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가을 비오는 밤이었다. <div><br></div> <div>"캬...이런 명작이...하루키는 하루키네..."</div> <div><br></div> <div>사실 내가 아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군대에서 더럽게 심심해서 읽은 "상실의 시대" 딱 하나였다.</div> <div><br></div> <div>나는 역사책을 좋아해서 소설도 역사소설이나 보는 편이라 소설쪽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한 편이지만,</div> <div>책이라면 해석본없는 불경도 글자 그대로 읽는 동생을 둔 지라, </div> <div>동생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댄스댄스댄스"를 그나마 아는 작가라고 빌려다가 집에 들고와서 보는 중이었다.</div> <div><br></div> <div>그러다가 삿포로에 막 도착한 주인공이 돌핀호텔에 가는 길에 어느 커피집에 들러 위스키를 탄 진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자, 갑자기 커피가 미친듯이 마시고 싶어졌다.</div> <div><br></div> <div>빗발은 아직도 거셌고, 토요일 늦은 밤. 혼자 딸려고 소주를 디캔딩(...고추참치에다가 한잔하려고 뚜껑 따고 깜빡했음)한 상태였지만, 그 장면을 읽으니 커피가 너무나 마시고 싶어졌다. </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러나, 여느 주택가, 그런 본격적인 커피집이 있을리 전무했다;;;</div> <div>나는 커피집이 모퉁이마다 서너개씩은 있는사거리에 잠시 서서 고민 하다가, 두 잔만 더 마시면 아메리카노 한잔을 서비스로 마실 수 있는...그러니까 쿠폰을 조금만 더 모으면 되는 어느 커피집으로 들어갔다</div> <div><br></div> <div>"카페라떼...샷 두개 추가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주문하고서야 알았지만, 그 쿠폰들은 날짜가 지나 사용할 수 없는 쿠폰들이었다...빌어먹을 프렌차이즈...</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여하튼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재생목록 중에 "뽕빨댄스모음"을 선택해서 쿵짝쿵짝 들으며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이 가격이면 유럽 어디를 가도(봉사료 제외) 웨이터가 니 자리까지 커피를 가져다주지만, 여기는 한국이니 니가 와서 가져가. 라는 벨이 울릴때 빼고는 어지간히 깐깐한 거래처 미팅아니고서야 20분을 버티지못하는 커피집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어내려갔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창정이형이 문을 여시오~할때 감정이입 쩔더라.</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하권에서 딕이 죽어서 유키랑 엄마 아메를 찾아가는 장면 즈음이었다. </span></div> <div>비록 24시간 영업이지만 시간이 꽤 늦어 사람이 없을 시간이었다.</div> <div>내가 책에서 눈을 뗀건 일행도 없는 내 앞에 누군가 서 있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div> <div><br></div> <div>많아봐야 대학교 1,2학년쯤 되는 여자애(지금 내 나이가 여대생보고 애라고 할만한 나이임--;;;)였다.</div> <div>딱 그만한 나이대의 여자애였다. </div> <div>평범한 그 나이대 여자애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 나이대 여자애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기라고는 1도 없었고, </div> <div>내가 여기서 농담 하나라도 잘못 던지면 고마해라 마이무따아이가.하고 죽기전 유언 하나 못남기고 엌하고 보내버릴만큼 살기가 느껴진다는 거였다.</div> <div>대학교 축제때 다른 과에서 하던 유령의 집에 들어가서 유령분장한 애들 절반을 울리고 나온 적도 있는 내가 흠칫 할 정도로 살벌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늦가을에 비바람이 퍼붓던 날이라, 퍽 쌀쌀했는데,</div> <div>그 아이는 얇은 긴팔 티셔츠 하나에 얇은 츄리닝 바지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왜 하필 오늘 칼부림 할 사람으로 날 택한게야...나도 내 새끼 옹알이는 들어보고 가야할것 아니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손짓으로 여기 앉으라고 한 후에, 냅다 튀려다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테이블 위에 놓인 내 핸드폰을 보고...약정이 2년만 덜 남았어도...라며 땅을 치며 후회하고는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카운터로 가서 "아메리카노 따듯하게 젓지말고 흔들어서."라고 주문하고는 다시 내 자리로 갔다...핸드폰 가지러...</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내가 그때 핸드폰 가지고 냅다 튀지않은 이유는...그 아이가 에취!!!하고 재채기를 했기 때문이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때 그 아이는 훌륭한 예비살인범에서 평범한 20대 여자애로 돌아왔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나는 주머니에 넣으려던 핸드폰을 그냥 고대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br></div> <div><br></div> <div>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벨을 안주고 경찰을 부를까.하고 직접 커피를 들고온 알바생은 많이 풀린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커피를 내려놓았다.</div> <div>시럽도 통째로 들고오더라. </div> <div><br></div> <div>"마셔요. 추워요."</div> <div>"..."</div> <div><br></div> <div>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커피 한 모금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비는 여전히 거세고, 이 가련한 여인을 주워갈 생각도 없었지만 두고 갈 수도 없어서, 다시 "뽕빨댄스모음"을 들으며 책을 읽어내려나갔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한참을 읽다보니 삿포로 돌핀호텔로 돌아간 주인공이 유미요시랑 자려는 딱 그 장면(...ㅋ)에서 </div> <div>"저기..."</div> <div>하고, 그 여자애가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div> <div><br></div> <div>"예?"</div> <div>"호...혹시...담배 있으세요?"</div> <div>"아...잠깐만..."</div> <div><br></div> <div>담배를 끊은지 2년이 넘던 때라 담배가 있을리 전무했다.</div> <div><br></div> <div>카운터로 가서 아까 그 남자알바생에게 담배있냐고 물어봤다.</div> <div>"있긴한데..."</div> <div>절반남은 말보로 레드. </div> <div>"그거 저한테 5천원에 파세요."</div> <div>"아뇨. 그냥 한까치 드릴께요."</div> <div>"많이 필 것 같애요. 여기 5천원...라이타는 서비스로 좀 주시지?"</div> <div><br></div> <div>흡연석이 없는 가게라, 우리는 가게 쇼윈도 앞에 비를 피해서 나란히 섰다.</div> <div>그녀에게 내 바람막이를 입혀주었다. 비바람은 여전했지만 내가 그닥 추위를 타는 편이 아니라 나는 그냥 있었다.</div> <div>내가 담배를 주자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div> <div>불을 붙여주었다.</div> <div><br></div> <div>설마 내가 고등학생때 호기심에 처음 담배피워봤을때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생전 처음보는 여자애에게 할 줄 몰랐다.</div> <div><br></div> <div>"뭐하냐. 빨어."</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콜록대며 기침을 한다. </div> <div>난생 처음펴보는 담배렸다.</div> <div>히내리 올껀데...역시나 휘청거리길래 얼른 팔을 잡아주었다. </div> <div>여리고 가는 팔이었다.</div> <div><br></div> <div>"...담배는 이렇게 피는겨...잘봐."</div> <div>2년만의 금연을 그렇게 한번 깨보았다.</div> <div>그런데 젠장맞을 라이타가 비바람에 자꾸 꺼진다.</div> <div>어?어?어?하는 나를 보며 그 여자애가 처음으로 풋!!!하고 웃었다.</div> <div><br></div> <div>정상적인 남자였다면 그 웃음에 바로 반했을거다. </div> <div>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대에나 나올 수 있는 예쁘고 사랑스런 웃음이었다.</div> <div><br></div> <div>그러나 당시에 나는 10년가까이 사귀던 여자에게 차이고 겨우 감정을 회복하고 살던 때였고, 연애감정은 씨도 말라버린 터라 순간 이거시 감히???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div> <div>나는 키득거리는 그 애에게서 담배를 휙 뺏아 담배불씨로 불을 붙였다.</div> <div><br></div> <div>오랫만에 피니까 아주 쭉쭉 빨리더라. </div> <div>몸이 니코틴을 원했는지 진짜 쭉쭉 잘 빨렸고, 나도 히내리가 와서 순간 비틀했다.</div> <div><br></div> <div>여자애는 진짜 ㅋㅋㅋㅋ하고 웃었고, 나도 어이가 없고 쪽팔려서 이런 제기랄ㅋㅋㅋㅋㅋ하고 웃어버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둘이 3대씩 피고, 어질어질해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div> <div>"왜 나야?<span style="font-size:9pt;">"</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까...내가 아가씨라고 불러도 기분나빠하지 말아요...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니 그냥 아가씨라고 부르는거니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가씨 아까 누구 하나 죽일 기세던데...그게 왜 나였냐구."</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죄송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죄송은 무슨. 살려줘서 고맙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리고...내가 어디서 사람은 죽여본 적 없는데...혹시 친구 라는 영화 본 적 있어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친구?"</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내가 고등학생때 유오성 장동건이 나온 영화있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모르겠는데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몇 살이셔 대체? 명절특선영화로도 본 적 없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거기서 유오성이 분한 준석 가라사대. 그런 커터칼로는 사람 못 죽여. 15cm이상 날의 사시미나 가능하다고. 커터칼은 말 그대로 뭐 자를때나  여기여기...내 경동맥, 이런데 단 칼에 썩둑 못할거면 그런 칼로는 염라대왕이랑 하이파이브 못한다고. 그러니 그 칼. 주머니에서 꺼내시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여자애는 움찔하며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문방구에서 500원이면 사는 그런 커터칼이었다.</span></div> <div>주머니에 얼핏 형태가 보일때 눈치채긴 했지만, 처음 봤을때 기세는 진짜 이쑤시개로도 내 곱창을 꺼내 볶아다가 찍어먹을 기세여서 진짜 쫄았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div> <div>"네?"</div> <div>"끝에 다 닳았잖아."</div> <div>나는 커터칼 뒷부분을 빼서 커터날 닳은 쪽을 똑.하고 부러뜨려 새 날이 나오게 해주었다.</div> <div>내가 칼날을 부러뜨리자 여자애는 얼굴까지 찌푸리며 어깨를 움찔했다.</div> <div>내가 이런 애한테 죽을뻔했구나...허탈함이 막 밀려왔다.</div> <div><br></div> <div>"저...정말로...죄송합니다..."</div> <div>"살려줘서 고맙다니까 무슨."</div> <div>"커피도..."</div> <div>"살려줘서 고맙다고 사드리는 겁니다."</div> <div><br></div> <div>내 앞의 그녀는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div> <div>수년전 그녀에게 차이고도 울고싶어도 눈물이 안나와 다래끼낀것처럼 양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이 메마른 나는</div> <div>내가 안 우는 만큼 남이 우는것도 꽤나 곤욕인 사람이다. </div> <div><br></div> <div>어?어?어?하는 동안 여자애는 숨죽여 계속 울어댔고, 나는 잠시 정신이 든 통에 얼른 가서 따듯한 물을 떠다바쳤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날은 그렇게 헤어졌다.</div> <div>회사에서 창사기념으로 준거니까 괜찮다고 내 바람막이를 억지로 입혀서 만원 한장 창문 안으로 던지다시피 쥐여주고 택시태워보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참 별일도 다 있구나...하고 끝날 줄 알았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 </span></div>