로 어머니와 여동생과 나, 이렇게 셋은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div> <div><br /></div> <div>3년간 이를 악물고 살아가며 바랬던 결말이다.</div> <div><br /></div> <div>악당이었던 아버지는 결국 처자식에게 버림받아 쓸쓸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div> <div><br /></div> <div>정에 이끌려 아버지를 받아들이기에는 </div> <div><br /></div> <div>어머니와 여동생의 한이 깊다.</div> <div><br /></div> <div>나에겐 자비가 없다.</div> <div><br /></div> <div>젊은 시절 좋을대로 힘을 과시했던 아버지.</div> <div><br /></div> <div>세월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계속 휘두른 업보라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겠지만,</div> <div><br /></div> <div>사실 저렇듯 못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도 세상에 넘쳐나는데</div> <div><br /></div> <div>아버지에겐 유독 세상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물론 아직 문제가 산더미지만 </div> <div><br /></div> <div>큰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쓰리다.</div> <div><br /></div> <div>남동생이 그리워진다.</div> <div><br /></div> <div>우리 모습을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얼마나 통곡할까.</div> <div><br /></div> <div>월요일 수업이 있는데</div> <div><br /></div> <div>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나.</div> <div><br /></div> <div>나에게 쉴 시간은 없는데, 더 힘을 내야 하는데.</div> <div><br /></div> <div>지금은 그저 주저앉고 싶다.</div> <div><br /></div> <div>계속 식구들과 함께 있었는데</div> <div><br /></div> <div>어쩐지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